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법 두껍고, 그리고 방대한 내용을 자랑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위트 넘치는 문체와 이해에 도움되는 삽화가 틈틈이 있어서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각 국가, 지역을 단원명으로 하여, 내용에서 그 지역의 자연환경, 역사적 배경, 현재의 상황 등을 죽 서술하는 식이다. 역사나 지리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는 내용구성이다. 반면에 이쪽 분야 매니아들에게는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통하여 지리적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호불호가 갈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팁 하나는, 지리부도 한 권을 옆에 두고 책읽기를 권한다(그럼에도 주요 국가 및 도시의 위치를 숙지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딜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저자는 미국 및 유럽 등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인류 이야기> 이외의 여러 유명한 역사 서적을 저술한 역사학자라고 한다. 제목에서는 "지리학"이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전문 지리학자가 저술한 책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리학 책이다. "지표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인문적 환경을 서술한" 서적이기 때문이다. 잘은 몰라도, 저자는 지리학자가 아닐지라도, 역사학을 공부하면서도 지리학 쪽의 수업을 들었던지, 학계 동향에 주목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짜피 두 학문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미국의 유명한 지리학자인 하름 데 블레이는 네덜란드에서의 유년시절에 이 책을 보면서 지리학자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인이다. 그리고 책을 출판한 시기는 1930년대 초반이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1930년대는 어떤 시기였는가?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잠시 세계평화가 오는 듯 하더니, 대공황이 발생하여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위기가 다가오고, 몇몇 나라에서는 파시즘이 팽배한다. 한편 여전히 서구 열강들의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국가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이어지고 있던 시기였다(그래서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은 현재 쓰고 있는 국가명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대륙명 혹은 지역명으로 표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식민지 국가에서 나오는 농산물, 광물자원 등의 자원을 싼 값에 배에 싣고 본국으로 가져와 산업화를 일으키고 공장을 계속 가동시켜 부를 축적하며 다가오는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 일반적었다. 한편 이 시대는 환경결정론적 세계관이 팽배하던 시기이다. 환경결정론이란, 자연환경은 그 지역에 사는 인간에 영향을 주어 문화, 기질 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도 있었던 사상이지만, 18세기 이후 합리주의 등과 결합하여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된 사상이었다. 온대지방에 사는 유럽인들은 자연환경이 좋아서 문화가 발달하였고,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더운 날씨 때문에 게으르고 미개하다는 논리이다. 이는 19세기 라첼에 의해 체계가 잡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제자인 셈플에 의해 미국 학계에서 보편화되었다. 저자 역시 미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였기 때문에, 환경결정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서 어떤 서양인이 굳이 식민지배의 잔인함, 비열함을 폭로하면서 세계의 평화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매우 온정적이고 인도주의적이며, 서구 중심주의를 어느정도 탈피할 수 있는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첫 단원에서부터 현대의 세계시민주의, 혹은 사해동포주의적 시각과 견줄 만한 말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같은 행성에 동승한 존재이며, 우리 모두는 삶의 터전인 이 세계의 행복과 안녕에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 -p.21
이러한 시대를 초월한 진보적인 문구 외에도, 본문에서도 종종 저자의 서구중심적 시각을 넘어선 시선이 드러난다. 서양의 기독교는 동양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동양을 지배하는 것을 은연중에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서술이 있다. 그리고 서구 문명의 번영이 동양 문명의 번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는 부분도 있고, 미국의 서부 개척 과정에서 인디언을 잔인하게 몰살한 것은 미국에서 "감추고 싶은"역사일 텐데, 이를 주목하기도 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환경결정론적 시각을 벗어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환경 또는 문화적 조건을 가진 국가나 민족이라도 다른 역사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시각이다. 스위스와 벨기에는 두 국가 다 상이한 언어를 가진 민족들로 구성된 소국이지만, 스위스는 오랜 기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벨기에는 상호 대립이 극심하다는 예를 든다. 그리고 프랑스는 지형적 측면에서 보면 북해 연안 평원과 지중해쪽 사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지만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로 오랜 기간 존속되기도 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는 비달 블라쉬의 가능론적 시각과도 연관이 있을 듯 하다.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의 모든것을 결정하지는 않고, 인간이 그들의 삶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양인일 수 밖에 없는 시선도 느껴진다. "열대지역의 원주민들은 식인풍습 때문에 인구밀도가 극히 낮다"는 극히 인종주의적인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주민들의 식인풍습은 서구의 탐험가들이 대부분 날조한 기록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리고 결국 피식민지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이들이 예전에는 잘 나갔어도 결국 서구보다 못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결국 결과론적인 서술을 통해 식민지배를 은연중에 정당화하는 것이다. 마치 피식민지 국가와 민족이 불쌍하긴 해도, 결국 이는 서구의 번영을 위해 희생될 수 밖에 없다고 보는 듯 했다. 특히 이 부분은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한국이 희생되는 것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운명이라고 서술하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저자의 시각에서는 서구의 문물을 매우 빨리 흡수하여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는 동양 국가인 일본이 너무나도 장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한국인으로서 이 부분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어쩌면 이 시대의 서구 지식인이 이런 시각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환경에 대한 서술을 보면, 이때는 대륙이동설이 베게너에 의해 주창되긴 하였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아직 학계의 공인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또한 지구의 나이나 암석의 연대측정 기술 등이 발달하지 않아서, 지형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 "격변적"인 홍수나 화산활동에 의해 설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섬들은 과거 대륙 주변의 산맥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서 형성되었다는 부분이 그것이다.(제4기 대륙빙하의 성쇠로 인한 해수면의 점진적인 상승과는 다른, 격변적 홍수에 의한 해수면 변동이라는 시각으로 보인다.)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포괄하기에는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 관심이 가시는 분은 직접 읽어보는 편이 빠를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