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마스의 명성과 이진우씨라는 역자의 이름만 보고 이 책을 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내용이나 구성면에 있어서 이 책의 매력은 차례만 훑어 보아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책을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문제는 글의 내용보다는 말 자체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진우 교수는 하버마스를 비롯 독일 철학자나 현대 사상가들의 글들을 다수 번역해 온, 꽤나 신뢰할 만한 철학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만큼은 그의 번역작업이 너무 쉽게 이루어 진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일단 말 하나하나를 직역함으로써 의미 전달이 모호해진 것이 많고 문장들이 거의 만연체로 되어 있어 어느 부분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아리송하다. 물론 유려한 독일어를 사용한 노철학자의 글이라 그만한 속사정은 이해를 할 만하지만, 내용 전달을 방해할 만큼 그 번역이 못마땅했던 것은 나만의 투정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주제와 내용들로 이 책이 채워져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하나하나 다 읽어나가기에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점, 그리고 근, 현대 철학사적 배경지식 없이는 함부로 덤빌 만한 책이 아니라는 점만 명심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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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려면 어느정도 기본이 깔려있어야 된다. 전공서적만큼 어렵고 기초적인 지식을 요하기때문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며 이책과 마주해야했다. 기초지식인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하버마스의 담론주의를 알아야하기에 뒷내용에 덧붙이는 바이다. 모더니즘 : 넓은 의미로는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합리주의를 되돌아보며 하나의 논리가 서기 위해 어떻게 반대논리를 억압해왔는지 드러낸다. 데리다는 어떻게 말하기가 글쓰기를 억압했고, 이성이 감성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는지 이분법을 해체시켜 보여주었다. 푸코는 지식이 권력에 저항해왔다는 계몽주의 이후 발전논리의 허상을 보여주고 지식과 권력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였다. 둘다 인간에 내재된 본능으로 권력은 위에서의 억압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생겨나는 생산이어서 이성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절대자아에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를 귀환시켜 주체를 해체한다. 주체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되어 있고 그 차이 때문에 이성에는 환상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리오타르 역시 숭엄(the Sublime)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합리주의의 도그마를 해체한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도그마에 대한 반기였다. 하버머스의 담론이론 :(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는 다원성을 현대성의 본질인 보편주의와 결합시키고자 하는 시도)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가 대표성과 민주성을 상실했다는 관점에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들이 진지한 담론을 통해 공식적 정책결정자와 협상하거나 또는 대립되는 이해관계자들이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자는 주장을 말한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담론주의자들은 이와같이 정책 과정에 대한 시민 참여의 강화를 강조한다.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하버마스는 헤겔부터 푸코까지 (가장 관심이 가는건 당연 니체-지극히 주관적-) 그들의 이론을 곱씹으며 현대와 탈현대에 대해 오래전 철학이 아닌 지금 시대에 맞추어 그들과 같이 고민해보고 의심해보고 따져보면서 세속적 사회는 종교적 신념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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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 현대, 현대성, 현대주의에 대한 반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1994년 번역 출간된 이 책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은 9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모더니즘 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꼭지점에 위치해 있다. 동시에 하버마스가 현대성과 계몽주의를 받드는 서구기사단의 리더임을 만천하에 공표한 기념비적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현대성과 탈현대성간의 논쟁을 현대주의적 입장에서 재정리한 역작이다.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제3대 장문인으로서 계몽이성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대성의 근원적 성격과 그 역사적 왜곡의 과정을 설명한다. 현대성의 야누스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와 체계간의 모순과 대립, 의사소통적 이성과 도구적 이성간의 대립이라는 일관된 이론틀로 미완의 현대성의 기획을 옹호하고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열린 태도를 보인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현대성 비판은 단지 절반의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도 현대의 병리학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지만 이들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셈이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비판한 현대성은 현대성이 간직한 측면의 후유증에 불과하며, 사실상 현대성은 여전히 미완의 기획이고 유퇴피아적 사유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향하여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강조한다. 보통 하버마스와 푸코간의 논쟁으로 유명해진 하버마스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곱씹을 만한 영양가 넘치는 보약이다.
하버마스는 먼저 헤겔, 칸트, 베버, 보들레르, 벤야민 등을 언급하며 현대성의 개념에 대한 개괄적인 정의와 기원에 대한 사상맥락을 정리한다. 특히 헤겔의 주체성의 원리는 현대의 핵심적 특징으로 조명된다. 가령 개인주의, 비판의 권리, 행위의 자율, 관념주의 철학이 그러하다. 현대성의 이런 구조적 특성을 형성시킨 역사적 맥락이 바로 종교개혁, 계몽주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리고 이런 주체성 원리는 과학, 도덕, 예술 등 여러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변용되는데 그 중 철학적 변용을 예로 들자면 데카르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있다.
헤겔의 현대성을 논한 다음 그 현대성의 어두운 측면을 비판하기 위한 사상적 기획으로 세가지 계파를 소개한다. 바로 헤겔좌파(급진주의), 헤겔우파(신보수주의) 그리고 니체(후기구조주의)다. 헤겔좌파는 실천과 혁명을 역설하고, 헤겔우파는 국가와 종교의 통합성을 강조하고, 니체는 혁명적 희망과 이성의 권력의지 모두를 비판한다. 특히 하버마스는 탈현대의 전환점이 되는 니체의 역사적 위상을 강조한다. 니체의 현대성 비판은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계승되었다. 바타이유, 라캉, 푸코와 같은 급진적 회의론자는 주체중심적 이성의 발생을 폭로하였고, 하이데거와 데리다 같은 형이상학 비판론자는 주체철학의 역사적 기원을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소급하여 로고스 비판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계몽주의의 자녀들로 하버마스의 스승격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이론과 입장을 요약하여 신화와 계몽의 혼합을 설명한다. 푸랑크푸르트학파의 일반적인 입장에서 고찰하면계몽이성은 그 탄생에서부터 내부에 분열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즉 도구적 이성의 성격은 계몽이성의 예고된 내재적 특성인 셈이다. 계몽이성의 이런 음울한 측면은 인간소외와 홀로코스트 같은 인간성의 파괴를 불러왔다. 사실상 계몽의 변증법과 생활세계의 병리학은 하버마스 사상의 근본특징이다.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의 성격으로 분열과 통일, 소외와 화해의 변증법을 거론한다.
결국 하버마스가 본격적인 논쟁 상대로 초청한 이들은 하이데거, 바타이유, 데리다, 푸코 등으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던과 관련 깊은 사상가들이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 비판을 통해 서양 합리주의의 약화를 초래했고, 데리다는 근원철학에 대한 부정과 더불어 현대성의 음성중심주의를 비판했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시즘에 기초한 욕망의 경제학을 세우려 했고, 푸코는 인문과학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비판적 메스를 가하고 권력과 지식의 유착관계를 해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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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미완의 기획,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좌파, 신좌파, 푸랑크푸르트학, 파하버마스가 반론을 위하여 토론의 무대로 끌어들인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사상가들... 제목에서부터 전해지는 중압감을 뒤로 한 채 잘 이해도 되지 않는 내용들을 소화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 가운데 그래도 한가지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면 주저없이 철학에 대한 생각의 변화라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래도 학창시절 철학에 대하여 학습하며 그렇게까지 어렵다고 생각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 되는데 막상 위르겐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을 접하는 순간 왠지 막막하기만 했던 것을 구지 감추고 싶지는 않다. 나름 쟝르 구분 없이 많은 책들을 접하며 다독하고 있다고 생각 하였었는데....이러한 생각을 순식간에 잠식 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관심 밖의 범주에 속한 내용의 한 부분 이기에 소홀했을 수 있었겠지만 철학 이란 것이 인생을 살아가며 반드시 필요한 분야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고민 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계기를 전해준 책이라 말하고 싶다. 계기가 주어 진다면 더 많은 고전을 통해 한 뼘씩 자라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흐믓해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은 현대성과 탈현대성간의 논쟁을 현대주의적 입장에서 재 정리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현대성의 개념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 인지 모르겠다. 솔직히 현대성의 개념을 떠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서평을 작성하는 것 조차도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임을 간과할 수 없을 듯 하다.
요즈음 하버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마이클 샌드 교수의 정치철학 과목 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 치밀한 분석력, 총체적 통찰력만이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과는 폐과하고, 상식적 지식의 총합일 수 있는 경영학과는 마구 키우는 우리의 대학 풍토와는 대조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이 얼마나 성급한 민족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만 하다.
단순한 지식을 위한 교육이 아닌 지혜를 생각한다면 본인부터 라도 다소 어려움은 있겠지만 고전과 철학을 좀 더 가까이 하며 친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국가의 진정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 교육 에서도 철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심도있게 다룰 수 있길 바란다. '빨리빨리' 의 좋지 못한 습관은 하루속히 떼어 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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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세계가 마치 종교의 오묘한 세계 같다. 이 책을 읽고 무한한 깊이를 느끼니 기존에 읽었던 [철학, 문화를 읽다], [휘페리온] 등이 너무 쉽게 와닿을 정도이다. 나에겐 생소한 철학자 하버마스의 1970, 80년대의 현대성의 철학서이다. 철학에 무지한 나같은 이가 그냥 읽기에는 너무 버거운 책이다. 다행히도 나의 책장엔 [지도로 보는 세계 사상사]가 있어 이 책에 등장하는 하이데거와 푸코 등의 사상가들의 간략 정보는 얻었기에 망정이지...하버마스가 하이데거처럼 끔찍한 철학자는 아니길 바란다.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개념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는 여러 철학자들을 등장시킨다. 헤겔은 현대를 문제시한 최초의 철학자로 이 책의 주인공 격인 '현대'는 서양에서 1968년 학생 운동 이후 약 20여 년 간 뭇지성인들의 입에 숱하게 오르내린 낱말이라고 한다. (해설) 이 '현대'라는 개념이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는게 지금은 2010년이고, 이 책의 1판은 1994년이고, 하버마스는 적어도 이 책을 1980년 이후에 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현대'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현대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에서 오는 노파심은 이 책을 어느 정도 읽어감으로서 해소할 수 있었다. 이런 년도와 상관없이 하버마스가 논하고자하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된다.
헤겔좌파와 헤겔우파의 입장을 읽으면서는 루소의 사상을 악의 정치를 행하는데 이용한 악의 무리들이 떠올랐다. 하나를 두고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그 수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 심지어는 전혀 상반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섬뜩하다. 푸코를 비롯하여 경계선을 넘는 경험들에는 동양적 세계와의 접촉과 동양적 세계로의 몰입 (쇼펜하우어), 비극적인 것과 태고적인 것의 재발견 (니체), 꿈의 영역으로의 침투 (프로이트), 태고적 금지의 영역으로의 침투 (바타이유) 등의 사상들이 더 궁금해지지만 이 이상 더 깊이 읽는 것은 나에게 무리일 것이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해설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유하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오늘날 이 세계가 있기까지 인류의 정신적인 바탕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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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의 철학 재구성 하기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대 독일의 철학자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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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과거의 종교와 계몽, 이성의 반성,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다양하게 분화된 이성에 대한 사고 등을 담고 있다. 한때 법학과를 다니면서 법철학이란 과목을 이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자연주의로 시작한 인류의 철학이 실증주의, 실존주의 등으로 변화되어 온 것들을 나름 재미 있게 접했었다. 그런데 19세기 이전의 철학자들만 공부를 하고 책을 덮었다.
20세기 철학자로 유명한 하버마스가 쓴 이 책은 헤겔때부터 시작한 인간의 이성에 대하여 접근을 시독하고 있다. 그리고 막스 베버에 이르는 자본주의에 이성과의 접점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현대라는 개념이 점차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사상적 고뇌를 저자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 이성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책제목의 현대성은 이성이라는 점이다. 남녀를 구분하는 성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그런 이성을 다른 사상과 철학, 관점, 종교 등과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책에서 말하고 있는 철학이 어떠한 양상을 띄고 있는지 궁금하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현대는 20세기의 관점에서 망라된 이성이라는 관점이기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두고 갑론을박을 해왔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은 동물적 쾌락주의가 만연하다고 생각된다. 이것과 이성은 어떤 관련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나름 재미 있는 영역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철학 책을 거의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소피의 세계라는 책이 철학입문자들에게 매우 유명하다고 들은바가 있어 책장에 모셔두고 있다. 아마도 그 책을 읽고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새로운 관점이 보이리라 생각된다. 현대이성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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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인 현대를 규정하는 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산업사회의 발달로 재화의 생산력이 급속하게 발전했고 단순한 사회형태 또한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각각의 자기모델을 만들어 성장해왔다. 근대사회 이후 급속한 변화에 대해 이를 올바로 파악하고 나아가 미래를 전망하려는 사람들의 노력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인간의 욕구가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분출했고 그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21세기에 대한 사상적 전망을 가져와야 하는 시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