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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김정호하면 괴나리 봇짐 메고 지팡이 짚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조선 방방 곡곡을 누비는 그런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것도 있고, 또 그가 백두산을 일곱번 올랐다는 후문이 정설처럼 알려져 있어 그런 것이다. 놀라운 것은 정작 김정호의 신상이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그의 생몰 연대조차 확인된 바가 없을 뿐더러 그의 신분에 대해서도 양반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그마저도 정확하게 파악된 사실은 아니다. 대원군이 그의 지도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의 딸이 감옥에서 죽었다거나 대동여지도가 불태워졌다는 전기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니 차승원씨가 주연한 영화 '대동여지도'가 이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나보다. 창작물인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에서는 김정호를 들여다보고 있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평가하는 것처럼, 신상이나 인생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가 남긴 지도를 통해 감히 김정호를 거인, 그것도 근대를 들어올린 인물이었다고 높이 살만한 근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청구도','동여지도','여도비지','대동여지도' 등이 그가 남긴 작품이고 그중 '대동여지도'는 가히 불후의 명작인 셈이다.
먼저 김정호에 대한 오해 혹은 환상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겠다. 김정호가 백두산을 일곱번 올랐다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었고 심지어 그의 첫 지도로 알려진 '청구도'는 발로 누벼서 그린 지도가 아니라 기존 지도를 편집해서 만든 지도라는 것이다. 요즘 말로 표절한 거라며 혹여 김정호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우선 옛지도에 실려있는 것을 따르되 후고를 기다린다'며 분명하게 밝혔다.
이렇게 대놓고 기존 지도를 활용했음에도 김정호에 대한 평가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 그것은 어떻게 하면 더 정학하게 혹은 더 편리하게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지도를 향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청구도'는 네종류에 '대동여지도' 14첩과 18첩 , 목판본 대동여지도, 두 종류의 '동여지도'와 '여도비지' 등 한지도에 버젼을 달리해 수정하고 보완했다. 필사본 외에도 목판본을 만들어 같은 지도를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어보기 좋게 병풍식 첩형식으로 구성하고, 기호를 사용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지도 외곽선에 10리 간격의 축적을 표시하고,찾아보기 편리하게 표시하고, 산줄기 물줄기표시에 해안선을 단순화하고... 때로는 정확성을 위해서, 때로는 이용자가 찾아보기 편리하게, 때로는 필사하기 용이하게.
그가 위대한 지도 제작자가 된 것은 현장을 직접 누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렇게 각 목적에 걸맞게 더 나은 지도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지속한 것에 있었다. 필자는 이런 김정호를 연구를 멈추지 않는 학자적인 면모로 평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봐도 김정호는 지도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지도에 푹 빠진 지도 매니아로 비춰졌다. 조선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에 기호를 표시하고 그리고 하는 작업은 섬세함을 필요로 했을텐데, 거기에 목판본으로 새기는 작업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니. 비록 김정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지만 그 전문성이나 실용성에 관해서만큼은 최고였다. 지도 천재적 소질과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열정에 학자적 기풍을 겸비한 뛰어난 지도제작자에 출판인이었다.
조선의 국체는 확연히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김정호에게는 전문성, 실용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에너지가 뿜어나고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거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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