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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조경 학자라고 한다. 조경....아파트 조경, 공원 조경 당연히 전문분야에 대한 책이겠지 하고 처음엔 주저했다. 그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아는 사람의 추천에도 이걸 꼭 사 읽어야 하나? 내가 살고 있는 옥수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난 조경하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데..그 아는 사람 또한 조경과 아무 관계없는 옥수동 사람인지라 큰 맘먹고 사 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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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많고, 글도 쉬워서 아주 금방, 편하게 읽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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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펴낸날 2011년 6월 24일
1. 옥수동 전쟁이 끝나고 많은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서울로 향하던 시절, 여우도 울었다던 옥수동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꼬(はこ상자)방: 방 하나가 집. 서울시는 자금이 풍족하지 못해 일부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미국 뉴욕의 연방 주택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왔다. 정부와 미국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 ADI Agency for International bevelopment가 보증을 섰다. 반포와 역삼동의 'ADI아파트'로 불리는 아파트는 이렇게 해서 지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있다. 돈을 빌리는 서울시와 돈을 빌려주는 ADI 사이의 갈등이다. 서울시는 현대화의 산목인 아파트를, ADI는 아파트 대신 기존의 주거지를 가능한 한 유지하는 현지 개량 방식을 원했다. ADI는 당시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서울시는 왜 그렇게 큰 평수의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지, 저소득층이 아니라 중산층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 끝에 합의를 본 것이, 옥수동과 마포에만은 아파트 대신 기조의 주거 환경을 그대로 둔 채 기반 시설을 개선하고 집을 다시 짓는 방식이었다.
2. 태국 '빠이' 지리학자 펜 내시 "이 세상 어디에도 원주민은 없다."
3. 인사동 조선시대 인사동이라는 명칭은 없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조선시대의 관인방의 '인', 대사동의 '사'가 합쳐져 인사동이 되었다. 서울의 도로원표는 세종로 광장의 중앙이지만 서울의 중심임을 알리는 표지석은 인사동에 있다. 1920년대 명동과 충무로의 일본인 상권이 커지면서 우리나라 상인들은 점차 인사동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몰락한 양반가들이 가지고 있던 자기나 고가구가 거래되기 시작했다. 현재 인사동의 또 다른 상징이 되는 골목길과 개량 한옥은 일제 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4. 종로3가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곳. 하지만 할아버지들에게 그 곳들의 심리적 문지방은 높다. 그래서 종로에서 종로3가역 계단같이 앉을 곳이 있는 장소만이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의 전부가 된다. 이렇게 어르신네들에 대한 공간적 배려는 인색하다. 그런데 배려가 있더라도 점잖음과 고상을 전제로 한다. 어린이만 놀이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니 할아버지들에게도 그런 놀이터가 있으면 좋을 듯 하다. (good! 투명 베란다의 사진과 위 내용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5. 길음동 - 수레 놀이터
6. 일본 - 시라가 오고 마을 어린이들의 작은 왕국이었던 동네 골목길은 자동차에게 빼앗겼다. 놀이터에서만 놀아야 한다. 앞으로 늘아날 CCTV는 감시자는 되어도 보호자는 되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들을 보고 있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네의 모든이가 감시자를 넘어 보호자가 되도록. (good! 관점의 전환!)
7. 안산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 러시아, 중국, 파키ㅡ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몽골 등 국적도 다양해 대략 58개국에서 온 이들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디아스포라 원래 뜻: 종교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모국에서 추방되어서 곳에서 주변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이주민들. 디아스포라 현재 뜻: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나 다양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 커뮤니티.
8. 찰나의 풍경을 엿보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
9. 도시의 위트
10. 면목동 동원골목 시장 장 보스리야르 [소비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욕망에 따라 소비한다.
11. 원서동 스타우어헤드의 튤립나무 : 엄청나게 크다. 도시의 모든짓은 말을 거는 거다. 우리의 도시공간에서도 다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
12. 신내동 한평공원 우리의 풍경 또한 다양한 삶의 기능들이 얽혀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해야 하는 유기적 복합체이기에 그런 과정의(작은 공간을 다루면서도 주민들과 함께 공들인 시간)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도 풍경이 새롭게 변함을 알리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또 새로운 풍경과 천천히 친해질 기회를 갖는 의식과 절차의 과정이 필요하다.
13. 광화문 광장의 북한산
14. 을지로->맥주의 거리 신당동->떡볶이 오장동->함흥냉면 장충동->족발 남산->돈가스 미사리->까페촌
15. 선유도 공원 (원래: 선유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섬) 선유도 공원은 조선시대의 경승지에서, 정수장으로, 정수장에서 공원으로의 변화를 거쳤다.
많은 이들이 풍경에 참여하고 풍경이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통되는 일.
*옥수동의 사례를 보면 우리의 정부가 서민 정책을 추구한다고 말만하지 실상은 아니라는 점이 조금 씁쓸하지만 시간의 힘일까 이내 익숙하게 넘어가게 된다. 지리학자 펜 내시 "이 세상 어디에도 원주민은 없다."라는 말이 우리나라 주택시장에 너무도 잘 맞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풍경을. 배경을... 살려 대화를 하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나 멋지다. 한 번쯤 읽고 시선을 새롭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