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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체제에서 예기치 않았던 왕의 급서는 그야말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거사를 추진했던 왕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왕으로 효종을 들 수 있는데, 그의 급서로 북벌은 끝내 시도조차 하지 못한 미완의 정책이 돼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 효종이 오래 살아서 북벌이 추진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가정은 때로는 우리 역사에서 아쉬움을 토하게 만들게도 한다.
오세영의 ' 북벌'은 북벌을 두고 물밑으로 벌어지는 각 세력의 권력투쟁과 효종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서인의 거두 송시열은 표면적으로는 북벌에 동조하는 듯했지만 그 속내는 그렇지 않아, 효종과 줄다리기를 벌였고, 숭명멸청을 신조로하는 사대부가 주류였던 조정 안에는 친청세력인 부청배(附淸輩)도 존재하고 있었다.이들은 북벌을 두고 각축을 벌이면서 권력다툼을 하게 되는데..
'북벌'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훈련대장 이완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윤헌 종사관과 소현세자를 흠모했던 거상 성명욱이다. 이 두 인물은 팽팽한 대립관계를 이루게 되는데, 윤헌은 남명(南明)황제라 자처하는 영락제의 밀서 행방을 찾아가고 그리고 소현세자의 서자인 박석주를 효종 뒤를 이어 보위에 올리려는 계획을 저지하게 된다.
TV 드라마' 다모'가 방송된 뒤로 종사관이라는 직책이 친숙하게 여겨지는데, 이 북벌에서도 역시 종사관이 눈부신 활약을 벌인다. 윤헌은 성명욱의 효종 암살 계획을 차단하지만, 결국 1659년 5월 4일 효종의 급서만은 막지를 못하면서 북벌정책은 결국 미완으로 남고 만다.
작가는 효종의 독살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한 듯이 보이는데, 당시 몰락해가는 조짐을 보이는 청과 명의 잔형만 유지하고 있는 남명등 당시 국제정세와 함께 국내 정치의 역학관계 속에서 북벌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 허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역사 팩션의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 익히 알려진 인물이 재창조돼 나타나는 것, '허생전'에서 이완을 통렬하게 꾸짖고 사라졌던 허생이 '북벌'에서는 조정에 몰래 화약을 조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하지만 결국 허생은 그의 시대가 갔음을 선언하며,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시 사라진다.
이 작품의 말미는 윤헌 종사관은 자신이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던 소현세자의 서자..박석주를 살려서 요동으로 보내 달라는 성명욱의 청을 들어주고, 효종의 승하 이후 벌어진 사태를 수습한 뒤 그를 따랐던 기생과 함께 조선을 떠날 생각을 한다. 역모였음에도 피비린내 나는 처벌보다는 낭만적이고 인정어린 결말로 마무리 된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용두사미가 된 느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 상황을 떠올리게도 한다.
청나라는 화약의 반출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조선이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 조선은 몰래 무기를 실험할 수 밖에 없고,화약의 반입 또한 드러내놓고 추진할 수가 없는 상황..청나라 대신 미국을 대입하면 지금의 우리 처지도 미국의 통제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일정 거리 이상의 미사일은 개발할 수 없다는 것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힘이 없는 나리의 비애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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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가방속에 책을 넣고서 회사마다 책을 대여해주던 아저씨가 있었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스무살 무렵에 말이다. 그때 오세영 작가의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만났었다. 7시출근 11시 퇴근이 당연시 되던 그 시절에 책은 유일한 탈출구였고, 인터넷 책방 사이트가 없었던 그 시절에 일주일에 한번씩 회사로 찾아오던 아저씨의 커다란 가방속은 파라다이스였다. 그리고 근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그의 책을 다시 만났다. <북벌>
<북벌>을 읽기 몇일 전에 읽었던 책이, 연암 박지원에 관한 책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허생전>에 내용을 알게 되었다. 허생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책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변씨가 소개한 인물, 이완이라는 인물이 실존 인물인지도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북벌>은 <허생전>의 끝과 함께 맞물려서 시작된다. 이완은 허생을 찾아가지만 사라져버렸고, 다시금 허생이 등장하고 있다. 북벌..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작년에 이슈가 되었던 책 중에 <소현세자>가 있었다. 실리를 추구하지만, 유약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이드는 소현세자, 그리고 그의 동생, 봉림대군. 인조의 후임으로 봉림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은 북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조선의 북벌 계획은 효종 9년(1658)에 있었던 나선 정벌로 그간의 준비가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온 훈련도감 종사관 윤헌은 이완의 호출을 받는다. 조선의 청나라 공격에 남몰래 협조를 하던 명나라 출신의 거상 왕유정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던 윤헌은 거상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사가 아닌 치밀한 살인임을 알아낸다. 그리고 남명에서 보낸 밀서를 찾기위한 두뇌게임이 시작된다.
입으로만 북벌을 외치는 송시열을 중심으로 북벌에 반대하는 서인과 소현세자와 함께 하였기에 효종을 몰아내고 소현세자의 숨겨놓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성명욱. 이렇게 각각의 이익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조선군의 출병을 요청하러 온 청나라 사신의 도착을 계기로, 출병을 강행하려는 효종과 이완 등 북벌파와 송시열을 중심으로하는 서인 그리고 성명욱 등의 소현세자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은 <북벌>을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다. 1659년 5월 4일 <효종실록>은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벌써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독살이 의심되는 효종과 미완으로 끝나버린 북벌 정책을 말이다. 그리고 오세영 작가는 그 짧게 다뤄진 <효종실록>속의 행간을 <허생전>과 맞물려서 풀어내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단편 사료들을 모으고 작가의 상상력을 꿰어 역사의 그늘에 묻혀졌던 사건들과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강한 생명력으로 인해, 읽는 이들조차도 흥분하게 만들어 버린다.
북벌이 미완으로 끝났음을 알고 있음에도 책은 읽는 이를 끌어들인다. 종횡무진 못하는 것이 없는 젊은피, 윤헌의 활약상은 홍길동을 보는 듯 하다. 게다가 그에 옆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윤헌을 돕는 선원원. 소현세자편에 있는 성명욱과 성명욱에 손에서 자란 이한매. 박석주라 불리는 소현세자의 아들, 이주와 궁녀 묘선. 어떤것이 옳은 길인지는 그들이 처한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편을 들수도 없다. 효종의 입장과 소현세자가 왕이되었어야만 했다고 믿는 성명욱의 입장이 다르니 말이다. 그래도 이들의 치밀한 두뇌싸움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장기나 바둑을 둘때 고수들은 몇수를 본다고 한다. 책 속의 윤헌과 성명욱이 그렇다. 보통사람들은 생각조차 못하는 일들을 하면서 독자들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벌>은 나라의 힘을 이야기 한다. 책 속 인물들이 이렇게 싸우는 것 또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강하지 않기에 청에 임금이 머리를 풀고 맨발로 머리를 조아렸고, 세자를 볼모로 보내야만 했으니 말이다. 나라는 강해야 한다. 백성이 믿고 살기위해서도 강해야 하고, 그 백성이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나라는 강해야 한다. <북벌>이라는 미완의 끝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는 이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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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난 역사에는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우며 가엽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크고 굵직한 사료와 사건들이 많이 있다.그중의 하나가 청에 의한 삼전도 굴욕과 소현세자의 불의의 죽음,그리고 효종의 죽음(1659년 5월 4일)은 사색 당파와 국론 분열,관료들의 국방의식 결여등이 이어져 가면서 조선은 약체국의 면모를 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또한 이웃 중국의 명은 쇠퇴해 가고 만주국 청은 위세를 떨쳐가던 때에 청에 대한 복수의 염이라도 품은듯 효종을 비롯한 당시 서인(송시열) 세력들은 나선정벌을 기회로 중국의 요동정벌을 위시하여 잃어버린 만주 고토를 회복하려 했던 것이 '북벌'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북벌 문제에 대해 당시 서인의 영수 송시열과 독대했던 효종은 익일 세상을 등지게 되고 삼전도의 치욕을 갚으려던 계획은 일시에 찬물을 끼얹은듯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만다.효종의 승하의 전후일을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고도 실감나게 엮어간 '북벌'은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들이 펼쳐 나가는 숨막히는 사극 한 편을 보는듯 하다.서인의 영수 송시열,송준헌,훈련도감 대장 이완,화약 준비책 허생,소현세자의 심복 성명욱,하멜,박석주(소현세자의 서자),기녀등이 정중동 내지 동중정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사대교린의 관계를 맺었던 조선은 명에 대해 의리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서인 및 친청 세력들은 청에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북벌 세력과 보이지 않는 갈등의 분위기를 읽을 수가 있다.북벌을 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은 훈련과 화포 제조,화약의 확보와 남경 공략전과 남명과의 연계에 관해 정보를 입수하고 효종은 평성(平城)의 치욕을 거론하며 북벌에 불을 당기려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다만 북벌 반대파들은 삼남의 가뭄으로 인해 고초를 겪는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고 내치를 다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운는등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영력제의 밀서와 탈응천부방략을 손에 쥔 윤헌은 북벌과 관련된 밀서인줄 알고 뛸듯이 기뻐했지만 만상단(滿商團)단주가 기방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는 친청파(성명욱)의 계략임을 알고 남 포교의 몸에 탈수표가 날아들면서 즉사를 하고 성명욱과 가깝게 지내던 명의 사신 연정재까지 합세하지만 윤헌에게 당하고 만다.북벌과 관련한 밀서와 방략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한채 북벌 계획은 계획과 말만 무성한 채 효종의 죽음과 동시에 없었던 일로 끝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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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사실들을 기록해놓은 단순한 것에 불과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향후 미래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조선 효종 때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북벌 정책의 일부 과정을 당시 실존 역사인물들을 등장시켜 사실적으로 재현해 낸 작품이다. 북벌론은 모두 알다시피 오랜 시간을 거쳐 치밀하게 계획되어 실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런 효종의 죽음으로 그 힘을 잃고 중단되면서, 아직까지도 그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가정을 생각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의미하게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의 북벌 정책이 과연 실효 가능했던 것이었을까, 혹은 명분만을 취한 무리한 정책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효종과 함께 북벌 정책을 주장했던 당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던 서인세력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 여러 가지 면을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는가에 따라 여러 견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보아야하고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때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객관적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당시 긴박하게 진행되었던 북벌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보다 폭넓고 균형적인 시각을 견지해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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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전쟁을 염두에두고 군사를 양성한 유일한 왕으로 기억한다. 지금껏 역사속의 전쟁은 우물한의 개구리같이 같은 민족을향에 땅따먹기 같은 전쟁과 국토를 유린한 적을막기위한 전쟁밖에 없었다. 효종은 그런 우리 역사에 물론 청에 짖발힌 치욕을 되같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전쟁을 꿈꾸던 제왕이었다. 그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값을수있는 목전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다. 책은 그런 효종의 꿈 그리고 그와 같은 꿈을꾸는자와 그 꿈을 막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픽션과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나선정벌로 시작한다. 훈련도감 종사관 윤헌은 홍이포를 제작했지만 실험을해보지 못했다. 청의 요청으로 나선정벌에나서고 청몰래 홍이포를 시험한다. 윤헌의 기대되로 홍이포는 원거리발포와 연속 5섯번 발포가 가능하다 좀더 다듬는다면 북벌에 요긴할 병기가될수있다. 이완과 윤헌은 북벌을위해 병력을 훈련시키고 화포를 만들고 화약을 구하기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때 이들에게 도움을주는이가 유형원이다. 예전에 이완과 불편한 관계였던 허생을 만나 화약을 구하는데 도움을 받게된다. 유형원과 허생은 평소에도 북벌론자였다. 이들은 청과 북벌을 반대하는 사대부의 눈을피해 국력을 키우는데 이와는 반대로 북벌 반대론자이 있었으니 그가바로 성명욱이다. 성명욱은 소현세자의 측근으로 숭명별청을 부르짓는 북벌파를 막는길이 소현세자의 뜻을 잇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썩은 명을 숭상하기보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을 만드는게 백성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의 눈에 청이바로 새로운 문물을 의미한다. 북벌론과 반대파의 숨막히는 격전속에 중심인물인 효종의 건강에 이상이생긴다. 이 모든게 허무하리만큼 한순간에 끝이나 버린것이다.
북벌속에서 만나 인물들은 역사책속에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가상의 인물 허생은 자신의 이상향을위해 양반의 지위마저 버린다. 또한명 송시열이다. 그를 논할때 어디에 중심을 둬야할지 잠시 헷갈린다. 결국 그는 대쪽같은 선비는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 송시열은 효종과 뜻을같이해 북벌을 주장하지만 자신의 당파를위해 효종을 버린인물 내 기억속에 그는 그렇게 남을것 같다. 이완과 윤헌 무장으로서 최선을 다한인물 북벌이 실패로 끝났고 전쟁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반대다 하지만 오랑케에 맞서는건 찬성이므로 그들의 정신은 높이살만하다. 성명욱 예전의 나였다면 그는 나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택한 실리가 꼭 나쁜건 아니다 소현세자가 실리를택했듯이 나라와 백성을 생각한다면 다만 자존심은 지키면서 실리를 지켜야 한다고 명분없는 싸움을 할수없듯이 실리를 지키는데도 명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후세가 판단한다고 말한다. 북벌이 남긴건 언제나 당하기만한 역사는 아니였다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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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 보니, 2014년 독서를 꽤 무거운 주제로 시작했던 것 같다. 북벌이라니, 병자년의 치욕을 되갚기 위한 조선의 출병이라니, 소설이라 해도 그리 가벼운 주제는 분명 아니다. 한반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 바로 ‘지정학적’이란 수식어다. 참 애매하긴 하다. 하필 우리 주변에 세계 4대 강국이 모두 둘러싸여 있다. 물론 미국이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지만, 어쩜 나머지 세 국가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맞다. 때문에 외교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아울러 정확한 현실 인식도. 언제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질 수 있으니, 매사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혹자들은 그것이 우리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무지한 나는 솔직히 동의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기엔 내 양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조상들이 ‘지정학적’ 위치라는 약점 때문에,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했는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살벌해졌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의 부활로 인해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있지만, 중국은 덩 샤오핑의 ‘도광양회’를 넘어선 지 오래다. 국내 학자나 언론인 중 일부는 러시아가 미국에 의해 큰 곤경에 빠진 것을 본 중국이 ‘신 도광양회’로 전략을 바꾸었다고 말하지만, 난 여전히 중국이 ‘주동작위’와 ‘돌돌핍인’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중국은 스스로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을 만큼 거대해 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미국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계 경제와 군사 부문을 장악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단 시일 내에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럼 일본은? 러시아는? 각자 처한 상황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여전히 대국이고 세계 최고의 경제 강국이다. 미국에 대해 이를 갈고 있을 푸틴은 결코 더 이상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심산이고, 아베 역시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더라도 다시금 일본을 세계가 두려워하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 두 지도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미국뿐이지만, 이 역시 만만치는 않다. 동북아는 지금도 요동치고 있다. 우린 여기에서 항상 실리와 명분이라는 두 과제를 적절히 섞어가며 외교력을 펼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경제적으로 이미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중국을 무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오랜 동맹인 미국과 소원해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영리하게 실리를 취하고, 또한 명분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아니, 현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늘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동안, 우리가 그렇게 계산을 하는 동안, 과연 다른 나라들은 놀고 있을까?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속셈을 전혀 모르고 있을까.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우리가 하는 대로 지켜보고만 있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 두 나라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선택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실리외교, 균형외교. 이런 것들은 기실 허상일 뿐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우린 북한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상수(이자 변수)를 안고 있다. 답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정작 우리의 외교력이라는 것을 보자면, 더 암담하다. 아직까지 고려의 서희를 우리 외교의 상징으로 말할 만큼, 빈약하고 한심하다. 서희 이후의 외교다운 외교는 없었던 것일까. 명분에 얽매인 사대주의가 판치던 역사는 이후 조선의 멸망과 대한제국의 몰락, 일본의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외교? 그 이후로도 대한민국의 외교라는 건 단지 미국과의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것이 바뀐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미국 외의 외교를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외교부는 자신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임을 자부하며, 오만방자하다. 물론 강대국들에겐 한없이 약하지만 말이다. 최고의 엘리트라면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의 외교정책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암튼 그렇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외교라는 게 말이다.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미국의 사드(THAAD) 사이에서 우리 외교부의 수장은 “행복한 상황”이라 말했다. 무엇이 행복인지 심히 궁금하지만, 암튼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그 자체에 행복감을 느낀 게 아닐까 싶긴 하다. 씁쓸하다. 자신도 말하고 나서 우울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친미파라 해도 말이다. 오직 명나라를 주인의 나라로 모시던 조선은 명을 멸하고 일어난 청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피난 간 조선의 왕은 남한산성에서 청의 군사들에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명나라를 위해 엎드려 절을 하고 춤을 추었다. 신하들은 끝까지 싸우자는 편과 항복하자는 편이 서로 싸웠다. <북벌>은 효종의 청나라 출병 계획과 이를 막으려는 서인, 친청파들의 치열한 암투와 음모를 다룬다.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결국 북벌은 이뤄지지 못했다. 만약 효종이 죽기 전 출병을 명했다면, 조선이 청을 공격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조선이 청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다시 명이 일어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조선 백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이미 그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는 효종의 북벌 시도라는 역사를 통해 3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명분과 현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인지. 생존과 명분. 명나라와 청나라, 이 두 나라가 과연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차이로 다가왔을까. 그들은 그저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명분이라면 누굴 위한 명분이고, 국익은 누굴 위한 국익일까. AIIB이던 THAAD이던,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조선시대의 그들처럼 ‘백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이 땅의 주인들이다. 그들을 고려하지 않은 국익이나 명분 따위는 필요치 않다. 그게 핵심이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활약하는 <북벌>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아울러 소설을 덮고 나서도, 강한 여운과 물음표를 남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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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이야기를 보는 것은, 정답을 알고 문제를 보는 것처럼 재밌다. 역사를 허구로 구성한 팩션이 매력적인 이유는 거기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한치 앞을 모르듯 그 시대의 사람들 역시 눈 앞을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통찰력과 운이 합해져 누구는 시대의 흐름을 탔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도태되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정답이었는지 드러나기까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려야 했을 것이고.
이 책에서는 북벌에 대한 상반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팽팽하게 맞선다. 치욕을 씻고 청을 북벌하자는 훈련대장 이완과 새로 떠오르는 나라인 청의 흐름을 타고 앞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성명욱의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각자의 뜻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이치에 맞기에 어느 한 쪽 편만을 들 수가 없다. 심정적으로는 나라의 치욕을 갚고자 하는 이완대장에게 더 끌리나, 실제 역사의 흐름을 봤을 때 성명욱이 틀렸다고 하기도 어렵다.
긴박했던 역사적 사건과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흥미진진한 소설이지만, 너무 많은 조연이 등장하여 각자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없어 아쉽다. 행동은 있지만, 그에 대한 상세한 심리묘사는 없으므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행간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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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우리나라가 새롭게 치고 올라갈 기회가 3번 있었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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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는 오세영의 북벌! 남과 북의 대치관계에 있지만, 우리 민족의 소망은 통일 이상일 것이다. 북벌정책은 우리의 역사에 수없이 등장한다. 효종 1659년 5월 4일,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책은 북벌을 준비하는 과정과 북벌을 쌓고 벌어진 찬반 세력간에 벌어진 긴장감을 설정하였다. 당대에 북벌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대세는 북벌 반대였다. 북벌 반대 세력은 집권세력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곳은 청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효종은 북벌에 대한 계획을 굽히지 않는다. 효종은 이완 대장으로 하여금 북벌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했다. 북벌에 대한 염원을 가진 이완은 유형원과 윤헌이 함께 대사를 치루고자 했다.
나선정벌로 인해 조선의 북벌 기회를 꾀하고자 했다. 총포를 준비하며 포에 대한 개발과 실험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중에 나선정벌 착출을 받게 된다. 그런중에도 여러번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무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북벌에 대한 기회를 갖고자 함이다.
그런데 효종 당신 많은 집권 세력들은 북벌에 대한 반대를 극대화한다. 심지어 송시열은 흔들림과 기울임에 따른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송시열은 자기만의 정당성을 가지고 행동화했지만 그의 정치적인 흐름을 읽은 것이다. 송시열과 북벌 정책을 꾀하는 인사들과 결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북벌정책을 꾀하면서 거사에 맞춰 준비가 철저히 되어져 갔다. 그러나 그 준비는 드러내놓고 할 수 있음은 아니다. 그래서 긴장감이 더욱 감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 대목에서 긴방감을 갖는다. 송시열은 성명욱이라는 소현세자 측의 북벌반대세력과 손을 잡게 된다.
이후 효종의 북벌 정책은 1659년 5월 4일의 혼란한 밤에 따라 좌절되게 된다. 이날밤에는 북벌반대세력의 급습과 대치하는 북벌정책자들간의 아비귀환은 북벌을 소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역사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효종에게 일어난 일들은 결코 효종의 일신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수 없지만 픽션을 갖는다면 반대세력에 의해 굴복된 사건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북벌에 대한 소망을 잊지 않고 있다. 중국이 우리나라 국토를 잠식해 가는 것과 일본의 독도의 만행을 바라보면서 외세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우며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을 소설화했지만 우리는 북벌에 대한 그들의 정책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