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런 개'는 일종의 단절이고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이라 할 만합니다.
뭣보다 여기에서는 심농이 천착해 왔던 '타인의 삶'이 한 개인에서 한 사회 전체로 보다 넓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확장 속에서 심농은 이제 그 사회 전체를 불안과 공포로 몰고가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포착해내려 합니다. 이전의 네 작품에서는 과거의 상처에서 환기되어 막연한 불안감으로만 남아있던 것이 '누런 개'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공포로 나타나고 결국엔 그것이 쓰고 있었던 가면 마저 벗겨집니다.
여러면에서 심농의 '누런 개'는 조지 오웰의 '숨쉬러 나가다'를 연상시킵니다. 쓰여진 시기는 비록 누런 개는 32년 숨쉬러 나가다는 39년으로 7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둘 다 뭔가 변하고 있는 시대적 공기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을 하나의 범죄로 상징화 시켜서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심농의 '누런 개'에서는 '누런 개'로 오웰의 소설에서는 그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사체로 나타난 한 여성의 잘려진 다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범죄로 상징되어 나타났기 때문인지 '누런 개'는 매그레 시리즈중(물론 제가 다 읽어본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읽어본 것만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만)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추리소설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Who done it? 을 파헤치는 '퍼즐러'식 추리소설 말이죠. 그렇게 '누런 개'는 범인 찾아내기를 거대한 줄기로 해서 교묘한 알리바이 공작이라든지 반전과 반전 끝에 밝혀지는 범죄자의 의외성이라든지 아무튼 우리가 전형적인 추리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을 빠짐없이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농이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이전까지 해오던 작업을 포기하고 갑자기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그가 이제 천착하는 주제가 달라짐으로써 거기에 맞도록 서술의 방법이 달라진 것 뿐입니다. 그렇게 심농이 '누런 개'에서 집요하게 미스터리적 기법을 취하는 것은 그가 '누런 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기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암암리에 불안으로 물들여 점점 가위눌리게 만들었던, '그 것'의 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체를 밝히는 데 있어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게 하려면 미스터리적 기법 만큼 적합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심농은 '누런 개'에서 매그레의 추적 끝에 드러난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그것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오웰 자신도 맡았던 그 변화된 공기가 궁극엔 가져올 얼굴이기도 했습니다. '숨쉬러 나가다'에서 오웰은 이제 세상이 점점 예측불가능해질 것임을 예감합니다. 한 치 앞도 헤아리기 어려운 세상이 곧 펼쳐지리라는 두려움이 그로하여금 모든 내일이 명약관화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도록 만들었고 결국엔 그것을 다시 찾고자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일상으로 부터의 일탈 마저 감행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오웰을 그토록 두렵게 만들었던 그 '예측불가능성'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시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전쟁으로서 강요하게 될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전체주의'의 핵심을 '예측불가능성'으로 파악한 것이죠. 왜 오웰이 그렇게 생각했느냐면 그는 전체주의가 무엇보다도 한나 아렌트가 말한 '무사유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전체주의란 무엇보다도 사유하지 않는 괴물이라는 것이죠. 때문에 그것엔 지금까지 인간이 해왔던 대로 어떤 이해의 시선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대적인 불가해한 존재이기에 그는 예측불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죠. 이렇게 서로 부르는 명칭만 다를 뿐, 오웰 역시 아렌트 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파시즘이 가지고 있던 핵심을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농 역시 그 오웰 보다 7년 전에 이미 그러한 핵심을 눈치채고는 작품에 새겨놓았습니다. 바로 그 산물이 '누런 개'인 것입니다.
'누런 개'가 이전 작과 무엇보다도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심농이 파악한 전체주의의 핵심을 한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인물 묘사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얼굴에서 확인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자기 이해관계에만 집착하고 타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머리는 있으나 가슴은 없는 무심한 얼굴인 것이죠.
하지만 그러한 얼굴이 전적으로 심농에게 혐오스러운 것만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라면 문제랄 수 있는데 어쨌든 파시즘은 심농에게 야누스적인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돗대에 밧줄로 묶인 가운데 듣고 있는 오디세우스 처럼 말이죠. 그렇게 파시즘은 심농에게도 역시 공포이자 매혹으로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공포로써의 징후를 '누런 개'에서 확인할 수 있고 매혹으로써의 징후를 '타인의 목'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후일 심농이 나치 동조자의 혐의를 받았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야누스적인 태도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어쩌면 심농이 그렇게 된 것은 파시즘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정확히 예측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오웰 이 그랬듯이 당시는 온갖 예측불가능성의 대기로 넘쳐있었으니까요. 심농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전의 작품에서 일련의 공간 묘사를 통해 시대가 완전히 예전과 다르게 흐르고 있고 그 흐름 또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 바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농에게도 동시대는 전혀 예측불가능성으로 다가왔기에 파시즘에 대한 태도 역시 이중적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러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누런 개'는 정말로 뛰어난 심농의 시대적 감식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치밀하게 적용된 미스터리적 기법은 그야말로 범죄 소설이 시대적 공기를 담아내는 데 있어 얼마나 성공적인 그릇이 될 수 있는지 또한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러니 저러니 따지지 않고도 미스터리적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 작품에 대한 얘기를 '스누피'로 유명한 찰즈 슐츠가 '피너츠'에서 언젠가 했던 말을 인용함으로써 끝맺으려 합니다.
'그저 이것만 기억해. 네가 일단 언덕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그 뒤 부터는 속도가 저절로 붙을테니까...'
'누런 개'는 바로 그 언덕의 정상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이제 당신에게는 그 다음 작품으로 정신없이 빠져드는 일만 남아있는 셈이죠. 그것도 가속도가 점점 붙은 채로 말이죠. |
|
살인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 실종사건이 벌어진다.그리고 우려했던 살인사건까지.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 참을수 없어 하는 이는 콩카르노 시장.정의와 사명감으로 가득찬 시장이라서 저와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참정치인이였을 테지만 그의 마음은 애민정신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누구라도 체포를 해서..시민들이 느낄 공포를 잠재우라는 명령.시에서 일어나는 어수선한 일들은 곧 자신의 능력과 직결된다고 생각한 탓일게다.그리고 이런 공포심을 조장하는데 언제나 앞장서려고 하는 언론.모두 개 보다 (개들에게 미안하지만..) 못한 짓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니까 '누런 개' (원제는 모르겠지만) 제목은 다소 복합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도 있겠다."연일 새로운 참변,본지 기고자 장 셰르비에르 실종,그의 자동차에서 핏자국 발견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48쪽 "그럼 당신네는 익명의 제보자가 기사를 보내 주면 아무거나 막 싣는단 말이야?"/52쪽 살인미수를 하고 살해까지 하게 된 그 남자보다, 살인 사건이 계속 일어나길 바라는 언론의 천박한 타이틀에 화가 몇 배는 더 치밀어 올랐다.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도 그렇고.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살인을 일으킨 피의자와 언론이 하는 행동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공포' 미세한 차이라면,언론은 합법적(?)인 것을 내세워 공포를 조장하게 만들어 내고,한 남자는 자신의 이기심도 어쩌지 못한 공포...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모습..물론 이런 생각은 지나친 나의 억측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당연히 언론의 '개'와 같은 행동에 방점을 맞춘 소설은 더더욱 아닐터. 심농선생의 소설이 현실에서는 만날수 없는 환타지에 가까운 추리물이었다면 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고 읽었을 텐데..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현실 의 상황들이 자꾸만 오버랩되고 만다.사건의 본질은 살인미수와 살인까지..일으킨 자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것인데..사건 자체보다 여론을 조장하는 언론에 더 화가나서 그만...반장은 이미 처음부터 누가 범인일지 예상했다고 했다.(소설이 끝날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리고 역으로 추리를 하면서(일종의 최종 확인하는 차원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는..처음으로 신구의 수사대결의 스타일도 보게 되고,자연스럽게 어떤 수사가 더 합리적인지,혹은 지향해야 되는가를 논하지 않는다. 문제는,함부로 단정짓지 말라는 커다란 전제..를 수사의 가장 큰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그리고 이런 메세지는 사건 현장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눈에 띄는 외양과 달리 그는 비범한 두뇌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에게 친숙한 탐정들에 비하면 그의 수사는 평범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느 탐정들처럼 천재적 추리력으로 앉은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대신, 그는 범행의 현장 속으로, 인물의 심리 속으로 직접 뛰어든다. 서민 출신의 그는 그 누구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약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려 한다. 타인의 처지로 들어가 공감하는 특유의 능력이 바로 그가 남다르게 사건을 해결하게 해주는 비결이다. |
|
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를 읽었다. 이 시리즈를 읽게 된 동기라고 하면 알베르 카뮈의 “심농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방인』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거다.” 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번에 읽은 매그레 시리즈는 『누런 개』이다. 11월 7일 금요일 밤 11시, 콩카르노 최대의 포도주 도매상이며 ‘도무지 적이라고는 없는 선량한 사내’인 모스타구엔은 시가에 불을 붙이려고 멈춰 섰던 어느 빈집 앞에서 복부에 총알을 맞는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개 한 마리’가 모스타구엔의 옆에서 냄새를 맡는다. 모스타구엔과 개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진다.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을 해결하는 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탐정이든 형사이든 간에 짝을 이루어 활동한다. 매그레는 부서 재편과 관련하여 렌의 기동 수사대에서 파견 근무 중이었는데 콩카르노 시장의 연락을 받고 젊은 형사 르루아와 함께 사건을 맡는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모스타구엔은 르포므레, 세르비에르, 닥터 미슈는 라미랄 카페에서 함께 카드놀이를 했다. 사건 이후 일행과 매그레는 닥터 미슈 중 누군가, 혹은 모두는 독이 든 술을 마실 수 있었으나 닥터 미슈의 눈치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 다음엔 세르비에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스타구엔을 포함한 일행 중 누군가, 혹은 모두는 누군가의 원한을 샀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콩카르노 시는 공포로 휩싸인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시를 공포로 몬 것에는 언론의 영향도 있다. 물론 여기서는 고의적이었지만. 콩카르노 시장은 메그레 반장이 누구라도 체포해 주민들을 안심시키길 바란다. 시장이라는 책임자의 자리에 앉은 그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 매그레 시리즈는 이런 장르의 소설이 그러하듯 “누가?”, “왜?” 가 궁금한 소설이다. 매그레는 인물들의 배경을 조사하다가 그들이 선량한 사람들, 혹은 잘 나가는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인간을 공포로 몰 수 있는 존재들이다. 또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연극을 하는 존재들이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맞지만 대상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한다. 이 소설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다 공포의 덫에 갇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레몽이 공포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엠마와 그리고 또 한 존재였다. 『누런 개』는 공포를 견디는 힘은 ‘누군가의 존재’ 혹은 ‘누군가의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소설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만약 아프리카우림에서 비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면, 심농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대처법은 없다. 그와 함께라면 난 비가 얼마나 오래 오든 상관 안 할 것이다.”라고 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한 권을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고 끝까지 읽어도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이제 겨우 한 편만을 읽었을 뿐이라 아직은 이 시리즈에 대해 뭐라 평할 순 없지만 오랜만에 읽은 흡인력 강한 소설이었다. 다른 편도 읽고 싶어졌다. |
|
브르타뉴의 항구 도시 콩카르노의 라미랄 호텔 앞에서 지역 유지인 포도주 도매상 모스타구엔 씨가 바람을 피해 담뱃불을 붙이려 잠시 선 어느 빈 집 앞에서 총격을 받은 사건이 일어난다. 그 옆에는 비쩍 바르고 지저분한 누런 개가 어승렁 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총격 사건과 함께 작은 항구 소도시를 공포에 빠뜨리게 되고 연이어 일어난 사건들은 조용했던 도시 전체를 술렁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공포심에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 누런 개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게 되며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를 의심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에 매그레 반장은 보이는 사건 이면에 더 집중하며 사건 전체를 보고자 노력한다. 작은 항구 도시에서 연이어 발생한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저 평범해 보이는 마을 유지인 피해자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공포심은 어떻게도 그렇게 빠르게 도시 전체를 휩싸이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누런 개'는 매그레 반장의 뚝심 있는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겉만 멀쩡한 마을 유지 행세를 하는 피해자 세 사람들이 실상은 마을의 물을 흐리는 인물들임을 파악한 후에 그들에게 줄곧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범인으로 하여금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인지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 레옹과 그의 개인 누런 개에게 측은함을 느끼며 그들을 도와 사건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공포심에 대해 조명하며 사건전체를 이끈다. '누런 개'는 매그레 수사 반장이 나오는 시리즈 중 두 번째로 읽게 된 소설이다. 처음에 시리즈를 접할 때는 순서대로 읽어야지 했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조금 더 독자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소설부터 읽는 중이다. 분명 '누런 개'는 처음 읽었던 '수상한 라트비아인'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 있고 매그레 반장이 조금 더 진화한 느낌이 든다. 매그레 반장의 특징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사건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더구나 그는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갖고 대한다. 그러기에 범인들조차도 매그레 반장에게는 솔직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내보일 수가 있다. '누런 개'는 사건자체보다는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심리와 심하게 동요하는 마을 주민들의 공포 심리에 더 집중하며 집단 히스테리적인 모습을 그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는 누런 개와 대비시켜 고요 속에 숨겨진 불안, 공포, 살의 등을 표현하고 있어 또 다른 묘미를 주고 있다. 그래서 더 매그레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
책 제목이 왜 '누런 개'일까 잠깐 생각해 보면서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첫장부터 의문의 지저분하고 누우런 개가 나온다. 사건의 발생은 시가에 불을 붙이려던 모스타구엔이라는 사람이 복부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적잖이 양심적인 범죄자라는 생각과 고전이라서 사람이 다치기만 하고 죽지 않는 건가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내심 모스타구엔이 복부를 맞아서 죽지 않을까 기대도 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났으니 매그레 반장님이랑 젊은 형사 르누아가 출두한다. 매그레 반장은 통통한 얼굴에 짜리몽땅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매그레는 레미랄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거기서 초초불안해 보이는 엠마라는 웨이스트리스와 시선이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닥터라는 미친 미슈와 모스타구엔과 주로 노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때 모스타구엔이 총에 맞았을 밤 11시라는 시간은 이 마을에 괜찮은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을 시간이였다. 누런개가 나타나는 곳에 사건이 발생하는 것같은 분위기를 던져준다. 매그레 반장은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장은 반장을 쫓아와서 난리를 쳤다. 사람들이 불안해 떨고 있다며 반장은 뭐하는 거냐고? |
|
현대 소설과 이전의 소설을 나누는 기준 중의 하나는 개연성과 함께 인물들에게 입체적인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나 인물의 경우에는 단순히 개성을 더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지금 행동이 분명한 이유를 붙이고는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나 악역에게는 현대 이전의 작품과는 다르게 구구절절한 사연을 더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그러한 경향은 추리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현대의 추리물에서는 아예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에게 입혀진 사연이 너무 구구절절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 그 범죄자를 추격하는 이들에게 분노하게 되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이 너무 많아지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범죄자에게 너무 구구절절한 사연을 주어 그의 범죄 자체에 면죄부를 주는 이야기들이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조금은 불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모두 사람들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한 이야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은 그 범죄를 저지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한 부분에서 매그레 반장 시리즈의 특별한 점이 만들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그렇게 사연 많은 범죄자를 통해서 단순한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 누런 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
|
폭풍이 치는 밤 한 사내가 복부에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그의 곁에는 커다랗고 누런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지만 누구도 그 개가 누구의 개인지는 모릅니다. 메그레 반장은 신참형사와 사건을 맡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 신문기자들까지 사건 현장으로 와서 일은 더욱 꼬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 중 한 명은 독살 되고, 다른 한명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자동차를 남기고 종적을 감추어 버립니다. 사건과 추측성 기사로 인해 마을은 더욱더 공포에 휘말리고 시장은 급기야 반장에게 누구든 체포하라는 말까지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추리를 하지 않는다는 메그레 반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결국은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일어난 일임을 밝혀냅니다. 사건의 흐름과는 조금 동떨어지지만 무분별한 언론의 보도가 대중들에게 주는 공포심을 잘 나타낸 작품이었습니다. |
|
나에겐 세 번째이며 시리즈 순번으로는 다섯 번째인 <<누런 개>>. 매그레 시리즈는 심플하면서 이미지적인 표지와 콤팩트한 책 사이즈가 참 읽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펼쳐든 이번 책은 파리를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항구 콩카르노의 라미랄 호텔이다. 매일의 일상처럼 항상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이 항구에서 늦은 밤 세관원은 익숙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의 비틀거리는 걸음을 지켜본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잠시 멈칫하는 순간, 취기로 인한 행동처럼 보이는 큰 휘청거림 뒤에 쓰러진 그. 그렇게 첫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나타난 누런 개. 아무도 모르는 그 개는 주인을 알 수 없으며 매 사건마다 나타나 불안감을 조성한다. 잇따르는 각 사건의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