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조금은 생뚱맞은 제목이 눈에 띄어 서점에서 1장을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찾은 착한 책.
첫 장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파킨슨에 걸린 어머니를 오랜 시간 간호해 온 남자가 친척들과 의사들의 권유로 이제는 회생의 가망이 별로 없는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그만 두자는 말에 고민에 빠져서 저자를 찾아온다. 저자인 정신과 의사는 저자의 고민을 간파하고, "연명치료 계속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 어머님의 목숨이 이어지는게 낭비일리 없잖아요.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한 것이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어머니를 돌보아 오신 것은 환자분이니 환자분의 고집이 어머님을 계속 사시게 하는 것이라 해도 아무도 뭐라고 토를 달지 못하죠." 그제야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밝은 얼굴이 된다.
이런 경우 현대 사회는 보통 환자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는 논리로, 혹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경제적 논리로 존엄사 쪽에 더 무게를 두곤 한다. 하지만, 정당할 것 같은 이 '논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오래 보고 싶다는 '감정'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손해보고, 착하기 때문에 사회의 약자로 인식되어 지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에 반기를 들어, "그래,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대학 생활 이전에 직장 생활부터 했었던 나는 어느 겨울 밤 친구들과 장래 무엇이 되고 싶냐는 말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친구들은 대부분 디자이너, 돈 많이 버는 직업 등을 얘기했는데, 난 당시에도, 지금도 생뚱맞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얘기했던게 기억 난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흐르고, 10년 늦게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친구들이 "너랑 참 잘 어울린다" 며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다. 현재 내가 그 때의 마음으로 착하게 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착함의 기준이란 것이 자기에겐 더욱 엄격해야 하는 것이니까.
일등만 칭송하고, 다른 사람을 이겨서 정상에 서야만 인정받는 세상에서, 알면서도 손해 보고, 양보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능력보다는 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은 조금 손해보고, 그래서 무시 당하고 마음 아픈 일이 생길지라도, 내가 그렇게 살기로 마음 먹었으니 착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그러면 됐다고, 그것이 나의 행복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굳이 남들처럼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좋다고,늘 먼저 사과해도 좋다고, 가족에게 희생당해도 좋다고 말한다. 착한 사람들의 특징은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착함을 알고 사랑해 준다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왜곡된 자기애로 인하여 주변에 폐를 끼치게 되어 주변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스로가 자신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 준다' 와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한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다' 중에서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저자는 '고독한 왕비'가 되기보다는 '자기혐오에 빠진 백설공주'로 살아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하지 못해서, 정에 약해서, 손해만 보았던 인생들에게 이 책은, 그런 삶도 괜찮다고, 어떤 삶이 더 행복한 삶인지 '내 마음' 이 시키는대로 하라고 말하고 있다. |
![]() 성공, 처세술이 담긴 이야기들의 요점은 거기서 거기다. '너를 바꿔라' 라는 것.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이 쉽게 바뀌나? 억지로 나를 바꾸고 얻는 성공이 과연 정말 즐거울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것 같다.
그러나.. 오늘 만난 책은 자기계발서다. 독한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남는법. 그럼에도 뭔가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제목부터 그랬다. 성공을 위해 무언가를 바꾸라는게 아니었다. '착하게 살아라' 라고 강요하는 것도 것도 아니고, 그냥 괜찮단다. 괜찮다.. 괜찮다.. 새삼 느껴졌다. 이 말.. 참 따뜻한 느낌이구나.. 라고.
정신과 의사로 현재 릿교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카야마 리카의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는 저자가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가정과 사회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인간형 10가지를 제시하고, 그들에게 심리적인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과감히 '바보가 되어도 좋다. 착하게 살자'는 도발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이다. 모두가 경쟁이나 승진, 승리에만 몰두하는 현대 사회에서 '착하게 살자'고 외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책이다. '착하다'는 말은 더 이상 칭찬의 의미가 아닌지 오래다. 이제 착하다는 것은 '덜떨어진, 빠르지 못한, 일 못하는, 손해만 보는..' 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마음씨가 착한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인 양‘나 같은 사람은 이제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하고 주눅이 든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마음씨가 착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음이 고운, 따뜻한 마음의 배려가 있는, 효성이 지극한, 아주 센스가 있는, 아주 잘 자란'이라고 성명되어 있다. 이처럼 '마음씨가 착하다'는 것은 '효율, 적극성, 긴장, 경쟁, 자기 주장, 강인, 공격, 돈' 등의 반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음씨가 착하다'는 말 그 자체는 나쁜 의미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그 반대적 의미로 쓰이는 말들이 마치 현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처럼 여겨지고 있어, 그것을 피하려하기는커녕 '목표로 삼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씨가 착하다'는 것은 나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현 시대에 걸 맞는, 시대에 부합하는' 정서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마음씨가 착하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씨가 너무 좋은'것은 오히려 곤란해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장점, 그것이 '착한 마음씨'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리라.
Epilogue_ 이젠 당당하게 착하게 살자 이제부터는 되도록 '아주 착하시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이 먼저'라는 정신으로 살아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너무 사람 좋은 분이시네요'라는 말을 비판이 아닌 칭찬의 말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
이 책의 저자인 카야마 리카는 도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릿쿄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풍부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마음의 병'에 대한 조언자로 각종 미디어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가정과 사회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인간형 10가지를 제시하고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씨 착함은 비즈니스 현장이나 수험 전쟁에서는 유약함, 약해 빠짐, 상처받기 쉬움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을 구하고 사회를 온화한 곳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강함이나 격렬함이 아닌 이 연약함, 상처받기 쉬움 쪽이 아닐까. 라고.
얼마전 어느 책에선가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너무'라는 부사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서 지나침을 의미하는 말. 부정을 더 부정해주는 말로 그 뒤에는 부정적인 상황, 올바르지 않거나 옳지 못한의미의 단어나 문장이 이어져야한다. 그런데 '너무 착한 사람'이라. 좀 씁쓸하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착해도 너무 곧아도 안 되는 세상. 지나치게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만약 이렇게 단언한다면.. 나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착한 것도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누구나 이 말에 완전하게 공감할 수는 없을지라도 완전하게 부인할 수도 없을거다. 요즘 세상은 그렇다. 이 책은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고, 그로인해 아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과,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세상을 위해 열 번의 다독거림을 전하는 책이다. 괜찮아.. 괜찮아.. 그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이 땅의 모든 마음 착한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며, 연약하게 살아가는 것,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은근히 가슴을 쫙 펴고 살아갔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라고.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하여! 바보가 되어도 좋다, 착하게 살자! 라는 당연한 말이, 왠지모르게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이상하다. 하지만 그 이상한 기분이.. 따뜻한 기분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의 진심이 한몫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는다ㅠ |
|
‘착한 사람’인 것이 부끄러운 가요?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나요? 그렇다면, ‘착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매력과 감추어졌던 파워에 대해 지금부터 곰곰이 차근차근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참, 이상한 책이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많은 책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부추기고 있는 현실에서 좀 손해보고 살아도 괜찮으니 그냥 착하게 살라고 이야기한다. 착하게 사는 것도 그냥 착하게 사는 게 아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보니 ‘이거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거야?’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당하고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의아할 수밖에…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자고 과감히 제안하는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모벤스, 2011년)는 경쟁사회가 앗아간 것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덜 경쟁적이고, 더 착했고, 이웃 간의 정겨움도 더 많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빴고, 성적이 좀 떨어졌어도 신문을 돌리며 용돈을 벌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책의 머리말에도 잠시 언급되듯이 ‘착한 아이’에 대한 정의부터가 다르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학원을 몇 개를 다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곳에 취직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다.
“‘남들과 경쟁해 탈락하고, 어느 한쪽이 이겼다 졌다. 이득을 봤다 손해를 봤다’며 일희일비하는 어리석은 짓일랑 이제 과감히 그만두면 어떨까요. 진정한 의미에서 배려심을 갖고 ‘너나 나나 같은 처지잖아!’라며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때로는 의지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갑시다. 항상 앞이나 위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짝 고개를 숙이고 온화하게 웃는 얼굴로 세상을 살아갑시다. 그래야만 결국은 누구든 즐겁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착한 아이’란 말의 정의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부모의 말을 잘 따르고 규범에 벗어나는 행동을 일체 하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마음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공부를 하느라 이웃의 불행도 못 본 체 하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공부를 못하더라도 이웃의 불행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착한’의 기준이 바뀌는 사회가 될 때 우리 모두는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 저자인 카야마 리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유부단해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도, 양보를 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도, 상처받아도,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해도, 늘 먼저 사과해도, 가족에게 희생당해도, 이루고 싶은 꿈이 없어도, 정에 휩쓸려도 괜찮은 착한 사회란 얼마나 멋진가. 이렇게 착한 세상에서 우울증 환자들이 늘어나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문제는 그렇게 다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좋은데, 행여 개인의 권리나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착한 마음들을 권장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가족으로부터 당하는 희생을 무조건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령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부인이 한두 번은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으나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한다면 ‘희생당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저자가 이러한 부분까지 용인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한다.
마음을 보다 긍정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 앞서야겠다는 생각들이 나를 더 병들게 한다. 그보다는 착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우리 사회도 점점 착하게 변해가지 않을까. 자연히 ‘착한’ 것의 정의 또한 바뀌지 않을까. 제대로 한번 착한 사람이 되어보자!
**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다 ‘손해만은 보고 싶지 않다’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 한마디 적게 해도 괜찮다 성장하지 않는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다 연약한 것이나 상처받기 쉬운 것은 ‘착함’, ‘온화함’과도 직결된다
by 꽃다지, 2011.07.09 |
|
언젠가 비슷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았다. 뭐였을까. 한국인 죽기전에 꼭 해야할 17가지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심리와 마음가짐의 변화, 깨달음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었으니 다소 거리가 있고... 아, 맞다. 사이쇼 히로시라는 의학자가 쓴 굿바이 우울증과도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정신과 의사분들이 쓴 책들이랑 오히려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
|
“어플루엔자 가치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들은 사유재산제가 도입된 기원전 1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1970년대 이래 그런 가치들이 사방에 널리 실재하며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권 국가 대다수 사람들이 이제 자신의 삶을 소득, 소유, 외모, 명성 등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근원적인 욕구를 만족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10년전 25세의 미국인이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1998년 당시 1950년보다 세배에서 열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관점으로 보면 오늘날 평범한 미국 어린이가 느끼는 불안은 병적인 수준이다. 그 이후 많은 미국 작가들 그리고 영국 작가들이 나를 따라 그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관심을 갖는 것이 행복이긴 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현상들, 이를테면 우리가 정서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거나 절망, 좌절, 분노 등이 우리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법,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다. 나는 행복이란 즐거움과 유사한 것으로 공상적이며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옛 격언에 동의한다. 행복을 입증하는 증표로 고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행복을 들먹이는 거짓 약속 대신 우리가 왜 그렇게 혼란에 빠져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내가 '이기적 자본주의'라 부르는 불쾌한 정치경제학이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이 바이러스는 1970년대 이후 정서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선진국에서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의 비율은 소득 불균형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이기적인 자본주의는 선진국에서 불평등의 주원인이다." (올리버 제임스)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책들의 주제를 보자. 성공을 말하고 부자를 말하며 행복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성공하고 돈을 얻으면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행복할까? 직장에서 정상에 오르고 거대한 부를 이루는 사람들은 특정한 유형이 있다. 그러나 그 유형은 절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책들은 현실의 반짝이는 면만 보여주고 정작 그들이 그렇게 된 진짜 원인은 말하지 않는다.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문화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친철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상당히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과 충돌한다. 여성들이 이 두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니얼 네틀) 지위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앤디 그로브 식으로 말하면) '미친' 놈이다. 'Only the paranoids suvive' 어느 분야든 정상에 남는 자는 그 목표에 미쳐야 한다. 그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한 사람만 정상에 오른다. 맑스의 신조처럼 “남이 뭐라 건 네 갈길을 가라.” 그런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착함'과는 거리가 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억만장자들의 기본적인 특징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부의 추구를 즐긴다는 것이다. 상을 받는 것보다 이겼다는 만족감 그 자체가 그들을 보통의 슈퍼리치의 대열로 이끈 원동력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사는 모습이 소박하다. 샘 월튼과 워렌 버핏은 자신들의 막대한 재력으로 사치스러운 토지를 사들이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로스 페로와 필 얀슈츠는 그리 비싸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만족했으며 해마다 최신 모델을 찾지도 않는다. 다른 슈퍼리치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물질적 욕망을 쫓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햇다." (마틴 프리드슨)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부와 지위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그 혜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적다. 돈을 쓰기 위해 버는 것이 아니라 돈 그 자체를 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 부와 지위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각오를 해야 한다. "(포츈 500 리스트에 오른 거부) 웨인 휘젠거는 하루에 20시간을 그의 독창적인 사업인 쓰레기 수거사업에 투자한 사람이다.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야구를 하며 노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딸아이가 연극하는 것을 봤을 뿐이다. 함께할 수 있는 추억읃 나는 모두 놓쳐버렸다. 거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좋지만은 않다. 만약 누군가 나처럼 모든 것을 팽개치고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조금 남겨두라고 충고하고 싶다.' 사실 대부분의 억만장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일에만 쏟아 붓고 그 가족들은 그것을 견뎌내고 있다.' (마틴 프리드슨) 그런 삶을 원하는가?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오랫동안 환자들을 보아온 저자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불안해하며 자신을 괴롭혀야 하는지 의아해 한다. “5살 난 여자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하루에도 몇번씩 딸에게 ‘착한 해가 돼야지! 이게 뭐니!’라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고 하소연이다. ‘말씀하신 그런 ‘착한 아이’란 어떤 아이죠?’ 대학원을 나와 대기업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는 그 이지적인 엄마에게 물었다. ‘착한 아이요? 착한 아이가 뭐냐고 하심… 요즘 같은 시대엔 척척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 라이벌에게 지지 않는 아이겠죠, 물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무래도 그 집 딸아이는 소극적이고 조용한 것같았다. 예를 들면 영재교실에서 단체 체조 시간이 시작되면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다 보니 꼭 맨 뒷줄에 서버린다. 또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자면 ‘앵순이 밥 줘야 하는데…’라면서 애완용 잉꼬를 돌보려고 한다. ‘못된 아이에요, 제 딸은…’ ‘음…. 오히려 아주 착한 아이 같은 같은’ 그러자 그녀는 놀란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말햇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 남편도 성격이 워낙 소극적이라 모처럼 좋은 회사로 옮겨도 좀처럼 출세를 못해요. 딸아이가 남편의 나쁜 점만 닮았다고 남편한테 화를 낸 적도 여러 번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 남편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남에게 양보하고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될 수 없는 세상는 어떤 곳일까? 저자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마음씨 곱고 배려심 깊고 경쟁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서투른” 그런 사람은 착해빠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이런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 세상이 이상화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자. 남의 사정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은 쓸모없고 단칼에 무 자르듯 ‘결단력’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러나 “망설이는 사람, 결정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생각의 깊이가 풍부하다. 자기주장이 없고 남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줏대없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그러나 자기주장이란 “감정을 억제한 객관적, 이론적 말하기가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기술을 몸에 익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기주장이란 “무턱대고 비판적이 되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오로지 자기주장만 하는 격이 되어버린다.” 적극적이니 자기주장이니 하지만 과연 그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말하”는 사람만 제대로 된 사람인가? 세상은 그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해야 한다. 그러나 성공만 말하고 부자만 말하고 출세만 말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오직 한 유형만 말한다. 그러나 ‘이기적 자본주의’에 맞는 사람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병원에 오자마자 무조건 ‘어쨌든 빨리 해줘요!’라고 요구하던 여성 환자가 있었다. 요즘은 별 요구없이 자신의 순번대로 기다려 진료를 받는 그녀를 보고 “예전에는 왜 그렇게 서두르셨습니까?’라 물었다. 그러자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그녀는 이렇게 말햇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초조해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저희 회사는 개인의 실적에 따라 업무고과가 매겨지는 곳이라 직원 모두 밥 먹을 새도 없이 시간에 쫓겨 가며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올리려 열심입니다. 그런 상황에 내몰리다보니 저도 우울증에 걸린 거겠지만요. 병원에 와서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으면 지금쯤 회사에서는 모두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텐데란 생각이 들면서 초조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갑자기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이 순ㄱ5ㅏㄴ에 나만 혼자 도태되는 건 아닌가 불안해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되곤 했죠…’ 결국 그녀는 우울증이 회복되어 감에 따라 ‘나 먼저’에서 ‘먼저 하시죠’로 바뀌어갔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직장에서 ‘나 먼저’ 타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눈감으면 코 베어갈 듯한 일상 가운데에서 어쨌든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 주변 사람들보다 먼저 나아가지 못하면 패배다’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밀어내기 경쟁, 앞질러 따돌리기 경쟁’이 마음에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울증이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먼저 가시죠’라고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염려가 가능한 ‘먼저 가세요’ 주의의 사람들은 어린애 같은 자기애를 졸업하고 성숙한 인격을 획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별력 있는 사람’ ‘마음씨가 착한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전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눈에 띄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어린애 같은 자기애적 가치관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절반쯤은 병적인 자기애적 인간이 위세 등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나 먼저’라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사실은 미숙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 자신 없음이 가득하면 할수록 더욱 ‘내가 말한 것은 옳아’ ‘모두가 내 의견을 따르는게 당연해’하며 계속 허세를 부린다. 자기애적 인간에게는 큰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요구에 긑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좀 더 이기고 싶다. 좀 더 눈에 띄고 싶다는 욕구에는 이걸로 만족이라는 종결점이 없다. 무언가 이루었어도 다음엔 이거라고 다음 욕망이 치밀어 오른다. 물론 언젠가는 바란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한계 중의 한계가 찾아오지만 그때 그들은 커다란 실망, 좌절, 분노를 한꺼번에 느끼게 되어 허탈감이나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 자본주의의 인간형은 저자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미숙함 이상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무시당하고 이용당할 뿐이라며 착한 아이를 못된 아이로 보도록 엄마를 몰아세우는 세상. 뭔가 잘못 돌아가는 세상이라 저자는 본다. 배려, 용서, 관용 등 오랜 역사에서 인격의 성숙으로 보아온 가치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얼마나 갈까? 성공과 출세라는 가치 하나로 온 세상을 재며 그 당근을 내세워 결과만, 효율만, 성과만 외치는 세상에서 사람은 쉽게 지쳐버린다. 그 세상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을 줄이고 합리화, 삭감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면 인간의 마음에는 반드시 무리가 생긴다. 본래 가장 오래 무리없이 일하는 것은 오히려 언뜻 봐 효율이 나쁘거나 쓸데없는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며 생활하는 사람 쪽이 아닐까. 또 이런 사람은 본인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누그러들게 하는 힘도 갖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그 비즈니스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지금까지 사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동기들 가운데서도 확실히 가장 일을 잘 해냈습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몇배나 일을 해치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아무리 많은 일을 처리했다 해도 2년이나 직장을 쉬어버려서는 뭘 위해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분명 지금 다시 복직한다 해도 저보다 무능한 사원을 없을 테니 곧 해고 대상이 되겠지요.”
|
|
어린 시절, 학교에서 시험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와 행여나 엄마에게 들킬까 가방 깊숙한 곳에 시험지 뭉치를 꾸깃꾸깃 짱박아 놓아두면 어떻게 아셨는지 엄마의 레이더망에 기어이 걸려 혼이 나게 된다. 그러고 있다 보면 얼마 후에 아빠가 슬그머니 다가오셔서는 엄마에게 그만하라는 시늉을 하며 나의 시험지 뭉치를 접어 다시 가방에 넣어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부 좀 모하면 어떠노? 착하게만 크면 된다. 착한기 최고다. 인간이란 자고로 인성이 돼야 하는거 아이가? 우리 아는 착하니까 고마 개안타.” 그럴 때 마다, 그래 나는 착하니까 정말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남몰래 흐뭇해 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스무살이 넘어가고 더 이상 시험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어지고 나서부터 나만의 착각이고, 그저 나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한 아빠의 새하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책을 읽으면서 그런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고, 평소보다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사실 사전적으로 착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마냥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더 이상 착하다는 말이 좋은 말이나 칭찬의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착하다는 것은 바보같다 혹은 미련해서 눈치없다라는 말을 돌려 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나름의 이중어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연 정말 착하다는 것이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이러한 의문을 던지며, 동시에 해답을 취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병든 사회, 점차 기형의 사회와 문화가 팽배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맥락이 다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동영상이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보면 막말녀, 민폐녀, 무개념녀 등 예의범절이라고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거의 당연시 되어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착하니까 괜찮은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은 결국 손해보고, 당한다는 말에 암묵적인 동의를 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의 작가는 일본인 정신과 의사이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을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하는가를 일반인인 우리들 보다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다양한 소 제목을 가지고 우리를 살살 달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괜찮으니까 한 번 해보자. 그래도 가능성을 믿어보자. 긍정적으로 살자. 착한 것이 아무리 바보 같고 요즘 같은 세상에 손해 보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아직은 착한 것이 좋고, 착하니까 괜찮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만 불행한 것 같고, 나에게만 자꾸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고 우울하다고 말이다. 그럴 때 이런 말을 던져주었다. 사람이란 원래 좋고 행복했던 일들보다는 기분 나쁘고 속상했던 일을 뇌가 더 오래 기억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일, 기뻤던 일 등의 긍정적인 일을 생각하도록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비슷한 내용이 이 책에도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무언가 역설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았을 때 많은 생각을 낳게 해주는 진리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
|
『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일본 정신과 의사 '카야마 리카'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여러개의 주제로 되어있는데 결론은 한가지인 것같더라고요. 요즘 세상은 착하게 살면 바보처럼 보일 수 있을만큼 경쟁사회이지만 그래도 '착한 끝은 있다'. 라는 옛말이 맞다라는 쪽으로요.
5살 난 외동딸을 둔 엄마가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영어 유치원, 영재 교실에 보냅니다. 그리고 딸이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 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는 늘 뒷줄에 섭니다. 또 공부보다는 애완동물 밥 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엄마는 자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딸이 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의식만을 번뜩이며 살아가는 사회는 처음에는 찬란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10년, 20년 지나는 사이에 점점 피폐해져 병이 들어갑니다. ' 남들과 경쟁해 탈락하고 어느 한쪽이 이겼다, 졌다, 이득을 봤다 손해를 봤다'며 일희일비하는 어리석은 짓일랑 이제 과감히 그만두면 어떨까요? 진정한 의미에서 각자 배려심을 갖고 '너나 나나 같은 처지잖아!'라며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때로는 의지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갑시다.」페이지 16
아이들에게 "남에게 뒤져서는 살아 남을 수 없어."라고 일등을 외치는 엄마들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때문에 이혼을 당하고 혼자 직장에 다니며 어머니를 돌보는 50대 남자 이야기입니다. 출근할 때 어머니가 계신 방문을 잠그고 나가면서 가슴이 아파 수없이 울곤 하는 착한 남자는 더 이상 혼자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어 노인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킵니다. 그리고는 큰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불안해 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러는 중에 어머니가 폐렴 합병증으로 생명이 위독해집니다. 연명치료를 받게 할지 존엄사를 하게 할지 결정을 하라는 병원측 요구에 이 남자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연명치료가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냥 돌아가시게 하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정신과 의사가 " 어머니의 목숨이 이어지는 게 낭비일리는 없잖아요? "라고 연명치료쪽으로 결정하게끔 조언을 해 줍니다. 자신이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기가 죽어있던 남자는 휴 한숨을 쉬면서 "이제사 제 마음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존엄사 시키고 싶지 않은 거에요." 라고
「이쪽으로 흔들렸다, 저쪽으로 흔들렸다 하는 마음의 흔들림은 인격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성숙한 인격의 태도' 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남자가 미성숙한 아이같은 이 남자가 어머니와 더 함께 하고 싶은 바람에 거짓은 없습니다. 이런 망설임, 주저함은 그의 착한 마음씨,배려에서 생겨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잘 생각해 본다면 가장 소중한 가족과의 이별을 맞이해 '이게 최선이야' 라고 결정을 내린다는 일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페이지 28, 29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리 성격이 강한 사람이라도 자기 어머니의 생사를 두고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이럴 때는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또한 우유부단함을 좋지 않게만 볼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소개합니다. |
|
망설이는 사람, 결정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생각의 깊이가 깊고 풍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죽는 걸 봐야 한다는 게 싫어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에게 의사가 직업이 되면 환자의 죽음은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일 텐데, 그게 싫어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건 너무 나약한 생각이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이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정말 의사라면 환자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더더욱 안 되는 게 아니냐구요, 이런 진료실의 경험에서 올포트 등 미국의 인격심리학자나 뇌 과학자가 정의하는 소위 '성숙'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불가한 인간의 훌륭함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감추면 꽃이 되지만, 감추지 않으면 꽃이 되지 못할지니....' 모든 것을 보여주거나 말하면 안 된다. 표현하는 것은 정말 조금만 하고 나머지는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해서 각자의 깊은 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전해지는 글이다. '내가 최고', '나 먼저'라는 자기애적 인간에 대해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하면 될까? 그런 사람돠 마주치면 울다 지쳐 잠들지 말고 그 사람들만 이득을 보지 않도록 이쪽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면 될까요? 그렇게 하면 모두가 제멋대로 행동해 이 사회가 금방 엉망진창이 돼 버릴 것입니다. 누구도 'After You'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내가!'라고 소리치며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려고만해 결국 큰 혼란만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 문이 닫혀 아무도 내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상당한 사람드로 신음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표면적인 뻔뻔함, 넉살 좋음에 대해 스스로 먼저 가능하면 거리를 두도록 마음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 같은 경기장에서 경쟁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극단적인 자기 혐오에 빠진 사람은 어찌하면 좋을까요?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찌하는 게 좋은 걸까? 거기에는 역시 '적당 적당의 정신'을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자신이 엇다'고 생각하는 빈도수를 줄이는 겁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구체적이지 않은 일ㄹ로 자신이 없다고 하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골프 실력에 아직 자신이 없다. 아무리해도 펜글씨에 자신이 없어서... 자신감을 되찾아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을 수단으로 조건좋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애써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도, 거꾸로 주변에서 거북해 하며, 업무는 잘 될지 몰라도 개인 생활에서는 친구를 잃고 고독에 빠져버리는 경우는 많습니다. 한편 자기가 너무도 좋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은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 준다'와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한다해도 주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다. |
|
착하게 살아도괜찮아 라는 말........ 우리 사회에서 정말 통할까 책을 읽으면서도 반신반의하였다. 누구나 착하게 살고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런 착한마음을 악용하기에 자꾸만 나도 모르게 착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가 손해를 보는 것같이 느껴지고, 바보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선천적으로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 많긴하다. 하지만, 이런 착한 심성도 사회가 악한 심성으로 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것이 나을까 하는 생각만 갖게된다. 작가의 말대로 1. 우유부단해도 괜찮아 2. 하고싶은말을 하지 못해도 괜찮아 3. 먼저하세요라고 양보해도 괜찮아 4.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도 괜찮아 5. 상처받아도 괜찮아 6.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해도 괜찮아 7. 늘 먼저 사과해도 괜찮아 8. 가족에게 희생당해도 괜찮아 9. 이루고 싶은 꿈이 없어도 괜찮아 10. 정에 휩쓸려도 괜찮아 열가지의 마음가짐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이 참아야하는 것도 많다. 저자의 의도도 알겠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조금 힘들수도있지.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정말 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일정도로 사회가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먼저든다. 이 책을 읽고서 나도 조금은 노력해보려고 하고있지만, 조금은 어려운듯^^ 자꾸만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도 되기에 |
|
'착하게 살자'고 말하는 시대착오적인 책?!
‘착한 아이’란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요즘 같은 시대엔 척척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 라이벌에게 지지 않는 아이, 좋은 대학에도 가고 대기업에 취직도 잘 되는 그런 아이들이란다. 맞아 맞아 학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자녀들이 착한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순간 내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이런 공부 잘한다고 다 착한 것은 아니라는데. 아이들 사이에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이기주의라고 한다는데. 그렇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착하게 살아도 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제목처럼 착하게 산다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닌지. 왠지 손해 볼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음씨 곱고, 배려심 깊고, 경쟁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서투른 그런 아이들은 왠지 싫습니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자기 것을 챙길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살짝 고래를 숙이고 온화하게 웃는 얼굴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준다’와 ‘스로가 자신을 사랑한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쪽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고민이 됩니다. 자기애가 지나친 사람, 자신감 우월감에 가득 찬 사람, 틀렸어도 정정이 불가능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그냥 상냥한 사람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을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더 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하는 사람중에 한명이다. 머리를 자주 숙이는 사람은 그만큼 실수를 많이 하였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사람들에게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90도로 사죄를 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먼저 사죄하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나한테 ‘굽히는 용기’는 절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지만 난 그래도 머리 숙일거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곧 사랑!’ 인정한다. 가족에게 희생당해도 괜찮아란 대목에선 그럴수있지 안그래도 아이들 때문에 산다는 말도 있는데. 가족에겐 누구나 상냥하고 마음씨 착한 사람이 되고 희생당해도 안타깝지 않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누구나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마음씨 착하게 기분좋게 우리앞에 펼쳐진 인생을 즐겨보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