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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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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에 좌구명이 주석을 가한 책을 말한다. 과거에 나는 한길사에서 신동준 역자가 3권으로 번역한 《춘추좌전》으로 《춘추》를 처음 접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 책의 개정판이 출시됐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상, 하 두 권으로 번역됐다. 이 리뷰는 개정본 《춘추좌전》 상권에 대한 리뷰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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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에 좌구명이 주석을 가한 책을 말한다. 과거에 나는 한길사에서 신동준 역자가 3권으로 번역한 《춘추좌전》으로 《춘추》를 처음 접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 책의 개정판이 출시됐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상, 하 두 권으로 번역됐다. 이 리뷰는 개정본 《춘추좌전》 상권에 대한 리뷰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난세의 시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그리스 폴리스 국가들의 경쟁 체제도 난세 중의 난세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비하면 포스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중국의 난세는 무려 500년이나 가까이 지속됐고, 이런 난세의 시기는 세계사에서 흔하지 않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21세기는 외면적으로는 치세의 시기를 보내는 것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무조건적으로 평화로운 치세의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법칙이 강조됐고, 그렇기에 겉으로는 평화로운 치세의 시기더라도 실상은 난세의 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춘추좌전》은 이런 난세 중의 난세의 시기를 다룬 역사서다. 물론 고대의 난세와 오늘날의 난세는 시대적인 이질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난세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기에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적인 사례를 배우는 것도 오늘날의 난세를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춘추좌전》은 춘추시대의 제후국 중 하나인 노나라의 역사를 기준으로 전개한다. 다른 나라들도 많지만 왜 하필 노나라인 것일까? 이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자는 말년에 이르러 《춘추》라는 역사서를 편집했다고 한다. 《맹자》에 이르길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것도 《춘추》일 것이요,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춘추》로 비롯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노나라는 그런 공자의 조국이었고, 공자는 자신의 조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이것이 바로 《춘추》라고 알려져 있다.공자는 왜 노나라 역사를 정리한 것일까? 단순한 애국심에서 저술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가 자국의 역사를 편찬한 이유는 바로 노나라의 역사적인 배경에 있었다. 노나라는 주나라의 명재상인 주공이 봉지로 받은 나라였다. 주공은 유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하의 롤모델이었다. 그는 왕좌를 찬탈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황위를 이을 어린 조카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런 주공이 건국한 나라였고, 또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주나라 황실의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국가였다. 따지고 보면 공자의 유학 역시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정립된 철학이므로,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찬란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노나라지만, 노나라는 중원의 패권과는 거리가 있는 국가였다. 《춘추좌전 상》은 노은공에서부터 노양공의 치세 중반까지를 다루는데, 읽은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노나라의 역사는 힘없는 나라의 기록이었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의 팽창이 더욱 돋보였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나라는 관중과 환공의 제나라, 그리고 떠돌아다니며 인생의 역전을 노렸던 진문공의 이야기, 남쪽의 강국 초나라의 부상 등등이다. 이들은 차례대로 춘추시대의 패자를 선포한 군주국이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주나라 중앙 황실은 지방의 제후국을 제어할 수 없는 그저 명목상의 천자로 전락했고, 힘 있는 국가들은 힘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규정했다.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은 차례대로 패자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힘을 숭상하는 분위기는 고조됐고, 국제질서뿐만 아니라 나라 안의 군신관계도 힘에 의해 결정 났다. 힘없는 주군을 시해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이 시대에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노나라 역시 이런 참화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즉 춘추시대는 이전 시대에 있었던 도덕과 덕이 떨어진 시대였고,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소위 막장의 시대였다. 대륙은 욕망의 전란으로 들끓었고, 평화보다 전쟁이 더 일상화된 시기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이 발전했고,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대적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역사학이 발전했다. 《춘추좌전》 역시도 혼탁한 시대를 바로잡으려는 지식인들의 노력하게 만들어진 고전이었다. 《춘추좌전》의 백미는 역사적인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것을 넘어 역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에 있다.

사학자 랑케는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면 E.H. 카는 객관적 역사를 토대로 한 주관적인 역사를 강조했다. 이를 《춘추좌전》에 대입하여 설명해보자. 공자가 편찬한 《춘추》의 본문은 소략하기 그지없다. 짤막한 단문으로 역사적 사실만을 짧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춘추》는 랑케의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기록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춘추좌전》은 이런 공자의 짤막한 기록에 풍부하고 자세한 해설을 첨가했다. 재미있는 점은 짤막한 본문을 자세하게 부연하여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춘추좌전》의 묘미는 바로 이 사관의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이렇게 생각해서 잘못됐다. 이 사건은 이렇기 때문이 바른 일이다.' 그렇기에 《춘추좌전》은 E.H. 카의 의미론적인, 주관적인 역사관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

《춘추좌전》의 저자는 왜 이렇게 시대적인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걸까? 바로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막장으로 치닫는 난세, 그저 힘이 최강인 시대가 과연 옳은 시대일까? 땅에 떨어진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하는가? 야만의 시대에서 사라진 과거의 문명적 관습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가? 그런 치열한 관념 아래에서 《춘추좌전》은 탄생했다. 평가의 백미는 '군자'라고 칭하는 인물이 사건을 평가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군자는 저자를 뜻하며,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당대의 지성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춘추좌전》의 필법은 '춘추필법'이라는 이름으로 후대 역사가들에게 역사 서술의 표준으로 각인됐다. 이러한 춘추필법의 영향으로, 후대의 역사가들은 무미건조한 사실만을 기록하지 않으며,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서 자신의 의견을 사건이나 인물 말미에 정리하였다. 이런 사관의 주관적 논평이 뛰어나면 그 역사서는 높은 명성을 받았으며, 논평이 편협하고 타당하지 않으면 역사서의 평가 역시도 덩달아 낮았다.

물론 《춘추좌전》의 해석이 타당한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춘추좌전》은 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유교적인 마인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사건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명분론에 입각한 모습도 보이고, 너무 형식적인 해석도 볼 수 있었다. 자리를 바로 세우고, 권위를 회복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부분은 봉건 국가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이런 것들을 너무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소소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춘추좌전》은 매우 뛰어난 책이다. 동양 사서 집필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몰락하는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려고 했다는 점, 그리고 숱한 역사적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처세와 치국의 팁 등 배울 점이 무궁한 고전이다. 살아남은 책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만 방대한 분량과, 생소한 문체와 배경 등등이 다가가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책이다.

k******m 2018.05.13.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春秋左傳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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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은 본디 <춘추>와는 별개의 텍스트입니다. 이 책에도 저자 서문에서 잘 밝혀져 있듯, 5경(五經) 중 하나인 <춘추>는 공자의 저술 명의로 알려졌고, 그 <춘추>에 좌구명이란 사관이 주석을 단(정확하게는, "전[傳]을 썼다고 해야겠습니다만) 것이 바로 <춘추좌전>입니다. <춘추>가 너무도 소략한 기술이기 때문에, 학식 높고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의 설명이 없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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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은 본디 <춘추>와는 별개의 텍스트입니다. 이 책에도 저자 서문에서 잘 밝혀져 있듯, 5경(五經) 중 하나인 <춘추>는 공자의 저술 명의로 알려졌고, 그 <춘추>에 좌구명이란 사관이 주석을 단(정확하게는, "전[傳]을 썼다고 해야겠습니다만) 것이 바로 <춘추좌전>입니다. <춘추>가 너무도 소략한 기술이기 때문에, 학식 높고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의 설명이 없이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신동준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거의 "메모"와도 같습니다). 꼭 <춘추>뿐 아니라, 모든 경전은 대개 간명한 기술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경"에 "전"이 따라붙는 건 거의 필수이기도 하므로, 이를 함께 일러 "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과 "전"은 본디 별개의 존재 단위입니다.

역자 학오 신동준 선생께서는, 중국 유학의 역사를 놓고, 이 <춘추>에 "전(傳)"을 따로 부가하여 저술한 책들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좌전, 곡량전, 공양전 세 권 중, 어느 책이 당대 지식인, 관료, 지배층의 너른 지지를 입어 으뜸가는 위상을 확보했는지에 따라, 시대 정신을 규정할 수 있다고까지 규정하십니다. 한대에는 동중서의 영향 때문에 공양전과 곡량전이 널리 존숭되고 애독되었으나, 삼국시대와 남북조를 거치고, 이후 송대를 지나면서 성리학(도학)의 태두인 주희가 좌전의 우월성을 고고히 선언함에 따라, 좌전이 거의 독보적인 권위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춘추 하면 바로 좌전(만)을 떠올리고, "춘추"와 "좌전"을 아예 단일개념어로 인식하는 건 바로 이 영향이 근 1,8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진 까닭입니다.

이후 청나라가 말기적 부패 무능상을 노정하자 개신 유학자들이 "변법 자강"을 들고 나왔는데, 이들의 대표격인 캉유웨이 등이 특히 "공양전"에 표현된 자유로운 금문 기반의 개혁주의를 표방했습니다. 확실히 중국다운 것이, 그저 구체제를 개혁한다고 내세워도 될 것을, 구태여 고전에서 전거를 찾아 "공양전식 혁신"을 표방하는 그 태도입니다. 시원시원하고 역동적인 공양전, 곡량전에 비해, 좌전은 꼬장꼬장하고 보수적입니다. 이런 좌전인 만큼, 고전의 해독에 통달하고 심지어 현대 중국의 추세와 사정에까지 밝은 역자분이 나서서, 이 복잡다단한 격변기, G2의 분립 웅거기를 사는 우리 현대인에게 그 참뜻을 밝혀 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한길그레이트북스에서 상중하 3권 체제로 초판을 내었을 때 처음 신동준 박사님의 <좌전> 번역을 접했습니다. 그때는 G2라는 용어도 고안되거나 유행하지 않았고, 아시아의 허브 국가라든가 "퍼스트 무버"라는 개념도 낯설 무렵이었습니다. 그간 역자께서도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독자들과의 소통 폭을 넓히셨고, 동아시아의 정세를 보시는 시야도 훨씬 원대해진 면이 있습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이 다 이 10년만의 전면 개정판에 반영되었고, 저자의 견문도 폭 넓게 투영되어, 이를테면, 祭라는 글자가 일상으로 발음될 때에는 제사라는 "제"이지만, 인명 지명으로 쓰일 때는 반드시 "채"라는 발음이라는 점도, 극최근의 현지 답사를 통해 성조까지 분석하며 정확한 분별을 전개하십니다. 과연 전면개정판이란 명목에 값하는 알찬 장족의 진보입니다.


책의 편제나 편집, 장정도 이전판에 비해 더 마음에 듭니다. 일단 판형이 크고, 성격이 전혀 다른 시리즈와 한묶음으로 같은 디자인이었던 구판과 달리, "중국 3대 사서"라는 <국어>와 <전국책>, 이 두 권과 같은 장정을 취합니다. 세 권(이 <좌전>이 두 권이므로 총 네 권입니다)을 나란히 꽂으면 서재의 품격부터가 달라 보입니다. 여태 <좌전>만 타 출판사 간행이었는데, <국어>의 완역 출간 후 불과 몇 달만에 이렇게 <좌전>의 개역으로 시리즈가 완결을 보니 너무 좋습니다.

p84에 보면 역주(각주 35)를 통해, "조근(朝謹)은 알현을 뜻한다"고 명확히 서술합니다. 알현은 신하가 군주를 뵙는 것도 알현이지만, 역자는 "'조(朝)'는 봄에 제후가 천자를 찾음이요, '근(謹)'은 가을의 행사"라며 이 명사가 융합 관계의 합성어임도 친절히 가르쳐 주십니다. 책 서문에 자세히 나오듯, 고전이란 어떤 편자, 역자가 주를 달고 해설을 베푸느냐에 따라 그 이해도와 깊이가 독자에게 천차만별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고전에서, 상세한 역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차량에 장착한 내비게이션과도 같습니다.

이 시기 다른 나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으나, 노 왕실(상대가 된 제 왕실 역시)과 공경 가문에서 백성의 모범이 되어 질서와 예를 지키기는커녕, 입에 차마 담지도 못할 패륜을 자주 자행했습니다. 여튼 이 과정을 기술하며 여러 인명이 나오는데, "강(姜)"이 두 음절 후반부(전반부가 아닌)에 돌림자처럼 붙은 여러 사례를 두고 "여성에게 그 출신 성을 표시한다" 같은 친절한 설명을 해 주시네요.

<동주열국지> 같은 연의류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 사서에 실린 여러 이야기들이 그리 낯설지 않겠습니다. 연의류는 많은 각색과 상상이 첨가되었고, 문체가 나긋나긋 이해가 쉽습니다. 반면 <춘추> 같은 고전은 문장이 엄격하고, 숨은 뜻이 깊죠. 역자 서문에도 잘 나와 있듯, "숨기는 듯 분명히 드러내며, 소상하되 비루하지 않고, 감싸는 듯하면서 추상같이 비평하니, 성인(공자를 가리킵니다)이 아니고서야 이런 책을 쓸 수 없다"는 평가가, 어떤 반론을 불허할 만큼 설득력을 지니는 게 이런 정사서, 혹은 경전입니다.

<춘추>는 경전인가 역사서인가? 청대 장학성은 놀랄 만한 사고의 변증법적 도약으로, 이른바 "육경개사(六經皆史)"설을 통해, 경과 사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논증했습니다. 춘추 같은 양성적 성격의 텍스트뿐 아니라, 아예 시경, 서경, 주역 등의 시원적 경서도 모두 "역사"로 볼 수 있다는 탁견이지요. 학오께서도 이런 너른 시야와 통합적 관점에서 경전을 새기는 스탠스이기에, 어쩌면 이 책은 우리 현대 독자들에게, 유교 경전 수용과 학습에 있어 가장 표준적인 지침으로 기능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적인 춘추좌전"을 표방합니다. 저본은 북경대 1999년판, 양백준(역시 북경대 교수였고, 대륙에서 고전 주석의 대가였지만 문혁 때 크게 고생한 분이죠)의 1983년판 주석서 등이지만, 조선 정조 때 출간된 <춘추좌씨전>을 수시로 참조하여, 불명확한 대목의 해석이나 한국적 관점을 반영하는 데에 크게 활용했다고 밝힙니다. 하권을 마저 읽고 나서, 그 정조시대판의 특장인 성씨 세계(世系)의 도표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이 책에서 잘 구현되었는지 리뷰에 그 소감을 표현하겠습니다.

k*********6 2017.10.20.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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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역사서를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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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춘추좌전]을 읽기에 앞서..     춘추전국시대는 550여년간 지속된 동서고금 최고의 난세였다. 열국들은 패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하루도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난세에 세객(說客)들은 온갖 치국평천하 전략을 다 내놓았고 자신이 주장한 방책이 채택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유세(遊說)했다. 이른바 제자백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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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을 읽기에 앞서..

 

  춘추전국시대는 550여년간 지속된 동서고금 최고의 난세였다. 열국들은 패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하루도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난세에 세객(說客)들은 온갖 치국평천하 전략을 다 내놓았고 자신이 주장한 방책이 채택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유세(遊說)했다. 이른바 제자백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춘추전국시대란 중국역사에서 어느 지점을 가리킬까?

 

  춘추전국시대란 동주시대의 별칭으로, 이 시대 최고의 통치이념은 존왕양이(尊王攘夷) 이었다. 비록 망해가는 왕실이었지만, 봉건군주들은 패자가 되기 위하여 명분이나마 주()왕실을 받들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이기도 하다. 주대(周代)는 서주(西周)와 동주(東周)시대로 구분된다. 주 무왕이 주나라를 세운 이래 주 유왕이 견융의 침공으로 살해되기 전까지 호경에 도읍을 정하고 250여년간 계속된 시기를 서주시대라 하고, 이후 주 평왕이 동쪽 낙읍으로 천도한 후 진나라에 멸망할 때까지의 500여년간을 동주시대라고 칭한다. 춘추시대란 바로 동주시대의 전반기를, 그리고 전국시대란 동주시대의 후반기에 해당되지만, 통치사상사적 관점에서는 구분할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는 것은 후세의 사가들이 편의상 그렇게 구분한 것이라고 한다. 굳이 이렇게 시기를 나누다 보면 그 분기점은 진()나라를 3분한 한,, 3(三家)가 주 왕실에 의해 제후로 봉해진 주 위열왕 3(기원전 403)을 꼽는다. 그 이전을 춘추시대라 하고 그 이후를 전국시대라 한다. 춘추시대란 말은 공자가 편수한 [춘추]가 다루고 있는 시기에 착안하여 만들어졌고, 전국시대라는 말은 유황이 쓴 [전국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이러한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서(史書)로 세 권의 책이 있다. 노 나라의 역사가좌구명이 쓴 [춘추좌전][국어] 그리고 전한말 유향의 [전국책]이 그것이다. [춘추좌전]은 사건을 발생한 시간대별로 기술한 편년체형식이다. 그에 반해 [국어][전국책]은 사건별로 제목을 앞세우고 관계된 내용을 한데 모아 서술한 기사본말체이다. 다만 [국어]는 국가별로 주요 사건을 다룬 국별체 형식이라는 점에서 [전국책]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춘추좌전][국어]는 춘추시대를 다루고 있다. [국어]를 주석한 삼국시대 오나라의 위소는 노 나라를 중심으로 한 춘추의 경문에 대한 해석 위주로 쓴 [춘추좌전]을 춘추내전, 그리고 춘추시대 열국을 두루 다루고 있는 [국어]를 춘추외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춘추좌전]이 노 은공 원년인 기원전 722년부터 노 애공 27년인 기원전 468년까지 255년동안 노 나라의 역사를 중심으로 열국들의 사건을 기록한 책이라면, [국어]는 주 목왕의 견융 정벌사건에서부터 진()나라가 3분되는 시점까지 주, , , , , , , 월 나라 등 8나라를 다루고 있다. 이중 진나라에 대한 내용이 전체의 3분의1가량 되며 내용도 가장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춘추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국어] [춘추좌전]을 같이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국시대에는 백가쟁명의 시대라는 말이 보여주듯, 수많은 사상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유향의 [전국책]은 이런 전국시대 세객들의 책략을 하나로 묶어 펴낸 책으로 그 시대 책사와 모사들의 말과 행동을 적은 일종의 일화집 형식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국어]가 춘추시대 여러 군신들의 활약상을 그렸다면, [전국책]은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세객들의 활약을 그린 셈이다. 결국 이것들 모두가 구국을 위한 영웅호걸들의 활약상이라고 한다면 [국어][전국책]은 다루는 시기만 상이할 뿐이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 전 시기를 관통하는 존왕양이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국책] 역시 [국어]와 같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양고전의 대부분은 춘추전국시대 세객들의 유세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동양고전을 읽을 때마다 필요한 것은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과 시대적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그 시대의 쟁점을 알고, 또 우리가 선택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찍이 신영복교수는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고민해야 할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고전 공부는 고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과거를 기억하고, 또 어떤 과거를 망각할 것인가 하는 기억 투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사상사의 쟁점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고전들이란 오늘이라는 시대가 선택하고 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오늘이라는 시대가 선택한 관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동양고전에서 무엇을 배우고, 우리는 어떤 관점을 선택해야 할까? 그 답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선 춘추전국시대 3대사서라는 [춘추좌전], [국어], 그리고 [전국책]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k*****1 2017.10.2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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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동아시아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춘추좌전 상/하]
"1-4. 동아시아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춘추좌전 상/하]" 내용보기
동아시아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춘추좌전 상/하]   춘추전국시대 3대 사서라 하여 좌구명의 [춘추좌전]좌구명의 [국어]유향의 [전국책]을 꼽는다. 삼국지를 능가하는 최고의 전략서라 하는 [전국책]을 제외하고는 [춘추좌전]과 [국어]가 내 손 안에 있다. [춘추좌전]은 공자가 만든 '경'에 현인 좌구명이 '전'을 단 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원래 [춘추좌전]은 오랫동안 [좌씨춘추]나
"1-4. 동아시아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춘추좌전 상/하]" 내용보기

동아시아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열쇠[춘추좌전 상/하]

 

 

 

춘추전국시대 3대 사서라 하여 

좌구명의 [춘추좌전]

좌구명의 [국어]

유향의 [전국책]을 꼽는다.

 

삼국지를 능가하는 최고의 전략서라 하는 [전국책]을 제외하고는 [춘추좌전]과 [국어]가 내 손 안에 있다.

[춘추좌전]은 공자가 만든 '경'에 현인 좌구명이 '전'을 단 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 [춘추좌전]은 오랫동안 [좌씨춘추]나 [춘추좌씨전]이라는 두 가지 명칭으로 혼용돼왔다. 후한 때 [좌씨춘추]가 [춘추]에 대한 주석서로 공인받으면서 [춘추좌전]이라는 명칭이 널리 통용되었다.

신동준의 역작을 손에만 넣고 있으되, 그 의미를 파악하고 실제 활용하는 일에는 아직 발걸음도 떼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21세기에 좌전을 읽으며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지 ...

 

어제 TV에서 플라톤 아카데미 특강으로 장하*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바꾸는 일까지 결행한 우리이지만 아직도 '불평등'은 곳곳에 남아 있다.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있는 아니지만 IMF 위기 이후 나라의 큰 어려움을 겪어본 세대로서 조급증이 다가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삼포세대는 N포세대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그 이후의 더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잉여인간' 이라며 비하하고 있는 상태로 전락했다.

우울하고 웃을 일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었지만 현 세태에 이르게 된 원인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여겨졌다.

민주화가 일어나고 시장경제가 이루어져 갔다고는 하지만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으로 이루어놓은 급속도의 성장은 잠깐의 놀라움을 낳고 그 뒤로는 점점 더 커지는 병폐를 끌고 왔다.

정치와 재벌의 결탁으로 시장이 이상한 방향으로 성장한 것이다. 경제성장은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이 그 사실을 체감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

임금으로 채워져야 할 성장의 결과가 기업의 특히 100대 재벌 기업의 부 축적으로만 쌓이는 해괴한 통계자료.

기업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주어야 경제가 돌아갈 것인데 매출이 적은 중소기업에서만 일자리를 기대하게 되고 갈수록 비정규직만 양산하고 있는 사태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쉽게 현실을 포기하고 만다.

국가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줄거란 기대를 한 채 20년, 30년을 지내 온 사람들은 이제 50대, 60대가 되었으며 "보수"쪽으로 물러나 앉은 채 아무 것도 할 의욕이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는 것인가?

처음에는 단호하게 'No.'라는 메시지를 띄웠던 강연자는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자며 'YES'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당연히 미래의 주인인 20대라고 한다.

 

다이* 같은 매장에서 작은 스티커나 저가의 인테리어 제품을 사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만족하는 일로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젊은이들이 미래를 읽어내고 제대로 대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해주어야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데...

 

젊은이들과 기성세대가 함께 노력해야 지금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공통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행동에 옮길 때다.

다만 현실이 너무나도 막막할 때, 고전의 한 구절에서 희망 하나를 건져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10대 시절부터 임창순 선생이 운영하던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춘추좌전] 강독을 접한 이래 현재까지도 [춘추좌전]과 씨름했다는 저자는 계속해서 관중을 비롯해 춘추전국시대 연구에 천착해왔다.

'역자서문'에서 역자는  모 헌법재판관이 대통령 탄핵결정문 보충의견 인용 중'범금몽은하위정'(犯禁蒙恩何爲正)이란  불명확한 전거를 끌어다 쓴 부분을 개탄한다. 전거도 없는 엉터리 글을 관중의 말로 소개한 이는 한 신문사의 주필을 지낸 사람이 신문연재에 쓴 글이라 한다.

 

전거도 없는 엉터리 글과 이를 겁 없이 인용하는 재판관의 무모한 판결문이 횡행하는 한, 일본을 비웃다가 나라를 망친 조선조 사대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13

 

역자는 고전에 나오는 한 구절까지도 끝까지 파고드는 학자들의 철저한 탐구정신에 입각해 고전에 관한 심도 있는 기초연구를 하고 있다.

고전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자주 들여다 보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다면 어느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꿋꿋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는 무려 550년간 지속되었다. 전쟁이 거의 하루도 그치지 않고 빚어졌으며 싸움도 시간이 갈수록 격화됐다. 이 때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치국평천하 방략이 등장했다 한다.

역자는 춘추전국시대를 모르면 동아시아의 역사문화를 이해할 길이 없게 된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반도의 현 정세를 날카롭게 파악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북한과의 미묘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우리는 고려해야 할 국가가 너무나도 많다.

미국, 중국, 일본.

난세의 이치를 집대성해 놓은 '좌전학'에 대한 깊은 탐사가 답이라며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춘추전국의 모든 역사를 샅샅이 훑는 일은 힘에 부쳐, 눈에 익은 인물들을 위주로 본다.

관중과 포숙아의 '관포지교' 이야기는 [춘추좌전]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노나라와 제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다 포숙아의 제나라가 승세를 점했다. 공자 규와 소흘은 죽었지만 관중은 포숙아 덕에 목숨을 구한다.

 

"관이오의 정치적 재능이 제나라의 상경인 고혜보다 뛰어나니 그를 재상으로 발탁해 쓰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제환공이 포숙아의 말을 좇아 관중을 재나라의 재상으로 삼았다.-상)161

 

 

진문공이 극결을 대부로 삼는 장면도 재미있다.

 

당초 구계가 사자가 돼 기 땅을 지나다가 우연히 밭에서 김을 매는 극결과 새참을 내오는 그의 아내를 보게 됐다. 이 때 그들은 마치 서로 손님을 대하듯이 공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계가 극결을 데리고 돌아와 진문공에게 건의했다.-상)400 

 

춘추전국의 난세에서도 재능 있는 인물을 구하는 것이 즉 '인사(人事)가 '천문', '지리'보다 우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역량 있는 리더십을 가진 인재가 되려면 [춘추좌전] 같은 고전에서 지혜를 얻어 활용했으면 좋겠다.

 

원문을 바로 옆에 실어 두었으니 역문과 원문을 번갈아 읽는 재미도 있다.

나라간 운명을 건 전투에서 간계와 모략이 오가고 진정한 참모를 알아보는 군주의 역량도 드러난다.

주-노-제-진-초-진(秦)-연-오월 등 명멸하는 나라들의 명운을 되짚어 보며 춘추시대를 머리와 마음으로 담는다.

 

 

 

열국세계표, 춘추시대 연표, 열국성씨표, 노나라 군주 약사 등이 부록으로 실려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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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s*******e 2018.01.1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