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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문장'과 '적절한 묘사'가 빛을 발하는 책이다. 그의 저서는 워낙 범주화가 간결하고, 핵심 논증을 쉽게 제시해 주는 장점이 있다 보니 목차만 읽어도 은혜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1. 작은 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로 2. 움켜쥠에서 내려놓음으로 3. 운명론에서 희망으로 4. 감정의 조종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5.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으로
우리의 슬픔이 춤으로 변하는 은혜.
'애통하는 자'(마5:4) 는 상실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들여다 보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다.
슬픔을 피하지 않고, 상처를 거부하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을 끌어 안고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자주 역설하는 헨리 나우엔.
그의 삶이 녹아져 있는 고백이며, 이 고백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십자가 사랑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고난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나 저주가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시금석'이 된다고 믿는 저자는, 이 역설적인 고백 속에서 깊이 있는 영성 신학을 완성해 나간다.
하나님이 안무하시는 치유의 춤을 통해 상처의 한복판에서 우아하게 미끄러져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나우엔은 절망을 견디다 보면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상실과 상처라는 것도 그 속에 들어가서 통과하는 게 그 곳을 벗어나는 가장 최고의 방법임을 그는 알고 있다. 상처 입은 자신의 상태에 직면할 수 있는 자들만 치유를 받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 신비를 몰랐던 시절.... 얼마나 어리석게도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고 발버둥 쳤던가..
슬픔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삶을 꿈꿔보자.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시편 30:11)
진정한 믿음은 슬픔과 고통을 초월하여서 믿음의 결과를 믿음의 대상에게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믿는 것이다.
이 책은 읽을 수록 그 깊이가 빛을 발한다.
위대한 신학적 주제인 '신정론'의 이슈를 건들지만,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다. 하지만 굉장히 성경적이며, 성경에 기반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이 책이 나누고 있는 메시지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이 책을 읽어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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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 산 책인지, 요즘 책정리하다가 기증하기 위해 따로 떼어 놓은 책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읽고 많은 곳에 밑줄을 그었는데.... 고난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관한 내용이다. "괴로울 때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우리 대다수를 유혹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거기서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법을 배우면 고난을 다르게 맞이할 수 있다." -p17 2.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삶은 없다. 다들 어두운 부분은 드러내고 싶지 않다. 고난을 직면하기 보다는 그것을 회피하는 것에 훨씬 기민하다. 그러다보니 그 고난은 해결되어지지 아니하고 더욱 더 큰 눈덩이가 되어 인생을 헤집고 다니게 된다. "인생에서 중대한 질문중 하나는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가?'가 아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는 그 속에서, 그것을 통해 어떻게 살것인가?'다." - p25 3. 왜 저자는 고난을 이야기하면서 춤을 춘다고 이야기했을까? 시편 30:11 에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 두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고 더 큰 춤의 자리로 들어간다. ... 온 세상이 우리의 춤판임을 알게 된다." -p27 하나님께 손을 맡겨 일으켜 세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분은 우리의 손을 잡고 춤을 추시는 것이다. 4. "살다가 피할 수 없는 상실을 겪으면 우리는 생존 경쟁에서 실패 했다고 여긴다. 우리는 내려 놓을 때 받는다. 위대한 역설이다." -p 41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할 때 우리의 정체감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에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는 대인 관계의 포로 노릇을 그치게 된다." -p55 내 삶을 움켜잡고 있는 손을 놓는 행위 자체가 믿음의 행위이다. 5. 우리의 삶은 시간으로 구성되어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눈금(크로노스)을 버리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약속의 타이밍(카이로스)으로 보정하면 우리는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지? 그것은 언약의 성취에 이르러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어진다. "나는 삶을 억지로 몰아갈 수 없다. 다만 삶이 그 자체의 시간과 전개를 따라 자라가게 해야 한다." -p87 6. 우리의 자아는 잠시도 침묵할 줄 모른다. 침묵이 없이는 나를 만나지도,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한다.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광인처럼... 우리 내면도 진실을 직면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고독과 침묵이야말로 우리 삶을 카이로스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이다. "고독은 다른 무수한 음성에 귀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고독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랑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다." -p118 "우리는 불안한 자아에게 우리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활동을 활동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p119 7. 이 세상의 고난...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나만 이 고난을 겪고 있는 느낌이 들까? 우리의 문제는 그 고난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서 삶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 있다. 치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단지 고난의 해결, 병의 나음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귀를 의미한다. "치유란 몸의 상태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함으로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이루는 것과 더 연관이 깊다."-p137 8. 몸을 까딱하기도 어려운 우리 고통의 상황 가운데,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그분이 움직이시는 대로 몸을 맡기자. 그러면 그것이 춤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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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는 고난은 어쩌면 우리 입장에서만 고난이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성도들을 다루시는 훈련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멈춰서 성장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수준까지 성장시키시고 훈련시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