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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11) [원제 : Une Forme de Vie] [My Review MMCC / 문학세계사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아홉 번째 리뷰는 논란의 주인공 아멜리 노통브의 <생명의 한 형태>다. 과연 아멜리 노통브는 천재 작가가 맞는가? 아니, 이것보다는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적확한 질문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소설을 '극찬'하는 쪽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흥미를 끌만한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문단에서 호평을 받고, 수많은 상을 휩쓸었으며, 출간하는 책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소설에서 굉장한 '반감'을 느끼곤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인가? 어떻게 제대로 된 등장인물이 없을까? 정말이지 이런 괴팍한 소설을 좋아라하며 읽는 독자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진다. 이 참에 국내에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몽땅 리뷰해볼 마음을 먹었다. 가능하면 2월 안에 다 읽고 써보려 한다. 얼추 헤아려보니 가능할 듯도 싶다. 자, <생명의 한 형태>다. <생명의 한 형태> 관점 포인트 : 그나마 노통브의 소설에서 '인정'하는 바는 괴팍한 이야기 형태속에 나름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한 형태>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의식'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미군 병사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전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 몸무게가 무려 1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이등병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사람이 이 정도로 살이 찌게 되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전투원으로 파병을 나간 미군 병사가 180킬로그램의 몸을 하고서 '현역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완전군장의 무게가 보통 40킬로그램이다. 거기에 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수류탄이나 방독면과 같은 개인휴대물품까지 모두 착용하면 이 병사는 전체 무게가 230킬로그램이 넘게 된다. 보통 일본 스모선수의 평균 몸무게가 120킬로그램 정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장 184센티미터에 몸무게 180킬로그램이 넘는 선수가 등장해서 스모 경기를 휩쓸었다고 한다. 스모는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유리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스모선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옷도 남이 입혀줘야 하고 씻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다. 심지어 용변을 본 뒤에 밑을 닦는 것도 남이 대신해준다. 그나마 스모선수는 '선수단' 안에 규칙과 서열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후배'가 선배의 모든 것을 뒤처리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현역군인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120킬로그램만 되어도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발생하는데, 180킬로그램이 넘게 되면 불가능하다. 물론 미국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아멜리 노통브는 이메일도 전화기(요즘에는 스마트폰이겠지만)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유일하게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답장'하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인공으로 아멜리 노통브가 등장하고, 그녀가 심지어 '미지의 미군 병사'와 자필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담긴 일종의 '서간문' 형태로 소설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아멜리 노통브가 아주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렇다 셈치고 읽어나가면, 아주 가관이다. 실제라면 절대 '펜팔(?)'을 주고 받을 상황이 아닐텐데, 소설속 아멜리는 일면도 없는 '미군병사'와 친밀한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편지 말미에는 늘 '우정을 담아~', '진심을 담아~'라는 문구를 써가면서 말이다. 편지의 내용도 별개 없다. 미군 병사의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 아멜리가 답장을 하면서 '인연'을 쌓기 시작했고, 처음엔 '오해'도 했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개인적인 비밀까지 나누며 서로의 '속마음'도 내비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순전히 '작가와 독자'로서 말이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다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멜빈 매플이라는 병사가 가난 때문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전장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폭식을 일삼았고, 먹다보니 '중독'이 되어 점점 더 먹게 되었는데, 점점 불어나는 체중으로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다가 '저항의 의미'를 담아 점점 더 폭식을 하게 되면서 '반전의 마스코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입대 전 50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이라크 파병 이후 130킬로그램이 불어나 현재는 180킬로그램이 되었고, 앞으로 더 살이 찔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멜빈 매플의 현재 외모는 추악하다 못해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비만'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고 역겹기까지 한 묘사속에서도 이 소설을 참고 읽을 수 있던 까닭은 다름 아니라 '반전의 메시지'로 읽을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으로 '합법'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란다. 부대원 가운데 일부가 동참을 했고, 똑같이 폭식과 비만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말이다. 근데 말이다. 폭식이나 비만 같은 것으로 어떻게 '저항'을 하고, '반전'이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게 또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라고 부르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기발'하기 때문이다. 폭식을 함으로써 '미군 내 식비'를 대폭 늘려서 미행정부를 향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뭐 대충 그런 메시지다. 몸무게를 130킬로그램을 찌우기 위해 얼마나 먹어댔겠냔 말이다. 남들 햄버거 1개, 비스킷 몇 조각, 초콜릿 1개를 먹을 때 멜빈 매플은 그냥 쓸어담듯 먹었단다. 식판 가득 햄버거를 쌓아놓고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좁은 식판에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한데 섞여 뒤범벅이 된 상태로 먹어치웠다고 한다. 게걸스럽다는 표현을 하던데, 우리식 표현으로는 '꿀꿀이죽'이라는 훌륭한(?) 표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먹는 모습이 혐오스럽다보니 동료장병들의 '사기저하'를 가속시켜서 미군사령부가 이 무의미한 전쟁에서 하루빨리 '철군'할 수 있도록...암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좋은 의미'란 의미는 다 빼려박아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멜리도 긍정적으로 수긍했지만, 점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듯 '답장'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다 멜빈 매플이 자신의 폭식과 비만의 몸이 '예술행위'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아멜리의 조언(?)을 덥석 받아서 자신의 몸, 그러니까 '예술행위'를 전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아멜리는 똥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이 한 조언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멜빈 매플의 소원(?)을 들어주려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한 주점을 '갤러리' 삼아 예술행위를 전시할 계획을 짜고 멜빈 매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아멜리가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멜빈 매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미군병사의 사망소식을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멜리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나가는 글 : 아쉽게도 이 소설의 결말은 기발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보여준 '패턴'이었기에 예상한 범위였었다. 뭐, 이런 '반전'을 두고서 기발하다, 천재적이다..라며 호평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딴에는 '작가의 무책임'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이따위 '열린 결말(?)'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냐고 말이다. 애써 구색 맞춘 '반전 메시지'도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진정성'이 사그라들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또한 제목에서 전하는 <생명의 한 형태>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그저 그런 평범함 속에 묻혀버리고 말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생명의 한 형태'라는 표현은 미생물인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사람'한테 쓰질 않나. 심지어 초강대국인 '미국인'을 상대로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과 동시에 미군을 상대로 '반전'이라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는 숭고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을 무색하리만치 '무성의'한 결말로 끝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마치 성난 군중을 몰고 중무장을 한 경찰 앞까지 행진한 '지도부'가 시위가 격해지고 일촉즉발의 심각한 사태가 닥칠 것으로 예상되자 기꺼이 동참한 시위대를 등지고 '발걸음'도 가볍게 냅다 도망친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꼈다. 다시 말해,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런 작가의 소설을, 아니 이 소설 <생명의 한 형태>를 읽고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독자들의 뇌구조가 궁금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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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 라는 작가에게서 톡 튀는 쇼킹한 읽을거리를 기대한 내겐 [생명의 한 형태]는 성공이었다. 좋았다. 그저 이야기 구성에 있어 쇼킹한 반전뿐만 아니라 서간체라는 형식을 취한 문체의 깊이가 좋았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멜리 노통브는 작가 자신이 아닌 그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일 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이야기에선 두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 아닐까 착각이 일 정도였다. 평소 편지광으로 알려진 작가답게 이 작품에 나오는 아멜리 노통브 작가도 세계 각처에서 팬들이 보내온 편지의 양과 사연들에 짓눌려 하면서 오히려 그 편지들이 힘이 되어 주고 감사해 하는 부분에선 작가의 진정한 맘을 표현했다고 보여져 혼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작가에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새로운 유형의 편지를 받았다" 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그 편지는 이라크에 파병중인 미군 병사가 보내온 것으로 자신은 폭식증이라는 어마어마한 중독에 걸렸다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100킬로그램이 넘는 한 사람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얘기하면서 작가만이 그런 그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고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와 이등병 멜빈 매플의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가면서 거대한 하나의 살덩어리가 내 눈 앞에 떡하고 버티고 있는 착각을 할 정도로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멜빈 매플은 자신의 폭식증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신에게 준 병으로 자신이 이라크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죄책감을 잊기 위해 마약에 빠지듯 식탐에 점점 빠져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더이상은 그러한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지만,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거대한 죄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고 하소연 한다. 아멜리 노통브는 그러한 멜빈 매플에게 점점 흥미를 가지며 자신이 예전에 알았던 거식증을 앓고 있는 여대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바디아트'를 해 볼 것을 권한다. 그 이후 멜빈 매플은 자신의 예술성을 키우기 위해 더욱더 자신의 몸을 살찌우는 행위에 노력을 가하게 되고, 작가는 그를 통해 자신이 정말 제대로 그에게 충고를 한 것인지 걱정을 하면서 그를 위해 화랑까지 알아 봐 주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이 작가를 기다리며, 아멜리 노통브는 놀람과 혼란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그 계획에서도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면서 또다른 결과를 만들어 간다.
비록 180킬로그램이라는 어마어마한 살덩어리를 가진 멜빈 매플이지만, 자신은 생명의 한 형태라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에 나는 어디까지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게 된다. 살찐 사람들을 보게 되면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는 사회적 시선에 책 속의 거구의 살덩어리를 가진 멜빈 매플이 같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마지막에 자신이 멜빈 매플을 만나 과연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하며, 그의 삶을 보다낫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조차 혼란스워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피하고 싶은 맘이 더욱 와 닿고 이해가 된다.
작품 속의 아멜리 노통브가 그저 이야기 속의 인물이라고 말해도 [생명의 한 형태]에서 여타의 작품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었고, 그것에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친근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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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생활하는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에게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편지가 배달된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편지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바쁜 일정에도 그녀는 팬들에게 언제나 답장을 해주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모든 팬들에게 답장을 해주는 건 언제나 불가능하다.
그런 그녀에게 주목을 끄는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바로 바그다드에 배치된 미군 병사 '멜빈 매플'의 편지가 온 것인데, 이 편지에 대해 아멜리 노통브는 이렇게 적으며 소설을 시작한다.
'오늘 아침, 나는 새로운 유형의 편지를 받았다.'
바그다드에 파병된 멜빈은 전쟁에서 오는 참혹한 고통을 먹는 것으로 잊으며 지냈고, 그 결과 폭식증에 빠져 버린다. 80kg 정도 였던 그의 몸은 200kg 이상이 되어 버리는데, 자신의 살덩이에 또 다른 하나의 인격을 부여한다.
이런 멜빈의 편지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아멜리 노통브는 그와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하는데...
처음 읽었던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을 다시 읽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의 소설이었다. 생명에 대한 단상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을 편지를 매개체로 하여 적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책을 펼친 순간부터 다시 책을 덮는 순간 까지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 역시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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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6일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을 읽고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푹 빠지고 말았다. 이 책이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정말 실화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건 현실의 모습이 그녀의 이름과 함께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이라크에서 6년째 주둔하고 있다는 멜이라는 미군 이등병의 편지가 노통브에게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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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와 팬이 주고받은 편지에 중간 중간 작가의 생각을 곁들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작가’의 이름은 바로 아멜리 노통브이다. 그래서 인지 책을 읽으며 정말 아멜리 노통브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바로 그 점이 허구임에도 리얼리티를 높여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그녀의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그녀의 문체는 간결하다. 그리고 간결함에도 가볍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본연의 심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무거운 주제들을 기발한 아이디어와 통쾌한 문체로 써냈기 때문에 그녀가 쓴 많은 소설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도 역시 그렇다. 역시 간결하고 통쾌한 문체는 기본 바탕이다. 여기에 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현대적인 병인 비만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켜 미군문제, 은둔하는 인간 등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작가 자신의 심리도 성찰한다. 그동안 작가 지망생인 나는 아멜리 노통브라는 대단한 소설가가 글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는 아멜리 노통브가 자신의 심리를 성찰하는 부분이 나와 있어서 좋았다. 특히 한 소설가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소설가로 산다는게 끔찍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왜 아니겠어요. 나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라고 소설 속 아멜리는 대답한다. 또한 글 쓰는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신경안정제를 복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소설가에게 아멜리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 작가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건 글쓰기와 연관된 불안감 때문이죠.”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녀에게도 스트레스이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인가보다. 그럼에도 아멜리가 계속을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아멜리는 “나에게 언어란 가장 차원이 높은 현실이란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도 그 뒷부분에서는 “글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네가 추구하던 게 뭐였니?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열렬하게 바라던 게 뭐였냐고? 너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거지?” 라고 말한다. 아멜리는 67권이 넘는 소설을 썼다. 하지만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서는 대단한 아멜리라고 해도 한마디로 말할 수 없나보다.
이 소설은 마치 정말 아멜리 노통브가 독자가 보낸 편지 내용을 모티프로 해서 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내용은 허구이다. 그렇지만 허구임을 알고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아멜리 노통브라는 존재, 멜빈 매플이라는 존재를 생명의 한 형태로 만들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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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이기'를 읽고, 도서관에 가서 노통브를 검색! '생명의 한 형태'와 '적의 화장법'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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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제목이다. 생명의 한 형태... 어떠한 내용일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충격적일 것이고, 반전에 뒷통수를 맞을 것이고, 결말을 음미하게 될 거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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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두꺼운 책 만큼이나 머릿속을 꽉 차게 만들었다. 독특한 소재와 노통브의 스타일은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리고는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여 책에 대한 이미지로 머릿속을 가득차게 만들었다. 아멜리 노통브 작품의 이미지는 유독 머릿 속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내 머릿 속의 어떠한 상상과도 중복되지 않는 신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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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아멜리 노통브와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멜빈 매플이 주고 받은 편지이다. 멜빈 매플은 병을 앓고 있다. 바로 '비만'이다. 그는 180 kg이나 나가는 거구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비만증에, 그의 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몸에 붙은 살들은 죄책감이기도 하고, 세헤라자드라는 여자이름을 붙여 애정의 대상으로 표현하기도 하며, 죄의 무게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식욕조절문제를 여러가지 이유를 달며 합리화한다. 그의 편지를 읽다보면, 180kg... 그의 정상 체중에 100kg 이나 더 붙어있는 살덩어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버린다. 그의 합리화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또한, 소설임을 알면서도, 실제 이야기인가? 의심하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는 그녀가 만들어낸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의 기괴한 세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 기괴한 세상이 당황스러울정도로 현실적이다. '이런 일이 있을수도 있어' 라는 느낌보단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의 세상은 정말 엄청나다.
아멜리 노통브는 어릴 적 거식증을 겪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것 같다. 특히, 폭식과 거식에 대한 그녀의 강한 의식이 작품에 들어있는 것 같다.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주인공은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음식을 거의 먹지 않다가, 살인을 저지른 후 폭식을 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폭식은 죄책감이 담겨있다. 그녀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죄의식을 의미하는 것일까? 음식을 먹지 않음은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미성숙한 방어기제일 뿐인걸까?
요즈음,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을 모으고 있다. 그녀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세계는 대체 얼마나 넓은 곳일까...? 얼마나 더 기괴한 상상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그녀의 자전적 요소 또한 매력적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 동안 나의 세상 또한 넓어져서 과연 그녀의 작품보다 더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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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와 글쓰기광이 주고받은 편지들!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항상 느끼는 것인데 노통브의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오히려 술술 읽히며 애매하거나 일부러 어렵게 문장을 쓰지는 않지만 소재, 그러니까 각 인물의 캐릭터와 상황, 스토리가 좀 ,,, 파악하기가 어렵고 뭔가 이럴것이야 라는 예측가능한 결말이 아니라 헉 이건 뭐지 하는 느낌이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겨울방학때읽었던 살인자의 건강법도 너무 애매하고 뭐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공감가기 어려운 소설이며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나,,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까 과거에 그녀의 책을 읽은 것을 생각해보니까 유난히 노통브는 비만에 대해 많이 다뤘으며 거식과 비만. 이 두가지를 놓고 생각해 보면 거식은 어른이 되지 않기 위란 수단이었으며 폭식은 죄책감의 표출이다.초반에 남자주인공은 전쟁에 대한 반감과 죄책감, 공포로 폭식을 택한 것으로 나오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 비만해진 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 아직 생명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선택한 생명의 한 형태가 무엇인지 이야기되고 있다.
나를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에겐 진지한 이유가 있잖아요.비만 병사들은 사회적 지위 덕분에 희생자로 분류되었다고요. 그렇게 살이 찐 게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요. 사람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질투가 났습니다. 한심하죠,나도 압니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들의 병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어요. 나는 그것 역시 부러웠답니다. 당신은 내 비만중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겠죠. 그럴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비켜간 걸 어쩌겠어요.사실 내가 비만해진 것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내 정신에는 인과법칙이 파괴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온종일 인터넷만 하고 살다 보니 몇 달 동안 삼킨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생겨났나 보더라고요. 나는 이야기가 결여된 뚱보였고, 그런 뚱보로서, 위대한 역사에 편입된 그들을 질투하고 있었던 겁니다. p168 이 말을 읽고 남자가 애처로웠으며 연민과 동정도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존재 즉 살아있음을 살로 표출해냈다. 그 부분이 너무 가슴아프다. 자아가 약한 것이어서 그런 것 같다. 자아가 높은 사람이라면 나의 존재를 굳이 보이는 것으로 표현 하지 않는다 . 그리고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세상과 분리되어있다는 외로움, 파병군에 떨어진 무력감, 가족에게 외면당한 아픔이 그려진다.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 받을 때보다 직접 만났을 때 더 기분이 좋았던 적은 드물다. 물론 그 누군가가 편지를 쓰는 데에 최소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발언을 무력하고 에너지가 부족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고백으로 여겼다 .(중략) 아무튼 나는 누군가가 함께 살 정조로 좋아도 , 그 사람이 나에게 쓴 편지가 필요하다. 편지를 주고받는 부분이 채워질때 그 누군가와의 관계가 완전해 보이는 것이다. p118 노통브는 편지를 쓰는 것과 받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파악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자는 먹는 것으로 파악하고,,, 둘다 무엇인가에 중독된 사람이어서 노통브는 그를 이해하려하고 용서하지만 결국 직접적인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말이 전형적인 노통브 스타일 같다. 그리고 편지형식의 소설인 이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 책도 생각이 났다. 이 책은 편지가 아니라 이메일 이지만 ,,,,,,,,,,,,,, 뭔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이책에서는 두가지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뚱보남자의 이야기와 노통브가 느끼는 심리와 편지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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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번역되어 출간된 프랑스 작가라는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소설까지 내가 읽은 것만 열일곱 권이니, 읽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작가는 아직 마흔 다섯 살일 뿐이다. 게다가 언제나 책상 서랍에 아직 소설로 만들지 않은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쟁여 놓고 있다니 이 다작의 발걸음이 쉽게 휴식을 취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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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 아멜리 노통브는 새로운 유형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발신자는 바그다드에 주둔한 미국 병사 멜빈 매플. 「생명의 한 형태」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는 현실의 ‘아멜리 노통브’이다. 그녀가 쓴 책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하고,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편지 교환에 대한 취미가 그대로 묘사된다.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첫 장면부터 이 작품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를 넘나드는 그녀의 필력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으니. e-메일로 구성된 소설인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21세기의 세련된 느낌을 받았었다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교환하는「생명의 한 형태」로는 20세기의 복고적이면서 좀 더 무거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자칫하면 진부할 수 있는 구성임에도 아멜리 노통브는 자신의 주특기인 대화체로 속도감을 부여해 진부함을 극복했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국 병사 멜빈 메플은 주둔 6년 동안 정상인에서 180킬로그램의 거구로 변한다. 로켓포, 탱크, 바로 옆에서 터지는 시체,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들을 보며 진짜 전쟁을 경험한 그는, 그것들에 대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음식 중독’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세헤라자드’라고 이름 붙인 지방덩어리 뿐이다. 「생명의 한 형태」는 비만인들을 향한 시선들에 대한 역설이 아닐까 싶다. 원제인 ‘Une Forme de vie’는 ‘어떤 삶’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생명의 한 형태’나 ‘어떤 삶’이나 형태적이거나 질량적인 문제로 존중받지 못하는 특정 부류에 포함되는 사람들을 잘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도 내용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소설은 여러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반영하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도 만들고 현실에 참여하여 정부나 사회를 비판하거나 고발할 수도 있다. 판타지처럼 상상속의 세계를 만들어내 도피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집어넣어 인형의 집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들을 읽으며 늘 ‘소설’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인 듯하면서도 주관적이고 연약한 듯하면서도 강하고 신랄하면서도 유쾌하고, 그러면서도 냉정하고 잔인한 그녀의 글들은, 인간에게 구차하게 반성하라고 충고하거나 연인들을 등장 시켜 억지 눈물을 짜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을 등지는 것도 아니어서 중용을 아는, 자기 안의 무엇을 끌어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작 아멜리 노통브는 한 인터뷰에서 작가의 역할을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지만. 10년 동안 그녀의 전작 주의자로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치지 않는 그녀의 신선한 필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나의 예상을 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