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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감 買冊記...61탄(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테나이군을 지휘한 장군이었던 투퀴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패하여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사이,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긴 기록이다. 아테나이와 스파르테의 사료를 엄격한 기준으로 수집ㆍ정리하여 함축적 문체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특히 국가 간의 관계를 패권에 기반하여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 관점을 통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리스의 두 도시국가가 겪은 운명과 참상에 대한 가장 엄격하고 객관적 방식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후에야 20여 년만에 아테나이로 돌아올 수 있었던 투퀴디데스는 추방된 사이에 저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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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이야기를 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이어, 헬라스내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다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서양역사의 굵은 줄기를 잊는 역사서임에 틀림이 없다. 페르시아전쟁을 통해 헬라스 전체의 대표주자가 된 아테네(델포이동맹)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이끄는 스파르타(펠로폰네소스동맹)가 벌인 27년중 20년까지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기원전 5세기에 역사가라는 직업이 없었을 것 같은데, 투퀴디데스는 아테네인으로 전쟁에 져 추방당한 처지이면서 역사가의 사명을 갖고 이 책을 쓴 것이다. 마치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굴욕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작성한 것 처럼, 오히려 가혹한 환경이 이들의 내부에 있는 역사가의 사명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1장에서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기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라고 기술할 정도로 엄격함을 발휘한 것이다. 시대적으로 기록은 흔치 않은 환경에서 그 사건에 있었던 사람과 그 지역을 탐사해서 증언을 얻어내고 또 그 증언이 타당한 것인지 여러사람을 통해 확인하는 자세가 없다면 결코 담아낼 수 없다는 점에서, 저자는 보수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후세가 다시는 이 전쟁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이 담겨 있다.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쓴 것을 보면 미래에도 전쟁이 끊임없이 반복될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 이유가 인간의 선천적인 본성에 의한 것임을 알아낸 탁월함을 갖은 역사가였던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후 맺어진 평화조약이 케르퀴라를 둘러싸고 코린토스와 아테네가 격돌하면서 전쟁은 막을 올린다. 물론 이것은 표면상이었고, 해군력으로 해상을 장악하고 상업을 통해 헬라스 전지역에 영향을 끼치며 제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아테나이는 모든 도시국가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당연했을지 모른다. 자신의 강점을 알고 그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서, 도시국가로서가 아니라 개인에게 있어서도 귀감이 된다. 그러나 개인이나 국가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그 자제력을 잃어버린 아테나이는 걷잡을 수 없는 제국화의 마약에 도취되어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지속적으로 패배하면서도 내실을 가하는 것보다 밖으로만 확장하려는 모습은, 저성장 시대임에도 고성장시대의 습관에서 벗아나지 못해 망하는 기업의 모습을,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 지식의 습득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역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함을 이 책을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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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많이 유행했던 그리고 지금도 유지되는 XX살에 읽는 논어, 맹자, 중용,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까지 많은 철학책들이 그 열풍속에서 독자들의 손에 쥐어지고 읽혀졌다 하지만, 살아생전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그리스 역사에 대한 두권의 역작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바로 이 펠로포네소스 전쟁사를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는 다면 위에서 말한 여러 철학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훨씬 더 생생한 느낌과 사례를 통해서 느끼고 배울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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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지금은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허약하고 별볼일 없는 남유럽의 작은 나라지만, 그래도 이곳은 최초의 유럽이라 불릴 만큼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일군 지역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즐겨보는 그리스 신화와 세계의 유명한 석학들이 연구하는 그리스 철학 및 세계의 예술가들이 다루는 그리스 조각상들이 모두 고대 그리스인들의 작품이었다면, 고대 그리스의 문명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의 번영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들이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친 이후로 찾아왔다. 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은 그만큼 자신감에 젖었고, 자신들의 문명을 본격적으로 일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 전쟁 직후, 곧바로 그리스 세계는 분열과 내전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쇠퇴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글자 그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즉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위치한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어느 누구도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의 중심이자 페르시아 전쟁의 영웅으로 자처하던 아테네나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용맹한 군대를 가졌다고 자부하던 스파르타조차 결국 막대한 국력만 소모한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북쪽에서 그리스인들이 야만인이라고 멸시하던 마케도니아 왕국이 힘을 얻더니, 점차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와서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하나씩 굴복시킨다. 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이 바로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즉 알렉산드로스 3세다. 이 알렉산드로스 3세는 모든 그리스인들의 숙원인 그리스인들의 단결과 페르시아의 정복을 이루어내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으나, 불과 33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3세의 죽음 이후로 그리스 세계는 또 다시 길고 긴 분열과 내전의 길을 걷다가 서쪽에서 쳐들어온 로마에게 모조리 굴복하고야 만다. 어쩌면 이 책에서 묘사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 세계의 운명을 미리 알려준 예언서나 다름없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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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속에있는 내용을알기 위한 것이 첫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속의 맥을 놓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맥을 놓친다는 것은 새장의 새를 놓친다는 것이고 새가 없는 새장은 쓸모가 없는것이다.
책은 좋은책이나 어려운 이름들이 너무 많아 맥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말 고생하며 읽었다.
고대 그리스 국가들이 이렇게까지 토론문화가 발전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전쟁전,후 그리고 후속조치때와 지원,중세유럽 나아가 1,2차대전이후 전쟁이 종결되면 주변 나라들이
토론을 통해 그 해법을 모색했고 지금은 UN,IMF,WTO등도 그 모태를 따라가다보면 그리스 소국들의 토
론문화가 나오지 않을까 펠로폰네소스를 읽고 느낀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부풀린 흔적은 없어보이고 후세들에게 귀감이 될 내용들이 많아 역사적자료로 삼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명상록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간언은친구가 실수할 때 하는 것이고 적의는 나쁜 짓을 저지른 적에게 품는 것이다.
냉정을 잃지 않는자는 더 안전하지만, 흥분한 자는 실수하게 마련이다.
이해관계의 일치야말로 국가간에 또는 개인간에 가장 확실한 담보이다.
페이지116 계획에 관한 좋은 문구다. 한번 보면 좋은 페이지다.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것을 빼앗겼을 때가 아니라 친숙해진 것을잃었을때 괴로운 법이다.
훌륭한시민은 반대론자들을 겁주어서는 안되며 공정한 토론을 통해 자신이 더 훌륭한 연설가임을
입증해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해주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라해도 모나지 않는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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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헬라 문화는 한 때 전 세계의 중심이였고 전 셰계를 휩쓸었던 문화이고 문명이였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함으로서 그리스는 찬란한 문명을 이어 나갈 수 있었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계속 미쳤다. 하지만 현재의 개념으로 보면 국가라고 볼 수 있는 아테나이와 스파르타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전쟁은 치열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손자병법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지혜와 통찰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큰 유익을 제공한다. 만약 이 전쟁에서 아테나이가 승리했다면 지금의 현실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양이 다소 많지만 너무 늘어지게만 독서하지 않고 읽는다면 큰 유익을 줄 것이다. 지금은 별 볼일 없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그리스가 과거 세계의 패권 국가였다는 것 또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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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BC431 ~ BC404) 과 투퀴디데스 여기 제시된 증거에 따라 내가 기술한 대로 과거사를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 주제가 무엇이든 찬양하려 드는 시인의 시구나,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청중의 주목을 끄는데 더 관심이 많은 산문 작가의 기록에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증명의 영역 밖에 있으며, 세월이 흘러 대체로 사료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여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 <제1권 21> 투퀴디데스가 이상적인 역사가로 추앙받게 된 것은 그의 저술이 이전의 저술가보다 보 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사료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을 찬양하려 한 호메로스의 저술이나 이야기꾼에 가까운 헤로도토스의 글은 타당하지 않다고 투퀴디데스는 밝혔는데. 그래서 신의 개입을 배제하고, 인간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건을 설명하려 하고, 사료 선택에 있어서도 언제나 진실이라고 믿는 것만 선택하고, 사건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려 했다.
아테나이인들은 진취적이며,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것을 실행하는데 민첩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보수적이고 창이력이 부족하며 행동함에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곤 합니다. 또 아테나이인들은 능력 이상으로 저돌적이고, 상식 밖의 모험을 하며, 역경에 맞닥뜨려도 낙천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능력 이하로 행동하고, 건정한 상식도 불신하며, 역경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고 비관합니다. <제1권 70, 코린토스 사절단이 라케다이몬인들에게 한 말 중에서> 코린토스의 사절단이 동맹국을 제국화하려는 아테나이를 경계하고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번에는 아테나이의 사절단이 나섰는데. 마치 요즈음 미국인을 보는 듯했다. 좋게 말해서 자신감이 넘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참 뻔뻔하구나 싶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특징은 사건의 나열 뿐 아니라 인물들의 연설들을 인용함으로써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그 중 페리클레스가 전사자들을 위한 장례식에서 한 추도연설은 세상을 바꾼 명연설 중 하나로 뽑히고 있는데. 그는 이 연설에서 전사자를 칭송하고 그 가족에게 애도를 보내는 전형적인 추도연설을 한 것이 아니라, 아테나이의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아테나이인의 이상을 라케다이몬인과 대조함으로써 아테나이인의 긍지를 갖게 만들었다. 여러분은 이제 마땅히 이분들을 본받아,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너무 망설이지 마십시오. 죽음조차 불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더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을 경우 운명이 역전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자신의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제2장 43 페리클레스의 연설 중에서>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분명 호전적인 제국주의자였다. 페리클레스라면 그리스의 황금기를 이끈 민주주의 지도자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또 아테나이라면 민주주의의 교과서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역사를 편향된 입장에서 배우고, 그것을 또 요약해서 배웠던 걸까? 고전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알고 있던것과 다른 점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다른 해석이 떠오른다. 물론 아테나이인 입장에서 페리클레스는 최고의 지도자임에 틀림없을지 모르겠다. 투퀴디데스도 이 책에서 페리클레스는 선견지명이 뛰어났고, 개인적 야망과 욕심이 없었으며, 전쟁을 정확히 예견하고 준비할 줄 아는 그 시대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분명 제국주의를 옹호했고, 자유 운운했지만 자유를 지키는 것 아니라 타국의 자유를 빼앗는 전쟁에 불씨를 붙인 인물이었다. 그가 어느정도는 선견지명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전쟁 중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가볍게 여겼을 뿐 아니라, 전쟁 준비로 아테나이 성벽안으로 시민을 모두 살게 함으로 역병이 퍼지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알키비아데스 페리클레스에 대한 투퀴디데스의 평가는 아주 후했던 반면, 알키비아데스에 대해서는 아주 형편이 없다.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에게 구애했던 바로 그 청년이다. 페리클레스의 조카로 명문가 출신에, 화려한 용모에, 웅변술까지. 어디 하나 빠질것 없는 알키비아데스는 자연스레 아테나이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처음 전쟁은 누가 이겼다고 말하기 어렵다. 라케다이몬인들이 이길 때가 있었고, 아테나이인들이 이길 때도 있었다. 10년 후, 라케다이몬인들과 아테나이인들이 평화조약과 동맹조약을 맺었는데. 이 휴전기간 역시 작은 분쟁이 많았고, 평화조약에 명시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퀴디데스는 이 기간도 전쟁기간으로 보고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평화조약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라케다이몬 사절단을 교묘히 속이고, 아테나이인들에게 전쟁을 하도록 부추겨 그나마 휴전도 결국 끝나고 말았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나이에게 시켈리아 원정까지 부추기기 까지 하는데, 이 시켈리아 (지금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원정은 후에 아테나이가 패망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 자리에 장군으로 선출된 것을 좋아하며 무엇보다도 장군이 되기에는 아직은 너무 젊은 까닭에 이기적인 이유에서 원정을 가야 한다고 사주하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가 자신이 먹이는 경주마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경탄받기를 원하고 또 그런 일에는 많은 비용이 드는 까닭에 장군직에서 이익을 얻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혼자 멋 부리느라 도시를 위험에 빠뜨리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개인의 사치를 위해 공금을 횡령한다는 점과, 이번 일은 젊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서둘러 행동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중대하다는 점을 여러분은 명심하십시오. <제6권 12 니키아스의 말 중에서> 시켈리아 원정을 가기 전 장군이었던 니키아스가 알키비아데스를 두고 한 말이다. 알키비아데스가 어떤 인간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행보를 보면 니키아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듯. 헤르메스 석상 회손 사건으로 시켈리아 원정 도중에 소환을 당하자, 알키비아데스는 적군인 라케다이몬으로 망명을 하고 조국을 배신한다. 그것도 모잘라 라케다이몬에서는 왕의 아내와 밀통하고. 들통나자 이번에는 페르시아 쪽으로 도주하고, 아테나이에게는 거짓으로 페르시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아테나이 복귀를 꾀하는 등. 참 어찌나 대담하고 뻔뻔한 인물인지. "라케다이몬인 여러분, 청컨대 여러분은 위험한 일이나 힘든일에 주저 없이 나를 이용하십시오. 여러분은 내가 아테나이의 실정을 알고 있고 여러분의 실정을 짐작하는 만큼 <최악의 적이 최선의 친구가 된다> 는 속담이 내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제6권 92 중에서> 그의 뻔뻔한 행보에 알키비아데스 스스로는 늘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뻔뻔한 짓을 저지른 정치가들이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것은 마찬가지인듯. 조국을 배신하고도 그는 늘 할 말이 있었다. 추방자가 된 이유는 자신을 내쫓은 자들이 비열했기 때문이라는 둥. 지금의 아테나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예전의 아테나이가 아니라는 둥.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조국을 되찾기 위해 공격을 하는 것이라는 둥. 누구랑 어쩌면 똑같은지. 전쟁. 그 민낯은 야만적이고 역겨운 것이다. 사람들은 행위를 평가하는 데 통상적으로 쓰던 말의 뜻을 임의로 바꾸었다. 그래서 만용은 충성심으로 간주되고, 신중함은 비겁한 자의 핑계가 되었다. 절제는 남자답지 못함의 다른 말이 되고,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은무엇 하나 실행할 능력이 없음을 뜻하게 되었다. 충동적인 열의는 남자다움의 징표가 되고, 등 뒤에서 적에게 음모를 꾸미는 것은 정당방위가 되었다. <제3권 82 중에서> 30년에 가까운 전쟁동안 그리스 전역에서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아테나이 측도 펠로폰네소스 측도. 그들은 전투를 하면 늘 승전비를 세우고 적의 승전비는 훼손하곤 했다. 심지어 진 전투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말을 지어내 승전비를 만들어냈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왜 승전비를 세웠을까? 이 시기 전쟁의 또다른 특징은 약탈이다. 전투 뒤에는 늘 약탈이 뒤따르고, 사람을 살해하거나 노예로 삼고,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을 짓밟았다. 페리클라스를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전쟁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시민들을 고귀한 존재로 긍지를 높여주었는데. 사실 전쟁의 민낯은 야만적이고 역겨운 것이었다. 전쟁의 이유는 위대한 명연설에서 역설된 대단한 것이 아니라 결국 탐욕과 야심이었다. 제국을 키우고, 시켈리아의 곡창지대를 차지하고, 금을 차지하려고. 시민들을 선동하고 노예와 힘없는 약소국을 희생시킨 것. 어느 모로 보나 처참한 광경이었다. 함선을 모두 잃고 퇴각하는 중이었고, 큰 포부를 품고 왔건만 지금은 자신들도 아테나이 시도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군영을 떠나자니 눈에 보이는 것은 슬픈 장면이요, 마음에 더오르는 것은 슬픈 생각뿌닝었다. 시신은 묻히지 못했고, 친구 중 한 명이 시신 사이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이면 슬픔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환자든 부상자든 산 채로 뒤에 남겨진 자들은 살아남은 전우들에게 죽은 자들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들이 "나 좀 데리고 가요!" 라고 큰 소리로 간청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절망감에 휩싸였는데, 그들은 친구나 친척이 보일 때마다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리하여 전군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이런 절망과 연밍 때문에 그들은 이미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을 당했고 또 불확실한 미래에 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적국을 떠나고 있는데도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7권 75 시켈리아 원정에서 패한 아테나이 군에 대한 묘사 중에서> 유럽에 문명을 세우고 위대한 문학과 예술을 후대에 남겨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그리스인들. 하지만 그들의 실상은 이토록 야만적이었다. 결국엔 '한정된' 시민에게만 허용되던 그 '대단한' 아테나이의 민주주의마저 과두제 지지자들의 욕심에 휩쓸리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제거하고. 아테나이의 전쟁과 패배 이유는 모두 욕심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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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국가간 힘겨루기가 아니다. 군사력, 과학기술, 정치, 국제관계, 등 전 분야의 수준을 보여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단순히 과거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과 국가의 행동방식은 본질적으로 거의 유사하다. 민주적인 아테네와 군국주의적인 스파르타는 성장에 대한 불안은 견제와 불안으로 확대되고 이해관계의 갈등으로 번지며 전쟁을 야기한다. 최근에도 국가간 이익, 성장에 대한 견제, 불안에 대한 갈들으로 인해 이란과 미국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은 지속되고 확대되어 가고 있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지속되는 전쟁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타락함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도덕성은 사라져가고, 생존과 이익을 추구하고, 지속되는 공포에 개인과 사회가 더 나아가 국가가 무너져가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은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사례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경고와 같다. 결국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과거를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고 역사란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인점을 우리는 알고 책임지는 판단을 해나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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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이 전쟁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정치와 인간 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특히 강대국의 오만, 약소국의 불안,그리고 지도자들의 판단이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점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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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의 유려한 번역은 고대 그리스의 참혹한 내전을 정교하게 복원합니다. 투키디데스는 단순한 전사가 아닌, 힘의 논리와 정치적 선동에 휘말린 인간 본성을 차갑게 해부합니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한다."는 멜로스 회담의 비정함은 시대를 넘어 권력의 속성을 꿰뚫는 서늘한 통찰을 전합니다. 명분과 도덕을 벗긴 권력 정치의 민낯이 오늘의 세계를 날카롭게 비춥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