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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의사다. 의사인 저자는 인체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인체의 이야기가 많다. 인체와 관련된 이야기는 재미가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부위의 내용들이 우리들의 삶이요, 우리들의 정서가 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것들이 그의 기술적인 요인과 정서적인 것까지 융합되어 흥미 있는 내용들로 재탄생한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한다.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글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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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무엇을 담아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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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직업이 여러번 바뀌는 동안 나는 오로지 한가지 일만 해왔다. 그건 내가 재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삶의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들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에 남편은 못하는 일이 없고 다방면에서 팔방미인인 남편은 손재주도 좋고 머리도 좋고 사람들도 좋아한다.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니 당연히 술도 즐긴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뭐라고 못해도 가장 걱정되는 한가지는 오로지 남편의 건강이다. 아침마다 건강에 좋다는 녹즙을 입 바로 앞까지 대줘야 먹는 남편은 가끔 위가 아프다고 한다. 그럼 병원에 가라고 해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며 늦장이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나는 가끔 남편이 말 진짜 안듣는 아들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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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려면 수필을 읽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교과서에 실린 이효석선생님의 ‘낙엽을 태우면서’나 민태원선생님의 ‘청춘예찬’과 같이 유명한 수필을 수험용으로 분석하듯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 밖에서 수필을 처음 만났던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선친께서 들여놓으셨던 최신해박사님의 수필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청량리뇌병원의 원장을 지내셨던 최박사님께서 진료경험 등을 담아 쓰셨던 글들의 영향이 있었던지 의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고 보면 선친께서 깊은 뜻을 담아 최박사님의 수필을 읽을 기회를 주셨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의학분야의 전공서적뿐 아니라 대중서도 몇권 내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유독 수필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김용택시인님께서 제가 쓴 짧은 글을 살펴주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급하게 써내는 바람에 생각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글이었습니다만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재미가 있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2814013). 제가 느끼기에도 제가 쓴 글이 건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모처럼 분야는 다르지만 의료라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분의 수필을 읽게 되었습니다. 방사선종양학을 전공하시는 허원주선생님입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허선생님과 저는 아주 조금 인연이 있는 듯합니다. 역시 제가 공부했던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를 하셨다는데 허선생님께서 일하신 실험실과 제가 일한 실험실이 바로 옆방이었던 것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제가 그곳을 떠날 무렵에 오셨던 것 같습니다.
허선생님은 책머리글에서 수필쓰기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수필이 무엇인지, 어떤 깊이와 틀을 가진 글인지 전혀 감조차 못 잡고 있던 무지렁이 시절’을 거쳐 수필쓰기를 지도해주실 사부님을 모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부님의 첫 화두는 ‘수필 속의 나는 무엇인가, 실체인가 과대 포장된 허구인가.’였다고 합니다. 결국은 삶이 녹아나온 진솔한 글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승의 혹독한 담금질을 받아 날로 좋아진 결과를 <가상환자>라는 제목으로 묶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연작으로 글을 쓰기도 하겠습니다만, 느닷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가다듬어 글로 만들어내다 보면 다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묶을 때는 비슷한 성격의 글끼리 나누어 정리를 하게 되는데, 저자는 1부에서는 가족에 관한 글을, 2부에서는 일상에 관한 글을, 3부에서는 추억에 묻혔던 일을 길어내 새롭게 정리한 글을, 4부에서는 살면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글을 엮고 있습니다.
글쓰는 방식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생각이 흘러나오는 대로 담담하게 적은 것도 있고, 상황을 재연하듯 대화체의 글을 섞어 실감을 더한 글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위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글도 있어서 필자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유럽에 갔을 때 남녀공용 사우나에서 민망했던 상황이라든지, 외국에 공부하러 보냈더니 애인이 생겨 돌아온 아들이 못마땅하더라는 진부한 아버지의 상을 드러내는 글이라거나, 어떻게 보면 같이 늙어가는 남자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재현하고 있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족사를 꽤 오래 울궈먹는다 싶은 전업작가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가족에 관한 글이 많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이분 사모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들의 사랑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보인다거나 심지어는 살고 있는 아파트에 불이 났는데도 상황판단에 따라서 남편에게 알리지 않는 대범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재미있습니다. ‘의사는 저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구나.’ 혹은 ‘의사도 별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별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 말입니다. 일상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글이 주는 힘이라고나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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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환자(假想患者)’를 쓴 허원주님은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 수필가로 등단한 문인, 한때영화감독을 꿈꾸었던 분이다. 또한 수필을 애인이라 지칭할 정도로 수필 쓰기에 남다른 열정을 지닌 분이다. 나는‘가상환자’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접하고“저에게 의사는 어느 정도 양가감정을 갖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의사 개인의 문제는 분명 아닙니다... 병원에서 못 고치는 암 등의 병을 산에 살며 자연 요법으로 고친 경우도 꽤나 많이 있고‘항암제로 살해당하다’란 책이 있기까지 한 형편입니다.”라는 긴 글을 쓴 바 있다. 그런데 필자의 아내(소아과 의사)가 항암 치료(유방암)를 받으며 이런저런 부작용을 겪었다는 글을 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의사)로서 유족들의 오열(嗚咽)을 상시적으로 들으며 사시는 분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해 화재로 화제가 되었던 해운대 아파트 거주민이다. 필자의 아내는 화재 당시 집 안에 있었는데 연기를 많이 마셔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으면서도 남 이야기를 전하듯 자신이 겪은 재난(災難) 이야기를 필자에게 담담히 전한 분이다. 필자의 아내는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긴장하는 나 같은 사람이 배워야 할 분이다. 가상환자가 제목인 이유도 궁금했었는데 책을 읽으니 해결되었다. 가상환자란 연기(演技)로 증세를 호소하여 예비 의사들의 진료 수행 능력과 대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도록 돕는 도우미를 말한다. 가상환자라는 글 제목이 책 제목으로 설정된 것은 필자가 곧 초보의사가 될 학생들의 임상 순발력을 평가하는 심사관으로 참여한 뒤 얻은 결과이다. 그런데 암 말기 판정을 받은 환자 역을 맡은 도우미가 오버를 하는 바람에 학생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 책에 나온다. 이것도 일종의 정신과적 의미의 전이(轉移)와 역전이(逆轉移)일까? 환자 역을 맡은 분의 오버가 초보 의사가 될 학생의 눈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세상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주를 이룬다. 이하선암(耳下腺癌)이 폐로 전이된 27세의 예쁜 여자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차라리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의 마음이 훨씬 가벼울 것이란 말을 하는 필자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감정 이입이 되어 나 역시 그 상황을 내 일인 듯 상상해 보았다. 그 환자에게 필자가 했다는“죄송합니다“란 말이 참으로 무겁게 느껴졌음을 물론이다. 아버지에게 신장을 제공하는 수술을 받다가 갑작스런 과다 출혈로 사망한 환자의 어머니가 사고 대책 위원장이었던 필자에게 사고 원인 규명과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데 대해 여러 가지로 감사하다며 지난 밤에는 자식 놈이 꿈에 나타나 작별 인사를 했다는 말을 하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상환자’는 재미있는 책이다. 의학 지식도 꽤 접할 수 있는 데다가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필자는 산부의사 실습의로, 군의관으로,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로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재미와 의미를 함께 전해 주었다. 특히 토고와 아데바요르편은 뭉클한 감동과 축구 매니아적 안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질주와 맥박편도 그렇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심경을 담은 망자의 변(亡者의 辯) 같은 글은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하기에 족한 글들이다. 재미 있는 것은 기를 쓰고라고 해야 할 것을 기를 서고라고 쓴 것이다.(136 페이지) 필자는 그런 표현으로 스스로 부산이 고향임을 보여 주었다. 나는 필자의 그런 표현을 접하고 불현듯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내가 오래 전 알고 지내던 교회의 한 후배는 모 찬송가의 한 구절인 피 흘려를 피 헐려로 발음했다. 으를 어로 발음한 것은 택시라는 글에서도 재연되었다. 퍼뜩 대신 퍼떡이라 한 것이다. 물론 택시라는 글에서는 기를 쓰고라고 바르게 표현한 대목도 있다. 이런 혼란은 데와 대의 혼용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70 페이지의 기다려지데요는 맞게 쓴 것이지만 71 페이지의 생각이 들대요는 들던데요의 줄임말이기 때문에 생각이 들데요로 써야 한다. 90 페이지의 교육자로써는 자격격 조사이기 때문에 교육자로서로 써야 하고 198 페이지의 어찌 되었던은 어찌 되었든으로 써야 한다. 91 페이지의 예견되어졌던은 과잉 피동형이기에 예견된 정도로 고치면 좋을 것이다. 또한 갹출(88 페이지)과 각출(91 페이지)이라는 표현이 혼용된 것도 고쳐야 한다. 필자가 의도한 바가 같은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내는 것으로 보이기에 갹출(醵出)이라 써야 할 것이다. 25 페이지의 초죽음은 두들겨 맞거나 병이 깊어서 거의 다 죽게 된 상태를 뜻하는 초주검으로 써야 한다. 또한 207 페이지의 삼가하는은 삼가는으로 고쳐야 한다. 내가 이렇듯 시시콜콜 틀리거나 어색한 표현을 지적하는 것은 오랜만이다. 내용이 중요하지 표현이 중요하겠느냐는 생각에 따라 하지 않아 오다가 가상환자란 책에 즈음해서는 수필은 내용 못지 않게 표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가상환자’가 잘 쓴 글이기에 잘못된 표현이 작품에 오점으로 작용하면 안될 것이란 점이다. 다음 판을 낼 때 내 생각이 교정에 반영된다면 좋겠다. 나는 필자의 아내가 화재를 겪고 보인 담담함과, 필자의 어머니가 지근 거리에서 큰 택시 사고를 보시고도 담담히 반응하셨던 것을 보고 ‘가상환자’의 키워드를 담담함으로 정해 보았다. 나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터넷에 올라 많은 네티즌들을 뜨겁게 달구었던‘72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글의 저자가 필자의 선배 교수인 김덕규 교수라는 사실을‘가상환자’를 통해 알았다. 필자는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필자의 글에서 울림을 느꼈다.‘72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글과 관련해 김교수님은 사람이 어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란 말씀을 하셨다는데 필자인 허박사님의 글은 영적 감동으로 쓰인 글은 아니지만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람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생활 속 수필 운동이 하루 빨리 시작되었으면 하는 필자의 바람이 빨리 실현되기를 바란다. 좋은 글을 읽게 해 준 필자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허박사님을 저자(著者)라고 하지 않고 필자(筆者)라 칭한 것은 수필가(隨筆家)의 필(筆)자가 필자(筆者)의 필(筆)자와 같은 자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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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수필집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수필집을 읽는 것과는 약간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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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라고 하면 왠지 마음이 짠~해지는데요. 가상환자라니... 도대체 왜 스스로 환자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병원이 싫은 이유는 주사 바늘이 무섭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프기 때문이죠.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힘든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는 삶의 용기를 얻는다고도 하지만 사실 너무나 무섭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끔은 환자가 좋을 때도 있죠. 특히나 가상환자라면, 일하기 싫을 때 아프다는 핑계로 놀러도 갈 수 있고, 학창시절에 꾀병을 부려서 학교를 안 가곤 했는데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가상환자라는 제목을 붙인 허원주 작가야 말로 어떻게 보면 하루를 정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행복하고 즐겁게 일상에서 벗어나서 의미있게 보내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그런 자유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바람을 보고 별을 보고 해를 보는 건 아닐까 싶네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이야기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이기에 더욱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아닐까요? 가족에 대한 추억과 일상적인 이야기들.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런 저런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 같아요. 아름답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친근하고 포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수필이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물씬 담고 있는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유롭게 붓가는데로 쓰는 글. 하지만 그 글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이웃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그러면서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 함께 웃고 울고 즐거워했던 추억들과 슬펐던 추억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때로는 가상환자가 되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모아서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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