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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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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정명섭, 박지선 글 / 배연오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임진왜란시절...병자호란이 떠오르면 한참 인기리에 보았던 '최종병기 활'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과 맞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건주 여진의 누르하치는 서서히 힘을 기르며 다른 여진족들을 정복해 나갑니다. 1648년 누르하치는 후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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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정명섭, 박지선 글 / 배연오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임진왜란시절...병자호란이 떠오르면 한참 인기리에 보았던 '최종병기 활'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과 맞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건주 여진의 누르하치는 서서히 힘을

기르며 다른 여진족들을 정복해 나갑니다. 1648년 누르하치는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명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놀란 명나라가 누르하치를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 조선에도 군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인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강홍립을 지휘관으로 하는 군대를 보냅니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교묘한 전술에 휘말린 명군은 크게 패하고 강홍립을 비롯한 조선군 역시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그때 광혜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은 혼란을 겪습니다.

 

중립정책을 폐지한 인조는 후금과 대립하면서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지원합니다.

이에 후금은 명나라와의 전쟁을 할때 위협이 될수 있다면서 조선을 공격합니다.

3만 대군이 조선을 침략하게 된 정묘호란이 그때 발생합니다.

 

의주성이 삽시간에 함락당하고 평양까지 무너지면서 인조는 강화도로 떠납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 후금에게 세폐를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1636년 청으로 이름을 바꾼 여진족이 다시 쳐들어 옵니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이때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을 떠날 여유조차 없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계속 전쟁이 지면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불과 한달안에 이런 일이 생기고....

인조 임금이 오랑캐인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은건 큰 충격이 됩니다.

 

인조는 관습에 얽매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한나라의 우두머리가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해야 하는지...

그래야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는걸 인조임금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렇듯 새로운 역사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y*****0 2013.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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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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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광해군이 폐위당하고 능양군을 왕위에 올렸는데 그가 인조이다.광해군이 중립정책을 폐지하면서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우며 후금과 대립하면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게된다.  원고 강홍립은 이승에서 섬기던 임금에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위정자들의 무능함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며 인조에게 소장을 내며 이야기가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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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광해군이 폐위당하고 능양군을 왕위에 올렸는데 그가 인조이다.광해군이 중립정책을 폐지하면서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우며 후금과 대립하면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게된다.

 원고 강홍립은 이승에서 섬기던 임금에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위정자들의 무능함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며 인조에게 소장을 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왜 인조가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어야했는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피할수 없는 전쟁이였는지 인조의 무능함으로 인해 두차례의 침략을 겪어야했는지에 대해 풀어내려간다.

 인조는 무능한 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하지만 혼란기에 왕의 자리에 올랐었던 시대적 상황과 애초에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할 의도가 있었다는것을 병자호란이 발발하기전 1636년 4월11일 청태종 홍타이지의 즉위식에서 읽은 제문에서 조선은 정복했다라는 표현이 나왔다라는것을 보면 인조의 무능함과는 관게가 없어보이는 전쟁이였던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병자호란이 끝난후에도 성의있게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고 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지지 않은것을 보면 인조의 무능함이 엿보이기도 한다.아들인 소현세자가 증인으로 나와 아버지인 인조가 전쟁의 책임은 인조라고 증언을하기도한다.

판결문에서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발발책임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침략한 후금과 후금을 계승한 청에 있다고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조선또한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통치권자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책은 광해군과 인조반정,그리고 강홍립이 명의 인질로 잡혀간내용들을 자세히 알수있게 해준다.

치욕의 역사적 사건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던 인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국력을 키우는일이 나라를 지키는일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d******5 2013.08.2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