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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독서의 성향으로 보면 입맛이 무척 까다로운 편식가에 속한다. 그래선지 어떤 책이든 덥썩덥썩 손이 안 가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내게 필요한 실용서나 논픽션의 경우는 다르지만 소설이나 에세이같은 문학장르는 나를 사로잡지 못하는 문장이나 나를 주목시키는 내용이 아니면 2박3일동안 나와 독서여행에 동행할 수가 없다. 누구나 다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나를 매료시키는 책은 3일 안에 끝장나야 직성이 풀린다.
'슬픈 쁘띠의 노래'는 페이퍼백의 표지에 씌인 한 줄의 문안이 나를 사로잡았다. '미움을 가슴에 품었다가 꽃으로 피워드리겠습니다.' 시적 이미지가 강하게 어필해들어오는 이 한 마디가 읽기 전에 이 소설이 어떤 메타포를 함축하고 있는지 내 감성을 자극해왔다. 뉴요커 쁘띠의 은빛연어 같은 사랑과 모성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이미 오래 전에 "불새"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서울에서의 외로운 몽상" 혹은 "서울 무지개" 같은 일부 소설 마니아들의 마음을 현혹시킨 적이 있었던 중견작가가 오랜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 중에 나는 단편소설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을 두번씩 읽었지만 작가 이름을 잊고 있다가 이번에 이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났고, 확인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외형적으로는 뉴욕에 사는 한국 입양아 출신 지니가 모태회귀의 본능을 가진 연어처럼 모성을 복원하는 열망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북한 인민학교 교사이자 전직 남파 비밀공작원이었던 친모와의 극적인 만남을 액자형태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의 시점으로 두 사람의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사랑을 그려가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남북분단과 이산가족의 비극, 그리고 입양아의 슬픔이라는 한국의 비극적 현실을 비유적으로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늘날 IP시대에 내가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소설은 영화나 뮤지컬이나 게임처럼 여유와 취향을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독자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작가의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혹은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진정성을 함께 나누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 시대에 혹시 나처럼 소설을 열심히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시류나 유행을 떠나서 바로 한반도의 비극적 현장에 강렬하게 조명하고 있는 이 소설의 주제와 작가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으면 싶고, 그 보다는 이 소설의 서정적이면서도 고품격의 문체로 묘사되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한번쯤 푹 빠져서 공감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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