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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사울은 스데반집사님의 순교자리에서 그의 최후를 보며 정의를 행했음에 아주 만족했을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리새파로서 거룩의 옷을 입고 행한 정의들이 과연 옳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과거들을 돌아보며 '괴수중의 괴수'라고 자신을 칭하며 회개해야 했다. 우리 역시 바리새인들의 정의처럼 주일 날 예배 한 번 드리고 바리새인들의 '거룩의 옷'을 입고 구원받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돌아봐야 한다. 물론 구원은 선한 행위나 인간의 의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성령님께서 허락하신 십자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지만 우리의 거짓된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때문에 욕을 받고 계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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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을 택하신 것은 당시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의 틀은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아주 잘 표현 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기억하고 빨리 사방으로 나아가 복음을 증거했다면 복음은 더 빠르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와 이방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은 열두제자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공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뽑힌 일곱집사 중 빌립이었고, 스데반이었다. 사도들은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 했으며, 그 이유는 제자들이 아직 성전신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고, 이방인에 대한 오랜 유대적 관습이 말씀앞에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신앙의 형식화는 참된 말씀을 질식시키고 방해하게 된다. 수류화개라고 했던가? 물은 흐르게 하고 꽃이 만개하려면 말씀으로 우리의 고정된 관습과 형식들이 무너뜨려져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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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9장은 앞선 6-7장에 등장했던 스데반의 순교 이후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유대교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대해 광범위하게 박해를 했다 이들의 박해로 열두 사도만 예루살렘에 남고 신자 대다수가 유대 사마리아 시리아로 흩어짐으로 도리어 가는 곳마다 예수를 전하게 되는, 결과적으로는 박해가 오히려 기독교의 영역을 확장되어갔다 게다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해서 바울로 이름을 바꾸고 전심전력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유대를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지는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 압축된 장을 강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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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은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박해로 인해 상당한 수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짐으로 인해 복음이 이방인들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중 먼저 전도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대목이 나타남과 동시에 에티오피아 궁중 관리에게까지 복음 증거함이 나타난다. 사도행전 9장은 사도 바울의 회심과 함께 8장에 이어 복음이 이방인들을 향해 웅장한 진보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되어져감을 나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