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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책에 흠뻑 빠져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있다. 아마, 마음이 허한걸 책을 읽음으로써 위안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의 굴곡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치유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을 다잡을 수는 있었지만, 내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항상 마음속에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저 책만 읽는 바보는 아니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다. 시골에서 그리 유복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유난히도 부모님이 책을 많이 사주었다는 기억이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한때는 지적 허영에 들뜨게도 만들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이미 문학의 고전이라는 책들은 거의 다 읽다시피 했고, 중학교를 마칠 때쯤은 무협지에 빠져 동네 만화가게에서 대부분의 날들을 지새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입시공부 한다고 잠시 책 읽기를 멈추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또 다시 많은 책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독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던 측면이 많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잠시 뜸했던 책 읽기는, 가끔씩 찾아왔던 인생 전환기의 혼란과 마음속 갈등을 다스릴 필요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폭독(暴讀)으로 나타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속 갈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택했던 책 읽기가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책 읽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갈등을 풀고자 했다면,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몇 년전, 회사를 관두고 밖에서 지내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 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왜 책을 읽는지, 그렇게 책을 읽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 들 때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렇기에 오늘도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덕무는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중의 한 사람이다. 정조의 신임을 받아 규장각 검서관이 되기도 했고, 적성현감을 지내기도 했지만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서얼출신인 그에게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책을 읽었다. 미친 듯이 읽었다. 그렇게 평생 읽은 책이 2만권이 넘었고, 스스로 베껴둔 책만 해도 수백 권에 이른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런 그를 가리켜 간서치(看書痴) 즉,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 들였다고 한다. 이 책은 역자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서 그의 산문을 간추려 뽑아 번역한 것이다. 청장관은 이덕무의 호이기도 한데, 청장이란 신천옹을 뜻하는 물새로, 종일 물가에 꼿꼿이 서서 그 앞을 지나가는 고기만 먹고 사는 청렴한 새라고 한다. 아마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오로지 책 읽기에만 몰두한 자신을 비유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금은 생활방식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에 선뜻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눈 팔지 않고 평생에 걸친 그의 책 읽기는, 얕은 지식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고, 그런 지식을 자신의 호위호식을 위해 사용하려는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은 또 이덕무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덕무는 당시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윤가기등 실학자들과 교유하였고, 그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자연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나, 황해도를 여행하면서 적은 글도 보인다. 그러한 글들을 보면서 이덕무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수도 있다. 평생 미친 듯이 책만 읽은 이덕무이고, 박식한 대학자이자 고결한 선비인 이덕무이지만,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속의 이덕무나, 여행기에 나타난 이덕무는 인간적인 고민과 사사로운 걱정을 가진, 우리와 하등 다를바 없는 사람이기에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덕무는 스스로 자신을 평하기를, 백가지 가운데 한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는 자신이, 더 잘하지 못하는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바둑둘 줄 모르고, 소설볼 줄 모르며,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 피울 줄 모른다고 했다. 이는 그가 일상생활에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는, 지극히 유교적인 삶을 살았음을 나타내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가 왜 바둑을 술수와 모략으로 생각했고, 소설이란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싫어했던 것은 소설과 바둑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그것들이 가지는 폐해를 꼬집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난 그 네 가지를 다하고 있으니 어찌한다, 쩝~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책을 읽었을까? 그는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며,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그가 지향했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 읽는 것을 통하여 참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또 그러한 삶을 실천하는 수양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내가 왜 책을 읽는지, 내가 책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어떠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있지?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저절로 가득 차게 되고, 몸을 규제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이덕무가 선비의 도리를 말하면서 한 말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길 바래본다. 단지 욕심, 시기, 미움과 같은 마음속의 쓸데없는 생각이나, 몸의 게으름이 생기지 않기를 바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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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딸바보라는 말이 유행을 하면서 ‘바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붙을 수 있는 수식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바로 ‘바보’라는 수식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책바보’라면 더나할 여위 없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여기 책에 미친 바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看書癡)라고 불렀지만 그 또한 그걸 기쁘게 받아들인 바로 ‘이덕무’이다. 이덕무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박학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대학자이다. 박지원과 박제가, 유득공과 교유하면서 한시사가로 청나라에까지 그 명성을 떨칠 만큼 뛰어난 문장가였다고 한다. 다른 실학자들에 비하여 그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다. 우리가 교과서로 배우는 역사책에서는 ‘이덕무는 책에 미친 바보’였다는 재미난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니, 책을 읽으며 등장하는 박제가나 유득공의 저서만 달달 외고 있는 게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특히나 박제가의 경우 단 것을 그리도 좋아하는 이덕무임을 알고도 홀로 먹고 때로는 뺏어 먹기도 해서 성이 단단히 난 이덕무가 다른 사람에게 박제가에게 한 소리를 해달라고 청하는 편지까지 쓰기도 해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읽는 모습 중에 재미난 것은 방이 매우 작은데 그래도 동, 서, 남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는 소습을 그려보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고사성어처럼 반딧불 따라 책을 읽는 모습과 진배없어 훗훗한 웃음이 난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이덕무의 독서 스타일을 살펴보니,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고 하듯이 엄청난 다독(多讀)이다. 그리고 분야를 막론한다. 경서, 제자백가, 고금의 역사와 문물제도, 음운학, 문자학, 역대 문집, 의서와 농서 그리고 명물도수지학까지 다방면의 책을 읽었다. 현대와 비교를 해보면 확실히 흥미와 재미 위주의 책들보다는 인문서 실용서 위주이다. 이덕무가 현대의 사람이라면 추리나 판타지를 좋아했을까? 그가 가진 유교 사상을 벗어나서 생각하면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즐겼을 것도 같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덕무가 말하길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게 네 가지가 있는데 바둑을 둘 줄 모르고, 소설을 볼 줄 모르고,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고 하였으니, 아니 읽었겠다. 이덕무에게 숫자 8의 의미는 꿈이었다. 9분은 너무 이상적이고, 7분은 선비가 목표로 삼기에는 너무 미약하므로, 자신은 그 중간인 8분을 목표로 삼은 삶을 살고자 꿈을 꾸었고, 꿈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책이 책에만 머무르지 않고 외적인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독서가의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책을 읽는 이유를 살펴보면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 이 땅에, 또 다른 책 바보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래본다. 책벌레가 진화하면 책바보가 되는 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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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영정조시대의 문인이자 실학자였던 인물로, 책과 글에 관한 대단한 열정과 욕심으로 점철된 생을 살았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박제가, 박지원, 유득공 등과 교류하면서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글 한 줄이라도 더 쓰는데 몰두했다. 이 같은 다독(多讀) 다작(多作)을 통해 이덕무는 늘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며 게으름을 배척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았고,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세상일의 이치를 깨닫는 일에 즐거움을 느꼈다.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 된 그의 박식한 면모와 곧은 기품을 알아 본 왕의 눈에 띄어 규장각에서 검서관으로 일하며 다양한 책의 정리와 편찬에 공을 바치기도 했다. <책에 미친 바보>는 이같이 평생 책과 글을 벗하며 세상을 노닌 이덕무의 소품문(수필)과 짧은 편지글, 평론 등을 추려 국역한 책이다. 서얼 출신으로 마땅한 생계 수단도 없어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없는 형편에 부모님과 아우들을 거둘 걱정에 근심하면서도 그는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갖가지 책을 구비해놓고 한가롭게 읽을 형편은 못 되는지라 열심히 책을 빌려 읽는 가운데, 친구에게 따로 편지를 써, 혹 남에게 책을 빌려 읽거든 혼자 읽지 말고 자신에게도 순서를 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또한 글을 읽고 문장의 뜻을 깨닫기 전에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않았고, 심지어 몇 번이고 필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책에 관해선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던 그는 또한 고증주의를 표방하여, 책을 통해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앞뒤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책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가 마냥 딱딱하고 어려운 글만 썼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주로 척독(짧은 편지글)에서 그 점이 드러나는데, 친구에게 자신의 매우 개인적인 근황에 대해 재치 있게 풀어내거나,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단 음식에 대해 투정하는 듯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담백한 뜻을 담은 책임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더욱 깊이 읽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주석이나 이덕무 연보,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책을 잘 정리하고 국역하기 전의 원문을 부록으로 백여페이지에 달해 구성한 점은 좋았다. 하지만 본문 중 문장부호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아 어지러운 느낌을 주는 편집이 아쉬웠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약간 거친 듯한 문장이었다.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좀 더 물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윤문했다면, 당대의 문장가였던 이덕무의 유려한 필치가 더욱 잘 드러났을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책 이외에도 세상엔 다양한 문화와 지식 등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굳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골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을 시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향유하는 그 시간도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값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비단 책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은 이덕무의 이야기를 읽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세월의 흐름에도 바스러지지 않고 나름의 진리를 스스로의 몸에 퇴적하며 손에서 손으로, 머리에서 머리로 전해지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51쪽)」라는 이덕무의 말처럼, 이러한 책을 읽고 글을 가까이 함으로써 평생의 배움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생각하고 깨달을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책만큼 사람의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는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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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를 일컬어 우리는 간서치, 즉 책에 미친 바보라 한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미친들 어떠하랴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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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자, 주변의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해주고 또한 선물한 책이 바로 "책만 보는 바보"이다. 간서치라 불릴 정도로 책을 사랑하고 또한 아꼈던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 또한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지 라고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최근 몇 주 동안 책에 손에 영 잡히지 않았다. 책 읽는 속도도 더뎌지고, 집중도 잘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손에 책이 잘 잡히지 않게 되는 요즈음 나는 이덕무의 산문집을 모아놓은 "책에 미친 바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덕무의 산문집은 여러 주제에 대한 그의 글들을 모아두었다. 자신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그리고 벗과 자연에 대해 쓴 글까지. 아마 책을 통해 한 문단이라도 그의 글을 읽게 된다면, 청렴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나누고 실천하는 삶을 우선시하며 살았던 그의 모습을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특히나 요즘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생각되는 나는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남달랐다.
"책을 읽음에 반복해서 많이 읽기만을 탐하는 것이 어찌 지혜로운 일이겠는가? 그렇다고 섭렵해야 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막히고 고루해지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다. ..... 독서는 입신과 같으니 당연히 처음과 끝의 순서를 잘 지켜야지 아무렇게나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선반 위에 있는 몇 권의 책을 대강 훑어보고 곧 싫증이 나서 팽개쳐버린다면, 거칠고 엉성해서 앞에서 잊고 뒤에서 잃고 할 것이니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 55p, '책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옛사람이 학문을 닦는 데 이렇게 열심이었으므로 남보다 크게 앞섰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 같은 무리들은 그저 물 마시고 밥 먹고 잠잘 뿐이다." - 73p, '책벌레만도 못해서야'
이덕무의 책을 읽고 난 뒤에 나 스스로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부담스러워졌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고, 정말 책을 아끼고 사랑했던 그의 마음을 글로써 전해 듣고 나니, 나의 마음은 그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란 수준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옮긴이도 자신이 과연 이덕무를 말할 자격이 있는 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하는데, 책을 읽고 난 뒤 나도 그의 책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책을 사랑하고 아낄 것인가를 일러주는 최고의 좌표가 되어주고,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좋은 롤모델이 되어주는 이덕무의 글을 읽으며 지금보다 더 많이 책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장 하나를 가슴 속에 담고 있다" 나에겐 그 문장이 "사람은 곧 그가 읽은 책이다" 라는 문장이다. 내가 곧 내가 읽어왔던 책들이라면, 어떤 책을 골라서 읽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책상 위에는 50p 정도 읽고 덮어 두었던 책들이 여러 권이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책들은 반할을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내가 독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요즈음, 이 책을 통해서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았고 나만의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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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선인들이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지만, 그래도 동, 서, 남 3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대하게 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집안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p.24) 이덕무는 실학자 중에서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이자,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와 함께 한시사가(漢詩四家)로 불릴 만큼 문학에 있어서도 뛰어난 문장가였다. 특히 이덕무는 박학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는데, 그가 평생 읽은 책만 2만 권이 넘고, 그가 직접 베낀 책만도 수백 권이 넘는다고 한다. p.382 세상 사람들이 이덕무를 평가하기를 그의 품행을 제1로, 학식을 제2로, 박문강기(博聞强記)를 제3으로, 문예를 특별히 제4로 쳤다. 그의 문예에도 미치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이덕무의 품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p.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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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조선 지식인에 관한 책을 읽었다. 많은 역사와 문화를 우리에게 가장 근접하게 알려준 우리역사의 증인들의 글도 많이 접할 수 있고 또한 역사속으로 사라진 우리네 많은 조상들의 흔적들을 안타까와하고 분노하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식인이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세련 되지도 근엄 하지도 그저 역사에 휩쓸려 저마다의 처신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뿐..
하지만 이덕무 글르 만나고 새삼 지식인에 대한 논의가 저절로 정리 되었다. 잘나지도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며 청렴하고 맑은 우리네 자연처럼 그저 흔들리는 바람처럼 대나무 처럼 이리저리 자신의 처지를 만족해하며 자족하고 스스로 꾸짖으며 도한 기개를 놓치지 않은 모습 그것이 진정한 선비의 모습이 아닐가 한다.
[책에 미친 바보]는 조선 후기 최고의 지식인이자 실학자, 박학으로 유명한 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규장각본, 서울대 고전 강독회, 1966)] 에서 간추려 뽑아 번역한 책이다. 천성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이덕무 스스로가 독서에 관한 글을 많이 썼고, 읽기와 더불어 책을 즐기는 경지에서 자신에 관한 글을 쓰고는 [간서치전看書痴傳 ]이라 하였다.
많은 부분들이 자신이 글을 출간하면서 느낀점에 수필을 엮엇는데 어느곳 하나도 귀하지 않은 글들이 없다.
'문장이란 하나의 조화인데 ,조화가 어떻게 얽어매여 모방 할 수 잇겠는가? 무릇 사람은누구나 자신만의 문장하나가 가슴속에 담겨져 잇는데, 이는 마치 그 얼굴이 서로 닮지 않은 것과 같다.'-p80
문장과 학풍에 관한 글은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우리 들에게 어떻게 글을 서야 하는지 마음으로 알려준 글귀인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기질이 있고 그것을 효도하며 살아가는 유교적 가풍, 순수한 성품을 가진 개개인의 인격수양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져 잇다고 한다. 책을 대하며 기뻐하고 책속에서 배워 수양하며 수양을 바탕으로 효도하고 남에게 어짐을 베풀수 있다고 책은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한다.
이덕무가 권하는 책 세권 [성학집요] [반계수록] [동의 보감]이다 이들은 각각 도학, 경제학 , 의학에 관한 책인데 학문하는 이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을 담고 있다. 독서를 할데 치우침이 없어야 하고, 학문을 할대에는 실용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부에서 이덕무의 평소 생각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어쩌랴 책읽느 내내 감탄하며 다시 돌아보며 책읽는 진도가 나아가지 않음에도 마음에는 설렘이 가득한 것을.. 진정 소중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책에서 처럼 스스로에 관한 솔직하고 당당하고 그리고 부드러운 많은 글들은 장마비 쏟아지는 내내 내 마음을 다듯하게 했다. 그리고 책읽는 나로 부끄럽지만, 진실하라는 뜻으로 더욱더 책읽는 재미에 심취해 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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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 머물면서 일구어온 가장 현명한 산물이다. 먼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나름대로 체계화시켜 정리하고 편집을 비롯한 여러 과정에서 일정한 수고와 땀이 뒷받침되어 만들어진다. 이러한 책이 시대와 역사를 넘어 여러 사람들의 손에 전해지고 익혀진다. 하지만 어떠한 감동과 즐거움을 줄지는 순전히 책을 읽는 사람의 몫이다. 다시 말하면 책이 주는 영향력을 알고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결과가 달리 나타난다는 말이다. 결국 책이 주는 힘과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벗 이상으로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간다. 여기 평생 책을 마음에 품고 책을 읽는 즐거움을 삶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았던 인물을 소개한다. 이덕무는 조산 후기 박학했던 실학자이다. 정치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조선 실학에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책을 사랑하고 고결한 선비의 풍모를 잃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 책에서 조선 선비 이덕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한다든지, 책을 선택하고 바람직하게 읽는 자세와 당시에 글을 읽는 선비로서 문장과 문장가의 입장을 해석하고 설명하며 평가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들추어 보면서 친분을 유지한 여러 벗들과 교류하며 쓴 편지글과 당시 올곧게 살아가야 할 선비의 풍모와 자연을 벗하며 사는 안빈낙도의 삶이 주는 즐거움을 진열해 놓았다. 평생을 높은 관직이나 풍부한 가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삶의 희열을 느끼며 자족했던 원천이 책이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목적과 가치가 다르기는 하지만 선비 이덕무가 사는 삶은 정신적 풍요로 집결된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로 기준을 삼는 이 시대에 청아하고 기품을 잃지 않는 선비의 정신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해 본다는 것은 참 값진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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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이덕무는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유하며 한시사가로 청나라에 까지 명성을 떨친 문장가였다. 그를 가리켜 간서치라 불렀는데 이는 자신이 직접 지은 별명이다. 햇빛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 책상을 놓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평생 읽은 책이 2만 권이 넘고 배껴 쓴 책만도 수 백권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를 여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신분적 제한으로 일찌감치 출세를 접은 것도 그가 책을 즐겨 읽게된 이유중 하나가 아닐 까 싶다. 어려운 가세로 책을 빌려읽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았던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한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책을 대하는 자세, 책을 읽는 방법, 책 읽은 후의 감상, 책을 읽고 어떻게 자기것 화 하는 지 등을 배울 수 있다. 책 한 권에 행복해 하고, 글짓기에 즐거워 하며, 친구들과 나누는 편지쓰기에 기쁨을 느끼는 그에게서 선비의 모습을 본다.
그는 책을 통해 군자와 선비의 도리를 배우게 되었고 책을 읽는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실용적인 실학자임을 보여주는 것이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을 것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학자로서 선비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해도 책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는 이덕무.. 그 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는 사람은 바른사고 바른생각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 이유 만으로도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리라 본다. 이덕무를 따라 책에미친 바보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의 정신, 그 의 모습은 본 받고 싶은 모습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이덕무가 책을 대하는 자세와는 참으로 다르다, 내 경우를 보면... 앞으로는 책 한 권 한 권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리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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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선생의 글을 다시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이 책은 우리들에게 감동이상이다. 책을 멀리하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시대를 이끄는 CEO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이는 책벌레라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 한다. 책에서 그들은 아이디어를 찾기도 하고 안식을 취하기도 한다. 책을 통해 수많은 지혜를 이들은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