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피둥피둥 개기름이 도는 것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모두 보복적 정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다시 말해서 정의와 사적인 가혹한 보복을 연계시키는 줄거리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 보이><친절한 금자씨>에서 재연된 여러 보복적 정의의 스토리는 기원전 바빌로니아 법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그 역사가 유구하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존스턴은 역사 속에 등장한 정의관들을 크게 공리주의적 정의관과 의무론적 정의관으로 구분하고, 기존의 이론이 소홀시한 제3의 정의론을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이름하여 '상호성으로서의 정의론'이 바로 그것이다. 시대순으로 말한다면 고대의 정의론이 상호성의 정의론과 목적론적 정의론으로 구분된다면, 18세기 근현대의 정의론은 공리주의와 의무론으로 구분된다. 마이클 샌델의 용법에 따른다면, 공리주의적 정의관은 '행복형 정의론'으로, 의무론적 정의관은 '자유형 정의론'으로, 목적론적 정의관은 '미덕형 정의론'으로 번역가능하다. 샌델이 가장 소홀시한 정의론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상호성에 기반한 정의론이다.
고대의 정의관은 크게 플라톤을 기점으로 삼아 플라톤 이전의 상호성의 정의론과 플라톤 이후의 목적론적 정의론으로 구분된다. 저자는 함무라비 법전이나 구약성서, <일리야드> 등 다양한 고대문헌들을 인용해가며 고대의 지배적인 정의관이 바로 상호성으로서의 정의론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상호성의 정의관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며 이에 따라 균형 상호성(상대적으로 대등한 관계), 불균형 상호성(동등하지 않은 관계), 비례 상호성 등으로 세분된다. 그런데 이런 상호성을 바탕으로 한 정의관은 플라톤의 등장으로 대두된 목적론적 정의관에 대립하게 된다. 플라톤의 정의론은 일차적으로 질서정연한 영혼의 배양과 관계가 있고, 부차적으로 그런 영혼의 배양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의 건설과 유지와 관계가 있다. 재미난 점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다. 저자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표면적으로는 목적론적 사상가의 면모를 지녔지만 실상은 상호성 이론을 옹호한 사상가로 재조명된다. 따라서 샌델이 말한 미덕형 정의론이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된다면 저자에게는 플라톤으로 대표되고,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과는 다소 동떨어진 위치를 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은 거래상의 정의와 분배적 정의의 경우 비례적 상호성의 개념에, 자발적 거래와 비자발적 거래에 적용되는 교정적 정의의 경우 균형 상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141쪽)
저자가 강조하는 고전적인 상호성의 정의론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 정의론의 근현대사로 시선을 돌려보자. 먼저 공리주의다. 공리주의 이론의 핵심은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이다. 이를 '최대 행복의 원칙'이라고 부르고 샌델은 행복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행복형 정의론'으로 명명한 바 있다.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체사레 베카리아가 대표적인 공리주의자들인데 저자는 이들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반면에 칸트학파의 의무론적 정의론은 이 세상에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옳은 것이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정의가 다름아닌 그 어떤 이유로도 팽개칠 수 없는 의무의 문제라고 확신한다. 정치적 자유와 동기를 중시한 칸트의 이론은 현대에 이르러 존 롤스의 의무론적 자유주의로 계승된다. 다들 잘 알다시피 롤스가 강조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론의 정수는 바로 '차등의 원칙'이다. 차등의 원칙이란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에게 이로운 쪽으로 작용하는 한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저자가 칸트에 이어 설명하고 있는 정의론은 19세기 사회정의의 두 가지 흐름이다. 하나는 허버트 스펜서와 생시몽이 주장하는 '공과의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필요의 원칙'이다. 공과의 원칙은 일명 '기여의 원칙'이라고도 불리는데. "준만큼 받는다"는 구호로 요약할 수 있고 이는 균형 상호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의론에 속한다. 반면에 필요의 원칙이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구호로 요약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를 목적론적 정의론에 귀속시킨다. |
|
인문교양 [정의의 역사] 데이비드 존스턴, 부글북스, 2011 · 마이클 샌델의 [정의] 만이 정답은 아니다. · 마이클 샌델의 책과 강연 덕분에, 이 책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판되었다. 샌델의 수고가 아니었다면 대학전공서적 같은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교양서로 읽기는 어렵다. 이 책은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존 롤스 마지막 저서 [국민들의 법]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발명한 철학(哲學)보다 더 오래된 정의의 역사를 축약해서 이야기하기에 당연히 어려워야 한다. · 마이클 샌델에 관한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염두에 두고 쓴 것은 확실하다. [하버드 강의]나 [정의란 무엇인가]는 샌델이 추구하는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존 롤스의 정의관이 국민으로 구성된 국가에 국한해서 정의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정의의 문제는 글로벌 정의와 불공평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일반적 정의의 개념과 큰 개념으로 사회정의를 구분 재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개인이나 사회에 국한해서 정의의 문제를 생각하기도 어려운데, 저자의 말처럼 글로벌 정의 문제로 범위를 넓혀서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 생각의 출발은 간단하다. 현시점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의의 개념은 애덤 스미스의 [자본론]의 바탕 위에 서 있다. 애덤 스미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그들의 인간애가 아니라 자기애의 덕을 보고 있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풀이하자면, 개인적으로 남을 돕는 행위는 인간을 사랑하는 순수한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만족과 이익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로 시각을 넓혀보면, 전문직 숫자를 제안하는 것이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기업구조가 정의로운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싸다 이유로 수입하는 것과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른 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정의의 문제를 이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할 수는 없다. 많은 철학자가 수학적 개념을 도입해서 결론을 도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언어의 사용이고 언어를 통해서 정의가 형성되었다. 마이클 샌델의 저서에 열광하기 보다, 칸트의 저서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더 근원적인 것을 알고 싶다면 키케로의 [의무론]을 추천한다. · 2. 데이비드 존스턴 · 1981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현재 컬럼비아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의이론과 정치 사상사를 연구했으며, 현재는 정의와 ‘상호성’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Idea of a Liberal Theory], [The Rhetoric of Leviathan] 등이 있다. · 끝
|
|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세계화 등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끼어들어서 이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사회적 분열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이슈들은,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정의(正義, justice)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작년 한 해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인문서로서는 드물게 스테디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이 잘 쓰여진 탓도 있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을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각종 매스미디어에서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면서 분석하기도 하였다. 우리 국민들이 정의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속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전적으로 정의한다면 정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정의(定議)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딱 부러지게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정의에 대해서 구체적인 성찰이 있었던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서구 사상사의 발전과 같이 한 것이어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추세에 맞추어 정의에 관한 책들이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여태까지 정의에 관해서는 다소 추상적이고 감정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었지만,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은 정의에 관한 이론적인 접근과 함께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곁들여서 일반인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정의에 관한 많은 접근 중에서 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정의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정의의 의미를 이해하고,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책은 총8개의 챕터로 이루어져있다. 준 만큼 받는다는 동해보복(同害報復, 탈리오 법칙), 상호성의 원칙에 뿌리를 둔 함무라비 법전으로부터 상호성을 배격하고 정의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주장을 편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 사회정의를 주창하는 근대의 홉스, 칸트, 그리고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정의를 바라보는 현대의 존 롤스 등으로 이어지는 정의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정의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의의 역사를 한 눈에 일독할 수 있도록 쓰여져있다. 정의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이 아닌가 한다. 정의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정의에 대한 하나의 생각을 가지기 보다는 좀더 풍부한 시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통해 정의를 좀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
|
정의의 역사 데이비드 존스턴 지음 절영진 옮김 부글 刊
|
|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부터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생겨 읽게 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약간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 번 정도 읽어야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본다면, 이 책은 세 번 정도는 읽어야 그와 비슷한 정도의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세 가지 이론을 주로 다루면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다루면서 논리적인 설명의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대중서로 쓰여진 책이라기 보다는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개론서와 같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건조하고 딱딱하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학자들이 주장해 온 중요한 이론들의 역사를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과 히브리인들의 경전에 나타난 정의관에서부터 시작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흄, 스미스, 벤담, 칸트, 생시몽, 봐베프, 피히테, 마르크스, 존 롤스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 중에 몇 몇은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또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해도 그가 어떤 '정의관'을 주장했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학자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들의 중요한 주장들에 대해 배우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정의관의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중요한 학자들의 주장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흐름에 있어서 저자가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들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류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정의관의 범주를 공리주의적 정의관, 목적론적 정의관, 상호주의적 정의관, 이렇게 셋으로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이클 샌델이 정의관의 종류를 '행복, 자유, 미덕'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한 것과 거의 유사한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기준이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기준보다 더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저자가 말하는 목적론적 정의관에는 '자유'를 정의의 목적으로 보았던 칸트의 견해 뿐만 아니라, '질서'를 정의의 목적으로 보았던 플라톤의 견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정의관의 흐름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저작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의관'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상당한 만족감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아쉽게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관점을 좀 더 깊이있게 소개해 주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상호주의적 정의관'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왜 그러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 장 정도를 할애해서 자신의 견해를 소개해 주었다면 많은 유익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각각의 학자들의 주장이 자신의 분류 기준에 따라 어떤 부류의 정의관에 속하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었다면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수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의관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이론들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써, 마이클 샌델의 저작을 통해 지적인 만족감을 누렸던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천합니다. |
|
하버드 교수가 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작년 한 해, 그리고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열기를 띠고 있는 '정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자신의 살 길을 우선시한다고는 하지만 이상적인 세상, 사회에 대한 염원 같은 것은 본능처럼 누구나 한 번 쯤 품어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태초부터 부여받은 본능인지 필요에 의해 대대로 학습되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올바름'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올바름,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그 시대의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정의되어 왔다는 것이다. 잉영생산물의 발생과 축적이 가능해지고, 지배-피지배 계급이 생겨나면서 초기의 정의는 온전히 지배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 정의 등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면서 상대적인 정의관, 절대적, 목적론적 정의관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의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역사를 돌아봤을 때나 문화가 상이한 곳의 사례를 봤을 때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기준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정의의 역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의라는 가치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의 역사다.
오늘날의 정의의 문제는 주로 경제적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왕이 지배하는 사회든, 민주정치가 발달된 사회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고 다툼이 적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배계급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타락하면 어느 사회나 혼란과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도 거대자본의 장난으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불균형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어 거대한 규모의 집단 지도 체제를 구축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조직이나 시간이 지나면 중심 인물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기존의 망하는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니까. 사실 이런저런 복잡한 얘기는 사실 다 곁가지에 불과하다. 정의, 평등 운운하는 것은 누군가는 더 잘 사는 것 같고 나는 그에 비해 못하다는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정의의 문제는 존재의 영역과 소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인간성을 지키는 동시에 돈 문제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중적인 가치구조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
|
정의에 대한 논의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최근 정의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 같다. 나 역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강의를 보다가 책까지 구입해서 열의를 갖고 읽어보았는데,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지 않은 정의의 흐름을 한 눈에 알기 쉽게 정리해 준 책이라 나름 또 색다른 맛이 있는 것 같다. 정의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 만큼이나 깊고 철학과 밀접하게 맛물려 있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공리주의와 의무론이 바로 정의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큰 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간과해왔었던 것 같다. 공리주의와 의무론의 틀로 정의의 흐름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이미 많이 알고 있었던 내용들이여서 비교적 쉽게 흥미를 느끼며 정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철학자들의 사상 속에서 정의가 어떻게 정의되어 왔고 변천되어왔는지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어 좋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정의는 똑같이 대해줘야 한다는 보복성이나 상호성으로서의 성격으로서 출발해서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논의 중인 것 같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시대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의 모습도 변화되어 왔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는 주제인 것 같다. 최근 정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물론 매스컴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사람들이 정의 사회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많은 정의에 대한 책 중에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이 책 앞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쏠릴 듯 하다. 정의가 무엇인가보다 정의란 오늘날까지 어떻게 논의되어 왔는지, 또 과거의 철학자들은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선택해도 손색없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평상시 철학 책을 종종 찾아 읽는 나에게는 여기 나와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 중에서 특히 그동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정의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이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시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였던 것 같아서 의미가 있다. 롤즈의 정의론만이 아닌 마이클 샌델 교수도 이야기한 바 있는 공동체주의에서의 정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책을 찾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든다. |
|
한 시대를 풍미한 재력가들의 뒷담을 읽게 되면 무척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기록해 놓은 화려한 자서전의 내용과는 달리 극히 비정상적이거나 비원칙적으로 재산을 축적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당대뿐만이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기회의 균등이란 공정성을 빼앗아 버렸다. 태어나기도 전에 황태자가 된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은 과거와 같이 모순된 평등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부의 세습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쌓아놓은 부가 정당하게 이루어졌고 투명하게 세습되었는지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을 거쳐야 할 것이다. 철학보다 오래되었다는 정의관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정의는 단순한 결론과는 달리 무척 복잡한 과정이 포함되어있다. 근대사회 이후 정의관은 인간은 가치 면에서 동등하다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정의’로 압축되고 있다. 사회정의는 인간들이 계획에 맞춰 사회적 체계를 다시 다듬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 산물에 대한 기준, 필요의 원칙, 공정성이 사회정의의 중요한 개념들이다. 특히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공정성에 관한 논란이다. 공정성이 논란에 된 배경은 그만큼 사회의 구조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반증하지 않는가? 정의의 역사는 B. C 3000경 함무라비 법전으로까지 올라간다. 당시의 정의관은 무자비할 정도로 잔혹했다.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방식이 통용되던 시대였고 사실적으로 정의는 개인의 재산권과 신체를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헌데 눈여겨 볼 부분이 정의관이 결코 평등한 것은 아니었다는 부분이다. 고대인들은 신분에 따라 정의(처벌)의 원칙을 달리했다. 신분이나 직급에 차별을 둔 정의관은 히브리어 경전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일리아드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경전 역시 계급조직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보복을 강조하는 것을 정의라 말한다. ‘정의의 역사’는 함무라비 법전으로부터 사회정의까지 위대한 철학자들의 정의론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정의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고대의 정의 지형도, 플라톤의 목적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그리고 사회전체의 행복에 눈을 뜨게 된 공리주의, 칸트의 정의론을 거쳐 사회정의 이론과 공정으로서의 정의이론까지 사회의 구성이나 구조에 따라 어떻게 정의관이 변화되어왔는지를 설명한다. 정의관은 당대의 사회계약이다 보니 정의관의 역사는 당대의 역사와도 일맥 한다. 필자가 말한 정의 지형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회정의를 앞세운 근대적 정의관과 고대 보복적인 정의관, 즉 상호성에 대한 이견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는 곳이 현대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근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한다는 인간의 욕망위에 상호성은 마치 잠재되어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또한 자신이 이룩한 부나 권력을 마치 혼자의 힘으로 이룩해 놓았다는 착각은 정의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남겨둔다. 현재 대세는 공리주의다. 많은 해석들이 뒤따르지만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개개의 부의 축적보다 강조되는 사회다. 공정사회, 불평등 타파, 기회 균등이란 단어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기관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것은 공리주의를 배제하고서 현대사회의 정의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개인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어려운 명제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정의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린 왜 그동안 정의에 대해 그토록 무지해왔느냐는 점이다. 오직 성장위주의 사회구조에서 사회정의는 실현되기 어려운 주제였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정의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고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정의인가? 참 깊은 동굴을 헤매는 것 같다. 정의의 역사를 통해 깊은 통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
|
정의란 사전적 의미로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말한다고 쓰여 있다. 그것은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이기도 하고,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공정한 도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티비나 영화 속에서 우리들은 곧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영웅들을 만난다. 슈퍼맨이 그러했고, 배트맨이 그러했으며,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이웃에게서도 영웅의 모습을 보고는 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나에게서 정의란 이런 모습들에서 떠올랐었다. 하지만 이것은 막연한 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에서, 철학 속에서, 학문 속에서 정의란 무엇인지 그들은 정의를 무엇이라 말했는지 정의관에 대해서 알고싶다는 마음에 [정의의 역사]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책은 역사 기록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정의관은 상호성이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었었고, 플라톤 이후로는 목적지향적인 새로운 정의관이 생겨났으며, 사고혁신과 함께 사회정의라는 근대적 개념이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해서, 저자는 사상가들을 통해 그들이 내세운 정의관을 들려줌으로 정의의 역사에 대한 지도책을 펼쳐 주는 것이다.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했을 때부터의 정의관, 그 정의관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여 왔는지를...
고대의 정의관에서는 두 가지의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보복을 강조한다는 것과 권력과 신분과 부의 엄격한 서열을 정치 및 사회 질서의 정당한 구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일리아드나, 히브리어 경전 등을 통해서 그 상호성의 원칙을 추구하는 정의관들을 살펴주고 있다. 이어서 플라톤의 저서인 [공화국]을 통해 목적지향적인 새로운 정의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플라톤은 상호성이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사회의 지형도 정의의 개념을 기준으로 한 비판과 조사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은 개인들의 몫을 공정하게 다룰 정의에 관한 사상들은 자유로운 신분이면서 서로 동등한 남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다룬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정의의 두 형태는 상호성 개념의 변형에 바탕을 두는 분배적 형태와 교정적 형태가 있다. 그는 정의가 구현되는 곳이 특별한 형태의 정치 공동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을 인간의 법과 제도의 산물이라고 말하던 홉스 이후 초기 공리주의자들의 정의관, 칸트의 정의론, 19세기에 들어서 공과의 원칙과 필요의 원칙 그리고 20세기 롤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말한다. 시대별 정의관의 변화를 플라톤이나 칸트 등의 사상가들의 정의론을 통해 그 정의의 역사를 만날 수 있어 다소의 지루함을 흥미로움으로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