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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복잡해졌다. 홍종우의 총탄세례로 최후를 마친 김옥균, 실패한 혁명가 김옥균의 인생노정을 지켜보니 그에 대한 연민에,아쉬움과 한탄까지, 내 심정은 복잡다단해졌다. 냉정함을 잃고 감상에 치우쳐 그를 바라보는 건 아닌가 염려하면서도 갑신정변 실패 이후 암살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조선의 개화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삶을 보게 됐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건지도 모르겠다.
1884년 12월 우정총국 개국날 일어난 갑신정변은 가장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위로부터의 개화를 추진하려 했던 사건이었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이 개화를 추진하려 해도, 민씨 일파등과 부딪치면서 갈등을 빚게 됐고, 개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권력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흔히 '3일천하'로 알려진 갑신정변은 불과 마흔여섯시간만에 실패한 정변으로 막을 내렸고,국내외적으로 몰고온 파장이나 영향, 그 후폭풍이 거셀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근대변혁 운동의 시발점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정변의 실패는 부정적인 영향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일본을 끌어들임으로써 민심을 등지게 했고, 긍정적으로 조성되던 개화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을 일거에 부정 일변도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또한 조선 정국이 보수 반동적으로 경색됐으며,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이다. 민심과 왕이 등돌린 위로부터의 혁명이 지닌 약점에, 열강들이 조선에 눈독들이는 국제 정세를 오판했던 것을 보면 김옥균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갑신정변을 평가하는데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의 권리를 제정한다는 정령으로, 신분제 폐지는 가히 혁명적으로 조선사회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갑신 정변 10년후인 1994년 갑오경장때, 이들이 내세웠던 정령들 대부분이 시행된 것을 보면, 개화파들이 내세운 지향성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임이 입증된다.
그런데 '김옥균, 역사의 혁명가 시대의 이단아' 이 책은 갑신정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제목대로 김옥균의 최후까지 그의 삶을 담고 있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김옥균의 망명지에서의 동정을 통해 실패한 정변의 주모자 김옥균의 면모를 알려주고 있다. 일본에서의 여성 편력이나 함께 한 동지들과의 갈등까지 담아내고 있다.
정변이 실패하자, 정변의 주모자들은 대부분 모단대역죄로 처형 그것도 능지처자를 당하거나 연좌제로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어야 했고, 김옥균과 박영효 등 일군의 주모자들은 일본으로 도피해 망명객으로 살아가야 했다. 일본에 남은 자는 동지들끼리 불화를 겪기도 했고,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망명지에서 떠돌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은 다시 각자도생하게 됐다. 서재필 등 일부 개화파들은 다시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고 그뒤 갑오경장 이후 무사히 귀국해 활동하게 됐다. 그리고 친일명부에 오르는 주모자들도 있으니..
일본은 갑신정변을 지원했지만, 실패한 정변의 주모자들은 일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일본은 조선이나 청과의 마찰을 의식해야 했고,그런 가운데 김옥균은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유배되기도 하는 등 파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조선의 개화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옥균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조선의 개화를 포기하는 것은 김옥균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셈이 돼버리니, 그는 끝까지 개화에 대한 꿈을 부여잡는 것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며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종은 끝까지 김옥균을 암살하려고 했다.그를 죽임으로써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려는 반전으로 삼고, 그들이 주장했던 입헌군주에 대한 쐐기를 박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정변 발생 10년만에 김옥균은 상하이 타국에서 홍종우가 쏜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불과 마흔 넷의 나이에. 그리고 고종은 그의 죽음을 고이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시체는 조선에 돌아와 여덟토막으로 절단됐고, 전국에 돌려졌다. 사후에도 끝까지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필자는 김옥균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고종이 보낸 동족에게 죽음을 당했지만 깊이 파고 들면 이것은 조선과 청, 일본 모두 공조한 일종의 국가테러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김옥균의 존재는 삼국 모두에게 자국의 이익에 배치됐기 때문에, 특히 청과 일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선점하게 위해 김옥균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 돼버린 것이었다.
그는 양반이라고 체통을 차리기 보다는 자유분방했다. 신분과 남녀노소, 국적,종교, 인종을 가리지 않고 교유하는 호방하고 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런 진취적이고 열린 정신과 품성을 지켰기에 서구사상을 수용했고, 개화야말로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판단했고, 개화를 통한 자주 독립을 꿈꿨던 것이다.
"김옥균 역사의 혁명가 시대의 이단아' 이 책에는 김옥균과 함께한 개화당 인물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씌여져 있다. 그들의 고초에 또한 가슴이 찡해져왔다. 목숨을 걸고 시도한 정변에 실패한 인물,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믿은 확신범이라고 해도 모반대역죄인이 된 그 이후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지.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들 주도자들은 양반이었음에도 어떤 계기로 목숨을 걸고 정변을 시도했던 것일까. 고대수같은 여성, 유혁로 같은 하층인은 왜 기꺼이 그 뜻에 동참하고 투신했던 것일까.
변해가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했던 조선 지배층들, 그리고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일가의 부귀에 복속시켰던 민씨 일가들의 횡포가 행간 곳곳에서 읽혀졌다. 그 비분강개와 통탄은 충분히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을 위해 단행한 특별 사면을 바라보는 내 심정만 해도 먹은 걸 게워내고 싶은 심정인데, 이렇게 절망적인 조정을 가까이서 겪어야 했던 당시 지사들의 심정은 울분에 쌓일 수 밖에.
김옥균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다양하다. 외세를 끌어들인 매국적 반역자에서, 애국적 혁명가라는 양 극단의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오늘 김옥균을 다시 보게 됐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양반층들이 일신, 일가의 안이를 위해 수구적인 행보를 보일 때 양반의 기득권을 내던지고, 조선의 독립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을 한 김옥균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자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지만, 그는 갑신정변을 통해 인민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백성들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그리고 열강의 압박과 부패,가난에 시달리는 조선의 사회를 개혁하고, 근대를 향한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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