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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바다>
이 책 앞을 지나는데 제목이 발길을 머물게 한다.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웬지 어떤 아픔의 이야기가 먼저 감지 된다고 해야하나?
일을 찾아 떠나는 아빠와 가지 말라고 매달리는 딸아이 그리고 서성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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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계신 엄마의 모습에서 왜 슬픈 기운이 아픈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
스산한 동네와 넘실대는 파도앞의 작은 소녀 예사롭지 않은 성난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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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아닌데 하는 일.
이 책은 나를 지금으로부터 15년전으로 데려다 준다. 10월이면.. 더 정확히 10월의 31일이 되면 내 머리가 인식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감지하는 날. 아빠가 세상을 떠나시던 날.
그렇게 좋아하고 불렀던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 내 얘기가 될줄..
아빠의 소천 소식이 내게 다가왔던 그 순간의 이야기가 이 책의 제목에서 감지되었던 것일까? 한장 한장 넘기는 내 손길이 머뭇거린다.
슬픔은, 고통은 누구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그렇다면 슬픔중에 고통중에 있는 사람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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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를 동해바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경상북도 울진은 피 끓는 이십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오지였다. 우리나라를 몸으로 비유할 때 울진은, 한쪽 팔을 어깨 뒤로 돌리고 다른 한쪽 팔을 등 뒤로 돌려서 맞잡았을 때 닿지 않는 곳이다. 이십대가 활동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게다가 일터는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일터의 본질을 확인한 뒤에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시대도 군사 독재가 통치하는 시기였으니 삼중고에 시달린 셈이다. 그러나 거기에 눈부신 바다가 있었다. 아침마다 붉은 해가 떠오르고, 조금만 수고를 하면 만선으로 들어와 팔딱이는 고기를 흥정하는 항구를 볼 수 있었다. 흥성한 새벽시장에서 생의 활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살아 있는 동해바다 덕분에 큰 탈 없이 이십대를 관통할 수 있었다. 지금 바다는 아프다. 쓰레기와 소음 때문에 생명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특히 바다 속 소음은 심각하다. 핸드폰, 비행기, 배, 잠수함, 인간이 내는 소음으로 하여 바다 속 생명은 길을 잃는다. 길 잃은 생명이 가끔 바다 밖으로 나와 목숨을 잃기도 한다. 가끔씩 거대한 재앙이 바다를 강타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태안반도나 후쿠시마가 곧 그 재앙들이다. 이러한 오염으로 하여 바다 생태계는 죽어가고 있다. 가장 먼저 죽어가는 생명체는 민감하고 약한 것들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죽음은 바다 전체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고, 바다의 죽음은 인류를 비롯한 지구별에도 종말을 고할 것이다. 엄정원의 첫 그림책은 이와 같이 죽어가는 아픈 바다를 보여주고 있다. 표지는, 항구로 들어오는 배 위에 갈매가 몇 마리가 배를 향해 날렵하게 날아가는 그림이 상단에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배에 고기가 그득함을 유추할 수 있다. 표지 하단은 배가 항구에 도착하여 흥성이는 새벽시장이 그려져 있다. 북적대는 사람들 모습이 푸르스름하다. 이렇듯 풍성한 바다는 정작 본문을 여는 순간 확 달라진다. 바다가 병이 나서 섬마을 고깃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것이다. 표지 그림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바다는 지난 얘기가 되어버렸다. 사람도 배도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바다를 떠나 멀리 간다. 아빠도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바다만이 생의 터전인 존재들. 아이들도 그렇다. 떠나가는 아빠를 향해 뛰어가는 아이의 신발 한 짝이 벗겨진 그림은 단순하고 명징한 슬픔을 표현한다. 아빠가 떠나던 날 “돈 벌면 데리러 올게! 꼭 다시 올게!” 아빠가 아이에게 약속했습니다. 아이는 따라가겠다고 울었습니다.
아빠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는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린다. 갯벌에서 놀아도 하루가 너무 길다. 엄마 곁에 누워 있다가 아빠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방문을 열어 보기도 한다. 환청이다. 하도 답답해 “아빠, 어디까지 왔어?” 소리치지만 아빠는 대답이 없다. 갈매기들마저 먹을 것이 없어 하나 둘 섬을 떠나지만 아이는 섬을 떠날 수가 없다. 바다도 섬을 떠날 수가 없다. 사실 우리 모두는 바다에 정박되어 있는 목숨들이다. 바다가 아프면 우리도 아플 수밖에 없다. 검은 목탄화가 아픈 바다를 잘 표현하고 있거니와 방파제에 막힌 아이가 곧 바다의 운명 같아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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