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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과학자에서 평화운동가로 그러나 고집 센 비타민 C옹호자로
"위대한 과학자에서 평화운동가로 그러나 고집 센 비타민 C옹호자로" 내용보기
라이너스 폴링 평전/ 테드 고어츨, 벤 고어츨/박경서/ 실천문학사/2011라이너스 폴링이라면 원자가결합이론을 비롯 화학결합의 6가지 원칙으로 유명한 화학자이자 반핵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저는 훨씬 뒤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보다는 비타민 C 옹호자로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아니, 무슨 과학자라는 사람이 왜 실험연구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지 않고 성급하게
"위대한 과학자에서 평화운동가로 그러나 고집 센 비타민 C옹호자로" 내용보기
라이너스 폴링 평전/ 테드 고어츨, 벤 고어츨/박경서/ 실천문학사/2011
라이너스 폴링이라면 원자가결합이론을 비롯 화학결합의 6가지 원칙으로 유명한 화학자이자 반핵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저는 훨씬 뒤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보다는 비타민 C 옹호자로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아니, 무슨 과학자라는 사람이 왜 실험연구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지 않고 성급하게 그리고 이후에도 고집스럽게 비타민 C의 효과를 과신했을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왜 그런 언행을 보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긴 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역시 불완전하구나 하는 보편적인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죠^^;;

저자의 서문에 이어 총 8장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그의 행적은 간략하게 다시 추리고 있습니다. 
1장 유년시절의 끝 - 양가 모두 평범한 집안이었고, 외조부 정도가 이런 저런 인생유전을 거쳐 법관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고. 아버지가 폴링 10살이었을 무렵 갑작스럽게 병으로 사망하면서 여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소년가장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특별히 명석한 아이는 아니었으나 홀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햇고 9살 때 부터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립을 꿈꾸었다고. 기술자로서 돈을 벌면 되었지 오히려 돈만 쓰는 대학에 가려는 아들을 평생 이해하지 못한 어머니와 반목했고 결혼한 이후 가족들과는 아예 소원하게 지내게 됩니다. 
2장 학업중단 - 학업 중단의 위기를 겪긴 했지만 1차 세계 대전 이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부분에 인력이 부족했던 지라 폴링은 어린 나이에 불과 한두살 밖에 어리지 않은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 중 한 여학생과 결혼을 합니다. 평생 폴링을 내조했던 아내 헬렌이 없었다면 과연 그의 개인사가 정상적이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 폴링은 자기 나름의 정치적 견해가 확고해 진 이후 반전 반핵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진보적인 입장이었지만, 여성 운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고. 아내 헬렌 역시 이를 지지했다고. 
3장 숨겨진 패턴 - 폴링의 과학적 업적 전반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41년이라는 긴 재직생활을 하게된 칼텍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게 된 폴링. 당시 양자물리학을 이용하여 화학적 결합이 진동중쳡, 일종의 양자공명 임이 알려지면서 물리화학 분야가 꽃피게 됩니다. 이때 폴링은 양자역학과 분자정전기학을 이용해 분자결합을 푸는 다섯가지 주요한 규칙을 제안하는데 화학자들의 연구에 매우 유용한 개념이었죠. 폴링은 이전에 월러드 깁스가 그러했듯이 독일 과학자들이 갖고 있던 철학적 고민에 관심이 없었고 그저 유용했기에 서슴없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였고 아주 멋지게 응용했던 것. 
4장 떠오르는 천재 - 화하결합에 대한 폴링의 6가지 이론. 지금은 대개 로버트 S. 밀리컨의 분자오비탈 이론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폴링의 원자가결합이론 역시 후대 연구가들에게 중요한 이론임. 
5장 단백질, 정치, 그리고 매카시즘 - 이후 폴링의 연구는 후대 과학자들의 연구에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치는 거물이 되어 있음. 심지어 크릭도 그가 DNA 구조를 밝혔다는 말에 연구를 포기했을 정도. 안타깝게도 업튼 싱클레어 같은 사회주의적인 정치인을 지지하고 매카시즘 광풍이 부는 와중에 해외 과학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주요한 연구 진척 과정을 놓치게 되고 결국 DNA 구조를 밝히는 것은 약관의 젊은이가 해내게 되었다는. 
6장 죽음의 재 - 낙진. 폴링은 핵실험 억제를 위해 각 국의 과학자과 지식인들에게 반핵 청원서를 받아내서 UN에 제출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아내는 등 엄청난 사회운동가로 변신하게 됩니다. 
7장 친소비에트 성향 - 당연히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강력한 핵무기가 필수적이라고 믿는 정치 세력들은 폴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갔죠. 도드 상원의원측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폴링은 의연하게 대처했고 오펜하이머 와는 달리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미소 양국의 부분적인 핵실험 금지조약을 이끌어내기도 했죠. 하지만 그의 이러한 진보적 발자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회학적 견지는 퉁찰력이 부족했다는. 
8장 비타민 C -  폴링의 정치적 행보에 칼텍 관계자들은 불편해 했고 결국 오햇동안 재직했던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폴링은 자신을 따르는 과학자 아서 로빈슨과 함께 폴링 연구소를 차렸고 아서 로빈슨은 연구소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계기로 폴링은 그를 해고했으며 결국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죠. 저자의 의견은 다를 지 모르겠으나, 저는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도저히 폴링 편을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폴링은 젊은 나이에 사구체신염 진단을 받았고 단백질을 절식하면서 지냈습니다. 그가 난치병을 안고 살면서도 식이요법으로 93세라는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가 받아들인 비타민 C 요법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는 있었겠으나 반대로 그의 아내는 그보다 젊고 큰 지병이 없었음에도 비타민 C를 고단위 복용하던 중 급성췌장염으로 일찍 세상을 떴죠. 스스로 제대로 실험해서 검증하지 않고 다른 연구소에서 나온 실험결과를 마음에 안든다고 비난하는 것은 도무지... 지금도 비타민 C의 효과에 대한 찬반이 한번씩 대두되곤 하는데, 오히려 폴링이 너무 역성을 들어놔서 좋은 결과가 나와도 시큰둥한 반응만 낳게 되었다고. 

당대 양자 역학이 화학의 영역에 까지 적용되면서 물리화학, 분자생물학, 분자병 개념 등 각종 현대 과학 분과의 밑바탕이 될 만한 연구를 해 온 업적으로 노벨화학상은을미소 양군의 핵무기 군축 협상까지 이뤄낸 평화운동가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단한 인물이면서 말년의 행보와 개인사적인 측면에서는 불완전한 면모를 드러낸 한 사람의 전기이자 당대 정치, 사회, 과학 부분의 역사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솔직히 저는 3,4,5장이 재밌었습니다. 이제 새삼 다시 화학책을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 말이지요^^;;
 

r*******n 2024.06.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