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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알려진 오페라 중에, <살로메>만큼 소위 내용이 '막나가는' 오페라가 또 있을까. <살로메> 줄거리를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왕비가 왕제, 즉 남편의 동생과 결혼했는데, 세례 요한은 이 결혼이 비도덕적이라 규탄하다 감옥에 갇힌다. 왕비와 선왕의 아들인 살로메 공주는 세례 요한의 존재에 호기심이 동해 요한을 직접 만나본다. 하지만 요한은 살로메가 공주라는 것을 알자마자 부도덕의 산물쯤으로 취급하며 준엄하게 내친다. 그리고 다음 장면, 헤롯 왕은 살로메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살로메가 말한 소원은 자그마치 요한의 목이다. 기겁한 왕은 그 소원을 취소하라고 살로메에게 몇 번이나 말하지만 살로메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요한은 처형되고, 요한의 목이 살로메에게 건네진다. 여기서 살로메가 자길 거절한 데 대해 처절히 응징했다고 말했다면 차라리 일반적인 감성과 그럭저럭 맞았으리라. 하지만 살로메는 요한의 목에 마구 키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난 당신에게 키스했어! 당신은 내가 손대지도 못하게 했지만, 난 당신에게 키스했어!" 덧붙이면 이 오페라의 원작자는 <행복한 왕자>의 작가다....!
대략적인 줄거리에도 이렇듯 극단적인 설정이 가득하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줄거리보다 더 기겁할 만한 세부 설정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헤롯 왕은 살로메에 소원을 들어줄 테니 연회에서 춤을 추라고 말한다. 공적으로는 일국의 공주요, 사적으로는 의붓딸이자 핏줄상 조카에게 무희 노릇을 하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살로메가 추는 일명 '일곱 베일의 춤'은 대개 일곱 개의 베일을 걸치고 있다가 베일을 한 자락씩 벗어던지는 춤이다. 하나부터 끝까지 센세이셔널함으로 가득찬 오페라다. <살로메>가 자극으로 시작해 자극으로 끝나는 오페라의 대명사로 통할 만큼.
이 <살로메> dvd의 공연의 연출은 독특한 느낌을 준다. 의상과 소품만 보면 웬만한 <살로메> 공연은 얌전해 보일 정도로 자극적이다. 맨 마지막에 요한의 목이 나오는 장면만 해도, 보통은 쟁반에 목 모형을 얹어놓고 끝난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목 모형 주위에 피가 철철 흐르며 주변을 숫제 피칠갑으로 만든다. 하기야 dvd 표지사진부터 그 조짐이 보인다. 살로메의 옷을 잘 보면, 붉은 색에 흠뻑 물든 흰 옷이라는 것을 어렵잖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대강 dvd소책자와 사진을 둘러본 나는, 이 공연을 보기도 전에 마뜩찮은 감정부터 품었더랬다. 아무리 내용이 자극적이기도 유명한 작품이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극적인 비주얼만 추구하는 건 안일하고 불편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의미한 극단적 선정성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담?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 <살로메>는 충격적이고 극적인 연출이 연이너 이어지지만, 그것만으로 점철된 공연이 절대 아니다. 이 공연의 연출에서 정말 독특한 점은, 요한의 목처럼 일반적인 <살로메> 공연에서 대충 얌전히 넘기는 부분에서는 더없이 자극적인 연출을 선보이는데, 반대로 일반적으로 아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연출하는 부분에서는 자극적 선정성을 억제한다는 점이다. 살로메가 춤을 추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살로메>에서 살로메는 베일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춤을 추지 않는다. 하지만 몸에 걸치고 있던 것을 벗어던지는 원초적인 동작 없이도, 독특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게다가 무대 세트와 혼연일체가 되는 기발한 연출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렇듯 보통 자극적으로만 연출되는 장면에서 선정성을 억제하여,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으로만 알려진 대목을 보다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낸다. 사진으로만 보면 선정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것 같은 장면도, 실제 공연에서는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고 공연 분위기와 오페라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살로메>는 파격적이되 결코 선정적이지는 않다. 난 <살로메>가 극단적인 설정과 센세이셔널리즘으로만 가득차 있고, 충격적인 발상은 신선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오페라라고 생각했다. 또한, 선정적인 의상과 소품을 사용하면 무대가 얄팍하고 비루해질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 dvd의 공연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 <살로메>는 무턱대고 선정적인 작품이 아니라, 선정성을 강조한 연출로 작품의 메시지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공연이다. 그렇기에 외따로 떼어 놓고 보면 선정적인 부분들도, 이 오페라에서는 얄팍한 선정적 도구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로 융화된다. 충격적인 비주얼에 말초적 선정성 이상의 의미를 녹여낸 연출만으로도 이 dvd의 가치는 충분하다. 여기에 <살로메>의 현역 스페셜리스트들이 총집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화려한 출연진은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절창을 들려주어, 음악적 완성도도 훌륭하다.
<살로메>는 유럽 오페라 하우스 명연 시리즈의 3차분 타이틀 중 하나다. 유럽 오페라 하우스 명연 시리즈는 언제나처럼 기대를 버리지 않는 멋진 완성도를 보여준다. 오페라 정보를 충실히 담은 소책자, 깔끔한 화질, 흠잡을 데 없는 음향, dvd과 소책자의 사진 해상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훌륭한 자막이다. 대본의 내용을 한 줄도 빼뜨리지 않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대화 상대까지 감안해 말투와 어감까지 신경 쓴 자막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공연이 이런 충실한 스펙을 갖추어 지속적으로 dvd로 출시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