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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스부르크 화의>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구교(가톨릭)과 신교(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이 생겨났고 아우크스부르크화의(1555)에서 신교를 공식적으로 승인한다. 단. 신교에는 칼뱅교는 포함이 안되며, "군주의 종교는 나라의 종교"로 지정했으므로 군주가 칼뱅교가 아니라면 칼뱅신도들은 죽음이다. ->이것은 30년 전쟁의 깊은 원인이 된다. 실제 잉글랜드에서 메리1세는 프로테스탄트를 잔인하게 학살하여 bloody mary라 불린다.
그런데, 루터교와 칼뱅교는 모두 프로테스탄트임에도 루터교는 칼뱅교를 적그리스도교라 할만큼 안친했다.
<30년 전쟁: 1618년~1648년>
*이미지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RR_1648.png#/media/File:HRR_1648.png 1. 배경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선제후의 합의로 선정되었으며, (*선제후:황제를 선출할수 있는 권한이 있는 제후) 1600년경 선제후는 가톨릭 4명(마인츠, 트리어, 쾰른, 보헤미아), 개신교 3명(작센, 브란덴부르크, 팔츠)이었다. 보헤미아의 왕위는 늘 합스부르크(가톨릭)가문이 독차지해왔었는데 세습직이 아니라 선출직이었으므로 신교에서 왕이 뽑힌다면 선제후에서 비중은 신교가 우세하게 된다. 2. 시작 1617년에 보헤미아의 왕 투표가 있었고, 역시 합스부르크가문인 페르디난트가 선출되었다. 페르디난트는 왕이 되자 개신교를 탄압했고 이에 신교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을 30년 전쟁의 시작으로 본다 물들어올때 노젓는다고, 신교는 페르디난트를 폐위시키고 칼뱅파인 프리드리히5세(팔츠의 선제후)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한다. 그런데 이틀뒤 로마황제 투표에서 페르디난트가 황제로 선출되어버렸다. 눈치없이 보헤미아 왕이 되려던 프리드리히는 졸지에 반역자가 되었다.
3. 진행 황제가 된 페르디난트는 프리드리히가 제국의 평화를 해쳤다며 오명을 씌워 보헤미아에서 물러나라고 명령함과 동시에(1620) 바이에른 막시밀리안에게 보헤미안 반란군을 쳐부수면 팔츠 선제후 자리를 주겠다고 꼬셔 보헤미안을 공격한다. 그와중에 에스파냐는 팔츠를 점령한다.(1620) 이에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가톨릭세력은 당연히 페르디난트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신교측은 프리드리히를 지지하지 않고 희생시키는것으로 전쟁을 끝내고자 했다.(흔한 꼬리자르기) 신교는 대다수가 루터파였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폭망. 팔츠, 보헤미아 양쪽 모두 공격받고, 신교들이 지원도 안해주자 다급해진 프리드리히는 팔츠를 되찾기 위해 용병군대를 고용했으나, 돈이 다떨어져 팔츠수복에 실패한다.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이 접수하여 약속대로 팔츠 선제후가 되고, 반란주동자들은 체포된다(1621.2.20)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덴마크와 네델란드는 보헤미아에서 신교의 저항이 무너지면 합스부르크가 북쪽 발트해까지 영토를 확장할것이라고 우려하여 영국, 프랑스와 함께 프리드리히를 지원하게 된다. 곧 종교싸움이 영토싸움으로 되어가는 시점이다. 이제 주변국들은 각자의 이익관계로 하나씩 전쟁에 끼여든다. "독일 땅에서" (제1, 2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독일을 싸움터로 하여 벌어진 전쟁으로, 타국에서 벌어진 용병들 간의 싸움(스웨덴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용병고용)이었으므로 전쟁의 양상은 더욱 잔인했다)
4. 영향 - 종교대립을 명분으로 시작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쟁투였던만큼 종교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불러와 과학혁명의 밑바탕이 된다. - 국민군의 탄생, 절대왕정, 제국주의 고대희랍의 시민군이 로마제국동안 게르만 용병으로 전환되어 유지되어왔으나 30년전쟁을 겪으면서 용병전쟁의 문제점을 깨닫고 국민군을 양성하게 된다. 반복적인 훈련과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한 지휘계통으로 강력해진 국민군은 절대왕정을 유지하는데에 핵심요소가 되며, 나아가 해외정복에 나선다. 또한 국민군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물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상인들이 무기 납품에 관여하면서 '군상복합체'가 만들어진다. 곧 전쟁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개의 축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 대해서> 세세한 내용까지 기술해 놓아 상세히 알수있으며 역사책의 서술기법이라기 보다는 소설기법이므로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혀지나, 오히려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방해가 되므로 다른 자료를 통하여 전체흐름을 익혀놓은 상태에서 이걸 읽는것을 권한다.
*참고도서: 강유원 역사고전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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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을 뒤흔든 종교와 권력의 충돌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과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복잡한 정치와 외교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묵직한 역사서. 대충 알고만있었던 퍼즐들이 맞춰지는 기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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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세계에 관한 한 전쟁이라는 징검다리에서 가장 중요한 다릿돌을 꼽으라면 17세기의 ‘30년 전쟁'을 들수 있다. 이 전쟁은 수천 년의 유럽 역사 전체를 결론짓는 마지막 단계의 출발점이었고, 오늘날의 유럽 세계를 직접적으로 형성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는 종교개혁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30년 전쟁은 종교 전쟁으로 시작해서 영토 전쟁으로 끝난다. 그런 점에서 이 전쟁은 중세 전쟁에서 근대 전쟁으로의 연결고리가 된다. 이후 20세기까지의 전쟁들은 국민국가들이 영토와 부를 놓고 벌인 전쟁이다. 30년 전쟁의 전개 과정을 대단히 깊이있고 상세하게 서술한 이 책은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이 관련된 30년 전쟁의 복마전 같은 사건들을 풀어내고, 무수한 등장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 각 개인의 성격과 심리를 보여주고 때로는 숨은 의도까지 대담하게 추측한다. 유럽판 삼국지라고 할 만큼 웅장한 활극이자 대하사극이다. 웨지우드는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노련한 솜씨로 복잡하고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삼아 현대의 고전을 엮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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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은 전쟁의 규모와 소요 기간도 막대하지만, 30년 전쟁의 결과 새롭게 재편된 유럽의 질서와, 전쟁의 규칙의 변화 및 전쟁의 목적의 변화로 인해 후대에까지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입니다. 따라서 유럽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제대로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웨지우드의 책이 아닌가 합니다.(물론 30년 전쟁에 관한 다른 책도 요즘 나온 것을 본 것 같으나 아직 다른 건 읽어보지 않아서 이런 말 하긴 쫌 쑥스럽네요;;) 어쟀든 내용 면에서도 상당히 충실해서 충분히 제가 원하던 목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발간된지는 제법 오래된 책이지만 정말 역사서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을 제대로 제공 해 주는 것 같아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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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또는 유럽 역사를 읽다보면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그러나 막상 세계사 책들에는 한단락으로 설명되어지는 30년 전쟁. 읽을때는 맥락이 이해된다 싶다가도 돌아보면 흐릿하게만 기억되어서 한번 자세하게 읽어볼까하고 구입한 책이다. 자세하다 못해 6백쪽이 넘는 긴 책이라 한 호흡에 읽기는 애초에 불가능했지만. 번역서라는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문장이 쉽게 읽혀진다. 번역자의 공인지 작가의 문장이 원래 쉽게 쓰여진건지는 원서를 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긴 책을 다시 원서로 읽기는 힘들듯. 큰 맥락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수 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상황들에 익숙하지 않은 나같은 독자한테는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조금 더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들을 알게된 후 다시 읽으면 좀 더 재미있을 듯 하다. |
| 신성로마제국은 말 그대로 신성하지도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는 분열되어있는 제국의 중재자의 자리일까? 아니면 그 가문의 힘을 상징하고 그 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기반을 굳건하게하고 다음에도 자신의 가문에서 황제가 선출되게 하는 것인지 볼때 후자였고 그 자리가 주는 혜택이 크기에 자신들의 이혜관계에 맞는 이들을 앉히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였고 희생을 치뤘고 남는 것은 별로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