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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효와 가족 그리고 중국 농촌의 실상인 것 같다. 나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을 통해서 본 중국 농촌, 가족의 힘든 삶 속에서도 가장의 역할과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지겨운 노동은 생존과 미래를 위해서 계속되는 일상을 위해 짐 지워진 무거움인 것 같다. 농촌의 고단한 삶, 그 속에 가장으로써의 굳건한 아버지들의 모습과 한 인간으로써 나약함도 보여준다. 도시와 농촌, 같이 공존하며 화합해 나가기는 진정 어려운 문제인가. 중국은 인위적인 단절(호구)로 도시와 농촌을 분리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 고심한 정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점점 벌어지는 빈부격차가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을 어렵게 할지 모르겠다. 이야기의 중심은 중국이나, 우리의 상황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보는듯하다. 도시와 농촌. 그에게 있어 농촌은 끝없는 노동의 삶이었다. 두메산골에서 도시와 차이를 경험하게 된 것은 한 반의 도시소녀와 여선생님 그리고 지식청년들을 통해서였다. 같은 강간범이라도 시골 청년은 사형이 되고, 지식청년은 도망을 가고, 사과와 몇 푼의 보상으로 그 죄에서 해방되는 현실이 나를 더욱 더 시골에서 멀어지게 한다. 작은 누나와 나의 고등학교 진학의 선택에서 남녀 차별, 아니 시대의 아픔이라고 할까! 그러기에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시골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광산에서의 하루 열 여섯 시간의 중노동이었지만 그는 “나는 이렇게 매일 광산에 올라가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할 수 있기를. 영원히 쉬지 않고 이런 노동을 계속 할 수 있기를 갈망했다.”. 시골에서의 하루 품삵이 도시에서 짧은 거리의 고물을 주운 돈과 같은 현실 속에서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아버지. 사랑하면서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것이 아버지 아닌가 생각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호되게 매를 맞던 일로 시작되곤 했다. 아버지 영전에서의 다짐과 약속,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을 깨닫기 시작했다. 땅의 개간과 집짓기, 기와집 몇 칸을 짓는 것은 아버지의 일생의 목적이었고, 생명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기와집은 자녀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하는 최소의 자본이자 기초였다. 인생의 한 구간에 돌비석처럼 우뚝 서 있는 인생의 소중한 기념비 그 토담, 기와집이 당신과 만년을 함께 보낸 회전의자이자 지팡이이며 적막이었던 것 같다. 누나의 병, 병 구환을 위해 해진 신발이 몇 컬레나 되는지 얼마나 긴 길을 걸었는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가족 전체가 즐거워했다. 슬퍼하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근심과 걱정 속에서 세월을 보냈다. 군대입대, 삶이란 배가 세월의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아주 소중한 노였던 것 같다. 나는 완전히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되고 분수령이 될 군복을 입게 되었다. 운명은 일생에서 일종의 절대이자 완전한 우연 속에서의 인과관계이고, 인과관계 속의 완벽한 우연이었다. 인생이 일종의 지나가는 과정이라면 운명은 그런 과정의 결말이자, 결말 이후의 끝 또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병과 나. “아저씨께서 살아 계시는 한, 가족들 모두 좋은 세월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의사의 말과 내가 느끼는 바, 그것은 영원한 죄였다. 자신을 먼저 생각할 때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때는 요란하게 호들갑을 떤다. 때로는 내가 부모를 잡아먹는 곤충이나 나이든 부모를 잔혹하게 먹이로 삼는 굶주린 늑대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지만, 항상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자식이 아닌지. 우리는 자신만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만을 위하는 모습도, 하지만, 우리는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자손이며, 누구의 아버지이다. 또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는 줄곧 죽음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죽음이 생명의 막우이자 운명의 마지막 친구가 되는 것이다. 큰아버지. 큰아버지가 주신 사탕을 기억하며 “나는 그 사탕의 단맛과 인생과 운명의 무궁무진한 쓴맛과 떫은 맛을 음미하고 있다.” 생을 살아가고 있다. 시골의 인정, 마을 사람들과 주고 받는 것이라고 세간의 인정과 한 마을에서 생존과 생활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도움과 보살핌뿐이었다. 시골에서의 아버지는 누구나 자식의 결혼이 인생의 중대사이다. 그런 사촌 형의 맞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한가지가 시작부터 잘 풀리지 않아 가족 전체의 운명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큰아버지가족의 계속되는 노동, 황제는 존엄을 위해 전쟁에 나서고, 백성은 존엄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선량함이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뿌리이자 밑 바탕이다. 노름은 큰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이 되어 그의 훌륭한 인품을 오염시켰다. 넷째 삼촌. 넷째 삼촌이 입고 있는 그 셔츠가 사실은 셔츠가 아니라 일종의 행복이자 삶이란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삼촌은 도시와 농촌의 고민과 번뇌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었다. 삼촌의 사는 게 왜 이리도 고달프냐 는 물음과 네게 던진 좋은 세월의 의미는? 우리나라에 기러기 아빠가 있다면, 중국은 이터우천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간 아버지 그의 삶은 “당신의 일생이 외지로 떠돌아다니는 표박의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도시로, 중국도 점점 농촌은 노인과 아이들만이 남는 곳이 되었다. “마을에 사람의 기척이 없는 것은 영혼이 없는 것 같다.” 노인들은 이미 나이가 많기 때문에 죽음과 흥정하거나 논쟁을 벌일 만한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인생은 생존과 존엄의 회복과 유지인 것 같다. 다 읽고서. 이 책은 저자의 고백록 같은 책인것 같다. 이 글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가장 후회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람들은 그 정도가 더 한 것 같다. 인간을 후회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이 작은 것 하나 깨닫지 못하는 걸까. 살아 생전 원하시는 일을 많이 하실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하던 농촌을 버리고, 군대를 통해서 꿈꾸던 도시의 사람이 되지만, 그는 그의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 가족들의 삶이 있는 그곳을 잊을 수 없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로 잊어선 안될 것이 바로 부모님의 은혜, 은혜를 잊어 버리면 이 세상을 산다고 해도 헛 사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점점 철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때가 되면 우리는 자신들이 부모님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어른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알게 된다. 각박한 도시살이라는 마음의 고향이 농촌으로 향한다. “ 효라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너무나 진부하고 미미한 가치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농촌에서는 여전히 생명에 대한 최대의 위안이자 존중으로 작용하고 있다.” 발전이라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농촌을 등진다. 시골이 상징하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서 도시의 빈민으로 살들 그 고통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변화하는 것은 농촌일 것이다. 농촌의 붕괴는 그들의 전통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우리의 현실도 더불어 걱정이다. p. 312, 6째줄, 노름에 빠지게 될까 봐 적정이에요-> 걱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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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렌커는 우리 7080세대보다 한 세대 앞선 세대이다. 5060세대라고 말해야 하나? 이 책 <나와 아버지>는 이런 세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시대가 존재하는 것은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도 우리의 시대가 기억해야 할 윗세대들의 기억을 말해주고자하는 저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옌렌커의 윗세대, 아버지들 , 즉 아버지와 큰아버지, 넷째 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 옌렌커가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살다가 병들고 늙고 죽는다라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며 병들어 지친 몸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던 아버지의 기억을 통해 후손들에게 그들의 생로병사를 기억하게 함으로서 현재의 삶을 좀더 숙연하게 바라보게 하는 저자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1960년대 중국은 불안한 시국이었다. 마오쩌둥이 실각과 다시 권력을 잡는 정치대립과 사회주의의 운동의 한 방면으로 3면홍기 운동, 문화대혁명등을 걸치는 시대의 요동속에서도 옌롄커의 가족은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하여 정치와 사회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살아야 했다. 가난했지만 부지런하고 정직한 아버지와 현명한 어머니, 아픈 큰 누나와 형, 둘째 누나 그리고 막내 옌롄커가 생(生) 을 위한 몸부림에 대한 기억들을 읽다보면 물자들이 풍부하고 늘 여유로운 생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정말 감사해야 한다. 적어도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통받지는 않으니까.
옌롄커보다도 공부는 잘 했지만 가난 때문에 동생을 위해 학교를 포기해여 했던 둘째 누나, 없는 살림에 큰 병을 앓고 있어 가난한 집에 짐덩이 같은 존재일 수도 있는 큰누나를 위해 가족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어린 옌롄커가 수레일을 하다가 몸이 망가지고 막노동자의 생활까지 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 짠하다.
그리고 농부인 아버지가 어떻게 대지를 사랑했으며 대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노동과 땅의 의미를 알게 된 옌렌커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생존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의 생존의 의미는 바로 대지였다.농민에게는 인생에서의 모든 고락이 땅 위에서 이루어 지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모든 것이 노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땅과 노동이 농민들 인생의 모든 고락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된 노동으로 병을 앓게 된 아버지가 자신의 병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운명을 말하는데 운명은 대체 무엇일까... 옌렌커는 운명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었는데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밥이 없으면 굶게 되는 것은 인생이다. 그럼 운명은 무엇일까. 내일이면 결혼을 해야 하는 젊은 남자가 기대와 행복에 젖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산에서 바위하나가 굴러 내려와 그 남자를 덮친다. 졸지에 목숨을 잃는다. 이것이 운명이다. 운명은 그렇게 예측불가능한 인생의 전주이자 에필로그이고 삶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참회이자 무력감이다.
큰아버지의 이야기에서는 존엄을 말한다. 인간은 세상에 살면서 모종의 존엄을 갖추어야 한다.큰아버지는 일자무식에 언변도 좋지 않았지만 평생 존엄이라는 두 글자의 깊은 뜻을 인식하고 있었다. 존엄은 생명속의 시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생명이 지니는 분량과 무게다. 존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나 떠다니는 구름이 아니라 생명 속의 기운이자 정신인 것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을 최고의 예로 알았던 동방예의지국이라 칭하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도 아마 시대의 흐름의 일종일지는 모르나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중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가난했어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음 세대들이 이 책을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부모와 어른들의 생명을 소홀히 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부모와 어른들의 피를 빨아먹으면서도 그 피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맹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어른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이땅의 모든 존재는 마지막 순간을 겪기에 어느 날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옌렌커의 문학을 생존과 존엄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해 말하는데 <나와 아버지> 안에 인간의 생로병사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옌렌커를 통해 삶과 운명과, 존엄, 세월과 삶의 차이,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주옥같은 글귀들이 너무 많아서 책이 완전 너덜너덜해졌다. 언젠가 내 자식들이 이 책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해본다.참 난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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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렌커 라는 작가는 '딩씨마을의 꿈'이라는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너무도 암울하고 어두운 내용이라 이번 작품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무래도 중국소설 자체가 시대적 배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보니 같은 동양권이라도 우리나라와 일본과는 아주 대조적인 분위기를 띠는 듯하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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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현재 살아계신다면 팔십이 넘으셨고 살아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지주,지탱이 되어 주고도 남을 것이다.아버지께서 오랜 노동과 제대로 되지 않은 몸관리,음식 섭취가 기나긴 당뇨와 폐렴으로 이어져 생전 몇 마지기의 논과 집을 장만하고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는 몇 년간의 생활비를 병원비로 충당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이 글을 읽어 가면서 안타깝고 애틋하며 잘 해 드리지 못한 점만 자꾸 마음을 후빈다.
누구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든 나쁘든 존재할 것이다.대개가 부모의 욕심과 기대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인간사일 것이다.내 자신을 추켜 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초.중.대학시절의 성적은 꽤 괜찮았다.늦게 찾아온 사춘기가 고교시절이었는지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공부와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가 뇌리에 들어 오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아버지 역시 갈팡질팡하는 내게 거의 자율적으로 맡기다시피 해서 내 자신의 몫은 내가 챙겨야 했던 고교시절이었지만 결코 아버지에게 불만은 없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에 늑장부리는 것을 못본 채하고 넘어가질 못하는 아버지는 공부와 가사일을 반반으로 나누어 해주기를 바랬고 나는 나대로 공부가 최고이고 공부 잘 하는 급우가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성적이 떨어지는 과목은 '개인 과외'를 받고서라도 성적을 올리고 내가 원하는 대학,과에 들어가기를 바랬지만 그 희망은 성적에 따라 대학과를 지망해야 했으며 지방국립대학을 원하셨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서울의 주요대학에 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가 관철은 되었지만 당장 먹고 잘만한 곳이 마뜩치 않아 대학초년 시절은(2개월 정도) 인천에서 총각으로 살고 있던 이종형 집에서 먹고 자고(쌀은 시골에서 올려보냄) 했다.형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세탁과 취사는 내 몫이 되어 가고 몸에 익숙치 않은 대학생활이 따분하고 낭만적이질 못했다.부모님이 해주시는 밥과 사랑을 받으며 본가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좋았을테고 당시 할머니가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도와 주시는 바람에 몸은 편했지만 생활비는 나름대로 신문배달을 통해 악착같이 생활을 이어나갔다.
1958년생인 작가 옌롄커(阎連科)는 누나 둘과 남동생을 두면서 둘째 누나가 공부를 잘하는 것을 시샘으로 여기고 자신도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지만 대학진학에 대해 중국 정부가 개방의 문을 열자 그는 벼락치기 공부로 중학과정을 섭렵하고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데 작문 시험의 제목이 "내 마음은 마오주석기념당으로 날아가네"였다고 한다.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모범 농촌마을로 평가되는 자신의 고향 산시성 시양(昔陽)현에서 멀리 떨어진 톈안먼을 바라보면서 마오주석의 위대함과 영광을 생각하며 작문을 했다고 한다.
마오쩌뚱의 '대약진 운동'과 '3년 자연재해'는 농촌을 피폐화 하고 촌부들의 삶의 도탄지고에 빠뜨리는 등 힘들고 험악한 생활이 이어지지만 삶과 생계를 위해 학생신분인 작가도 풀을 베고 소를 먹이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등 본업과 부업의 구분이 없는 어수선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내 아버지 역시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어머니와 함께 객지에 나가셔서 그릇장사,건채물 장사,과수재배를 하시면서 두다리 쭉 뻗고 편안하게 생활을 못하셨다.오로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묵묵히 일만 하셨던 분이기에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철이 없었던 것도 이 자리에서는 인정해야겠다.작가의 아버지도 죽도록 일만 하고 자식들에게 토담으로 된 기와집을 한 채씩 장만해 주시는 등 자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던거 같다.
작가의 큰아버지,아버지,넷째삼촌,아버지의 세대의 삼형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될 비와 햇빛도 중요하지만 뜻하지 않는 비바람 앞에서도 꿋꿋히 견뎌내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성숙하고도 알찬 내면의 세계와 부모님의 커다란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효심과 생명의 존엄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멈추지를 않고,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한문이 떠오른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중국 대지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 옌롄커는 중국의 중견작가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이 작품은 그의 자식세대인 팔링허우(八零後) 즉 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생존의 기록이고 살아있기에 기억을 하고 그 기억은 역사의 한 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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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작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표지 사진. 고도성장함에 따라 그 국가적 위상이 현저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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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중에서도 아버지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가 한때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대개 가부장적인 권위에서 오는 것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곧 법이었고 실천해야 하는 행동강령이었으며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서서히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예전에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 날 문득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과, 초라한 어깨만을 간직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게 될 때, 오래전 왜 그렇게 유치하고 철없는 행동으로 일관했을까 하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회상을 떠올리며 간혹 울컥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듯, 때로 격노하는 호랑이처럼 무서웠고, 말없이 묵묵하기만 했던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조용히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중국이 격변의 시기를 딛고 경제적으로 한창 낙후되어 있던 20세기 중반의 시절, 가난하고 힘들었던 환경 속에서 작가가 자라온 성장과정의 일부와, 당시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야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이제 다시는 면전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을 향한 부성애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 이다. 소박하고 담담한 필체로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의 여운을 가슴 깊이 전달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책 속에서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 그에게 있어 가난한 농촌에서의 생활은 자신에게서 일종의 숙명이자 체념의 대상이었고, 반면에 도시에서의 삶은 그가 이루어내고픈 하나의 꿈이었던듯하다. 초등학교 때 도시에서 전학 온 여자아이와 우연하게 짝이 되었던 경험을 통해,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자신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짝의 모습을 보고 처절하게 무너진 자신의 자존심이 그렇고, 지금의 그의 글쓰기가 된 바탕 역시 당시 소설 하나 잘 쓰는 것만으로도 도시에서의 삶을 구가 할 수 있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에서는 자신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던 작은누나를 대신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결국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가난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어 농촌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군대였음을 감안 한다면, 가난은 그에게 가장 혹독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를 회고하는 부분에서 그는 정직하게 인생을 살아 갈 것을 자식들에게 주문하고,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아버지가, 젊어서 가볍게 여겼던 천식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보다 일찍 돌아가신 부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잔득 묻어나 있다. 큰 누나가 불치병을 앓으면서 아버지가 사방팔방 다니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해야 했고,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와집을 서둘러지었던 것도, 바로 결혼한 자식들을 위해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해주기 위했던 것임을,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자식의 안위를 위해 도모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살아생전 다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적잖은 후회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인간은 누구나 다 존엄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일깨워준 큰 아버지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삶과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삼촌과의 애틋하고 각별했던 관계가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의 자신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회고함에 있어 느끼는 감정들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러 엄격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을지언정, 그 밑바탕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한없는 자애로움이 간직되어 있음을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전달되어 오는 것은, 아버지와 가족을 향한 애잔한 그리움을 사실적으로 담은 작가의 호소력 짙은 글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더불어 효와 관련한 동양적인 정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철없던 시절 우리들은 장차 미래의 일을 감안하여 현실을 판단하기보다 당장 급한 현실의 일이 중요했고, 그래서 내일 세상이 어떻게 될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은 반드시 해야만 했던,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반항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 그런 경험들이 간혹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식의 마음을 이해해도 우리 자신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보긴 전까지는, 그 깊은 속마음을 깨닫기는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우리가 부모가 되어 당시 그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우리의 부모는 늙고 병들어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더 엷어져 가는 요즈음인 듯하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오늘 우리가 있기까지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무한히 베풀어 왔던, 우리들 부모의 모습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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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아빠’는, ‘엄마’와는 또 다른 전율을 일으키게 하기 충분한, 그런 사람. 아빠와 나는, 그렇다. 여느 다정한 부녀지간 부럽지 않은_ 그런데, 그게 우리 가족만 느끼는 것이 아닌, 타인의 눈을 통해서도 따뜻한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가보다. 지금 나와 함께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분은, 날 처음 만나고 정말 우연치 않게 우리 부모님을 뵈었을 때, 내가 아빠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그게 참 신기했다며, 자신에게는 그렇게도 안하면서,라는 질투 아닌 질투를 종종 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는, “정말 배RR네 아빠님은 배RR가 없으면 못 사실 것 같아. 배RR도 마찬가지고.” , “나도 배RR같은 딸이 있다면, 퇴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갈텐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게 당연한 부녀지간임에도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게 가끔은, 괜히 머쓱해지기도 하고,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거. 여담이지만, 오죽하면 내 이상형이, 우리 아빠랑 같이 목욕탕을 갈 수 있는 남자,겠는가 말이다. 때마침 작품을, 나의 이직문제에서 보이는 아빠와 나의 뚜렷하게 상반된 견해 때문에 가뜩이나 토라지기 일쑤였던 나날이었을 때 손에 잡았었다. 내 아빠한테도 이렇게, 툴툴거리는데 남의 부자지간을 봐서 뭣한담. 했지만, 작품을 읽으며 깨닫는 바에, 내가 아빠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마자 바로 읽었더라는 것.
처음 학교를 들어갔을 때, 남들과 다르게 (서양 인형처럼 생긴) 도시에서 온 예쁜 여자아이에게 1점차로 2등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 기분좋은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음 시험을 마음에 드는 여인과의 혼인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린다. 드디어 기말고사를 보는 날,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야릇한 사랑 같은 흥분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기다리지만, 그해부터 시험 방법이 바뀌어 마오 주석의 어록 다섯 구절을 외우면 2학년으로 바로 진급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단 1점차이로라도 도시에서 온 여자 아이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도시와 농촌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빈부와 귀천의 차이를 일깨워주었으며 태생적인 도시와 농촌의 편차를 인식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영원히 농촌의 대지를 벗어나고 싶어했던 시발점이었고, 영원히 넘을 수 없었던 그 1점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편차였기에 그는 더 집착했을런지도 모른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둘째 누나와 그, 둘 중 한 명은 남아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아버지는 이야기하셨고, 둘재 누나는 그에게 고등학교 진학을 양보함으로써 자신을 희생한다. 하지만, 큰 누나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약간이나마 돈을 벌어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끝으로 학업을 접고, 작은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신샹 시멘트 공장에서 사촌형 수청과 함게 일을 하면서도 그가 가진 욕망, 글쓰기는 놓지 못한다. 후에, 군대 간부의 도움으로 자신의 원고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장거리 전화를 걸어온 형의 대답은_ “롄커야, 네가 입대한 뒤에 어머님이 매일 밥 하느라 불을 땔 때마다 네가 쓴 소설 원고를 불쏘시개로 써버렸어. 몇 쪽씩 찢어서 불에 태워버렸지.”
‘아버지’는, 그, 저자에게 죄업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전쟁 기간에 병으로 쓰러지신 것은 내가 농촌을 벗어나 군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대목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실재로도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은, 연말에는 농토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는 것. 오로지 그 하나였던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16밀리 영사기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해주는 장사가 유행했는데, 영화를 한 편 상영하는데 드는 비용이 10위안이었다. 그의 수중에는 17위안이 있었지만, 그의 쩨쩨한 성격, 절약 정신, 그리고 당시의 가난한 형편이라는 것도 있었겠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효성과 사랑을 몸에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한 우리 집은 좋은 세월을 보내기 어렵다.’는 사악한 생각이 똬리를 트는 것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재촉한 것,이 원인이라 말한다.
작품이, 내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은, 그와 나의 나라가 다르다,는 까닭이 아니라 그저 중국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내게, 그의 시대상이 오롯하게 다가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오다가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것은 아니냐,와 직결된다. 그래서, 소설인 줄 알았던 작품이 에세이임을 알아차렸을 때, 내심 걱정되는 것을 그대로 노출시켰던 것이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접할 때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깊은 울림이 있는데, 그걸 느끼지 못할가 두려웠던 게지, 싶다. 그래서, 전에 접했던 「딩씨 마을의 꿈」을 너무 괜찮게 읽은 터라, 작가를 관찰해보자,에서 시작된 책 읽기였음을 고백한다.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 중에서, 그리움보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렇게 작품을 내어서라도, 아버지에 대한 죄업을 씻을 수 있었을까. 늘 그렇지만, 부모에 대한 마음은, 정성을 다해도 모자라다는 것. 아니, 정성을 다 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모자라다는 거. 그래, 그렇지. 서평을 쓰는 오늘은 아빠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지금 전화를 걸어야겠다. 지금은 집이 아닌 밖에 나와있어서 더 마음이 무겁지, 싶다. 오늘도 감사하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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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이 혼재된 방대한 서사를 쓰는 옌롄커가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어느날 여동생이 우리 집안에 대한 얘기도 써보라는 말에 옌롄커는 ''순전히 우리 아버지 세대의 쌀과 땔감, 기름과 소금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중국 최고의 문제 작가이며 금서가 된 책이 수두룩한 옌롄커지만 이 책은 당당히 '2009년 중국 10대 도서', '2009년 중국 30대 필독서'다. 아버지, 큰아버지, 넷째삼촌의 삶을 중심으로 1950~1970년대 중국의 고단한 삶을 살았던 모습들을 소설이 아닌 진솔한 사실 이야기로 들려준다. 아버지 이야기는 소설속 이야기들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 아버지가 오히려 소설속 주인공 같았다. 큰아버지의 말씀은 주옥같다. ''젊어서 열심히 일할 때는 항상 삶과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라. 그러다가 늙어서 질병과 고독이 찾아오면 이번에는 죽음과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할 게다. 죽음이라는 것이 사실은 매 시각 그림자처럼 너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그렇다고 죽음이 항상 널 따라다니는 사실을 매일 기억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넷째삼촌 이야기에는 ''도시 사람들은 '세월'을 '삶'이라 부르고 시골 사람들은 '삶'은 '세월'이라고 부른다.'' '이터우천'_ 시골 출신이면서 아내들은 전부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짓고 있는 도시 노동자의 애환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옌롄커 문학은 '생존과 존엄'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에세이에서 더 깊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중국 문단에서 옌롄커는 항상 '시대와 불화 하는 작가'로서 호치(虎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원인은 그가 소설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예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현실을 마주하여 모든 사회적, 정치적 금기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을 죽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꿈 이야기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다른 작가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옌롄커 문학의 고유한 서사 전략이다.'' 이 책은 소설이라고 우길 수 없어서 눈물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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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작가라는 사실에 책을 펼쳤다. 대표작으로는 <흐르는 세월>, <물처럼 단단하게>, <즐거움> 등이 있으며 문학상 20여 개를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책표지의 이미지가 건네는 색채의 묵직함은 읽고 있는 에세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 에세이를 집필하게 된 동기와 이유들부터 떠오른다. 5장으로 구성되며 아버지, 큰아버지, 넷째 삼촌에 대한 이야기가 흐르는 책이다. 힘겨운 노동이 하루의 전부였고, 가난했으며, 배고픔이 언제나 떠나지 않는 농민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혁명이 이들의 세월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작가의 시선과 경험들이 회고하게 한다. 도시에서 온 지식청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와 모순, 부조리까지도 책은 어린 작가의 기억을 통해서 전하고 있다. 특히, 여자 지식청년의 손에서 전해진 종이에 쌓인 부침개 사연은 강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도시와 농촌의 불평등을 직시하게 된다. 어린 학생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동기, 농촌을 떠나야겠다는 동기부여는 처절한 핏빛 사건을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 농민이 범인이며 처형되고, 도시 지식청년이 범인이면 금품 배상으로 무마하는 부조리를 똑똑히 목격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연할 정도로 굶주림과 극한 노동의 반복은 쉼 없이 이어질 뿐이다. 농촌의 가난과 배고픔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극명한 빈부 차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목도된다. 이 작품에서도 마주하려니 가슴이 답답하면서 안타까움이 내내 흘렀다.
배우지 못하고, 글을 모르지만 아버지 형제들의 근면성과 절약, 인정이 흐르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대지가 보여주는 순수함과 소박함까지도 놓치지 않게 한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그 누군가는 배움을 포기해야 하고, 땅을 위해 일해야 하는 운명 앞에 놓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도 책에서 만나게 된다. 도박이 주는 엄중한 경고도 이 책은 전한다. 두 자녀를 먼저 보내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나날들도 책은 전하고 있다. 삶의 고통이 얼마나 진했으면 살았으면 고생만 더 하였을 거라면서 먼저 떠난 자식을 그렇게 가슴에 묻는 사연도 만날 수 있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유일하게 부족하지 않았던 것... 세대가 내려주는 온정과 보살핌이었다. 211쪽
무엇 하나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은 없었다. 긴 작품을 집필하고 군대를 간 저자는 자신의 작품이 어머니의 불쏘시개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듣게 되지 않는가. 가난을 탓하고, 굶주림을 탓해야 하는 나날들은 멈춤이 없었던 세월들이다. 이터우천(장기간 떨어져 사는 부부 지칭하기도 한다)에 대한 내용도 알게 된다. 도시와 농촌의 틈새에 끼워서 살아온 넷째삼촌의 인생 이야기와 마지막 사고의 순간까지도 놓치지 않게 한다.
아버지 형제들 세대가 인생의 목표를 삼으면서 살았던 그것들이 무엇인지도 공통적으로 만나게 된다. 작가가 삶과 세월에 대해 사유하고 통찰하는 글 중에서도 남자와 여자를 비유하는 문장들도 꽤 흥미롭게 사유하게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살아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사유하고 정리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322쪽)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다시금 정리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게 된다. 온정과 보살핌이 가지는 온유한 미덕의 아름다움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탕과 콩엿이 가졌던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서도 언제나 배움은 전해진다. 그 배움을 이 책의 에세이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작가의 에세이에 등장하는 많은 상황들과 사건들이 바로 삶을 바라보는 진중한 시간들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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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왠지 눈물이 글썽거려진다. 늘 가족을 위해 일하시는 아버지의 무거운 뒷모습이 느껴지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는 2009년 중국 최고의 감동 스토리를 안겨준 옌롄커의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고난의 세월 속에서 굶주리고 가난했던 현대중국의 아버지 세대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좁혀질 수 없는 괴리감, 병에 걸려서도 가족들을 위해 온몸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삶의 모습들... 마치 우리나라 60년대와 70년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읽어내려 가면 갈수록 순수함과 소박함, 솔직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농부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아주 진솔하게 그려내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깊게 인상이 남는 구절이 있었다. 노동과 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농부 아버지들의 진정한 마음을 알게 되는 작가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 아닐까~ 가슴 한켠이 짠해진다. 왠지 모르게 어렵고 어색한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많이 표현하고 싶다.
"나는 노동과 땅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에 생존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농민에게는 인생에서의 모든 고락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모든 것이 노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땅과 노동이 농민들 인생의 모든 고락의 근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p.92-
"아버지가 된 그날 그 순간부터 각골명심하게 된 가장 크고 엄숙한 책무는 아이들의 위해 몇 칸의 집을 지어주고 딸들이 시집갈 때 필요한 혼수를 준비해주며, 아들딸들이 시집 장가를 가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으로 뜻을 이룰 때까지 살아남아 이 모든 것을 직접 목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거의 모든 농부 아버지들의 인생의 목표이자, 심지어 유일한 목표였던 것이다." -p.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