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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자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들자면 개개인의 심령안에 하나님이 있고 날마다 살아가는 동안 매순간을 주님께 의지하려 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할줄 아는 마음가짐의 소유상태라 할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접하였다고 하면서도 일상생활속에 깃들여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할줄 모르고 종종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영성 신학자 로널드 롤하이저의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에서는 항상 임재하셔서 늘 동행하시는 은혜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도바울이 다메섹산상에서 사울로써의 지난날을 버리고 예수님의 형상을 쫒아 사도가 되었듯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날마다 자기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기도하는 영성의 삶을 살아야 자기 스스로가 겸손한자로써의 면모를 깨닫게 하고있다. 이세상의 모든 고민과 타인들의 문제가 자기자신이 아니면 해결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주님께서 주신 샬롬의 평안이 마음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지 못하기에 비그리스도인들처럼 할것이 아니라 오직 기본적인 사고는 셩경말씀에 뿌리를 두고 비기본적인 사고는 기도하는 사람으로써의 자유함을 누리는 가운데 일상생활속에서의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역사하셨고 말씀도 나타내셨다. 자연현상이나 동물들의 울음소리, 성경의 예언말씀, 기도속에서의 응답을 통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간의 눈에 미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세상적인 방법으로 주님을 찾을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자신을 되돌아 보는 삶을 익혀 성찬의 일상화에 참여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세상풍파속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삶속에서의 주님과 교제를 이책에서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예배당이나 기도실 또는 특정의 시간을 통하여 이루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음이 없기에 항상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달을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하나님의 자녀로써 자유로이 만끽하여야 함을 이책을 통해 주변 형제,자매님들께 두루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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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이며 영성작가인 로널드 롤하이저의 저서인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읽게 되어 기뻤다. 이 책은 어떤 책일까? 헨리 나우웬을 이은 영성작가의 저술이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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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급증한 삶의 포기에 대한 문제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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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로널드 롤하이저는 캐나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의 신부이다. 현재 50여개 신문사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조직신학 분야의 전문가답게 깊은 신학적 통찰로 책을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흥미있게 전개하고 있다.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 프롤로그에는 ‘믿음’을 일컬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눈부시게 빛나는데 이는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를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표현한다. 즉 우리 삶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을 배경삼아서만 읽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인간이 '외로움' '불안' '괴로움' 등을 느끼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모든 인생은 끊임없이 갈망으로 불이 붙는 존재이다(p.18). 갈망이란 궁극적으로 우리 안에서 신음하며 기도하시는 성령으로 표현되며, 근본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한한 존재로 지음 받은 인간은 내면 깊은 곳에 진짜 인생이 존재하는데도 내면을 외면하고 외부에서만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에 더욱 불안해질 뿐이라고 한다. 로널드 롤하이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해 “주여,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나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당신에게서 안식을 찾기 전에는 편히 쉴 수가 없나이다.”(p.33)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과의 연합이 가져다주는 내면의 고요함만이 인간의 극심한 불안감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현상으로 많은 실례를 들었는데 한 가지, 나에게 각인된 것이 있다. 이 책은 사람이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원하면서도 외적으로 반대로 표현된다면 그 현상의 뿌리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적, 나는 안에 잠재된 끼를 발산하려 했는지 집안에서 노래를 크게 하거나 큰 소리로 책을 읽곤 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여자가 그렇게 큰소리로 노래하거나 말하지 말라시며 즉시 나를 재제하곤 했다. 하나님은 넘쳐나는 에너지, 생명력을 보고 뭐라 하셨을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 축복받아야 할 존재가 순수하게 우리를 기뻐해주지 않는 데서 슬픔을 느끼거나 갈증을 느낀다고 이 책은 소리를 높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축복받고 축복해주는 것이다. 축복은 또 다른 축복을 낳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랑을 갈구하는 부부가 배우자 앞에서 마음을 움츠리고 열지 못하는 까닭 역시 삶의 다른 영역에서 연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사랑에 굶주린 자는 성관계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려 들지만 성과 영혼은 밀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경고한다. 신성한 성관계는 영혼을 강화해주기에 이를 위해서는 순결한 삶이 선행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평범한 땅이 곧 거룩한 땅임을 이야기한다(p.314).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상의 기적을 기대하게 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에겐 생소하고 놀랄 수 있는 소지도 다분하다. 구원론이라거나 세례, 성찬, 죽은 자와의 교통 등의 개념이 개신교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면서 진지하게 읽어나간다면 색다르지만 깊은 영성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독서가 모두에게 기쁘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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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은 일상의 사건들-외로움,갈망,성,죽음,정신,분노,슬픔,성별,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런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현대인을 손쉽게도 병들게 만드는 ’외로움’과 ’불안’속에서 어떻게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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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
지은이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이 책에서는 시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동일하게 일어나고 동일하게 지나가지만 그 가운데 믿음이라는 시선이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배경으로 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러 가지 일상의 문제들 중에서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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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전해지는 포근함 그리고 평안함을 느끼면서 나의 일상에 함께 하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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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 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을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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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성은 수도원이나 어떤 특별한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로널드 롤하이저는 칼 라너의 글을 인용하며, ‘저는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일상이라는 기적을 의지할 뿐이죠’(p.315)라고 말한다. 우리의 신앙과 영성은 우리 개인의 기질 속에 갇혀 있거나, 우리 일상의 현실 속에 갇혀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외로움(p.69)과 공허함(p.80), 무언가를 취하려는 자세(p.99) 등은 우리 일상을 자꾸 사막처럼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당신은 내 안에 계셨지만 나는 밖에 있었습니다.’(p.26)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은 내 삶의 일상 가운데 계셨지만, 나는 늘 그 밖에서 하나님과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매우 유연하게 유지하면서도 ‘일상의 기적’(칼라너)을 포기하는지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손길을 일상에서 만나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하였나 보다. 저자는 ‘우리는 삶을 기쁘게 들이마셔야 한다.’(p.110)며 일상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창조물들 속에서 삶으로 주어지는 특별한 은총과 기쁨을 마시고 음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 숨을 좀 깊이 내쉬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나에게 주신 일상을 깊이 마시고, 내뱉는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영성의 장이 아니겠는가? 그의 책은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툭툭 내뱉듯이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핵심을 집어낸다. 그는 말하기를 ‘교회는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은 순결을 이해하지 못하는’(p.83) 곳이라고 말하며, ‘이 세상과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까닭은 경건한 사람들은 진보적이지 않고, 자유주의자들은 경건하지 못하기 때문’(p.181)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또한 교회의 이중소외를 다루면서, ‘여성은 교회구조에서 소외되고 남성은 교회 정신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p.231)고 지적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어떤 성향에 치우쳐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날 정도다. 그는 복음을 이렇게 정의하는데, ‘복음은 회심과 정의를 구분하지 않고 한데 끌어안으며, 기도와 예배, 개인 윤리와 사회개혁을 통합하는’(p.183) 것이다. 또한 성찬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건강이 필요해서이지, 건강하기 때문이 아니다.’(p.119)고 하면서, ‘섹스가 성례전이요, 섹스가 성찬이다.’(p.130)는 말로 통념적인 성례/성찬 개념을 확실히 넘어선다. 또한 수도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수도회의 영성적 뿌리인 자기 포기나 고행능력을 지적한다: ‘성화나 미덕을 자기 포기나 고행 능력과 동일시 하는게 얼마나 심각한 단순화인지를 잘 보여준다.’(p.101) 때로 이런 저자의 글쓰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혼동을 주기도 하는데(적어도 내게는), 아마도 이는 저자의 영성적 추구가 이런 자기합리화나 정당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반성적 성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개신교도로서 가톨릭적 신학과 그러한 경향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의 구원론에 대한 언급이다. 저자는 마치 구원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은 젊은이의 장례식에서 저자는 유가족들에게 그가 사랑과 기쁨으로 확실하게 받아들이셨음을 확신시켜주었다(p.255)고 말하는 장면이나, 구원에 있어 ‘네 대신 내가 문을 열어줄게’(p.272)라는 표현,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보편구원을 믿었다.’(p.274)는 것, 마지막으로 ‘천국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득실거리는 지옥은 하나님의 본성과 사랑과 능력에 대한 모독이다.’(p.276)라는 언급 등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는 개신교와 가톨릭과의 구원론적 관점의 차이이거나, 아니면 나의 너무 보수적인 신앙관(?)의 문제일 수도 있어 보인다. 아무튼 저자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①해로운 운명론(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살리기 원하신다면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니 수혈은 받지 않겠습니다.)과 ②해로운 근본주의(인간의 난잡한 성생활을 벌하시려고 하나님이 에이즈를 세상에 보내셨다니까!), ③ 해로운 신관(하나님이 자연 재해나 불행을 가져다주시는 것은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가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다!)에 대한 현시대의 신앙에 경고를 보내고(p.311), 성생활과 신앙, 정의의 문제(p.18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상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길로 소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끼기로는, 우리의 일상에 하나님의 임재를 초청하는 만큼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우리 일상중에 비추어주신다는 사실이다. 더욱 일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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