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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아이들에게 있어 가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금 당장 그들에게 주는 의미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서 시집장가 가게 되었을 때는 지금과 매우 다른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만해도 대부분 핵가족화 되어 가족이란 한 집안에서 사는 사람들, 부모와 자식만을 일컫고 있지만, 그래도 부모들은 형제자매가 많아 친척의 범위가 넓고, 그들 모두를 넓은 의미에서 가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도 많고, 많아야 한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대상들이 적어진 것이다. 물론 가족의 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가족이 주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족이라 불리는 호칭들을 지금의 아이들은 부를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아이들만 해도 삼촌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가족이라 부르는 의미와 아이들이 부르는 의미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외삼촌이 한 분 계시다. 어머니와 나이차이가 많아서, 나와는 별로 차이가 없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는 외삼촌을 유난히도 따랐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소원해진 것은 아마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삼촌 하면, 대부분 아버지가 연상되기 때문일 게다. 나에게 있어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다. 지금은 움직이지도 못하시고 하루 종일, 아니 일년 삼백육십오일 병실에 누워서 계시지만 아버지를 볼 때마다, 연민보다는 착잡함이 먼저 든다.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희미해져 가고는 있지만, 그런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오지만, 막상 보게 되면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연민이 아니다. 그러한 나의 모습이 아이들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나 또한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보이는 나는 어떤 아버지일지, 자못 두렵기도 하고 마음을 심난하게 만들기도 한다. 제일동포 2세인 작가가 쓴 이 책은, 작가 아버지의 실화를 기초로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고향 땅을 떠나 일본에 와서 살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이자, 해방 후에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남았던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이야기이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란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를 돌아보게끔 하는 이야기이다. 작품속 화자인 다다하루는 중학교때 외삼촌을 처음으로 만난다. 외삼촌이 일본을 떠난지 19년만에 도쿄올림픽 한국선수단의 응원단으로 일본에 왔기 때문이다. 단 한번 보았을뿐인데 그후로 그가 좌절감에 빠지거나 비겁한짓을 할때면 어김없이 삼촌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다다하루가 가업을 잇기를 바랬지만 다다하루는 뜻이 없다. 17년후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다하루는 아버지를 따르던 겐조씨에게서 아버지 소지로와 어머니 요꼬, 그리고 외삼촌 고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식민지시절, 일본에서 살던 한국사람들은 어떻게든 차별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뭉치기도 했고, 일본인보다 뛰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조선과 일본을 왕래하다가 노동자들을 알선하는 일을 하게 된 마사히로는 딸 요코가 어렸을 때, 가족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요코의 동생 고로가 태어나고, 요코는 소지로와 결혼하게 된다. 일본이 전쟁에 지고 항복을 하자, 조선인들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마사히로도 자신의 가족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소지로는 돌아가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한다.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서는 소식이 없었지만, 소지로의 사업은 번성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한국전이 발발하고 오덕(고로)은 뜻하지 않게 인민군이 된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상황이 반전되어 인민군이 쫓겨갈 때, 오덕을 부대를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오덕이 숨어있던 청년들을 인민군에게 신고하여 죽게 만들었다며, 오덕을 죽이겠다는 사람들뿐이다. 오덕의 부모는 마당에 굴을 파고, 그곳에 오덕을 숨긴다. 부모와 동생의 안위가 걱정이 된 요꼬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이를 본 소지로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밀항선을 타고 한국으로 들어간다. 소지로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부모, 특히 아버지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반발하여 도쿄로 가출을 단행한 다다하루가 겐조씨에게서 듣는 아버지의 삶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빼놓고서는 달리 설명 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말하는 소지로의 말속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아픔을 읽는다. 중년이 된 우리는 항상 아버지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또한 아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사랑은 사랑 그대로, 그리고 아픔은 걸러내고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어버렸음을 느낄 때, 가슴이 저려온다. 아니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그분이 느꼈을 외로움이 가슴을 휑하게 만든다. 나도 이제는 화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책은 또한 재일동포의 눈에 비친 우리 현대사를 보여준다. 당사자이되 당사자가 아닌, 한발 떨어져서 보는 그 시선 속에서도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해방공간과 전쟁의 시기, 위정자들이 보여주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와 점령군으로서의 미군의 행위는 우리가 지금 재조명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경제부흥을 이룩하는 일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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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푸르고 낭만적으로 잔잔함을 말해주는데, 왜 접혀있는 모습일까? 의문을 가졌었다. 반듯한 바다 풍경이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읽고 나서 보니 그건 바다를 두고 건너야 하는 여러 마음이자 지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책은> 서평단 당첨 도서다.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내가 서울에 처음 가 본건 중학교때로 30여년전이다. 그나마도 서울에 외삼촌들이 계셨는데 대학생였던 막내외삼촌이 불러줘서 가봤다는...남산타워와 팔각정을 보고 눈내린 겨울날 교복위에 코트를 입고 갔었던 사진이 있다. 그후에도 한 번 가봤는지 가물가물한데 해보고 싶은게 뭐냐고 해서 심야영화 양철북을 봤던 기억도 있다. 편지를 많이 썼으며 받았고 정신적 지주로써 사춘기 소녀의 감성은 그렇게 발달했었다는...내게 외삼촌은 그렇게 남아 있고 지금도 가끔은 전화를 드리거나 받는다. 나(다다하루)는 돌아가신 외삼촌을 한번 만났는데 아버지보다 더 영웅시했다. 가업을 잇기 바라는 아버지는 내게 각별했지만 그럼에도 소원했다. 어지간히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에게 딸 셋은 큰 실망이었고 그새 자식을 봤는데 역시 딸이었던 모양이다. 네번째로 태어난 내게 잘 지내자고 말을 건넨 여학생 왈, 너와 아버지가 같아.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고 다만 아버지의 비서겸 친구처럼 지낸 겐조 씨에게 말을 하니 사장님 자식이겠고 어머니께 말을 하지 말라고...기실 어머니(요코)는 아버지(소지로)가 외도를 한걸 알지만 자식까지는 몰랐던 듯 싶다. 알았다해도 그걸 문제삼을 타입은 아니고 오히려 후덕한 스타일로 자애로운 여인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일러주셨듯이 남자는 한두 번 그러려니...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해 그러려니...친정어머니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은 매우 정숙하고 현모양처였다. 예쁜데다 성품도 방정하고 매우 긍정적인 요코는 또 1번이자 큰 딸로 순종적인 여자였다. 부모님이 정해주신 배우자 소지로를 위해 헌신하며, 자수성가하느라 배움이 짧은 남편앞에서 아는체를 하지 않고, 자신의 남편 바램대로 아이들도 많이 낳았다. 그야말로 순풍순풍 잘도 낳더라.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부모님은 요코와 남동생(고로)를 금지옥엽으로 키웠으되 한국인의 기상을 버리지는 않았다. 자수성가한 사람답게 소지로가 요코에게 청혼을 하자 조건설정을 하곤 기다려줄 줄 아는 여유도 있고, 그렇게 사위로 맡는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에서 문제가 생기고 부모님은 한국행을 강행한다. 요코네는 소지로의 의지로 일본에 남는다. 소지로(윤종래)가 어릴때 홀홀단신 편도의 배삯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와 바야흐로 성장하고 있었고 해운업을 하는 사람인지라 국제정세에도 밝았기에 소지로의 결심은 탄탄했다. 요코는 일본에서 이미 조센징의 설욕을 당한 아픔이 있지만 비교적 수동적이고 순종하는 타입인지라 현명하게 지내는데, 고로는 응석받이로 키우지 않았어도 그런걸 못참아한다. 우연히 인간관계로 검도를 배우게 된 고로는 학생신분에 신문지상에도 오르내리고...그러던 고로가 한국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서 충격이 컸던가보다. 한국에선 또 일본사람의 앞잡이로 보는 시선에 봉착하고...비틀리고 억압된 감정을 분출시키지 못하다보니 술을 마시게 되고...그러던중 자신에게 접근하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그 남자는 전쟁을 앞두고 염탐한 간첩. 이렇게 북한군과 밀접한 관계에 얽히는줄도 모르고 얽혀들어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동네사람도 찾기 힘든 동굴에 젊은이들을 피신시켰는데 거기서 언쟁이 생기고 고로(김오덕)는 박차고 나온다. 오비이락이라고 동굴의 젊은이들은 모두 죽게 되고 오덕이 밀고자로 몰리나 오덕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심장병이 도진 오덕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로 찾기는 지칠 줄 모르는데, 오덕은 북한군에 편입되어 전쟁의 참상을 본다. 죽어가는 동료와 그 와중에도 믿고 의지했던 상사의 죽음, 굶주림과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그들이 부르짖는 이상국가를 만들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음에 근접함을 깨닫는다. 끝날줄 모르는 전쟁터에서 탈출하여 집으로 온다. 이미 마을에선 눈에 불을 켜고 오덕이네를 감시중이었다. 부모의 현명함은 닭장 아래 굴을 파놓고 그안에다 오덕을 숨겼다. 닭모이를 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이웃네들은 모친이 이상해졌다고 수근대고...정신이 피폐화되고 검도를 하던 아들이 물도 못넘기고 토할만치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면서도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부모님. 소지로가 보낸 사람들에 의하니 자신의 아버지와 큰형은 죽었고 아이들은 작은형이 키우나...막내아들인 자신에게 따듯한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지만 그리움은 가슴에 차오르고...자신을 무척이나 귀애하던 큰형의 자식들을 데려오고, 장인장모와 처남을 데려오는 계획을 세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밀항을 꿈꾸는 것으로 바다에선 배가 감시대상이요 하늘에선 폭격기가 날라다니고...자신의 땅을 팔아서 금은을 마련해 몸에 지니고...다섯째 아이를 가진 아내를 두고서 마음은 착잡하나 또한 안심을 한다. 장남이 있기에 자신의 대가 끊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결혼해 처음으로 한국에 간 일본인 며느리를 싸늘히 쳐다보고 자신을 민망하게 한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런 아버지가 편도배삯도 마련해줬음을 폭격으로 귀를 먹은듯한 어머니로부터 듣는다. 생의 의욕을 잃어버린 닭장 밑의 남자 오덕을 구하기 위한 소지로의 활약은 징용을 위한 검사원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또다른 검사원 둘을 죽이게 된 앙숙의 편의를 도우면서 이웃네들의 오해 아닌 오해까지도 불식시키기에 이른다. 처남을 데리고 와룡산에서 서울까지의 이동하는 시간들...소지로의 타고난 체격도 좋고 체력도 좋았으며 거기다 사업적인 안목으로 터득한 비상한 머리회전은 사지에서 늘 안전함으로 작용한다. 마음이 바르기에 지켜주는 신이 있었나보다. 용신의 힘이라 믿는 소지로에게 아내의 헌신적인 비원이 있었음은 나중에 알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겐조 씨에게 나중에 듣게 되는 나. 마음속 영웅이던 외삼촌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 외삼촌을 구출해낸 아버지의 죽음을 무릅쓴 여정을 통해 새삼 아버지와의 그간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다. 아버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써졌다는 2세의 시각이기에 절절해서 눈물이 펑펑펑 솟는다거나 감정이 동요되어 일순간 멈춰야한다던지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감정을 머금고 가는 여정은 담백하고 맑기까지 하다. 감정이 배제된 상태인 기술하는 글처럼, 마치 심각한 남얘기를 전하다 보니 오히려 담담히 말할 수 있는 상태로 다가왔다. 전쟁이 빚어낸 참상앞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이 나라에서 벌어졌다. 타국가의 개입이 있었고 동족간에 이념이 달라서 왜 죽이는지도 모르고 죽여야했고 죽어야했다. 울분이 쌓인 사람들은 이상국가를 꿈꾸며 합세했고 그렇게 죽어들갔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아직도 이 전쟁은 진행형이다. 북한군과 관련되어진 사람들이나 월북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아직도 생사를 모르고 전전긍긍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픔은 옅어지는듯 보이지만 실상 같은민족은 점점 다른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하염없이 죽어간 호국영령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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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의 가족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도 먼 아버지. 우리에게 부족한 것 대화인가 아니면 가족에 대한 이해인가?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아버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년 남자들이 흔히 겪는 일중 하나가 아버지란 존재일 것이다. 나는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를 그렇게 극복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 모습은 아버지와 너무 비슷하다. 그것이 현재의 나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이야기 속에 빠져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그것이 우리의 과거 속의 한 장면이기에 더한 참담함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조선의 어려운 시기에 살기 위해 일본으로 간 사람들, 그들의 생활과 삶, 그 속에 맞은 조국해방,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일본인의 핍박을 피해 조국으로 간 사람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조국이 아니었다. 더 힘든 환경과 사람들의 시선(일본에 협조했다는 의심) 그곳에서 터진 민족의 비극 6.25전쟁 그 속의 사람들. 이 책은 이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타자의 시선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 소지로와 외삼촌 오덕(고로)를 중심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족과 일본에 남겨진 딸과 사위와 가족의 이야기이다. 재일동포들의 삶. 조국으로 돌아간다고, 그들이 느끼는 것은 일본에서는 ‘전쟁에 패한 이후에도 여전히 조선인을 소나 말처럼 여기고 있었다.’와 ‘누나는 조국을 생각하지도 않아.’ 과연 이들에게 조국은 어떤 존재였을까? 재일동포들에게 고향은 ‘고향 멀지는 않지만,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돌아온 조국은 냉담하기만 했다. 조국의 분열은 일본 한국인도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같은 나라 사람은 상처를 주는데 다른 나라 사람이 위로를 해 주다니 이런 일이. 하지만, ‘원한을 가지면 안돼요. 원한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니까요.’ 왜 모두 그 나라로 돌아가야 했던 것 일까? 왜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죽여야만 했던 것일까 그런 싸움에 우리 가족을 휘말리지 말아야 할 것 인대! 아버지와 아들. 큰 누나의 말 ‘가업을 이어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자유롭게 사는 거야.’라는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 나를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된다. 내가 본 아버지와 아버지의 진실, 나는 아버지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아버지 부하(동료)의 입에서 나온 사연들. 전쟁. 네 번째 아이, 아들 다다하루 탄생과 한국에서 전쟁이 시작. 조국,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일본에서 생각했던 조국과 현실적인 조국은 전혀 달랐다.’ 또, 이념의 상충, ‘우리가 이 나라를 새롭게 만듭시다.’라는 전쟁이란 이런 것.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은 반전되고, 퇴각하는 북한군, 해방을 외치던 그들은, 끔찍한 잔학행위로 북한군의 실상을 알게 된다. 패주하는 병사들, 어쩌면 자기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전쟁이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희망. 그들에게 희망의 길은 있는 것일까? 조금만 더 참아 보자고 그렇게 하면 반드시 길이 열릴 거야. 아버지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소지로였다. 이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야. 나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내 가족만 걱정하고 있었다. ‘당신의 부모는 내게도 부모야. 당신의 동생은 내게도 동생이라는 남편의 말.’ 이제 기도를 하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인가. 소지로는 한국으로가 친가와 처가를 구하려고 한다. 그의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왜 일본으로 건너갔느냐? 는 오덕의 질문에, 소지로의 답은 ‘이유는 간단해 살기 위해서야.’와 ‘살아있으면 희망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강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야.’ 오덕을 살리는 길은 서울로, 이들의 험한 여정은 ‘사람이 밀입국하려면 가혹한 여정을 견뎌내야 하는데 비누는 아무런 방해 없이 해협을 건너 서울까지 향한다.’ 마침내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덕을 국군에 입대시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용기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 이 글을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해방과 조국, 6.25전쟁, 남녀 차별, 힘든 삶을 사는 재일동포, 이방인 아니 다른 이들의 고통은 헤아리지 못하는 차별, 전쟁이 변하게 만든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그 속에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들의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정신과 가족사랑이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게 했고..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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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은 정말 마음에 뜨겁게 다가든다. 나에게도 제목이 가지는 뜻이 실제의 일로 와 닿기 때문이다. 나는 외삼촌이 한 분 계셨다. 나의 외가는 딸 셋, 아들 하나를 둔 집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딸이 어머니고, 그 바로 아래가 외삼촌이다. 외삼촌과의 기억은 없다. 그러나 뒤에 외삼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6.25 전쟁 중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금까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 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어머니는 크게 상처를 입었다. 흔히 말하는 대가 끊긴 것이다. 이 일은 외가의 치명적인 아픔이 되고 활기가 사라지는 집이 된다. 외할아버지는 한학자셨는데 그로 인한 상처로 일찍 돌아가셨고, 나에게는 말씀으로만 존재한다. 실제적으론 나의 기억에 없다. 하지만 외가는 나의 동화 속의 나라였다. 어린 나는 어릴 적 외가에 많이 놀러 갔다. 지금도 그때 놀러 가서 이모들과 놀던 자취가 쥐어진다. 성장하면서 외삼촌이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큰 아픔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곤 외가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직면하면서는 더했다. 외가는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곳인데.
문학이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야 할 것인가를 제언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할 때, 이 책은 그런 시대적인 아픔을 그려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 비극을 한 가족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그 허구성을 그리면서 아픔을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글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일본에 살고 있는 제일동포의 눈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가슴 아리는 이야기다.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피를 나눈 혈연이 문제가 되는, 이념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 일반인들에겐 사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된다.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의 면면과 서로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정의 문제다. 그렇기에 피붙이가 소중하게 다가드는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족을 소재로 해 불행했던 우리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면서 그 사실을 생각해 보게 한다.
글은 제일교포 생활을 하다가 해방이 되고 귀국한 어머니 가족과 일본에 남은 나의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정확히 말해서 글 속의 주인공인 소지로(아버지)와 외삼촌(고로) 어머니(요코)에 관련된 이야기다. 작품 속의 나는 도쿄 올림픽 때 일본을 방문한 외삼촌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상석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아버지보다 훨씬 존경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여러 연유로 아버지와는 거리를 둔 마음 상태가 되어 간다. 그런 일이 있고 7년 후 외삼촌의 부음이 들려온다. 그 후 아버지로부터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가족의 일이 궁금하여 집에서 오래 일하는 분을 찾아가 그로부터 가족사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가족의 뿌리를 찾아가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 가게 된다.
아버지가 중심이 되어서 그려지는 글이다. 해방 후 일본에 남은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해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를 이룬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조국에서 6.25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념 때문에 외삼촌이 누명을 쓰고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바로 준비를 해서 처가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배를 준비해서 길을 떠난다. 배를 내는 것도 한국에 들어가는 것도 불법이다. 그런데 그렇게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가족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이다. 배를 거제 한 공간으로 몰고 와 자신의 집사 겐조에게 정해진 시간에 배를 다시 끌고 올 것을 명하고 자신은 처가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처가에 도착한 아버지는 허약해진 삼촌을 돌보며, 장인 장모에게 자신을 따라 나설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장인, 장모는 따라나설 기미가 없고 오직 외삼촌만 아버지께 부탁한다. 외삼촌을 데리고 그 집을 나온 아버지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자의 아들인 장군을 찾아간다. 아버지는 갖은 마음을 다해서 외삼촌을 그 장군의 휘하에 배속되게 하고, 외삼촌은 다시 삶의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또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읽게 된다. 한국 밖에서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왜 이렇게 아픔의 역사가 이루어지는가? 이런 문제들을 이 책은 이국적인 눈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우리들에게 제언해 주고 있다. 아픔의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는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간명한 필치로 사건 전개를 빠르게 해나가면서 내용이 쉽게 전달되게 하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고, 이것을 국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읽어볼 수 있었다. 흥미 있게 읽혀지는 글이다. 나에게도 전쟁과 관련된 아픔 기억이 있기에 그것을 둘러싼 이런 해결책을 제시하는 글은 다시없는 읽을거리다.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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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가족이란 이름이 더이상 애틋하지 않은 듯 하다. 집집마다 아이도 적게 낳아 하나뿐인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지만 키워봤자 부모에 대한 정은 커녕 감사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신세를 한탄하는 어른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재일교포인 이주인 시즈카의 자신의 아버지의 실제 이야기이다. 시즈카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를 이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후회하는 것을 보며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카가 느끼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즈카가 어릴때 보여진 아버지의 모습은 돈만 밝히고 사업수완은 좋으나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배다른 형제까지 있어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하다못해 가업을 이루라는 아버지의 소망에 맞서 싸우기 까지 하며 시즈카는 아버지보다는 어릴 때 잠깐 본 외삼촌에 대한 이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늘 원망의 상대이고 외삼촌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성장한 것이다.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겐조로부터 듣게 되고 그것은 시즈카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아버지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
먹고 살 것이 없어 열 두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일을 했던 아버지 소지로는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집념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또 다른 한국인 마사히로의 딸 요코에 반해 결혼을 하기까지 이른다.그러나 일본이 패망하게 되자 일본에 있던 한국인들은 한국을 가기로 결정하지만 어쩐 일인지 소지로는 일본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요코의 동생 고로는 그런 매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국을 위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국으로 떠나가는 날 고로는 한국으로 떠나는 배에서 몇번이나 헤엄을 쳐서 일본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고로의 앞에 펼쳐진 운명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 요코는 그런 고로를 울면서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그것이 동생 고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소지로는 일본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업가로 변신하게 되고 자식도 딸 셋에 아들 하나 그리고 뱃속에 또 하나,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거란 소식을 접하고 처갓집 식구들과 부모님 , 형님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한국에 사람을 보낸다.
고로는 한국에 오자마자 일본과는 대조적인 한국의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더욱 실망하게 된 것은 일본에 살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배타적이 되어 버린 사실에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옳고 그름이 정확하고 마음이 여렸던 고로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며 술에 의지하게 된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때는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았는데 한국에 와서는 개만도 못한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전쟁이 일어나 고로 역시 격동하는 시대에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류에 휩쓸리게 되고 눈앞에서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되자 부모님을 찾아가 몸을 의탁한다. 젊은 남자는 무조건 잡아가기 때문에 부모님이 만들어 준 닭장 바로 밑에 구덩이를 파서 숨어지내게 되는데 이후 고로는 구덩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본에서 소지로가 고로를 구하러 오기 전 까지......
처갓집 식구들을 구하기 위해 혼자 한국전쟁 한복판에 들어온 소지로, 그리고 고로 둘이 만났을 때 소지로는 살고자 하지만 고로는 삶을 쉽게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쟁 중에 겪은 일들로 고로는 공황상태가 되어 있었다. 매형을 만난 기쁨보다도 고로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은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아무런 희망이 없어도?" 라는 문제였다.
그것은 고로가 구덩이에서 했던 그 수많은 생각들,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몸소 체험하며 느꼈던 고통들 속에서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부모님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했던 자신의 운명속에서,오로지 자신을 위해 구덩이를 파주고 자신을 위해서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 때문에 존재해야 했던 고로의 존재의 이유같은 물음이었다.
가족이라는 의미는 그런 것이다. 내가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 의미인 동시에 이 소설은 그런 사라져가는 가족애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한국을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하는 요코에게 소지로는 이제 바다에는 벽이 없어 한국은 가깝기만 한 나라라는 말을 한다. 아버지를 나쁘게만 생각했던 저자가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 것을 알게 되자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며 아버지의 희생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부모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그런 희생을 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의 사명임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되돌아보며 진정한 가족애를 알게 해주는 <아버지와 외삼촌>은 감동의 휴먼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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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란 가족을 지켜나가고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성별을 떠나 가족의 안전과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이 바로 가장이다. 부인이 생활을 책임지고 남편은 술에 절어있거나 생활을 나몰라라 한다면 그 집의 가장은 부인이 되는 것이다. 가장노릇을 잘하는 아버지가 있고 못하는 아버지가 있지만 이책은 전자의, 그것도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가족을 지켜내는 꿋꿋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제일교포 2세인 다다하루는 자신의 아버지 소지로의 강한 모습을 존경하고 있다. 으레 그렇듯이 다다하루에게도 아버지는 두렵기도 하고 반감이 들기도 하는 존재이다. 아버지의 존재란 그런것이다. 나에게도 기억속의 아버지는 늘 크고 존경스럽고 두려운 존재였다. 머리가 커지면서 태산처럼 크게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보일 때 느끼는 쓸쓸함이란. 여자는 학교를 다닐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6,70년대 아버지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소지로, 가족을 위해 탄탄한 가업을 이루었지만 다다하루는 그것을 거부하며 아버지와 충돌한다. 자신의 꿈과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리라. 다다하루는 아버지보다 한번밖에 본적없는 한국의 외삼촌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의 사망을 계기로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겐조씨에게 아버지와 외삼촌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생담을 아들에게 한번도 들려준적 없는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지로의 아내 요코의 친정식구들은 해방전까지 일본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벌어진 남북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인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요코의 아버지 카네코 마사히로와 가족들은 멸시를 당하게 되는데, 요코의 동생 고로(한국명 김오덕)는 그걸 견뎌내지 못한다. 직장도 적응하지 못해 이리저리 헤메던 오덕은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돕고 있는데, 그때 전쟁이 터진다.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과 동굴속으로 피신하지만 청년들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피난을 가버린 마을은 조용하다. 오덕은 북한군에 끌려가서 가담하게 되는데, 승승장구하던 북한군은 미군의 역습에 패전을 거듭한다.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오덕은 전장을 떠돌다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밀고자라고 생각한다. 동굴로 피신한 마을 청년들이 북한군에게 몰살을 당했는데 오덕의 시체만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오해다. 이씨를 비롯한 청년들의 가족들은 오덕을 죽이려 하고, 오덕은 닭장아래 파놓은 굴속에 숨게된다. 그리고 그안에서 수개월을 보내게 된다.
'히키코모리'는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말한다. 그래도 히키코모리들은 인터넷이란 세상이 있기에 그곳에 몰두하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일주일만 집안에 있어도 갑갑함을 느낄텐데, 인터넷같은 타임킬러도 있을리 없는 굴속에서 수개월을 갖혀 있어야 하는 오덕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일본에 남은 요코는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여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상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들려오는 소식은 전쟁의 참혹함 뿐이라 더욱 걱정일 수 밖에. 이런 아내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소지로는 한국에 사람을 보내 처가의 소식을 알게 되는데, 오덕의 소식을 듣고 아내의 걱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결혼직후에는 보잘것 없는 살림이었지만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소지로는 집안의 기반을 단단하게 잡아놓았다.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것이었다. 그시절 남자들이 다 그랬듯이 아들을 간절히 원한 소지로는 딸만 내리 셋을 낳은 요코를 두고 아들을 얻기 위해 외도를 하게 되지만, 그것은 아들을 원했기 때문이지 바람을 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넷째로 얻게 되자 소지로는 더욱 사업에 힘을 기울인다. 자신이 일구어 놓은 가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가의 소식때문에 마음한구석이 편하지 못하다. 친정의 소식을 들은 아내는 남편에게 오덕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다시 사람을 보내지만 그가 보낸 조씨는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급기야 소지로는 아내를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크나큰 위험을 무릎쓰게 되는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가장의 모습을 감동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가장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였다면 소지로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겠지.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에 대한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소설을 읽을때면 긴 등장인물들과 지명의 이름, 이질적인 풍습등이 독서를 방해하곤 했는데, 그런것들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재일교포2세들의 이야기고 배경도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기 때문인것도 있겠지만, 어렵지 않게 잘 전달되는 인물들의 감정과 그것들과 잘 어우러진 문장때문이다
6.25에 대한 화자의 시선은 좌도없고 우도없다. 관계가 없진 않지만 6.25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소련과 미국의 대립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이라는 시선이 흥미롭다. 2차대전 직후 세계는 이념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세력으로 양분되었고 미국은 남한을, 소련은 북한을 각각 점령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심복을 수장으로 심어놓았다. 소련을 등에업은 김일성, 미국에서 내세운 이승만이 그랬다. 우리 스스로 전쟁을 한것이 아니라 냉전시대 양 세력의 이념에 휘말려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비극에 아직도 땅은 갈라져 있고 젊은이들은 군대로 징집된다. 8.15 직후 모두 기뻐할 때 김구선생은 이런 비극이 오리라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기에 크게 탄식하셨다. 최근에도 연평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진행중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극심했던 이념논란을 겪지 못한 우리 세대는 외세에서 비롯된 이념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재일교포인 작가의 시선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남북을 판단해야 한다. 이론일 뿐인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강대국들이 그렇듯이 국익을 위한 최선을 생각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세대에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선 통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통일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다. 민족적 감정을 떠나서, 우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경제를 위해서도 통일은 필요하다. 통일이 되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등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금낭비는 4대강 삽질이나 쓸데없이 지었다 허물었다 하는 공사에 있다. 통일이 되면 외국인 인력을 북한사람들이 대체할 수도 있고, 북한의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방비가 절감되니 좋을것이다. 강대국에 의존하고 있는 군사력도, 불안한 상황도 없어지니 안심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잘살고 있다지만 불안한 상황이 해소된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얼마전에 확인 할 수 있지 않았는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무너지면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다한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압박은 더해질 것이고 강점당한 티벳과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내 자식들은 다시 혼란스럽고 비극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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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평단 선정을 통해 읽게 되었다. 서평단을 모집할 때 선정이 되기를 갈망했었다. 재일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이기도 한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와 외삼촌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도 흥미 있었지만,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있었다. 얼마 전에 전상국 작가의 <남이섬>을 통해 한국전쟁에 얽힌 개인사를 접한 적이 있었기에 장편으로 된 이 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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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긴 소설이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힘든 상황을 겪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더군다나 재일교포라는 특이상황까지 겹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배가 되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아버지가 안쓰러웠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작가는 재일교포라서 그런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각이 느껴진달까?
현재 평화로운 시대에도 가장의 역할을 크고 힘든데 하물며 해방과 전쟁 중의 아버지의 역할이란 얼마나 대단하고 힘들었을지 말해 무엇하랴... 가족을 지키겠다는 생각만으로 모든 어려움에 맞써는 소설 속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네 아버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하고 이해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