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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지는 많은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판단의 어림법(judgmental heuristic)을 사용하는 것이다. 판단의 어림법은 정신적 지름길이다. 휴리스틱(heuristic)은 ‘찾아내다’ ‘발견하다’는 뜻의 그리스 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로,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풀기 위해 쓰는 주먹구구식 셈법이나 직관적 판단, 경험과 상식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즉흥적인 추론을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풀어내는지 설명하는 진화 혹은 학습에 의해 심어진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 작동하지만 지각편향이나 시스템적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다니엘 카너먼에 의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지만 원래는 노벨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몬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거르드 기거렌저는 어떻게 발견법이 지각편향을 만들어 내지 않고 보다 정밀한 판단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2002년 다니엘 카너먼과 쉐인 프레데릭은 처리하기 힘든 복잡한 목표속성을 곧바로 마음에 떠오른 발견법적 속성으로 바꿔서 판단하는 속성 바꾸기(attribute substitution)가 자각 없이 작용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이는 또한 사람들이 평균회귀에 반하는 결정을 왜 내리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벽에 부딪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컴퓨터에는 휴리스틱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아주 조금의 정보를 가지고도 판단을 내리는데 반해 컴퓨터는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음에도 어이없는 판단을 내리기 일쑤다. 예컨대 한 여자가 세 명의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나면 이 여자는 남자라는 생물 전체에 대해 어떤 통찰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만약 네 번째 남자에게 또 배신을 당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은 남자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자를 비난하게 되는데 바로 그 이유가 인간에게는 휴리스틱 알고리즘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컴퓨터에게 70만 명의 남자에 관련된 데이터를 입력시킨다고 해도 컴퓨터는 남자라는 생물에 대해 알기 힘들 것이다. 구글은 이런 문제를 통계를 통해 해결했다. 구글 통역기의 정확도가 늘어나고 검색 성공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구글의 컴퓨터가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엄청난 양의 정보 중 통계적으로 가장 적합한 대답을 하는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글은 본질적으로는 휴리스틱 알고리즘을 포기했고 다른 방식으로 휴리스틱을 성공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 시험이나 퀴즈 프로그램에서 답을 할 때 둘 중의 하나가 답인 경우가 존재할 때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답의 논리성을 찾아내려고 생각을 거듭하거나 기억을 하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그리고 둘 중 나중에 답이라고 생각한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를 듣거나 보자마자 생각났던 답이 정답일 확률이 훨씬 높다. 이것도 일종의 휴리스틱인데 인간은 순간적인 판단이 빠른 사람들이 생존해 왔다. 사냥을 나갔을 때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이나 지연된 판단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정보의 양이 적을 때나 빠른 판단을 요구할 때 자연스럽게 휴리스틱이 작동된다. 진정한 문제는 이렇게 유용한 휴리스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가 윤리적 결단을 할 경우나 윤리적 판단을 할 경우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나 다른 사회, 혹은 미디어를 통하여 교육을 받아왔다. 그 중 많은 일들은 당위의 법칙을 바탕으로 하는데, 어느 순간이 되면 그런 일들을 왜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게 된다. 그래서 그런 당위의 이유에 대해 질문 받았을 경우 당황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런 당위도 일종의 휴리스틱인데 그런 당위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유용하고 편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위를 받아들인다. 흄에 따르면 당위는 원래 사실에 의존하고 있다. 즉 당위가 옳게 되려면 사실도 옳아야 한다. 문제는 세월이 지나면서 사실이 옳지 않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컨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 아이의 한 행동으로 나머지 것들을 짐작할 수 있다는 휴리스틱이다. 수학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아이는 국어나 과학 시험에서도 과연 부정행위를 할 것인가? 보통의 어른들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각각의 부정행위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원래 착하다고 평가받는 학생은 부정행위를 하고 나쁘다고 평가받는 학생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 이제 사실이 틀렸으니 당위도 부정되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이 건드리고자 하는 문제는 철학이나 윤리학에서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편견이나 휴리스틱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 독자를 헛갈리게 만든 다음에 조심스럽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당신은 몇몇 동료 탐험가들과 함께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길이고, 뚱뚱한 남자가 무리를 안내하던 중 동굴 입구에 끼이는 바람에 나머지 사람들도 동굴 안에 갇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동굴은 물에 잠기고 있고, 지금 빠져나가지 않으면 뚱뚱한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익사하게 된다. 그런데 동료 중 하나가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있어서 그걸 사용하면 뚱뚱한 사람을 폭파시켜 동굴 입구를 열 수 있다. 당신은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최근에 실시된 연구 조사에서는 응답자 대다수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 119쪽 응답자들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들의 사고는 공리주의적 성격이 다분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명쾌한 단순화를 원한다. 철학이나 윤리학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철학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고 한다. ‘돈 많으면 장땡’, ‘무자식이 상팔자’ 같은 표현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미니멀리즘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여러 방면으로 사고하고 각각의 사고 방법의 허점을 찾아내서 더 완벽하게 하는 것이 과연 어떤 효용이 있는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의문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간을 지금까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게 만든 휴리스틱에 의문을 표시하고 태클을 걸며 사람들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물론 앞으로의 삶의 대부분은 휴리스틱에 의존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휴리스틱으로 해결하는 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의 소수의 철학자들이 그 재앙을 미연에 방지해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책에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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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목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과 콰메 앤터니 애피아교수의 저서 <Experiments in ethics; 윤리학에서의 실험>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윤리학의 배신>이란 제목을 달고 우리에게 소개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여러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와 좋은 삶을 영위하고자 애쓰는, 평범하지만 사려 깊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나의 전문 분야인 철학적 윤리학과 연관시켜 설명해보려는 시도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이 아직은 초기단계이던 과거에는 아무래도 관념론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철학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지만, 점차로 실험을 통하여 추론한 가정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끈기 있는 관찰이나 정확한 실험, 또는 관찰과 실험을 통한 엄격한 추론으로 얻어낸 결론”을 거쳐 모든 진정한 발견이 이루어진다.(17쪽)“고 하는 토마스 리드의 주장은 근대적인 철학의 개념을 정리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가 정리한 리뷰는 <윤리학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번역서가 담고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인용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윤리학적 실험들로 인해 전통적인 도덕철학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일부 전통적 도덕철학자들은 도덕의 영역이 과학 분야와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과학으로 인해 도덕적 추론의 권위가 흔들린다고도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 행동의 다양한 실험과 심리적 연구들이 윤리학을 보다 풍요롭게 하며, 윤리학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미분(微分)되어 쪼개져 오던 학문들이 깊이 파고들 수는 있었지만, 다른 영역과의 상호 연관성을 그려내는 데는 전혀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고, 요즈음에는 미분화되었던 학문들을 적분(積分)화해서 큰 틀에서 조감해보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주제인 까닭에 집중이 쉽지는 않았지만,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실헝방식들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고, 또한 자연과학을 전공한 탓인지 “철학적 윤리학의 목적은 에우다이모니아의 과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독으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심리학과 경제학부터 인류학, 사회학에 이르는 모든 도덕과학의 지원이 필요하다. (…) 이 세상에서 철학적 윤리학의 역할은 (…) 그것이 우리만의 일상 속 실험에 기여하는 정도만큼, 오랫동안 간직해온 그 학문적 포부를 향해 조금식 다가선다. 단지 좋은 삶을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좋은 부분을 지속시키기 위해.(237~238쪽)”라는 저자의 결론이 쉽게 다가옵니다. 역시 사족입니다만, 18쪽 “~스탠리의 <철학의 역사>는 1650~1660년대~”의 오자인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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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자마자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사회는 일정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가 갖는 생활방식에 따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윤리학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관한 여러가지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학의 배신]은 그런 윤리학에 대한 이야기 뿐만아니라 도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윤리학과 도덕의 출발선인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만들어가야 할 삶이 있고, 우리는 우리 삶을 함께 만들어간다.’ 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도덕(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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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동의 도덕적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하는 판단이 맞을까? 사람들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선택의 다양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물음에 답해야만 우리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음에 대한 답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부분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나 사회적 규범 속에서 그 답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자신의 가치와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갈등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사람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인식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분명 기준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판단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도덕적 판단의 근거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으로 철학, 심리학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연관 학문으로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이 있다. 이들 학문의 탐구영역은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였다. 즉 환경에 반응하는 인간의 행동을 실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의 발현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의 여부이다. 이 책 ‘윤리학의 배신’은 바로 그러한 학문의 탐구과정에 대한 결과를 담았다. 부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윤리적 판단을 실험하다’처럼 다분히 그 목적이 그간 인간에 대한 이해에 다른 결론을 도출하게 될 위험성을 농후한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이 행위에 대한 근거로 드는 윤리적 직관이 사실은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새로운 경험적 도덕 심리학이 아주 오래된 철학적 윤리학의 과제와의 연관성’에 대한 고찰이다. 바로 ‘성격에 대한 고정관념’, ‘자신의 윤리적 직관’을 의심하라!’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가 다양한 실험을 실례로 들어 인간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며 결정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윤리나 도덕으로 여기는 가치가 단지 성격이나 직관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심리적 요소가 개입된 결과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이는 전통적인 도덕철학과 저자가 주목하는 실험철학 간의 대립 양상을 보인다는 시각을 추가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 양상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윤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으로 작용되길 바라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실험적 심리학의 관심분야인 인간의 도덕성의 시작에 대해 인간의 도덕적 감정의 기저를 이루는 반응양식으로 조너선 하이트와 그의 동료들의 다섯 가지 모듈을 제시한다. 그것은 동정심, 상호주의, 위계, 순수, 외부인과 성자(내집단과 외집단) 등이며 이를 통해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실험들은 우리의 윤리학적 사고와 직관, 그리고 인류의 번영 혹은 행복과 관련된다. 바로 실험철학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들은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무엇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의 근거를 명확히 알 수 없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선택에 의해 완급 조절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실험은 그 알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의 한 방법일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들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용하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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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선생은 두 부류가 있는 법. 도덕과 미덕을 설파하는 이상주의자와 마키아벨리식 생존술과 성공법을 가르치는 현실주의자. 공자왈 맹자왈하는 경전들과 철학자의 텍스트는 이상주의를, 역사서에서 습득한 처세술이나 진화심리학과 인지심리학의 실험실에서 내놓은 결론들은 현실주의를 지지한다. 군자와 덕을 말하는 이상주의는 한물 갔기에 대개 '샌님'이나 '꼰대'라는 표현을 써서 이들을 비웃곤 한다. 우리 시대의 통속도덕은 마키아벨리즘과 '금메달리즘'을 혼합해 놓은 현실주의다. 대중들의 윤리도덕은 전통적인 윤리학 텍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이 가르쳐주는 현실주의 이론에 입각하고 있다. 콰메 앤터니 애피아의 《윤리학의 배신》(바이북스, 2011)도 이런 이중성을 잘 파악한 듯 하다.
원제는 '윤리학의 실험들'인데 국역본은 '윤리학의 배신'으로 옮겼다. 여기서 '배신'은 '기만'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안락의자형 철학자들이 옳다고 간주한 도덕적 판단에 대해 실험실의 자연과학자들이 그 과학적 타당성을 약화시키는 해석을 제시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철학적 윤리학이 과학적 진실을 기만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배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자연과학의 실증적 기술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도덕윤리에 대한 실험 결과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철학적 윤리학을 폐기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철학적 윤리학의 '과장된 희망'과 실험철학의 '근거없는 두려움' 양자 모두 경계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상과 현실, 미덕과 실험을 모두 아우르는 통섭적인 도덕과학을 주창한다.
"철학적 윤리학의 목적은 에우다이모니아의 과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독으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심리학과 경제학부터 인류학, 사회학에 이르는 모든 도덕과학의 지원이 필요하다."(237쪽)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윤리학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루는 학문이고 그 목적은 '에우다이모니아'이다. 보통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이라 번역되는데 저자는 '좋은 삶' 혹은 '번영'이 보다 적절한 의미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윤리학의 핵심 과제는 우리 각자 '좋은 삶'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이처럼 에우다이모니아를 철학적 윤리학의 목표로 제시함으로써 저자는 실험과학이 뭐라 하던 사랑, 자유, 평등, 정의, 행복, 평화 같은 이상적 가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삶이 과연 무엇인지 보편적으로 합의된 정의를 내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저자도 이에 대한 정의 자체는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하지만 에우다이모니아가 인종, 국적, 종교, 성별, 성적 취향 등 사회적 정체성과 더불어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도덕과 윤리를 둘러싼 전통적인 철학적 윤리학(덕 윤리학)의 시각과 근대 실험철학의 시각이 보이는 차이점이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철학적 윤리학은 묘사주의(기술주의) 방법론으로, 실험철학은 인과적/역사적 방법론으로 정위된다. 이는 해석학적 방법론과 경험주의적 방법론의 전형적인 대립과 같다. 철학적 윤리학, 다시 말해서, 미덕 윤리학(역자는 '덕 윤리학'이라 번역)과 실험철학의 결론은 서로 배치되는 측면이 많다. 예컨대 미덕 윤리학은 미덕을 항상적이고 일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를 전체주의 관점이라고 한다. 반면에 실험철학은 미덕을 언제나 상황적이고 가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를 상황주의 관점이라고 한다. 상황주의는 우리의 윤리적 직관이 주로 상황적인/환경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확증편향이나 틀 효과, 전망이론 등이 바로 이런 상황주의 주장을 지지한다.
미덕 윤리학의 보편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행동이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여긴다. 즉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성격이 좋기 때문이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성격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실험심리학의 상황주의에 따르면, 행동으로 덕의 유무를 판별할 수 없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본질적인 유덕한 사람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임의가변적이다. 실험과학은 도덕을 성격이나 직관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과 모듈이라는 심리적 기제의 문제로 간주한다. 가령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도덕적 감정의 기저를 이루는 반응 양식으로 동정심 모듈, 상호주의 모듈, 사회적 위계 모듈, 순수와 오염 모듈, 내집단과 외집단 모듈 이 다섯 가지를 언급한다. 각 모듈은 특정한 도덕적 감정과 관계가 있는데 동정심 모듈은 관심과 염려를, 상호주의 모듈은 정의의 감정을, 위계 모듈은 존중과 경멸을, 순수와 오염 모듈은 혐오감과 역겨움을, 내집단과 외집단 모듈은 경외심과 무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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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홀로 존재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가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또한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자신과 타인을 위한 최선적인 행동일지를 판단하여 살아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보다 우선하여 타인의 이목을 의식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합목적성에 맞게 자신을 조절해가거나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최선적인 행위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하는 점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이나 윤리학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뱉어 버린 말이나 행동에 의해 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종종 남기곤 한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이를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인간은 오래전부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규정짓고, 그 기준이 되는 것을 도덕으로 삼았던 것이며,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고라는 큰 틀을 이루어 낸 것이 바로 윤리학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부터 민주화와 산업화에 힘입어 우리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화되기 시작했고,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관한 실증적이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도덕철학이론으로 충분한 해결해주지 못하는 윤리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통도덕철학이 차츰 축소되고 있는 오늘의 현상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철학적 윤리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윤리학은 도덕적인 판단과 선택 그리고 그 기준에 관하여 탐구하고 분석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우리가 윤리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통하여 지속적이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전통적인 도덕철학은, 오늘날 다양하게 표출되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윤리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애매모호함을 주기도 해서 우리의 철학적 사고에 혼란을 주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러한 원인에는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예전과 달리 오늘 우리의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고 다양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의 도덕적 가치관 역시도 조금은 바뀌어가는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한바와 같이 인간의 행동 패턴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어떤 특정 분야의 학문만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에는 다소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하겠다. 철학을 포함한 우리의 정치, 문화, 사회의 어떤 분야의 것이든 그것의 궁극적인 최종의 목표는 인간의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하나의 도구로서 작용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윤리학이 여러 학문들과 연계한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이 책 저자의 생각과 이를 위한 그의 노력들은, 독자의 입장에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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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학문적으로, 실험적으로, 증거를 들이대주는 작업이라 하겠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1장에서는 학문적 계보를 정리하고 있는데, 철학을 전공한 것도, 그렇다고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 나로서는 조금 어려운 장이었다. 어렵게 1장을 넘어서고 나자, 본격적인 실험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2장에서 부터는 책을 읽으며 자주 기뻐할 수 있었다. 역시, 학문도 계보나 이론보다는 실체적인 연구가 더 재미나고 흥미롭다. 2장은 경험적 도덕 심리학의 사례 연구로, 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3장은 설명과 추론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4장에는 도덕적 감정이 과연 인간의 본성인가에 대해 통찰한다. 그리고 결론인 5장에서는 인간사회에서 윤리학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며 윤리학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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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함께 알아볼수 있었던 윤리학의 배신을 읽어보면서 여러가지 실험사례를 들어보듯이 각 케이스 마다 새로운 생각들을 추가해서 떠올려보게 되었다.도덕적 경험을 알아보면서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들어보게 되었는데 이런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수 있게 되는것이다 인간성이 좋다라고 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좋게 본다는 총괄적인 뉘앙스가 풍겨오는것을 알수가 있듯이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중요시 하면서 나를 중요시 해야 하는지 알수가 있다.철학적 윤리학의 목적은 바로 에우다이모니아의 과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여 결과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자기 혼자만의 독단적인 행동을 할수 없으며 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가운데 우리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 보았다. 나 혼자만의 삶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해 오던 지난 시간들과 달리 앞으로는 이런 윤리학의 목적과 더불어 함께 타인도 생각해야 할거라고 본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를 위한 인생에 다 같이 함께 살아가는 삶이 곧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인간성이 앞으로도 꾸준히 남들에게 인정받을수 있도록 도덕적 핵심이 윤리학과 맞물려 그 목적에 도달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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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윤리학의 배신이 아니라 실험 윤리학 혹은 윤리학에 대한 실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experiments in ethincs'이다. 그리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고려할 때 이 [윤리학의 배신]이라는 한국판 제목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데 있어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내 견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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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윤리학적 실험들로 인해 전통적인 도덕철학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일부 전통적 도덕철학자들은 도덕의 영역이 과학 분야와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과학으로 인해 도덕적 추론의 권위가 흔들린다고도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 행동의 다양한 실험과 심리적 연구들이 윤리학을 보다 풍요롭게 하며, 윤리학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 애피아는 자연주의의 비전을 정교하게 발전시킨다. 그는 이 책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실험철학’ 분야의 지적 계보를 추적한다. 그리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갈수록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여러 실험 연구에 대해 명쾌하고 균형 잡힌 설명을 제공한다. 동시에 고전적 전통의 윤리학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애피아는 종종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실험철학과 전통적 도덕철학의 관계를 경쟁이 아닌 대화의 차원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한 실험철학이 새롭게 등장한 학문이 아니라 전통 철학 그 자체만큼이나 역사가 길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심리학과 윤리학, 직관과 이론 간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조명하는 차원을 넘어 이 책은 윤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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