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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야밤산책』(리듬 저/라이온북스)을 읽던 중, 쉽고 가독성 최고인 책을 만났다. 무엇보다 그 책은 ‘메디치 가문’에 대한 나의 지대한 관심사를 충족시켜줄 만한 눈부신 발견이었다. 품절(『야밤산책』)이라 중고로 사야 했지만, 들인 돈에 비하면 이건 너무 과한 선물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로써 중고 구매로 벌써 두 번째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독서나 영화 에세이를 즐겨 찾아 읽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미처 몰랐거나 알아보지 못했던, 보석 같은 책(영화)을 만나기 위해.
언뜻 내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듯한 이 책의 제목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대인 관계를 위한 심리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메디치 가문’에 대한 내용이라니. 완전 반전이었다. 저자가 요약한 내용만으로도 내 호기심은 그야말로 충천해버렸다. 제발 품절이 아니길 바라며 재빨리 그 책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E북과 종이책 둘 다 있었고, 설렘과 기대로 잔뜩 격앙된 나는 곧바로 그 책의 미리보기 전체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읽고 싶은 맘에) e북 구매로 이어지기까지는 그야말로 일사천리, 속전속결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중세 유럽사나 예술, 문화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특히 집안의 양자로 받아들여 세계 최고의 예술가로 만든 미켈란젤로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미술 거장들을 후원한 것으로 익히 알려졌기에 미대 졸업자이자 미술 애호가인 나로서는 메디치 가문에 대한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동설을 주장하다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견제와 탄압을 받았던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후원해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는가 하면,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에 헌정했다고 한다. 오페라가 처음 탄생한 것도, 포크와 나이프 사용을 서양식 식사 예법으로 전 유럽에 확산시킨 것도,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이 ‘아메리카’라 불리게 된 것도 다 메디치 가문과 관계가 있단다. 역사,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서 다뤄지는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은 알면 알수록 끝이 없다. 그러니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읽어야 할 이유와 매력이 차고 넘칠 수밖에. 오래전 이탈리아 드라마 <메디치 마스터즈 오브 플로렌스>를 보고 싶었음에도 유료 결제가 싫어 그를 대신할 책을 찾다 잠시 잊고 있던 차에 접한 책이라 더 반갑고 설렜던 이유다. 그러고 보면 책과의 인연도 이렇듯 다 때가 있는 듯하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알고 보니 꽤 영웅 서사적이다. 개천에서 용 난 격, 자수성가 등 어떤 말을 대입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1397년, 14세기 말에 시작된 메디치 가문은 1743년 마지막 자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데 메디치가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함으로써 총 346년간의 역사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미약한 중산층 집안에서 출발한 메디치는 가문의 모든 재산과 예술품 전부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기증했던 르네상스 예술의 최대 후원자였던 것을 제하더라도 16세기엔 최고 권력자인 교황 두 명, 프랑스 왕비 두 명을 배출하는 등 명실상부 유럽의 최고 가문이었다.
메디치 은행의 시작은 1395년, 유럽의 중세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12세기 후반 피렌체에서였다.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1385년 메디치 은행의 로마 점장으로 임명된 후 삼촌인 비에리 데 메디치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했고, 삼촌 사후 그 은행을 인수받아 1397년 본점을 피렌체로 옮기면서 메디치 가문은 본격적으로 포문을 연다. 그러던 1402년, 사업의 기초를 닦은 조반니는 교황청의 주거래 은행이 되기 위해 애썼고, 그 중심에 한 인물이 개입하게 된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하며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 일화 속 요한네스 23세다.
가문의 실질적인 창업자였던 조반니 디 비치의 성공 비결을, 저자는 두 개의 사자성어로 정리한다. 이는 메디치 가문이 당대 최고의 가문이 되는데 기여한 최고 키워드라 할만한데, 바로 유약겸하柔弱謙下와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그렇게 “강자와의 경쟁을 피하고 몸을 낮추되,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라는” 가문의 신조를 따른 조반니는 부실채권을 떠안는 거액 대출을 감행하면서까지 고객(요한네스 23세)과의 신용과 의리를 지킨 덕분에 이를 지켜보던 거물급 고객들과 피렌체 시민들을 감동시키기에 이른다. 여기서 잠깐, 요한네스 23세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그는 해적에서 가짜 법학 박사가 되어 돈을 주고 추기경이 되더니 교황 요한네스 23세까지 된, 나폴리 출신의 발다사레 코사였다. 이미 빈털터리로 엄청난 보석금을 줘야만 수감자 신세를 면할 수 있었던 그에게 거액을 대출해 주는 건 메디치 은행으로서는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결과가 입증해 주듯 조반니는 분명 이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 코시모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의 결정은 신의 한 수였다. 메디치 가문을 격상시키는 발판이 되어 이후 승승장구했으니까.
가문의 이름인 메디치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방패처럼 보이는 패널에 여섯 개의 둥근 공(palle)이 박힌 메디치 문장에 얽힌 세 가지 설도 무척 흥미롭다. 그 첫 번째 설에 의하면 공(palle)을 환약丸藥이라고 보는 건데, 의술을 뜻하는 영어 Medicine은 이탈리아어로 메디치나(Medicina)라고 한다. 이는 메디치 가문의 조상들이 의약 관련 직종에 종사했음을 의미하므로 문장에 있는 둥근 공은 환약丸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실제로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있다. 시집 온 카테리나 데 메디치를 깔본 프랑스 왕가에서 메디치 가문의 문장을 환약으로 간주했다고. 두 번째는 문장에 박힌 공이 환약이 아니라 동전을 상징한다는 설이다. 메디치 가문은 주력회사였던 소규모 환전상으로 출발했고, 당시 피렌체 환전상들은 상점 간판에 동전 모양을 새겨 넣었기에, 그것이 자연스레 가문의 문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6세기 후반에 등장한 세 번째 해석은 환약도 동전도 아닌 방패에 찍힌 철퇴 자국으로 보는 견해다. 이는 코시모 1세가 자신들이 통치자(왕족) 가문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카를 대제(798-814)의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던 아베라르도 데 메디치와 연관된 전설에서 기인한다고. 아베라르도의 승리 때 생긴 방패의 철퇴 자국이 바로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되었다는 것. 저자는 이 모든 추론과 설이 한미했던 초기의 메디치 가문을 잘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랬던 가문이 어떻게 유럽 최고의 부를 축적하고 위대한 가문이 되었는지, 또 21세기 현대인들과 리더들에게 어떤 귀감과 모델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의 총집합서라고 할 수 있겠다.
1부는 ‘생각의 빅뱅, 세상을 바꾸다’라는 주제 하에 메디치 가문의 시작과 융성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2부로 가면 ‘350년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지도자들’ (최초의 인문 경영자,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관용의 리더십, 피에로 데 메디치(1416-1469), 탁월한 위기 경영, 위대한 자 로렌초(1449-1492), 밑바닥에서 최고가 되기까지, 레오 10세(1475-1521), 마키아벨리의 제자, 카테리나 데 메디치(1519-1589))이 열거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엔 ‘메디치의 비밀, 가슴이 따르게 하라’는 주제로 메디치 은행의 몰락 원인을 살피고, 로렌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인정하지 않게 된 이유, 마키아벨리, (시대적 불운을 극복하고 당당한 화가가 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당대 유명 인물들을 환기해 준다.
이상, 총 3부 구성인 이 책은 1부에 이미 메디치 가문의 모든 것이 압축돼 있어 2·3부는 1부에 대한 부연 설명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개괄적인 독서가 가능했던 내게는 아주 쉽고 유용한 책이었다. 나처럼 메디치 가문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하던 독자라면 입문서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이 한 권의 책에 다 있다고 장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