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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전에 봤던 케빈스페이시 주연의 영화 <데이비드 게일>을 보면 성폭행 혐의 때문에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이 나온다. 그의 변호를 맡게된 케이트 윈슬릿이 그가 점점 무죄라고 확신하고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인데, 이 책 역시 구성은 비슷하다.
사형이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짧은기간에 집행되는 텍사스, 이곳에서 열일곱 살 치어리더 니콜 야버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건이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가는 상황에서 경찰은 시민들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흑인 미식축구 선수 돈테 드럼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와 니콜사이의 어떤 관계도, 사건과 관련된 증거도 없지만, 조작된 증거와 증언으로 그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니콜의 남자친구는 돈테 드럼이 니콜과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거짓된 사실을 듣고 질투심에 불타올라 거짓된 증언을 해버린다. 인종차별적 편견에 사로잡힌 배심원들과 그를 기소한 검사와 불륜관계였던 판사는 돈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하고 등을 돌리는 가운데 오로지 단 한사람 사회적약자들을 위해 일해온 변호사 로비만이 그의 무죄를 주장하며 10년동안 항소해 오고 있지만, 아무런 소득없이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사형 집행 일자가 4일 앞으로 다가온다. 결국 사형이 집행되고 나서야, 진범의 얼굴이 방송을 타게 된다. 한 무고한 생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감방에서 10년을 썩게 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오명속에 살아가게 했던 검사와 형사는 사소한 처벌만을 받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대목에서 분노를 터트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체제의 허점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국제적으로 실질적인 사형폐지국가로 분리되어 있지만, 난 사형찬성론자이다. 물론 맹목적으로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아동성폭행및 살인범과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한해서 말이다. 또한 증거가 충분하고, 범죄자의 죄가 확실할때는 그런 인간 말종은 세상에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다시 사형제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에서는 사건의 내막을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고, 드럼이 무죄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언론에서는 경찰이 만들어 놓은 증거와 위증된 증언들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드럼이 범인이라고 이야기 할것이고, TV만으로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그를 파렴치한 살인범이라고 증오할 것이다. 그가 만약 정말 무죄라면?? 그가 정말로 사형을 집행당하고 나서야 진짜 범인이 나타난다면?
항상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편안하고 쉽고 재미있게 읽을수 있는 존 그리샴의 소설이었지만, 이번 소설은 뭔가 교훈을 남겨주는게 있다.전혀 관심없던 사형제도에 대해 한번즘 생각해 주게 만든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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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의미 또한 깊다. 야만국가인 미국에 대한 생생한 설명서. 텍사스 주의 악명높은 사형제도에 대한 현장보고서. 물론 소설이지만 현실 이상으로 느껴진다.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영화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듯하다. 데이비드 게일의 무대는 오스틴, 이 소설의 무대는 슬론으로 지역이 좀 다르지만 모두 미국 텍사스 주의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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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그가 온 목적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해하기 위한것- 9년 전인 1999년 텍사스 주에서 일용직자로 근무하던 중 고교생 치어리더 걸인 니콜이란 여학생을 죽인 범인이 바로 자기란 것. 지금 감옥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인 흑인 미식축구 소년인 돈테드럼은 무죄라는 것.얼마 안가서 범인이 밝혀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도망생활 하던 중 신문에서 사형집행일이 목요일로 다가왔단 사실에 괴로워하다 이제사 밝힌다며, 자신이 그녀를 짝사랑하고 납치해서 강간 후 미주리 주의 자신이 살던 지역 모처에 묻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9년 전 일이고 이미 일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지내다 이제 겨우 가석방으로 행동의 제약을 받던 그의 말을 목사는 반신반의 하지만 그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고 당시의 사건을 조회한 결과 성직자로서의 의무와 보이엇의 고백 자체에 대한 비밀유지라는 상황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한편, 당시의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돈테드럼은 다가오는 목요일로 사형집행이 확정이 되었고 사건 초기부터 형사, 검사, 판사가 서로의 편의와 시체가 없음에도 자백했단 이유하나로 사건을 무마하려는 의도를 파헤치며 법정 투쟁을 벌여온 로비 플랙 변호사는 끝까지 그의 무죄를 위해서 그가 사건 당일 현장에서 그녀를 납치했다고 진술한 동창이자 니콜을 짝사랑했던 조이 캠블의 증언이 거짓으로 진술했단 서명과 증인 철회를 받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던 중이었다. 키이스 목사는 고민 끝에 악성 뇌종양으로 삶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보이엇과 함께 캔자스 주의 경계를 넘어가면 죄인을 도와준 혐의를 받게 된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텍사스 주의 슬론시로 로비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결정을 한다. 간신히 도착해 로비를 만났지만 이미 법조계나 주지사, 연방법원으로 부터 모두 집행 연장기각을 받게 되고 보이엇의 고백은 무두 헛소리로 무마가 된다. 가족들과 참관인, 니콜의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돈테는 사형을 집행당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흑.백간의 폭동은 위험신호를 감지한 가운데, 보이엇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범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로비와 키이스, 방송관계자와 함께 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정확한 기억과 함께 니콜의 유골이라고 추정되는 뼈와 옷, 신분증이 발견이 되고 이는 곧 로비가 당시의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민사,형사 고발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이 된다. 보이엇을 인도하고 돌아온 키이스 목사는 보이엇이 도망갔다는 연락과 함께 그가 다시 한 번 전과의 범행을 보이게 될 시에 자신이 감수해야할 여러가지 상황과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법적인 형벌에 대한 고민으로 휩싸이게 된다. 돈테 엄마의 호소로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되고 그의 무덤엔 그를 기리는 사람들로 기억이 된다. 법을 전공하고 그의 관련된 일을 해온 경험답게 작가는 여러가지 법적인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법이란 누구에게나 안심하고 정의롭게 실현이 되는 도구가 아님을 이 책에서 꼬집어 말하고 있다. 노련한 경찰의 여러각도로 제시된 강압적인 협박과 무 개념의 시간제약을 미끼로 18살의 유망한 미식축구 흑인 소년을 현장에서 봤다는 백인 친구의 진술 하나로 시체가 없음에도 거짓 자백을 만들어내는 과정, 배심원단의 편성을 흑인을 배제한 채, 모두 백인으로만 채워져 이루어진 과정, 거짓말 탐지기가 믿을 수 없단 하에 법정에서 조차 증거로 채택이 안된 상태, 검사와 판사와의 불륜적 행태로 서로가 윈윈하는 법조계의 이중성을 낱낱이 고발한 현장을 이 책에선 자세히 언급을 하고 있다. 법에 대해 전공하고 정의의 여신 앞에서 선서한 순간 그 순백했던 맹세는 서서히 법의 안일주의와 여론에 밀려서 어떡하든 범인 하나를 몰아세워 사건의 해결을 보려는 이중인격자들의 모습을 이 책에선 돈테드럼이란 한 무고한 희생자를 내세워 우리에게 묻고 있다. 누가 과연 돈테드럼을 죽게 만들었는가? 전통적으로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텍사스 주의 법의 룰, 그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끊는 용광로형태로 서서히 달구어가고 있던 흑.백의 대결은 미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기 다른 주에서 행해지고 있는 법적의 헛점과 인종간의 문제를 엿볼 수가 있다. ***** 대체 누가 저들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를 부여했는가? 살인은 분명 나쁜 행동이건만 , 왜 우리는 다른 인간의 생명을 우리 손으로 빼앗는 것인가? - p382 작가의 의도가 포함된 이 글은 사건의 종료 후 모든것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형사,검사, 판사, 주지사, 모두는 제 각기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법을 이용해서 빠져나오려 하고 무고하게 죽은 돈테드럼의 생명에 대한 죄스러움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비열함을 보인단 점에서 울분을 토하게 만든다. (사형당하는 과정과 엄마가 돈테의 옷을 벗기고 씻기는 과정은 울컥하는 맘을 추스릴 수가 없게 만든다. ) 만일 자신의 자녀가, 아니 주위의 친.인척이 그런 상황에 닥쳤다면 이렇게 태평히 그저 법의 망에 운이 없이 걸린 한 사람으로 간주하진 않았을거란 생각에 미꾸라지처럼 명예을 잃는 생활로 돌아간 사람들이라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로비 변호사와 돈테가족의 보상금 처리 과정과 변호사비의 내용에 이견차이로 그토록 가족같았던 사람들이 돌아서게 된 얘기, 키이스 목사가 성직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스스로 행한 행동에 법은 면죄부를 주지 않는 헛점(과연 이런 경우에도 법적인 형량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나라에서 정한 돈테의 위로금명목으로 준 금액이 한 사람의 귀중한 목숨을 가족이 원한 금액보다도 못한 금액을 보상한 대목은 인간의 목숨은 파리보다 못한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들게한다. 다른 책들과는 달이 처음부터 범인을 드러내놓고 그 후의 사건전개 과정을 짚어감으로써 우리에게 과연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법이 정말로 그 모든 소수자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진실로 인종의 편견없이 오로지 죄에 한해서 그 한사람에 대한 죄를 선고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사형제도는 마땅히 중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나, 아니면 돈테처럼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음에도, 증거가 없음에도 유예기간 연장신청을 기각할 만큼 자신만만하게 사형을 치를 만큼 양심의 선을 그어놓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가장 씁쓸한 장면은 키이스 목사 부부가 사형반대 모임에 가입을 하고 열성적으로 그런 모임에 참가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행동을 하지만 어느 날인가 자신도 서서히 현재의 법 개정은 확연히 눈에 뛸 만큼 바뀔 수가 없다고 느껴가는 구절이다. 한 때의 사건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사형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팽팽한 대립은 과연 이 문제에 관해서 누가 책임지고 돌을 맞을 자신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 드류커버 형사, 폴 커피검사, 그레일 판사, 편견에 사로잡힌 배심원들, 진실을 보지 못하는 항소법원의 눈먼 판사들, 머지않아 당신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당신들은 남은 평생 내 생각에 괴로워하게 될 겁니다. -P384 (돈테드럼이 주사약이 들어가기 전 최후의 진술로 한 말.... 그러나 위의 관련자들 대부분 돈테드럼의 말처럼 생각대로 큰 처벌은 받지 않았다는 데서 법의 헛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시종 무거움직한 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실제 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책답게 다음 장면을 궁금케 하여 책을 놓지 못하게 쓰여진 법정소설로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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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그리샴. 내가 처음 접해보는 그의 책인가? 기억이 가물하다. 워낙 그의 작품들은 원작으로 영화화된 작품들도 많기에 조금은 헤갈린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의 이름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이래서 리뷰를 읽고난뒤에 즉각 써야한다는 것을 세삼 깨닮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다른 두 도시, 두명의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의 한 단원씩을 차지한다.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이지만 그 두 인물에게 일어나는 또는 관여하고 있는 두 사건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사형집행이라는 말 그대로 확실한 시간적 데드라인을 두고, 650킬로미터만큼 떨어진 그 둘의 거리에 반비례하여 둘의 만남의 위한 거리가 좁아짐에 따라 극의 긴장감역시 좁혀온다. 서로 안식이 전혀없는 두 주인공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무고한 사형을 막기 위한 노력. 즉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려고자 하는 정의일 것이다. 이런 책의 주제는 단순히 킬링타임을 위한 추리소설(정확히는 법정스릴러물)이 아닌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기에, 뻔한 전개와 뻔한 공식의 근거로 이야기를 풀지만 다른 소설들과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일것이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그 사회적 메세지를 받아들이기에 앞선 정확한 나의 포지션이 어디에 위치에 있는지 입장정리가 필요하였다. 대한민국은 "사형"제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집행은 지난 15년간(1997년이후) 이루어지지 않아서 국제법상 사형폐지국임을 인정받았다. 비록 죄인일지라도 인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흉흉한 세상에 각 가지의 흉악범이나 범죄자들을 튀어 나올때마다 나오는 '저놈들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식'의 여론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입장에 서야하는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한다. 생명의 고귀함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되는 생명은 없음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자비도 불필요하다면 최고의 형벌인 사형이 마땅한 것이다. 허나 그 역시 목숨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생명이기에 쉽지 못하다는 모순의 논제인것이다.
사형에 관한 논제를 제외하고도, 존 그리샴은 583페이지의 짧으면 짧다고 우길수 있는 분량안에 많은 사회적비판을 석어낸다. 인종문제, 권력의 부정적인 모습, 언론의 모순, 공권력의 남용 등. 늘 우리가 인지하면서도 바로 잡기 힘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모습을, 본인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캔사스주의 키이스 슈로더목사 그리고 텍사스주의 변호사 로비플랙을 통하여 정의를 말하고 있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은,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의 해방을 위한 목적으로 독서를 하는 나에게는 좋은 책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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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알게 된 작가이다. 뛰어난 법정스릴러로써 그의 소설이 11편이나 영화화 되었다. 언제나 변호사와 법정이 등장하고 정치인과 어두운 음모가 펼쳐지는 이야기의 중심 사건은 하나같이 모두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들이다. 실제로 변호사와 하원의원이기도 했던 작가의 전문적인 경험에 힘입어서 일까, 법정소설임에도 전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며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그가 다루는 이야기는 많은 논란을 일으킬만한 사회에서 예민한 문제이고 대중들의 관심과 논쟁을 부르는 뜨거운 감자의 성격이다. 이를 시원하고 속도감있고, 재미있고 깊이있게 써내려간다.
사형제도가 있는 텍사스의 슬론이란 작은 마을에서 치어리더인 18살 니콜이 실종된다. 곧 같은 마을의 동급생이자 미식축구 선수인 흑인 소년 돈테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그로부터 9년 후 돈테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사형날이 점점 다가오는데 돈테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과감한 변호사 로비의 피마르는 노력에도 눈에띄는 진전이 없다. 하루 하루가 흘러가고 사형을 앞둔 몇일 전, 한 목사에게 보이엇이란 사람이 나타난다. 자신이 니콜을 죽인 진범이며 뇌종양으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 숨가쁜 순간들이 지나고 보이엇이 변호사 로비가 있는 텍사스에 도착했을때는 사형 몇 시간 전이다. 초를 다툰 상황 속에서 돈테 측의 변호인단은 보이엇의 고백을 담은 비디오 영상을 주지사와 판사, 검사 등에게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동원하지만 그들은 반응이 없다. 사형집행 1시간 전, 30분 전... 과연 진범의 고백이 돈테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사형을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죄를 지은 사람에겐 사형이 응당한 법이자 올바른 대가라고 여겼다. 그 말고 더 정의로운 판결이 있을까. 10년 전 연쇄살인범인 사형수가 아직까지 감옥에서 지내면서 살이 포동포동 쪘다는 이야기는 분노를 부른다. 하지만 책 속의 돈테의 사형은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 사형이 금수만도 못한 범죄자에게 집행되는 것이 아닌, 들끓는 탐욕에 악용되어 무고한 자가 죽었다. 책은 사형제도의 존재가 법의 행사권이 있는 사람들이 뜯어먹는 먹이에 불과하는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단지 술취한 사람의 밀고전화에서 돈테 라는 흑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커피 검사는 본인이 사형선고를 이끌어낸 정의로운 검사가 될 욕망에 불타오른다. 커피의 지시를 받은 카버 형사는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돈테를 끌고와 승진을 바라며 억지 협박과 회유를 한다. 순진한 돈테의 거짓자백은 그를 독방의 사형수로 만들어 놓았다. 주지사는 곧 있을 선거에 성과를 자랑하려는 마음에 사형 1시간 전에 보고받은 거짓증언 전화를 건 조이의 증언철회 요청서와 진범인 보이엇의 고백을 담은 비디오를 무시하고 사형집행 연기를 거부한 뒤 자신의 선거 후원자와의 테니스 약속에 달려간다.
커피 검사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돈테를 증오해온 니콜의 엄마 역시 희생자다. 니콜의 고통에 상관없이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시청률에만 목숨을 거는 방송 사회자와 함께 검사,주지사,형사 모두가 참으로 잔인하고 냉정하다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군중심리다. 사형제도가 허용된 텍사스 주 사람들은 언젠가 있을 사형을 간절히 바랬다. 불운히도 돈테가 사형수가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 민심은 한껏 들뜨고 사형집행에 온갖 사람들이 개떼같이 달려들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상을 위해, 정의를 위해. 한번 선고된 사형의 사법체제는 너무나 견고하고 무겁다. 더구나 미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흑인에 대한 편견의 벽도 높았다.
사형제도는 단순히 범죄자를 벌하는 도구로서 생각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관련인들의 탐심이 얽혀있고. 무엇보다 유죄를 100퍼센트 확신할수 있는 수사의 발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사형이 이뤄지기 까지 200만 달러의 큰 금액이 든다는 사실도 놀랍다. 확실하게 느낀 건 사형제도가 한 번 생겨나면 폐지하기가 엄청 힘들다는 사실이다. 제도가 있으면 반드시 실행되기 마련이고, 돈테같이 무고한 젊은이의 목숨을 앗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된다. 따지고보면 사형은 인간이 내리는 것이다. 때문에 완전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돈테도 자신의 이득에 눈이 먼 사람들때문에 죽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공식적으로 빼앗는 다는 건 어쩌면 신의 권한을 넘어선 행동아닐까.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 확실한 범인의 사형이 제대로 이루지기까지는, 사형이 함부로 부활시키에 너무나 위험한 상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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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릴러 하면 떠오르는 작가, 존 그리샴. 작가 본인이 변호사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항상 법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사회 질서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에게는 위압적인 존재가 되고, 때론 돈과 권력이 법을 지배하는 경우도 보게되는 요즘. 법에 얽힌 인간문제를 고발하고 따끔한 일침을 놓아주는 그의 소설이 있었으니, 독자들의 시선을 휘어잡을수 있는 법정스릴러라는 장르를 확고히 구축한 데에는 그 만큼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책을 읽고나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조금은 진부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 정의는 승리하고 진실은 밝혀진다. <고백>은 인종 차별적 살인죄 조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꼬이고 꼬인 살인죄의 조작으로 인해 무고한 한 생명이 희생되는 사건은 빠른 전개와 강한 흡인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텍사스주의 작은 마을 슬론. 그곳에서 일어난 열일곱살 치어리더 니콜의 실종. 증거도, 시체도, 증인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니콜. 시민들의 불안과 성토를 잠재우기 위해 경찰과 검찰은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던 돈테드럼이라는 흑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사형선고를 내린다. 그가 사형을 선고 받기까지 진행된 소송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음모와 돈테의 거짓자백을 받기위한 부패한 경찰과 검찰의 유도심문, 백인들로만 이루어진 배심원단, 거기에 시장과 주지사까지 개입되어 있다. 그로부터 9년 후, 돈테의 사형집행 4일전. 텍사스주에서 4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캔자스주 어느교회에서는 이 사건의 진범이라며 나타난 트래비스 보이엇이라는 사람이 키이스 목사에게 고해를 하고 있었다. 가석방 상태인 보이엇은 수차례 강간범으로 형을 살아온 무시무시한 범죄자였다. 누명을 쓰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돈테드럼, 니콜을 수차례 강간한 후 살해하고 깊은 산속에 시체를 묻어버린 트래비스 보이엇,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얽혀버린 키이스목사, 돈테의 무죄석방을 위해 9년간 싸우고 있는 로비변호사,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판결에 반감을 품은 흑인들의 폭동까지.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몰입도를 선사한다.
"충격이었어요. 경찰과 검찰이 어떻게 증거를 일부러 감출 수 있죠? 하지만 판사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것 같더군요. 나는 로비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부족할 것 없이 부유하게 살아온 백인 변호사가 우리 오빠의 무죄를 마음 속 깊이 굳게 믿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었어요. 바로 그 순간 마음이 바뀐거에요. 오빠를 다시 믿게 됐죠. 그동안 오빠를 의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247쪽)
인종차별적 살인죄 논란으로 미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O.J심슨 사건과 닮아있는 이 이야기는 다시 한번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던지기도 한다.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비극을 세세히 느껴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권력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돈테드럼. 비록, 이 이야기가 소설일지라도 그가 사형집행전 했던 마지막 진술은 책을 읽는 내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것 같았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은 뒤,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결백합니다.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텍사스주는 저를 9년동안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니콜에게 손 한번 댄 적 없었고,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머지않아 당신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당신들은 남은 평생 내 생각에 괴로워하게 될 겁니다. "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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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니콜이 실종되자 흑인 20살 돈테가 범인으로 몰린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앗음에도 익명의 전화, 돈테와 니콜이 사귀는 줄 알고 시샘을 내던 조이가 허위증언을 한다. 변호사 로비가 9년동안 그의 무죄를 주장하나 주지사는 마침내 사형집행을 결정하는 데.. 목사 키이스에게 성폭행범으로 평생을 보낸 보이엇이 찾아와 자기 가 범인이며 시체유기장소를 안다고 한다. 키이스는 사형을 막아보고자 보이엇 자백 비디오,조이 진술변경서를 받지만 돈테는 사형집행이 되고 나중에 니콜 시체가 발견되고 사후 무죄가 된다.
존 그리샴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평범한 스토리. 한 젊은이을 구하려는 절박한 노력,절묘한 반전, 가족의 슬픔과 고뇌, 인종차별같은 것이 잘 그려져야 하는 데 내용은 지리하다. 최근의 포드카운티와 비슷하고 지루하다. 그냥 사건기록 옮겨 놓은 거 같고. 이젠 그리샴도 재미가 없다. 유명작가가 내용관계없이 name value만으로도 기본 책을 팔 수 있을 때가 온다. 그 시기인 가...이젠 이름만가지고 보지 말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