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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음과 모음'이란 출판사의 공격적 출간과 행보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주로 신인이면서도 대중성을 갖춘 작가들의 책이 4월부터인가 보이나 싶더니 최근에는 정말 많은 책들의 리뷰가 쏙쏙 올라온다. 신인 작가 발굴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총 4단계를 거치는 '나는 작가다' 최종단계 당선작에게는 상금과 책 발간의 기회도 주는 코너인데 아주 신선하다. 이 외에도 청소년문학상, 신인문학상, 신인평론상, 문학상, 네오픽션상 등등 청소년에서 신인 및 역량있는 작가 뿐만 아니라 쟝르문학 공모에 이어, 인문학의 대중적인 소통을 꿈꾸는 쉽고 즐거운 인문학 만들기 프로젝트 '열린 인문학 광장' 등 그 행보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책 리뷰에 앞서 출판사를 언급한 일은 처음이다. 작금의 일본추리가 우리네 서점을 휩쓸면서 느낀 소회는 우리의 출판사들은 뭐하나...하는 서글픔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기획으로 다가오는 출판사가 있다는게 신기(?)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독서가 생활화되고 독자층이 두터워져 문학시장의 저변이 확대됨으로써 출판사도 잘되고 좋은 책도 많이 만날 수 있는 윈윈의 결과가 나타났으면 한다. 이 출판사의 성공으로 다른 출판사들도 이에 버금가는 동조화로 이 땅에 새로운 문예부흥의 시기가 도래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8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마리 오 정원>. 별 생각없이 하루에 두어편씩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아칸소스테가' 작품이 가장 나아보인다. 이 작품을 왜 표제작으로 안했을까 궁금했는데,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신춘문예 작품집 안읽은지 오래되었구나...). 시한부 인생의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을 관조하고 엮어가는 짜임이 꽤 섬세하고 괜찮아 보인다. 당선될 만 하다. 맨처음 작품 '숨은 빛'을 읽을 때 화자(話者)인 손녀의 정체를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가 간직한 기억의 인자(因子)였고 시간의 인자였으며 믿음의 인자였고 변함없이 이어질 수 있는 일상의 인자였다. 나는 새가 될 수도 꽃이 될 수도 바람이 될 수도 낡은 나무 창틀이 될 수도 있었다"고 했을때 눈치를 채야하는데, 이 작가의 성향을 몰랐는지라 놓치고 말았다. 고백하건데, 책을 다 읽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뒤적거릴 때에야 눈치를 챘다. 그러고 보니 이 작가가 지향하는 얼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리 오 정원'의 바오밥 나무에 뚫린 구멍이라던가, '마누 다락방'에 걸려있는 수백개가 넘는 작은 종,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공동묘지 영화관, '아코디언, 아코디언'의 연주, '켄세라'의 전화, '나의 글루미 선데이'의 코커스패니얼 등을 매개로 상실의 아픔이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영혼의 치유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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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벤트에 당첨 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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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이 책..8편 모두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아픔이나 슬픔이 있는 주인공들이 뭔가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그 아픔은 참으로 현실적이나 그 위로는 너무 신비로운 것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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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정원은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속의 한목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수록이 되어있는 소설들이 큰 부분에서 하나의 모습을 같이 공유를 하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모두다 남에게 이야기를 못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데 그러한 아픔은 여러가지의 모습으로 생활에 출현을 하고 그러한 아픔이 공존을 하는것이 일상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고 느낄수 있다. 1. 숨은 빛 서울의 변두리에서 목조주택을 개조한 여관을 운영을 하고 있는 스페인 출신의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그녀의 이야기를 할머니의 손녀가 글로 풀어나가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취급을 받고있는 할머니가 자신과도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을 하숙생으로 받아 들여서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픔이라는 것은 그것을 아무리 많은 수로 나누었다고 하여도 처음에 가지고 있던 사람의 마음에는 계속하여서 상처로 남아있고 그 상처를 감추기 위한 방법을 여러 가지의 행동으로 보여준다. 스페인의 시골마을에 살고있던 처녀가 그곳으로 일을 하러온 한국인 근로자와 눈이 맞아서 아이를 임신을 하고 먼저 떠난 남편을 찾아서 이국으로 오지만 남편이 주고간 주소는 다른곳이고 홀로 살아가야 하는 쓸쓸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할머니가 위로를 받고 힘을 낸 이유가 뱃속에서 살아가던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힘을 냈다는 사실은 마음의 상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치료만이 가능하고 주변에서 물질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있는것 같다. 2. 마리오 정원 외딴집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식물을 이용한 저주를 걸어주는 여성의 이름이 오 마리인데 자신의 이름을 딴 마리오 정원을 운영을 하고 있다. 유부남을 사랑한 여성이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죽이기 위하여서 마리르 찾아오고 그녀가 펼치는 저주술을 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자가 왜 자신을 떠났고 자신은 그러한 아픔을 버리지 못하고 남의 손을 빌려서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보여주는데 의문을 풀려고 마리를 찾아간 여성은 그녀의 사연을 들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공유를 하고 아픔을 준 사람에게 아픔을 전가를 한다고 하여서 자신의 아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음의 상처는 당한 사람은 너무나 아프고 그러한 상처를 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상처를 안고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 큰 고통이고 그 고통을 자신에게 준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과 복수는 시작은 달콤하지만 그 끝은 너무 허무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3. 아코디언,아코디언 할아버지와 함께 언제 철거가 될지를 모르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은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손자에게 미안함을 들어내고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변화를 시킬수가 없는 할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을 하면서 자라난다. 어느날 고장난 아코디언을 가지고온 할아버지는 그 악기를 연주를 하고 언제나 사람들이 분노가 있는 장소에서 연주를 하는 할아버지는 상처를 안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행위를 멈추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 음악이 상처를 치유를 할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의 마음과 그러한 음악을 들어도 자신의 분노를 표출을 하는데 멈춤이 없는 갈수록 괴상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회를 구성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지고 있는것 같다. 8편의 단편들이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들을 통하여서 모든 사람들은 상처를 가지고 생활을 하지만 그 상처를 치료를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것 처럼 언젠가는 상처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려고 한다고 믿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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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느낌의 책들을 좋아한다. 책을 덮고 나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꿈꾸는 듯한 이야기 안에 머무를 수 있다. 가능하다면 매일 밤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다. 아무래도 나는 반쯤은 안개 속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닐까. 만약 문학 작품이 지극히 사실적이기만 한다면, 문학과 현실의 차이를 그다지 느낄 수 없을 것이고 내게 있어서는 이쪽도 저쪽도 똑같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지독한 우울을 버텨낼 수 있는 일종의 마취제의 역할을 할, 그런 이야기들을 나는 항상 원하고 있다. 얼마 전 읽게 된 채현선의 단편집 <마리 오 정원>은, 따뜻하고 신비로운 위로로 내게 다가왔다.
<마리 오 정원>에는 신춘문예 등단작인 '아칸소스테가'와 표제작 '마리 오 정원', 그 외 6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 작품들은 어떤 정형화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구체화되지 않은 현실의 그 어딘가의 시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마리, 마누, 얀, 아킴테라, 라파엘, 소피아, 푸엘라 등의 등장 인물들의 이름 역시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배수아의 단편집 <훌>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 사건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지극히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도우며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소피아 할머니('숨은 빛'), 실연의 아픔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주술사의 힘을 빌려 복수를 하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마리 오 정원'), 누군가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누 할아버지('마누 다락방'), 죽은 아들의 무덤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아들이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날마다 트는 부부('모퉁이를 돌면'),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찾아가 죽은 아들의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잼을 나눠주는, 예쁜 여자가 되고 싶었던 할아버지('아코디언, 아코디언'),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안구 종양으로 두 눈을 적출하여 완전히 시력을 잃은 사람과 사랑하는 남자를 사고로 잃은 여자('켄세라'), 시한부 인생임에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아내와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의 처연한 심정('아칸소스테가'), 사랑도 취업도 실패하고 절망한 남자와 우연히 함께 살게 된 골드스패니얼 의 이야기('나의 글루미 선데이')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잃은 데서 기인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다독이거나 서로를 위로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서히 치유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강했던 것은 표제작인 '마리 오 정원'이었다. 식물의 힘을 빌려 복수의 주술적 의식을 행하는, 그리고 여자의 마음속 응어리들을 풀어 내서 치유되도록 도와주는 주술사 마리와 그녀의 이국종 식물이 무성한 정원의 이미지가 감각적이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의 울증과 괴로움을, 이러한 주술과 위로를 통하여 치유받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또한 어떤 쪽이 더 괴로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큰 아픔을 안고 있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다독이는 내용의 '켄세라'에서는, 어설픈 위로의 말이나 뻔한 인사치레도 하지 않지만, 괴로운 누군가에게 전화를 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주는 마음과 행동이 아마 가장 큰 위로였을 것이다. 그 따뜻함이 나의 마음에도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아련한 기억 또는 꿈 속의 어떤 풍경을 여유로이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환상적인 식물들의 정원이 있고 주술사의 집이 있으며, 추억이 살아 숨쉬는 다락방이 있고 마술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편안한 안식의 꿈을 꾸는 듯 하다. 내게도 따스한 위로와 어떤 치유의 주술이 어느 정도는 작용한 느낌이다. 그렇다. 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내게 또 얼마간을 버텨낼 힘을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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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짧은 분량에 긴박감 넘치는 내용이 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토리 구성이 넘어가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만큼 작가로서의 필력을 가늠하기도 좋다. 예를 들어서 오정희 작가의 『가을여자』를 읽어보면 짧은 이야기에 소설로서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은 다 들어 있으면서도 반전이라는 요소가 들어 있어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이 소설집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에서는 반전이라는 요소가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대신 몽환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배경이 꿈이나 아니면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없다. 모두 현실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한국적인 공간도 소설 속 공간으로 등장을 한다. 하지만 그 한국적인 공간이 개인적으로는 한국적인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것을 이국적인 배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집에 들어 있는 8편의 소설들 모두 이국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8편의 이야기를 모두 조금씩만 수정하면 이국적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조금만 수정하면 말이다. 8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어려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날개부분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단 두 줄의 약력이 다였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착을 공부했고, 2009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칸소스테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것이 작가에 대한 정보의 끝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09년에 등단했으니 많은 작품을 남겼을 것 같지가 않았다. 물론 「아칸소스테가」라는 작품도 이 소설집에 들어 있다. 「아칸소스테가」가 당선된 이유는 두 말할 것 없이 읽어보면 알 수 있으리라 본다. 나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조금씩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은 느낌이었는데 이래서 뽑힌 것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것이 연상이 되었다. 일본영화 중에 (본 영화중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영화가 그것인데. 그 속에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 할머니가 사는 곳은 사람들이 안 다니는 외진 곳이다. 그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작품인 「숨은 빛」에 나오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 영화 속 할머니가 떠올랐다. 소설에 등장하는 할머니도 한국의 여느 할머니가 아니다. 이 할머니는 사랑을 찾기 위해 한국 땅을 밟으신 이국의 할머니이다. 그 할머니는 한국인 노동자인 ‘김복수’라는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리고 이 할머니의 집에는 여러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떠나고 또 다른 상처 입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 이야기. 그 숨은 빛의 의미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닐까. 「마리 오 정원」도 「숨은 빛」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상처 받은 사람이 행하는 행동들. 복수의 끝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 속에서 치유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이런 작품이 또 하나 있다면 마지막 작품인 「나의 글루미 선데이」도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상처 받은 강아지가 벌이는 사기 행각. 하지만 그런 사기 행각이 그렇게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 까닭은 사람에 의해서 받은 상처로 인해 일어난 해프닝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몽환적이면서도 현실 속에서 인간에 의해서 주고받는 상처에 대해서 깊숙이 파고든 채현선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나중에라도 또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상처를 준 사람이 있었는지 오늘 밤에는 생각해 봐야겠다. 아니면 동물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꺼내봐야겠다. 어렸을 적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아! 후회가 된다. 아무래도 작가의 이 소설 속의 의도가 이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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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피아 하우스에 머무는 사람은 배고픔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요." 언제라도 냉장고나 주방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먹으라고 말하는 소피아 할머니, 손녀딸 김푸엘라가 들려주는 소피아 할머니의 이야기. 20살의 소피아는 스페인으로 일을 하러온 한국 남자(김복수)와 사랑에 빠졌고, 소피아가 임신을 하자 한달후에 꼭 데리어 온다는 약속을 하고는 귀국해버렸다. 몇달이 지나도 데리러 오지않는 남자를 찾아 소피아는 부른 배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그가 적어준 주소로 찾아갔지만 집은 커녕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단다. 여기까지라면 보통 울고 불고 난리치다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정상인데, 소피아는 완전 다른 행동을 해버렸다. 과연 소피아는 어떻게 지금의 '소피아 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마리 오 정원'을 찾은 여자, 유부남인줄 알고 시작했던 역사학 강사와 학생의 사랑은 불륜일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차지하고 싶었던 그인데 그는 사랑을 부정해버렸다. 자신이 차지할수없다면 누구도 그를 차지할수없게 죽여버리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복수를 위한 주술의 첫 단계는 환화초 씨앗을 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환화초가 꽃을 피울때 복수는 완성된다는데 과연 복수는 제대로 이루어 질까? 책속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등장한다. 한국이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유럽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듯 보여지는 것도 있다. 마누 다락방 오렌지 농장을 가꾸며 살아가는 마누 할아버지, 손자인 얀은 3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언덕배기 삼층집에는 뭔가 특이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집안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끊기지 않는다랄까.
[아칸소스테가] 심장근육이 굳어가는 희귀병 진단을 받은 아내, 그 병은 사람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것 없는 원인도 치료법도 없는 병이다.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해줄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큼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도 없다. "기조씨, 기조씨" 가슴이 옥죄는 통증이 찾아올때면 아내는 나를 이렇게 두번씩 불러댄다. 아내를 위해 아내의 추억속에 그리움으로 들어있는 것들을 사다안겨주기도 하며 나름 아내를 위로하는데, 아내는 그에게 지금 당장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니 사다달라는 부탁을 한다. 과연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모습일까? [나의 글루미 선데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35살의 남자, 오랜 시간 사귀어온 여자와 헤어진 날 집에서 이제 용돈은 스스로 벌라며 용돈을 보내지않겠다는 전화를 받는다. 비참하고도 비참한 일요일에 그가 만난 길거리에 버려진(?) 황금색 코커스패니얼이었다. 집에 개를 데려온 그가 우울한 일요일이란 뜻의 글루미 선데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숨은 빛/ 마리 오 정원/ 마누 다락방/ 모퉁이를 돌면/ 아코디언, 아코디언/ 켄세라 / 아칸소스테가/ 나의 글루미 선데이 8편의 단편소설,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딘가 다른 세상을 만날수있을 것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가져다 준다. 숨은 빛의 소피아 할머니 같은 분이 있어 돈벌러 한국을 찾아든 외국사람들이 외로운 생활을 견뎌나갈수 있었다. "우리 소피아 하우스에 머무는 사람은 배고픔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요." 어딘가 여행을 했을때 만난 하우스에서 소피아할머니와 같은 주인을 만날수있다면 잠시나마 고향집을 찾아든듯 안정감과 행복함을 느낄수있으리라. 원래 이름은 매리로 아이없는 부부가 10년간 정들여 키운개로, 10년만에 아이가 태어나자 부부는 아이에게 정을 쏱게되고 부부의 관심이 아이에게 돌아가자 가출을 해 다른 곳에서 지내다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는 동네에서는 사기치는 개로 소문이 나 있는 개란다. 이 얼마나 영리한 개란 말인가, 이런 개라면 딸의 원대로 한번 키워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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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참 괜찮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추천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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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이 다시 장편이 되는 유기적인 모험 – 마리 오 정원 간만에 신선한 신인 작가의 책을 만났다. 기존의 작가와 다른 면이 있다는 것도 있고, 어쩌면 한국 소설이 아닌 일본 소설과 같은 느낌의 책이라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소설들은 언제가부터 주류 소설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읽고 소설 쓰기를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작게 혹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작가들이 이제 한명씩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마리 오 정원은 그런 그녀의 첫번째 단편집 이다. 2009년 아칸소스테카를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개하면서 등단을 했던 그녀는 그동안 많은 지면들에 자신의 소설을 소개하며, 모았던 작품으로 추려 한권의 책으로 출간을 한 것이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단편에 대해 이것 저것 많은 말들을 하고 있고, 책 뒤의 해설에서도 그녀의 애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 애기들은 다 지워버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처음 출발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기에 작가에게 축복과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해볼까 한다. 표제 작품인 오 마리 정원은 인간의 복수의 허망함에 대해 애기를 하고 있다. 남자에게 버려진 연인이 그 남자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술의 힘을 빌리고, 그 주술을 하는 사람이 마리이다. 마리는 그녀의 정원에 주술을 담은 화초를 키우고, 그 화초의 꽃이 피면 복수는 완료가 된다. 나는 그 복수를 완결하지 못하고, 그렇게 복수의 의미를 되세긴다. 어딘선가 많이 보았던 글의 전개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긁적 긁적 다른 글에서는 좀 다르겠지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마누의 다락방을 읽었다. 아버지가 싫다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오렌지 농장을 떠난 아들은 저 세상으로 떠나고, 그의 아들은 할아버지에게 돌아오고. 할아버지의 손주의 오렌지 농장의 사건들과 할아버지의 그림만 있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아코디언 아코디언에서 할아버지와 손주가 다시 등장을 한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복장집착자 혹은 크로스드레서로 불리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할머니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이 할아버지의 손주의 이야기는 손주의 눈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아코디언에는 다시 숨겨진 애기가 존재한다. 두이야기는 주인공도 글의 배경도 완전히 다른 동네이지만 묘하게 연결이되고, 같은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든다. 하나의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끊임 없이 다른 방식으로 변주를 하는 것이 아닌지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책을 마무리를 하고 머리속의 혼란은 더 커져만 가는 느낌이다. 글의 전개의 방식이 매우 신선한 편에 속한다. 글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기존의 소설과 다르게 외국인과 외국으로 돌려 글의 신선함을 더 주려고 했지만, 어쩌면 이 것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것은 번역 소설을 너무 많이 본 필자의 탓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평론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소설은 참으로 몽환적이다. 아무래도 단편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몽환적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혹은 독자들에게 그 마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매력적인 주문을 던져 준다. 그 주문을 글에서도 그리고 행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첫 소설을 세상에 내보내고 어떤 기분으로 책을 기다리고, 그 책의 판매를 지켜봤을지 저자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그 설레는 기분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작가의 설레는 첫 시작에 박수를 보내고, 언제나 행복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PS 개인적으로 스토리 텔링에 재능이 없어서 인지, 이렇게 스토리 텔링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으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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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나에게 있어서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을 확 뒤집어 놓은 책이었다. 처음엔 그저 판타스틱하면서 꿈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첫장을 읽어도 또 읽어도 그저 소피아 하우스에 대해서 자세한 묘사와 그집 주인과 손녀딸 김푸엘라애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자칫 소설에 대해 단정해버리기 쉬운 지루한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책이 내손에 오랫동안 머물렀는지도 모르겠다. 이 한편이 끝나고 또 다시 다른 한편의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이 곳엔 단편소설들의 모음이었다.
언제라도 냉장고나 주방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먹으라고 말하는 소피아 할머니, 김푸엘라가 들려주는 소피아 할머니의 이야기. 소피아하우스 외국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방을 내어주는 이른바 여관, ...언젠가는 나도 이런 하우스를 운영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끌렸던 소피아 할머니. 어떻게 소피아할머니는 한국에서 소피하우스를 열게되었을까?
이책의 제목이 마리오 정원. 남자에게 버려진 연인이 남자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술의 힘을 빌리려고 마리 오 정원을 찾게되며 마리는 그녀의 정원에 주술을 담은 화초를 키우고, 그 화초의 꽃이 피면 복수는 완료가 된다는 내용. 복수는 이루어질까? 복수는 복수를 낳을뿐...
이 밖에도 마누 다락방, 모퉁이를 돌면, 아코디언, 아코디언, 켄세라 , 아칸소스테가 더 있다. 읽으면서도 집중하지 않으면 다시 잃게되는 특이한 구성방식으로 이책은 그랬다. 각각의 개인이 갖고 있는 상황을 묘한 어울림으로 삶이라는 믿음을 강인하게 내세우며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