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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284358.html 한겨레 신문에서 미래 전쟁 양상의 두 가지 측면에서 논하라는 논제로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 비살상적인 방식으로 적의 핵심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의 필요성 - 첨단전쟁과 깨끗한 전쟁이라는 이상은 허구이고 수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 두 가지 측면에서 나는 후자의 경우가 더 합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로봇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사업성이 있는 형태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 1. 제조업에서 사용되는 로봇 2. 서비스 측면에서 의료계에 사용되는 로봇 3. 서비스 측면에서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로봇 이 중에 가장 큰 발전을 하고 있는 분야는 막강한 군사비의 지원을 받으면서 발전하는 군사용 로봇 분야다. 육상, 해상, 공중전을 지원할 수 있는 무인 로봇의 증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사람의 개입을 통해서 조정이 되고 있다. 그 정확성이라는 것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높은 것도 아니어서 전쟁터에서 콜레터럴 데미지를 입히고 있다. 인간의 부정확성 및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빅데이터를 연결하여 좀더 지능이 좋고 자율성이 높은 로봇이 만들어진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지만,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를 통해서 보듯 로봇이 만든 조건이 인간 모두를 제거하는 형태로 프로그램 되어질 수 있다. 결국 전쟁이라는 형태에서 미국 군인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기위해 추진하는 무인화 로봇 정책은 문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보다는 더 확산 시킬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과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로봇을 통해서도 사고가 발생하는데 전쟁터라는 불안전한 환경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참하게 무시될 수 있다. 자국 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비를 쓰는 방식보다는 전세계의 공존을 위해서 그 비용을 불만을 가진 적국에 투자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만 군수업체의 입장에서는 산업의 발전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공존보다는 무력진압의 당위성과 편리성을 강조하며 전쟁의 극한으로 돌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로봇을 조정하는 인간의 윤리, 심지어 로봇 윤리 의식에 기대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입장이다.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깨끗한 방법인데 이도 그리 만만치 않다. 일단 군수업체가 살 수 있는 산업기회의 탈출구를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수익성을 보장하면서 지속적인 생산을 보장할 수 있는 분야 발굴이 쉽지 않다. 따라서 군수 업체는 끊임 없이 전쟁 로봇의 필요성이 강조할 것이고,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이테크는 우리를 죽이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가 어떤 분야에서 이루어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 책이다.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다가 갑자기 여기 적어두고 싶은 글귀가 있다. 셀 실버스타인이 쓴 <My Missing Piece>에는 '완벽함의 불편함'을 전하고 있다. <중략>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서 삐뚤삐뚤 구르는 동그라미처럼 조금은 부족하게, 느리게, 가끔은 꽃 냄새도 맡고 노래도 불러가며 함께 하는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