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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영 목사님의 '세속화와 복음'을 흥미진진하면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읽은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 새롭게 접한 '구원이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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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질문했을법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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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택시를 타고 가다가 겪은 일이다. 택시에서는 어느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에서 이름모를 목사님의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 역시 예수님을 믿는지라, 라디오 소리에 제법 집중하면서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무슨 이유에선지 무상급식 투표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분께서 꺼내셨다. 이유인즉슨, 같이 동승한 우리 일행에거 이번 투표에서 반드시 투표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이 이루어지면 안된다는 내용의 이야기셨다. 그 래서, 나는 4대강만 안해도 아이들 충분히 먹일수 있다고 얘기했다. 더불어, 4대강의 무리한 공사일정 때문에 이미 많은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예수님을 믿는 다면 생명이 죽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후에 몇마디 더 대화가 오고갔지만, 동일한 예수님을 믿는 택시기사분과 내가 하는 생각의 차이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 생명을 죽이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인정하고 또 공감할 이야기이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들, 소위 천국백성들은 구원받은 것으로 끝난 것인가? 이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시키면 아래와 같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죽이는가? 많 은 그리스도인들이 '복' 에 대한 개념을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겉으로는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속사정을 들어가보면 많은 부분에서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려움을 은혜로 고백하는 경우보다는, 내 일이 잘 풀렸을 때 은혜라고 고백한다. 이 생각은 어디까지 흘러가느냐면, 부의 소유와 착취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손해보더라도 나만 손해보지 않으면 감사한 일이 되어버린다. 옆에 이웃이 망하건 죽건 그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재개발이 되어서 땅값이 오르면,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것으로 만사형통이 되어버린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주의깊에 이 세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금관의 예수, 가시면류관의 예수 우리가 믿는 예수는 금관을 쓴 예수가 되어버렸다. 가시면류관을 쓰고 고난을 몸소 감당하셨던 예수는 사라졌다. 복잡한 공동체의 현실에 신경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신앙은 개인화 되었고 구원도, 복음도 개인화 되어 버렸다. 성 공을 말하고 스펙쌓기에 열중하라는 세속의 흐름에 교회 지도자들이, 신앙의 선배들이 길을 잃고 허우적대기 시작하자, 교회가 세상을 새롭게하는 공동체로의 모습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세상이 말하는 도덕기준도 못따라가는 "그들만의 이익집단"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처음부터 다시 돌이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가지는 위치는 바로 그 곳일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정말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자리말이다. 책 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생각보다 좁은 지면에서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동안 놓치고 있던 영역에 대한 발견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개별주제에 대한 깊은 논의는 각 영역에서 세분화된 책들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의 위치에 있는 성도들이 읽는 책이 되면 좋겠다. 또한, 구원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내용만 전달하던 사역자들 또한 역시 이제는 균형을 잡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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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화두인 '구원'에 대하여, 다양한 주제를 통해 고찰 해본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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