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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왕후, 후궁, 궁녀... 그녀들의 내밀한 일상을 엿보다. (왕의 여자)
"왕후, 후궁, 궁녀... 그녀들의 내밀한 일상을 엿보다. (왕의 여자)" 내용보기
우리 영화 사상 한 획을 그은 <왕의남자>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나보다. 공길과 장생이 펼쳐내던 풍자와 해학의 광대놀이가 연산군의 호색과 맞물리면서 꽤 욕망의 코드를 건드렸었다. <왕의 여자>는 이런 감정적 대칭점의 제목으로 인해 뭔가 은밀한 관음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어떤 사극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사극은 천민에
"왕후, 후궁, 궁녀... 그녀들의 내밀한 일상을 엿보다. (왕의 여자)" 내용보기

우리 영화 사상 한 획을 그은 <왕의남자>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나보다. 공길과 장생이 펼쳐내던 풍자와 해학의 광대놀이가 연산군의 호색과 맞물리면서 꽤 욕망의 코드를 건드렸었다. <왕의 여자>는 이런 감정적 대칭점의 제목으로 인해 뭔가 은밀한 관음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어떤 사극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사극은 천민에서 무수리로, 그리고 내명부 최고의 품계에 오르며 왕의 여자, 왕의 어머니가 되었던 숙빈 최씨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룬 <동이>였다. 주인공은 최동이였을지라도 사극의 감초는 역시 희빈 장씨이다. 나인에서 후궁을 거쳐 중전에 올랐다가 다시 후궁으로 내려온 그 파란만장의 악역 드라마는 이제 식상하리만큼 많이 봤지만 그래도 그 미모만큼이나 구중궁궐의 치마싸움이 흥미와 호기심을 낳는다.

그런데 지체높은 왕을 모시는 여인은 중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궐이라는 거대공간의 무대가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할려면 어디서나 조연이 필요한 법. 드라마를 보면 각심이, 무수리, 비자, 생각시, 의녀, 궁인, 나인, 항아, 홍수, 상궁, 제조상궁 등 수많은 여인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제대로 그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이 책 <왕의 여자>에서는 이러한 궁궐 안 여인들, 궁궐의 노비였던 궁녀, 왕의 첩인 후궁, 또 하나의 주상이었던 왕후의 실체와 삶을 조명하여 세간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궁녀들의 실상은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왕의 가까이에서 뛰어난 외모로 썸씽을 만들어내는 드라마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천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신분'이 아니라 '공노비' 즉 천민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일반인들은 궁녀가 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했다(33쪽)는 대목이 흥미롭다. 사실 궁궐이란게 권력을 누리는 자에겐 화려한 생활이겠지만 모시는 자의 신분은 일만 있을뿐 '왕과의 하룻 밤'인 승은 承恩을 기대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번 왕의 그늘에 들어온 여인은 죽도록 외간 남자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법이니 인간적인 삶을 생각해 본다면 그저 측은한 인생이다.

바람끼 많은 남정네의 속성상 '왕'의 역할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이쁜 후궁을 많이 거느리는 대목일 듯 하다. 성종이 열한 명, 태종과 정종은 열 명, 정종은 아홉 명의 후궁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궁은 전부 미인이겠지... 하는 통념을 일거에 깨트리는 대목(178쪽~)이 흥미로웠다. 왕의 입장에서는 '예쁜 여인'보다는 '예쁜 왕권'이 더 소중했기에 왕권을 지키기 위해 외면보다는 내면이 충실한 여인을 후궁으로 선발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예쁜 여인만을 후궁으로 선발하면 왕의 '사람 보는 눈'을 의심했다고 하니 왕이라 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중종 때의 홍희빈, 광해군 때의 임소용, 숙종 때의 장희빈 정도가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모양인데 사료들은 이들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하니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한 조선시대 관료들의 이성관을 옳다고 해야하나 이중적이라고 해야하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왕의 아이를 생산하고, 그 아이가 왕위를 계승하길 원하는 그네들의 암투와 눈물이 어쩐지 안스럽기만 하다.

사극 드라마의 꽃 왕후. 최고의 지적 미인이 왕후가 되겠구나 생각하지만 왕비의 간택조건에서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왕실에서 중시한 특성은 '덕德'이었다고 하니 내명부( 궁궐 여인들로 조직)와 외명부(관료들의 아내로 조직)의 수장이자 또 하나의 주상으로서의 품성으로서는 제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나치게 뛰어난 미모는 오히려 왕후(세자빈)가 되는 데 결격사유였다는 점이다. 예쁜 여인에 홀려 낙마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오는 터이니 미모가 왕의 총명을 흐리게 한다고 보는 유교적 여성관이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요즘의 사고로 왕후의 자리를 바라보면 부럽다기 보다는 씁쓰레한 면도 많다. 왕과의 잠자리는 엄밀히 말하면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인을 위한 사적공간이 아닌, 이들의 잠자리 공간을 보좌하는 숙직상궁(최대 여덟명)과 함께하는, 쾌락이 아닌 왕자 생산이란 목적으로 행하는 '공식적인 생산절차'였다하니 그 황망함을 어이 설명하겠는가. 그래도 적서의 구분이 엄격한 조선이었기에 왕후가 나은 자녀는 후궁이 나은 자녀에 비해 법적으로 우월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니 위안은 되겠다.

이 책은 이미 일주일 전에 다 읽었다. 그러고도 오늘에야 이렇게 끄적거리는 이유는 뒷정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으로 기대한 바는 흥미 70, 역사적 자료 30의 비중이었다. 막상 책을 열어보니 역사적 자료 70에 흥미 30의 느낌으로 읽혀졌다. 궁중심처에서 그 역할을 다하는 왕의 여인들에 대한 "다양한 기원, 자격, 선발 과정, 유형, 인원, 직무, 품계, 사랑, 출산 등의 내용을 각종 표와 통계를 통해 제시하여 독자들이 좀더 구체화되고 객관화된 그리고 다양한 그들의 본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솔직히 좀 딱딱하다. 통계표 이런 것은 논문으로서는 아주 좋은 자료이지만 대중역사서로는 그냥 미주 정도의 참고자료로 처리하고, 독자를 더 역사 속으로 끌어당겨 관심을 유발하는 에피소드 테마를 주 흐름으로 하여 궁녀와 후궁, 왕후의 관계를 이끌어내었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잘 정리된 좋은 역사자료이기는 하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는 조금 더 다듬었으면 하는 느낌으로 책을 책장에 꼽는다...



리뷰 총점 종이책
왕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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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한다. 하긴. 어떤 드라마든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 되고, 그 바탕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하고, 극적인 효과를 부여해야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사실은 승자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왜곡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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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한다. 하긴. 어떤 드라마든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 되고, 그 바탕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하고, 극적인 효과를 부여해야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사실은 승자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학창시절에는 몰랐다. 최근 들어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책을 읽게 되고, 패자의 관점이라는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되면서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역사에서든 인물, 즉 사람이 그 중심에 있다. 왕이라는 화려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를 것 같은 권력의 상징. 왕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만 그 왕을 위해 살아간 여자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았다. 남자 위주의 사회에서 드라마에 등장했던 몇몇 여성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왕후, 후궁, 궁녀들은 많지 않다. 이 책을 보면서 왕이라는 자리, 그리고 그 왕을 보필 했던 여자들의 삶이 결코 행복했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럴까?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은 1장 궁궐의 노비, 궁녀, 2장 왕의 첩, 후궁, 3장 또 하나의 주상, 왕후로 구성된다. 몇몇 이야기는 전혀 몰랐던 궁녀들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보다 흥미를 끌었다. 무엇보다 의녀라는 신분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왕후, 후궁, 궁녀, 무수리, 비자, 방자 등 모두 내명부 소속이지만 의녀는 내의원 소석이다. 의녀하면 의원을 떠올릴 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생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사법적 목적(의금부의 하급관리처럼 여성 죄인을 체포하는 일도 했다)을 위해 동원되었다고 하니 다른 궁녀들보다 다이나믹한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통계로 보는 역대 후궁 수(101명),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왕(성종 - 11명), 후궁이 전혀 없었던 왕(단종, 현종, 경종, 순종), 최초 및 최후의 후궁(정경옹주 / 덕혜옹주를 낳은 양귀인) , 황후로 승격한 후궁(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성종의 세 번째 왕후 정현왕후, 장경왕후, 장희빈), 후궁들의 성씨, 후궁의 선발 유형도 모두 재미있다. 왕후 중 ‘이’가 없었던 이유는 조선이 ‘이’씨 나라라는 이유로 꺼렸고, ‘김’씨 성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씨의 성과 상극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럼에도 후궁과 왕후 모두에서 2관왕을 차지한 성씨가 ‘김’씨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한 후궁 들이 예뻤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배신’이라도 하듯 왕들은 내면이(?) 충실한 여인을 후궁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너무 예쁘다는 것은 왕의 총기를 흐리게 하고 일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가 있다나? 또한 왕후 중에는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우습다. 왕후나 후궁을 선정할 때 그 심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인이다 보니 남자가 보는 미인보다는, 같은 여자입장에서 예쁜(?) 사람들이 선택되어 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미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굉장한 미인이지만 사료에서 부정적으로 평가 받은 사람들이 있다. 중종 때 홍희빈(희빈 홍씨), 광해군 때 임소용(소용 임씨) 숙종 때 장희빈이다. 홍희빈은 특유의 미모로 중종을 사로잡았는데 중종과 조광조를 갈라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임소용의 경우는 광해군의 총애를 빌미로 집안의 영광을 구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폐주 광해군의 후궁이라는 이유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장희빈은 ‘미모’ 그 자체가 문제가 된 보기 드문 미인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미모 보다는 남인당을 견제하기 위한 서인당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만약 장희빈과 연관된 남인당이 당시 승리(?)를 했다면 장희빈이 희대의 요부가 되었을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장옥정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안타까워진다. 애초 원작대로 착한(?) 장옥정을 그렸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여전히 역사 왜곡이라는 측면에서 말들이 많겠지만..원작에서 인현왕후의 독백 비슷한 글이 있는데, 그게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그릇이 다르다는 국모의 자리. 그 자리에 자신이 낳은 아들도 없이 지킨다는 것은 보기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투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위엄을 지키는 것. 그건 자신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렇게 보여 지기 위해 또 한명의 여인이 희생당한 것은 아닐까? 만약 남인당이 정권을 장악했다면 인현왕후 또한 아이를 낳지 못한 불충으로 나쁜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을까?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흥미롭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렇게 공부했다면 학창시절 국사는 좋은 점수 받았을 텐데... ^^ 요즈음 아이들 우리의 역사를 잘 모른다고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역사가 아니라 흥미롭고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한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중에는 왕의 남자.. 내시, 환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면 좋겠다. ^^



YES마니아 : 로얄 k*****3 2013.06.09.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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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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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궁녀인 운영은 한 남자만을 받들고 살아야 할 숙명을 거스르고 수성궁에 들른 김 진사와 그만 사랑에 빠져들고 말았다. 궁궐 속 금단의 영역에서 이뤄진 곡예사랑은 여러 궁녀들을 문초하는 과정에 운영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며 스스로 목을 매 사랑을 택한 대가를 받았다.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비련(悲戀)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운영의 안타까운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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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궁녀인 운영은 한 남자만을 받들고 살아야 할 숙명을 거스르고 수성궁에 들른 김 진사와 그만 사랑에 빠져들고 말았다. 궁궐 속 금단의 영역에서 이뤄진 곡예사랑은 여러 궁녀들을 문초하는 과정에 운영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며 스스로 목을 매 사랑을 택한 대가를 받았다.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비련(悲戀)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운영의 안타까운 삶은 '운영전'을 공부할 당시 왕의 권력에 예속된 채 사사로운 감정까지 억누른 채 살아야 했던 여인들의 일생이 그려졌다.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 온 궁녀들의 내밀한 삶을 <<왕의 여자>>에서는 면밀히 파헤쳐 그동안 품고 지냈던 궁녀들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 준다. 궁녀에서 후궁이 되었다가 왕후까지 지낸 장희빈의 신분 상승은 영속되지 못한 채 추락하여 끝내 죄인으로 사사되는 파국을 토대로 왕의 여자들의 일반적 승진과정을 재해석한 의미가 두드러진다.

  왕궁에 들어가 그곳의 법도에 따라 매어 사는 궁녀들은 공노비 중 왕권과 신권의 함의로 주로 선발되었다. 열 살 전후에 입궁한 궁녀들은 교육을 통해 왕궁 안에서 분업화하여 이뤄지는 일을 전수받고 무덤에 이르기까지 궁에 머물며 정해진 규범을 따라야 했다. 애기 항아가 18세에 관례를 치름으로써 궁녀의 길을 걸으며 정식 항아로 인정받은 뒤 상궁에 올랐다가 환갑 후 근무를 단축하며 노후를 보냈다. 종신제를 따랐던 궁녀들은 죽음이 임박하였거나 소속 전궁의 상전이 승하한 경우, 타의에 밀려 왕궁의 방출 결정이 이뤄진 때에는 출궁 결정이 내려졌다. 생사(生死)만큼은 궁궐 밖에서 맞아야 했던 궁녀들은 평생 궁궐 안에서 늙어 갈 자유밖에 누릴 수 없었다. 왕의 여자로 교육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부터 평생 독신으로 지내야 했던 궁녀들은 동성애로 궁 안에서의 얽매임을 벗어나 소통하며 해방감에 젖기도 했다니 그들의 옥죄인 삶에서 오는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궁중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는 공간의 잡일을 처리하기 위해 좀 더 많은 여성 일꾼들을 모집하려는 목적으로 궁녀 선발을 견제하는 조정의 눈을 피해 비정규직 유사 궁녀를 뒀다니 밝혀지지 않은 궁녀의 규모까지 합치면 그 수는 확대되어 보인다. 애기나인은 궁중 생활에 필요한 훈련을 받은 뒤 정식 나인이 된 뒤에는 15년이 지나야 상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외부 선정인 간택, 내명부 소속 궁녀가 4품 이상의 품계를 받아 후궁 반열에 들어선 내부 승진, 남편이 왕이 됨에 따라 후궁의 지위를 얻은 자동 승격으로 왕의 첩실 후궁이 되는 길이 있다. 이외에 후궁에 책봉한다는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왕의 자녀를 출산해 준후궁으로 대우된 경우가 있었다. 지나치게 미색이 뛰어난 여성은 조정 관료의 경제로 후궁에 오르기 쉽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미모 못지않게 후궁의 내면이나 능력 등을 고려해 왕권 유지를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문과 질의 조화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봤던 공자의 가르침은 후궁을 선발할 때도 하나의 지침으로 작용했다.

  궁녀들은 소속부서에 따라서 격의 높낮이가 났고, 그들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뚜렷했으며 업무 분야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다. 궁녀의 업무는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소주방(燒廚房), 생과방(生果房), 세답방(洗踏房), 세수간(洗水間) 등으로 구분되고 그 중에서도 왕과 왕비의 시중을 담당하던 지밀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지밀(至密)은 임금이 거처하던 대전(大殿)이나 내전(內殿)을 가리키는 말로 지극히 비밀스런 공간이다. 승은상궁(承恩尙宮)인 궁녀들은 다른 업무는 하지 않고 왕의 시중만 담당했고 이들은 왕의 자녀를 낳기 전까지는 궁관인 상궁에 머물러 있지만, 자녀를 낳은 뒤에는 내관인 종4품 숙원(淑媛) 이상으로 봉해지는 것이 상례였다. 후궁이 낳은 자녀 숫자와 왕의 총애로 후궁의 위상이 결정된 만큼 궁궐 안 지위가 안정적이고, 후계자로 결정된 후궁의 아들은 중전의 아들로 모자간의 관계는 단절되어 쓸쓸함 속에 영광스러움이 혼재했다.

  한 여인이 왕과 혼인하는 것은 왕의 여자로 가는 길로 왕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국혼(國婚) 기간에는 왕의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민간에는 금혼(禁婚)령을 발표하여 9~12세 처녀는 혼인을 금하였다. 음양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논리에 따를 때 김 씨는 이 씨에 해롭다는 점을 들어 성씨를 기피하여 온 점은 가례도감을 설치하여 왕후를 간택하는 과정을 밟아 선발된 이는 왕과 가례를 올린 뒤 철저한 감시와 감독 아래 잠자리까지 살핌의 대상이 되었다. 왕의 여자로 왕후에 오른 이들은 왕실 최고 어른으로 대우를 받았고, 왕을 낳은 이는 신성성을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왕의 여자로 그의 총애를 입고 후손을 본 경우와는 달리 왕의 노비로 고독한 공간에서 외롭게 살다 간 이름 모를 궁녀들의 신산했던 삶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봉건적인 시대의 질곡의 삶을 살았던 여인들의 아픔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예속되어 자신의 생각은 접어둔 채 오로지 왕을 받들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고독하게 스러져 간 이름 모를 궁녀들의 삶이 자꾸만 떠올라 애잔함이 더한다.  

 

 

 



n*****9 2011.12.15. 신고 공감 7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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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년의 조선 왕실을 존속하게 한 실질적인 힘, 왕의 여자.
"518년의 조선 왕실을 존속하게 한 실질적인 힘, 왕의 여자." 내용보기
드라마 《허준》의 예진(황수정)은 내의원에 입격한 허준을 좇아 내의원 의녀가 되었고, 《대장금》의 서장금(이영애)은 생각시로 궁에 들어와 수라간 나인 생활 중 모함을 받아 쫒겨났으나 의녀가 되어 다시 궁에 돌아왔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장금이와 가장 가까웠던 연생(박은혜)은 임금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다. 《이산》의 성송연(한지민) 역시 생각시로 궁 생활을 시작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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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준》의 예진(황수정)은 내의원에 입격한 허준을 좇아 내의원 의녀가 되었고, 《대장금》의 서장금(이영애)은 생각시로 궁에 들어와 수라간 나인 생활 중 모함을 받아 쫒겨났으나 의녀가 되어 다시 궁에 돌아왔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장금이와 가장 가까웠던 연생(박은혜)은 임금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다. 《이산》의 성송연(한지민) 역시 생각시로 궁 생활을 시작했으나 도망친 후 도화서의 다모로 생활하다 후궁에 이르렀고, 《동이》의 최동이(한효주)도 장악원 여비女婢로 살아가다 감찰궁녀가 되었고 후궁에 이르렀다.

 

아무튼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왕의 여자’라는 점이다.

 

 

궁인, 나인內人, 항아, 홍수紅袖와 같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던, 궁에서 일하는 여인을 지칭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표현은 궁녀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보듯이 궁녀가 다른 일반인보다 높은 신분의 소유자였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조선시대 법전인 『대전회통』「형전」에 따르면 “궁녀는 오로지 각 관청의 하전下典(노비)에서만 선발한다”는 규정으로 보아 공노비, 그 중에서도 내수사內需司(왕실 재정 담당 관청)나 궁방宮房(예컨대 운현궁 등)에 소속된 내비內婢와 중앙관청에 소속된 사비寺婢만이 궁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천민 중에서 궁녀를 선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양인良人, 즉 일반인들에게 궁녀는 자유민이 아니라 예속민으로 왕궁에 매어 사는 일종의 노비인 셈이고, 성관계까지 금지 당한 채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힘든 자리로, 이른바 ‘기피 직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득권 관료집단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라는 정치 구도 속에서 군인이든, 환관이든, 궁녀든 간에 왕의 주변에 사람이 많아져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저항에도 왕실은 어떻게든 궁녀를 더 늘리려 했다. 이는 궁녀 명부인 궁적宮籍에 등록되지도 않은 정원 외의 궁녀, 즉 ‘비정규직 궁녀’로 실제로는 궁녀 역할을 하면서도 외형상으로는 무수리·비자婢子·방자房字 등의 모습을 띠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녀의 경우는 내명부가 아닌 내의원內醫院(약방) 소속이라 엄밀히 말하면 궁녀, 왕의 여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구급활동, 때로는 사법적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등 궁궐 여성사회의 일원이었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의녀가 기생 역할을 경향이 나타나,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에서 보았던 것처럼 약방기생藥房妓生, 의기醫妓니 하는 호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보통 궁녀는 10세 미만의 어린 소녀들로 선발되었고,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왕·중전·대비·세자·후궁 등 ‘지극히 은밀한 곳’이라는 의미의 지밀과 왕궁에서 필요한 의류, 침구류 등을 제조하는 침방, 그리고 곤룡포나 이부자리 혹은 병풍에 들어가는 수를 만드는 수방. 왕과 왕후의 세숫물과 목욕물, 요강·타구·매우틀을 준비하는 세수간. 음료나 과자를 만드는 생과방과 식사와 잔치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 그리고 빨래와 다듬이질·다리미질·염색까지 하는 세답방.

 

궁녀들의 근무 실태나 행동거지를 감시·평가하는 감찰궁녀, 왕자나 공주의 양육을 담당하는 유모인 보모상궁, 왕과의 하룻밤 잠자리를 함께 해 특별상궁이 된 승은상궁, 궁 안과 궁 밖을 연결하는 연락관 역할의 색장나인, 왕후나 세자빈이 본집(친정집)에서 데려온 여인들을 말하는 본방나인. 이렇듯 궁녀의 역할이 전문화, 분업화 되어있고, 이에 따라 숙련된 궁녀를 양성하자면 어려서부터 궁에서 훈련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TV 드라마에서와 같이 왕과 궁녀의 사적인 만남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왕의 현재 위치를 반드시 다루어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등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승정원일기』를 보다시피, 왕은 항시 ‘보호관찰 대상’으로 측근들의 눈을 피해 궁녀를 만난다는 것은 힘들었다. 게다가 성리학적인 관념이 지배하던 조선왕조에서 왕은 홀로 있는 공간에서도 “군자는 홀로[獨] 있을 때를 반드시 삼가야[愼] 한다”는 『대학』의 가치관, 신독愼獨이라는 성리학적 가치를 준수해야 했다.

 

또한 격무에 시달리는 궁녀가 왕을 유혹할 만한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었으며, 중전이나 후궁들에게 알려지는 날이면 사실상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녀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진 숙종과 동이, 왕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만남이 성사된 영조와 문숙의의 사례는 불가능의 장벽을 넘어선 ‘용감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법전은 “궁녀가 바깥사람과 간통하면 남녀 모두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을 가한다”고 규정하여, 왕이 아닌 다른 남성과의 만남은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이러한 속박은 현직 궁녀 뿐 아니라 전직 궁녀에게도 부과되었고, 심지어 ‘비정규직 궁녀’에게까지 적용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성적 욕구의 분출구로, 선천적으로 같은 여성을 좋아하는 궁녀들도 있었겠지만 성관계 금지라는 후천적인 제약 때문에 조금은 안전한 출구인 동성애를 선택했다고 한다.

 

 

후궁이나 왕후와 같이 ‘왕의 여자’를 생각하면 미인을 떠올리지만 막연한 추측일 뿐, 조선이 유교 사회였던 만큼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유교적 인간관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물론 외모가 아름답다고 평가받은 후궁들도 있으나, 이런 경우 ‘아름답다’는 것은 주로 여성의 관점을 반영한 것으로 궁궐 내의 여성들과 사이가 좋아 우호적이고 원만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자신을 훌륭하게 도와줄 수 있는 여인, 왕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여인을 후궁으로 선호한 것이다.

 

좋은 가문, 좋은 품성을 가진 여인들 중에서 선발되는 왕후도 미모는 부차적 요소에 불과했다. 내명부와 외명부의 수장인 동시에 관료들의 주군인 왕후에게 왕실이 중시했던 특성은 덕德이었다. 주상의 부인으로서 내명부와 외명부를 통솔하는데 필요한 가문 배경과 덕성을 갖춘 여인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왕후였다고 한다. 장희빈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지나치게 특출한 외모는 후궁이든, 왕후든 오히려 걸림돌인 것이다.

 

왕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본래 왕후의 권한인 후궁들이 하는 모든 일, 궁녀들이 하는 모든 일을 살펴 내명부를 통솔했다. 또한 왕과 왕세자의 가족, 종친의 부인, 관료의 부인을 지휘감독 하는 외명부의 수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외명부 여인들은 작위만 있을 뿐 구체적 직무를 갖지는 않았고, 외명부에 대한 왕후의 권한은 해마다 열리는 친잠親蠶을 통해 구현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군신관계는 성립하나 국정에는 간여할 수 없었던 왕후이지만 비상시에 한해 조정을 상대로 지휘감독권을 행사했음을 세종 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왕의 사후, 왕후가 왕대비가 되면 권력이 더욱 강해졌다. 왕권이 천명에서 나온다고 인식했지만 실제로는 왕실에서 나온다고 인식해, 새로운 왕의 등극을 승인하는 일차적 권한은 왕대비(대비)의 몫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조선시대 여덟 차례나 되는 왕대비·대왕대비 수렴청정 사례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신왕이 미성년인 경우에는 수렴청정을 함으로써 국정을 총괄하는 것도 왕대비의 몫이었다.

 

그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왕의 부인이 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백성들은 너도나도 딸을 왕후로 만들려했을까?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딸의 중병이나 처녀의 부모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처녀단자를 제출하지 않는 집안도 있었고, 심지어 『인조실록』에 따르면, 한성에 사는 사대부들이 딸을 숨기는 사례가 있어 점치는 맹인들까지 동원해 찾아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달랑 처녀단자만 제출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왕궁에 가서 심사 받을 때 많은 돈이 들었는데, 왕궁에 가려면 가마에다가 몸종·유모·미용사까지 준비해야 하는 등 경제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또 최종 합격자가 사전에 내정된 경우가 많으므로 보통의 집안은 돈만 들이고 들러리나 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인식, 그리고 자칫하면 정치적 소용돌이 휩싸일 수 있다는 인식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런 대중적 기피 상황에서도 숙종은 네 명의 왕후와 결혼했다. 동갑내기인 인경왕후 김씨가 사망하자 6세 연하인 인현왕후 민씨를 맞아들였다가 민씨를 내쫒고 장희빈과 혼인한 뒤 민씨를 도로 불러들였으며, 민씨가 죽은 다음해에는 26세 연하의 인원왕후 김씨와 혼인했다. 결혼 4회, 사별 2회, 이혼 2회, 재결합 1회. 숙종의 파란만장한 가정사와 36명의 실제 왕후 중 유일하게 서민의 피를 물려받은 장희빈이 근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로 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성씨를 확인할 수 있는 98명의 후궁 중 가장 많은 후궁을 배출한 성씨는 각각 14명과 13명을 배출한 김金씨와 이李씨며, 36명의 실제 왕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각각 10명과 6명을 배출한 김씨와 윤尹씨로, 이씨는 한 명도 없다. 이씨가 후궁에는 많지만 왕후에는 없는 이유는 전주 이씨든 경주 이씨든, 이씨는 임금과 결혼 할 수 없었고 처녀단자를 제출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왕실에서 김씨를 불길하게 생각하며 꺼려했는데, 왜냐하면 ‘금金은 목木에 해롭다’는 오행五行의 원리에 기초해 ‘이李’안에 ‘목木’이 있어 김씨(금)는 이씨(목)에 해롭다고 여겼고, 따라서 김씨 여인은 이씨 왕조에 해롭다고 판단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궁과 왕후, 모두에서 김씨가 최대 성씨를 차지한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튼 궁에서 일을 하는 여인 궁녀, 왕자 생산과 왕후를 보좌했던 후궁, 내명부와 외명부의 수장인 동시에 관료들의 주군이었던 왕후. 성리학적 유교 질서 속에서 때로는 왜곡되고 억압받았지만, 이런 ‘왕의 여자’들이야말로 518년의 조선 왕실을 존속하게 한 실질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m***5 2011.07.09.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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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왕의 여자-조선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서평] 왕의 여자-조선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내용보기
조선왕조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왕후, 후궁, 궁녀!  왕의 여자는 조선왕조를 중심으로 한 왕후, 후궁, 궁녀들의 일상을 복원하여 조선의 사회, 정치, 문화를 읽는 또 다른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조선의 역사가 남성들 중심으로 기록되어지고 정치, 문화, 사회 또한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을 당연시 하는 역사가들과 독자들에게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는 <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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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왕후, 후궁, 궁녀!

  왕의 여자는 조선왕조를 중심으로 한 왕후, 후궁, 궁녀들의 일상을 복원하여 조선의 사회, 정치, 문화를 읽는 또 다른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조선의 역사가 남성들 중심으로 기록되어지고 정치, 문화, 사회 또한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을 당연시 하는 역사가들과 독자들에게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는 <왕의 여자>는 내밀한 일상의 복원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역사이해 관점을 더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이미지에 만족하는 우리의 현 주소


  한국인들은 사극을 좋아 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좋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오늘날 보기 힘든 긴 수염과 화려한 색채가 수놓아진 옷과 단아한 모습들을 한 배우들이 등장하여 과거의 역사를 재현해내는 모습에는 지루함보다는 손에 땀을 쥐고 흥미를 유발시키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이기에 이미 결론을 알고 있고 허구 속 인물들과 실존인물들이 섞여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각색되어진 것을 알면서도 시청자들은 사극 속 배우에 집중하고 역사적인 스토리 라인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극에서 사용된 역사적인 소재들을 우리의 역사적 사실들로 받아들이면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역사 속 '왕의 여자'들의 '실체'를 찾아 떠나는 역사 여행

  조선왕조에는 왕후, 후궁, 궁녀라는 직책을 가진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극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그녀들은 화려한 용모와 단아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다양한 생활양식과 사고관을 개진해 나갑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상당부분 작가의 각색에 의존하며 그 토대는 작가의 역사수준에 의존한 주어진 이미지가 대부분입니다. 고증과 검증의 과정을 겪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왕의 여자'로 불리우는 조선 왕조의 궁궐내 여인들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서 실체가 왜곡되거나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조선왕조 '왕의 여자'들의 정체성과 생활상은 앞으로도 계속 가공된 이미지로 전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왕조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인들의 삶의 '실체'가 기록된 책 왕의 여자>


  저자인 김종성은 왕의 여자에 관한 전체 그림을 위해 장희빈이라는 여성의 삶을 궤적을 책의 진행 순서로 채택하엿습니다. 장희빈은 궁녀에서 후궁으로,후궁에서 왕후로, 그리고 다시 후궁의 삶을 산 장희빈은 조선왕조의 '왕의 여자'가 겪을 수 있는 경험을 모두 겪은 여자이며 궁녀에서 쫓겨난 전력까지 더한다면 전직 궁녀의 삶까지를 경험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왕의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저자 김종성은 내밀한 일상을 철저하게 고증하는 작업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왕을 위해 존재했던 왕후와 후궁, 그리고 궁궐의 모든 여인들은 분명 조선 왕실의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산증인들이자 넓게는 한 축을 담당한 이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아왔던 그녀들의 이미지는 막연히 작가의 의도에 따른 주어진 이미지일뿐 실상의 삶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왕의 여자'들의 기원, 자격, 선발과정과 유형과 인원, 직무와 출산등에 대한 다양한 책 속의 도표들은 '왕의 여자'들이 상당히 체계적인 조직관리에서 활동한 소외계층이 아닌 그녀들만의 역할을 가진 주류였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공된 이미지를 벗고 '실체'에 접근할 때마다 독자들은 새로운 조선왕조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복원을 통한 조선왕조를 읽는 새로운 키워드를 찾는 기쁨을 독자 여러분도 즐겨보시길 권하는 바입니다.



s******a 2011.07.0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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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커리어우먼', 궁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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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한창인 요즘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을 되돌아보며 좀더 올바르고 밝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드유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성들보다도 더 앞장서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못난 남성들의 무식(!)한 목소리를 차단하고 막아드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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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운동'이 한창인 요즘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을 되돌아보며 좀더 올바르고 밝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드유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성들보다도 더 앞장서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못난 남성들의 무식(!)한 목소리를 차단하고 막아드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 같아 그냥 잠자코 앉아서 지지성명을 내는 것으로 갈음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애써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것이 더 나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역사상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인 목소리는 그동안 많이 냈으니, 지금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에 '역차별'이라는 등 볼멘소리를 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여성들이 억압받고 차별받아서 생긴 불평등적 요소와 부조리한 것들을 걷어낸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고 되려 호도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사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는데...아주 혼내줄거임. 미투 운동의 가해자가 특정 정당 소속이라서 정치적 폄훼를 꾀하거나 궁지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애꿎은 '남자 인생' 하나 조졌다는 등의 말 같지도 않은 주장에는 일일이 대응하고 싶지도 않음. '미투 운동'의 본질은 '여성의 인권'을 바로 세워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있음을 다시금 일깨웠으면 싶다. 설령 당장에는 그것이 되려 '여성 상위 시대'가 되어간다는 오해를 살지라도 지금은 '미투 운동'에 그 어떠한 제동도 걸어서는 안 되고, 걸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여자가 어디 감히..."라는 수식어가 영원히 사라지길 바란다.

 

  더이상의 각설은 생략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즈음에 읽은 책이 <왕의 여자>란 책이다.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드라마 <동이>가 막 종영을 한 뒤인 2011년에 펴낸 책인듯 한데, 역사가 '김종성'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는 취향인지 그의 책 곳곳에는 사극 드라마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대목이 곳곳에서 눈에 띠어서 독자들이 읽기에 수월함을 선사하곤 한다. 이 책에도 <용의 눈물>, <대왕 세종>, <여인천하>, <대장금>, <왕의 여자>, <동이>, <명성황후> 등등에서 오마주한 듯한 대목이 눈에 띠어 조선시대 궁궐에서 살아간 여인들의 모습을 더욱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은 많이 왜곡되고 각색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하는 점은 반감되는 요소이지만 말이다. 암튼 궁궐 안에 사는 여인들, '왕의 여자'에 대해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자.

 

  궁궐에서 사는 여인들을 지칭하는 '왕의 여자'라는 수식어를 오해 없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에로틱'한 선입견을 걷어내야 한다. 흔히 백제가 멸망한 원인으로 의자왕의 '삼천 궁녀'를 꼽곤 하는데, 크기로나 규모로나 어디에도 빠지지 않고 내노라하는 중국의 역대 황실에서도 '궁녀 3000명'을 넘겨본 일이 거의 없을 지경인데, 유독 의자왕에게만은 따라붙는 수식어인 '삼천'이란 수식어는 우리 민족이 '굉장히', '아주 많이' 라는 뜻의 수식어로 '삼천'을 쓰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단다. 실제로 '낙화암'에서 백제의 멸망을 온몸으로 슬퍼한 여인은 몇몇 왕족 여인과 그녀들을 따르는 수행인들 뿐이라니 수천은 고사하고 몇 십명이 고작일터인데, 신라 출신 고려인인 김부식이 이를 부풀려서 과장한 결과로 붙은 나쁜 꼬리표라고 하니 꼽씹을수록 씁쓸한 대목이다.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은 동서고금은 안 가리고 안 좋은 소문이나 결과는 모두 '여자'와 결부시키는 역사가들의 행태이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도 '복수의 여신'이 던진 황금사과를 탐낸 '세 명의 여신들'에서 원인을 찾는 것으로 모자라 '헬레네'라는 여인의 미모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거라는 등의 도식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의자왕의 사례도 똑똑했던 의자왕이 실책을 연달아 해서 패망에 이르게 된 까닭을 '여자들의 꾐'에 빠져서 그렇다는 김부식의 다분한 못된 의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까닭에 역사책을 읽을 때, 특히,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읽을 때는 당시의 여성상을 고려함과 동시에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걸러내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성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쓰여진 활자'의 함정에 빠져서 진면목을 놓치지 일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진면목을 살펴볼 '여성 관련 사료'조차 태부족한 것이 현실인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우쨌든, '왕의 여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에로틱한 면을 걸러내기 위해 또 살펴야 할 것이 바로 '밀폐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궁궐이라는 곳이 왕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나가지 못하는 장소가 주는 '성애(性愛)'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바라보아야 한다. '왕의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는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런데 왕이 밀폐된 그곳에서 하루종일 '그짓'만 할 도리가 없잖은가 말이다. 더구나 한 명의 여인도 아니고 수십, 수백명의 여인과...음음..하는 그런 장면만을 부각한 영화나 소설이 난무하는 까닭이니 '음란마귀'에 빠지지 않은 건실한 독자라도 책을 펼치기 전에는...상상력에 맡기겠다. 총각은 아직 몰라요(")몰라염~

 

  당신이 상상한 '그' 모든 것을 걸러내고 이 책을 들춰보면, '왕의 여자'라는 낱말이 주는 의미는 왕의 부인인 '왕비'를 비롯해서 여러 명의 '후궁'과 '궁녀', 이렇게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일부다처제였던 고려때까지와는 다르게 일부일처제인 조선에선 원칙적으로 단 1명의 부인만을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인의 몸에서 낳은 왕자만을 '적통'으로 삼아 다음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은 적통을 이은 적이 별로 없는 '운 나쁜 왕조'였다. 태조 이성계시대부터 왕자들의 칼부림이 시작되었고, 간신히 적통을 이은 문종과 단종도 그 운이 단명하였고, 거듭된 정난과 반정으로 왕실의 후사는 왕비가 낳은 자식들보다 후궁이나 심지어 궁녀가 낳은 자식이 왕위를 잇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 책은 '왕실의 대'를 누가 잇느냐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다. 궁궐 내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여인들은 과연 '무슨'일 을 하고 일생을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몇몇 왕후를 제외하고 평생을 '왕실 후사'만 '생산'하는 일이 중임이었던 왕비들의 삶은 저 뒤로 보냈고, 그나마 궁궐에서 나름 할 일이 많았던 '후궁'들과 '궁녀'들의 삶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해, '왕의 여자'로서 궁궐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았을까? 일단 왕실의 맥을 잇기 위해 왕과 동침을 하고 '왕자 생산'을 하는 몇몇의 여인들은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런 '생산'을 하지 않는 여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내는 내용이 이 책의 골자란 말이다.

 

  물론 그 궁금한 내용도 사극드라마와 영화가 널리 유행되는 바람에 많이 해소된 지금이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흥미와 시청률이라는 복병 덕분에 '궁에서 사는 여인들의 삶'을 심히 왜곡하고 변질시키고 말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후궁과 궁녀들은 왕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왕비는 그런 여인들로부터 지아비를 지켜내고 수많은 여인들을 질투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만 부각시킨 점이다. 오늘날의 대통령 부인은 아무런 권력이 없지만 조선의 왕비들은 왕 못지 않은 '권력'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그 권력을 적절히 사용해 '왕의 여자들'을 지시하고 단속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그리고 '왕의 여자'들의 대표적인 할 일은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수호하는 일'이었다.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조선시대 내내 왕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궁인의 수'를 늘이려 노력하였고, 신하들은 왕실의 힘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궁인의 수'를 제한하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교과서에도 나오는 광종의 '노비안검법'을 떠올리시면 적절하겠다. 광종은 귀족들의 노비를 줄임으로써 귀족의 힘을 누르고 양인의 숫자를 늘려 왕권을 강화한 것처럼 조선의 왕실은 궁인(내시와 궁녀)의 수를 늘려서 신하들의 힘을 견제하고 왕실의 힘을 키우려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궁녀들의 일은 오늘날의 '여성 전문인력(커리어우먼)'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 가운데 비서직을 수행하는 여성들이 사장님의 맘에 쏙~들어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 궁녀들도 대부분은 전문직으로써 평생의 경력을 쌓다가 임금과 지근거리에서 일을 하는 '지밀상궁(나인)'들이 임금님 맘에 쏙~들어서 후궁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내처지기도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그런 몇몇의 특별한 경우를 '각색'의 과정을 거쳐서 상업적/예술적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고 말이다. 암튼 이 책을 통해 '궁녀(후궁)들의 일상'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고, 에로틱한 상상도 덕분에 고이 접어 나빌 수 있었다.

 

  한편,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점은 '역사'가 너무나도 남성 위주이다보니 여성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사료'가 너무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글쓴이 김종성도 말하거니와 읽는 독자로서도 '역사 속 여성'을 읽을 기회가 더더욱 많아져야겠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18.03.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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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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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텔레비전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여인들이며 그 여인들의 삶에서 겪게 되는 우여곡절이 중심 주제가 된다. 표현되는 방법이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남자와 권력에 보다 접근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남녀가 다르지 않겠지만 유독 여인의 삶과 연결된 소재를 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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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텔레비전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여인들이며 그 여인들의 삶에서 겪게 되는 우여곡절이 중심 주제가 된다. 표현되는 방법이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남자와 권력에 보다 접근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남녀가 다르지 않겠지만 유독 여인의 삶과 연결된 소재를 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구성하는 이유가 뭘까?

수천 년 인류의 역사는 남자들에 의해 승리한 권력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매번 중요한 사건에는 늘 빠지지 않은 여인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여인들의 희노애락이 빠진 사건은 존재하지 않을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여, 때론 여인의 힘으로 권력의 정점에 올라 천하를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 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사건을 중심적으로 다룬 것이 바로 역사 드라마였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지금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왕의 여자’는 바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왕의 여자들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왕들의 여자들에 대해 주목하는 시대는 조선 500년이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왕은 27명이었다. 왕들의 재위 기간은 각기 달랐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황후와 후궁 그리고 궁녀들과 함께 궁궐 생활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27명의 왕에게는 36인의 황후, 101명의 후궁을 비롯하여 숫자도 알 수 없는 많은 궁녀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왕이 살아가는 궁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숨어 존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궁궐의 울타리 속에서 궁녀로 살았던 여인들을 살핀다. 왕에게 소속된 여인들이었기에 그들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을 왕에 접근하는 순서로 살피고 있다. 궁녀, 후궁, 황후가 그 순이다. 이는 궁녀에서 후궁을 거쳐 황후에 오른 여인들이 있었기에 이 순서로 살피는 것이 왕의 여자들의 삶을 보다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 왕과 함께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을 증언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비롯하여 그들의 삶을 기록한 문헌사료와 문학작품 등 다양한 문서를 찾아보고 이를 모아 정리한 것이다.

왕의 여자들에 대해 저자는 이들이 궁궐에 존재할 수 있었던 역사적 기원, 자격, 선발 과정, 인원, 직무, 품계, 사랑, 출산 등을 다양한 문헌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표와 통계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자료에만 국한되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드라마의 장면들까지 동원한다. 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사료를 통해 비교 분석하여 그들의 실제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암투를 벌리며, 자신이 낳은 왕의 아들을 권력의 정점에 등극시키기 위해 벌리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궁궐 안의 여자들에 대해 이토록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이해를 돕는 일련의 작업은 왕과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것처럼 이해하는 역사의 한 측면을 복원하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온전히 평가 받을 때 우리 역사는 그 만큼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은 저자가 밝힌 왕의 여자 중에서도 궁녀를 설명하는 부분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왕의 여자’를 통해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단편적인 지식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서 오는 오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소재로 흥미위주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에 접근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남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들 중에서 일부는 이미 사회의 중심이 여자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존재적 특성으로부터 스스로 갖는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사회적 위치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양성 평등차원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타의에 의해 잊혀진 삶을 살아야 했던 여자들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m*****8 2011.07.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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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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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극을 보면 유독 여인들의 일대기를 그린 프로가 많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비해 왕을 낳은 여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한 여인들의 재조명이 물살을 탄 듯 하다. 그 중에 잘 알려진 사극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동이>, <왕의 여자> 등이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 놓인 왕실의 궁녀들과 그들의 조직적 체계, 삶 또한 간과할 수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왕과의 동침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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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극을 보면 유독 여인들의 일대기를 그린 프로가 많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비해 왕을 낳은 여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한 여인들의 재조명이 물살을 탄 듯 하다. 그 중에 잘 알려진 사극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동이>, <왕의 여자> 등이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 놓인 왕실의 궁녀들과 그들의 조직적 체계, 삶 또한 간과할 수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왕과의 동침으로 하루아침에 후궁이 되거나 왕후로 간택된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조선시대 당시엔 매우 드문 케이스였다고 할 수 있다. 엄격한 심사 기준과 선발과정에 따라 어린 나이에 궁에 입궁하여 세월이 지나며 차츰차츰 승진가도를 타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궁녀들은 각자 지밀, 침방, 수방, 세수간 등에서 맡은 직분을 수행하고 관례를 치르고 난 뒤 비로소 상궁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하층 궁녀의 신분에서 후궁이나 중전의 자리에까지 오른 여인이 있으니 바로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와 희대의 미인 장희빈이다. 그녀들은 공교롭게도 한 시대에 궁에서 부대끼며 숙종 임금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살았으나 반면 기구하게 삶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한편, 광해군 시대의 승은상궁이었던 김개시는 후궁이나 대신들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며 당대 최고의 실세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그 모든 것은 왕의 총애와 영석한 두뇌에서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승은상궁에까지만 머물렀고 후궁자리는 넘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왕의 후궁은 내명부의 의견이 다소 개입되어 미모보다는 내면적인 면을,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가문중시적으로 선발한 경향이 있어 미인은 드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궁은 왕자 출산과 동시에 차기 대권주자를 생산할 가능성이 짙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열 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린 왕이 있었던 반면, 경종이나 단종처럼 후궁이나 소생이 한명도 없었던 왕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왕의 정통성을 이유로 차후 추존왕과 왕후로 승격이 되는 경우가 적잖았는데 특히 소혜왕후인 인수대비의 경우 남편인 의경세자가 죽고 훗날 왕실의 큰어른이 되면서 성종과 연산군대에까지 권력의 실세로 군림하였다. 이는 지난 날 많은 사극에서 다루어져왔던 부분이다. 왕후의 선발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외부선정 유형이 두드러지게 많아지는 경향을 보였고 세자빈이었다가 왕후로 자동승격되는 복합형도 있었다.

 

오늘날 대통령을 남편으로 둔 영부인의 경우 권력이 막강하지 않음과 비교해, 그 옛날 내,외명부의 수장으로서의 왕후는 궁궐의 살림을 총감독하고 상황의 여하에 따라 조정대신들에게도 명령권한이 있었던 국가의 어른이었다. 불과 10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로 태어나 평생을 한 남자, 한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인생은 한낱 궁녀나 한 국가의 왕후들이나 괴롭고 쓸쓸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태어난 시대에 정해져 버린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이 살아야 했던 조선 시대 모든 여인들의 애환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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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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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책 표지에서 말하듯이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저자는 특히 장옥정을 모델로 삼아 이야기를 펼친다 나또한 그녀의 삶이 궁에서 사는 이들중 가장 파란만장했고 밑에서부터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뒤에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임금에게 사약을 받았으니 좀처럼 찾기 어려운 생을 살았기에 그녀가 살아온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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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책 표지에서 말하듯이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저자는 특히 장옥정을 모델로 삼아 이야기를 펼친다 나또한 그녀의 삶이 궁에서 사는 이들중 가장 파란만장했고 밑에서부터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뒤에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임금에게 사약을 받았으니 좀처럼 찾기 어려운 생을 살았기에 그녀가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궁의 여인들의 삶을 알수 있을듯 싶다. 숙종은 장옥정이후로 후궁이 왕비의 자리에 오를수 없게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궁에서 사용되는 궁의 여자들을 일컷는 말또한 다양하다 다만 우리들이 접하는 궁녀, 나인, 항아, 홍수, 상궁등의 말들이 주로 드라마를 통해 접했던 단어들이다. 이를 저자는 정확한 명칭을 한글 번역본만 가지고는 정확히 알수 없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명칭은 궁녀와 궁인으로 조선왕조실록과 법전에서 확일할수 있다고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나인은 궁궐안에서 사는 여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단다. 궁녀의 출신은 어디선가 양인출신으라고 들었는데 계중에는 반가의 여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궁녀는 공노비에서 선발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알고있던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정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궁에는 궁녀만 있는건 아니다 내명부라고 일컷는 진정한 왕의 여인인 왕비와 후궁이있다. 왕비는 당연히 간택으로 선택하지만 후궁은 앞에서 말했던 장희빈같이 궁녀로있다 왕의 승은을입어 후궁이되는 경우도있다 그래서 궁녀들의 꿈은 왕의 승은을입어 승진하는게 꿈이었다. 장희빈이나 최숙빈같은 행운을 거머쥘수 있는 여인은 몇 되지 않는다. 솔찍히 왕의 승은을 입기위해 꽃같은 나이의 여인들이 왕만을 바라본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 꽃은 시들어가고 그렇게 삶이 끝나버리니 얼마나 아타까운 일인가.

 

왕의 여자를통해 궁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명칭 그들의 삶을 모두는 아니지만 엿볼수있는 기회를 갖게된게 너무 좋았다. 그 많은 여인의 사랑을 받은 왕이 행복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것 같다. 자신만을 바라보다 이름없이 사라지는 여인들의 마음을 생각해봤다면 아마도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r*******5 2011.07.2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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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왕의 여자-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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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왕비이다. 왕비라는 지위는 예전부터 사극에서도 많이 다루어졌던 소재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궁에는 주요한 남자라면 왕뿐이고 그에게 목 매고 있는 여자들은 줄줄이 많기때문에 그에 따른 질투와 투기와 또한 그런 모든것들이 정치와 연결이 되면 파벌싸움가지도 이루어지기때문에 스토리를 만들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그런 소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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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왕비이다. 왕비라는 지위는 예전부터 사극에서도 많이 다루어졌던 소재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궁에는 주요한 남자라면 왕뿐이고 그에게 목 매고 있는 여자들은 줄줄이 많기때문에 그에 따른 질투와 투기와 또한 그런 모든것들이 정치와 연결이 되면 파벌싸움가지도 이루어지기때문에 스토리를 만들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그런 소재가 단골로 쓰여졌던 듯 하다. 예전부터 한국에는 일부일처제이긴 하지만 예전 왕이 있었던 시대에는 그것이 통용이 되지 않았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왕이나 또한 양반가문에서는 첩이 당연시 여겨졌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남자들 특히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 남자들 중에서는 조선 시대를 꿈꾸던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에 국한되어서 왕의 여자들을 다루고 있는데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궁녀와 후궁 그리고 왕후로 나누고 있는데 글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장희빈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궁녀와 후궁 그리고 왕후의 삶을 다 거친 사람이라면 장희빈이 유일하다고 말을 하고 있기때문이다. 별 생각없이 여러번 장희빈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장희빈이  새롭게 보여지게 되었다. 아마도 다음번에 혹시나 또한번 장희빈이라는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그 드라마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궁녀의 삶은 왕이나 왕비나 또는 후궁보다는 아무래도 천한 존재라는 이유로 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에서는 특별히 제일 앞부분에 편집을 하고 자세히 나눠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익히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이해할수가 있었다. 궁녀의 또다른 이름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항아님이나 마마님이나 이런 이름들은 익숙치 않았는데 아마도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호칭들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서 좀더 잘 알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조선시대 초대왕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까지 죽 연대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사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재미있게 흥미를 가질수 있는 기회가 될듯 하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는데 이 책을 보고나서는 조선시대의 역사나 또는 그 시대 이전 또는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 또한 그 개개인의 삶에 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문헌을 찾아서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중간에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사진이나 문헌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하고 직접 인용해서 색이 다르게 표현해 놓았다. 그래서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문헌속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었는가를 실제적으로 볼수도 있고 표로 정리를 해 놓은 부분도 있어서 한눈에 보기 편하게 되어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주석이 각주로 처리되지 않고 미주로 처리되어 책의 마지막 편에 붙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인용된 책의 제목을 적어 둔것이라 나중에 확인해도 상관없는 것이긴 하지만 뒷편에 왕후의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설명이 되어진 주석이 뒤에 있는 경우가 있어서 일일이 찾아보지 않으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래도 마지막에 왕후 일람표나 후궁일람표는 획기적인 느낌조차 들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때에는 왕의 이름만 달달 외우지 그에 따른 왕후나 또는 후궁의 이름들은 전혀 알 기회가 없는데 그것을 표로 만들어 놓으니 알기도 편하고 훨씬 쉽게 역사를 이해할수 있었다. 나름 역사를 알수도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지는 책이다.

b***8 2011.07.09.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