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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다』는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흥미로운 책에 불과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통합학급을 두어번 더 맡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때 다가오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특히 찬우와 용재가 서로의 몸을 줄로 묶고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 반 친구와 같이 손을 잡고 왕복오래달리기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연히 하기 싫어할 줄, 당연히 포기할 줄 알았던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아이. 하지만 한사코 달리고 싶은 아이를 위해 손을 잡고 뛰었던 순간, 그리고 그 아이의 해맑게 웃는 표정. 용재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찬우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안전과 보호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과거에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동 보호의 벽을 갈수록 높아졌다. 하지만 이 높아진 벽은 과연 득만 있을까? 아동 보호라는 반박할 수 없는 주장으로 다른 것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그 대상이 몸을 가누는 데 불편하거나 판단이 다를 수 있는 장애 아동이라면 안전이라는, 보호라는 벽을 더 높아질 것이다.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바람을 가르다』에서도 찬우를 통해 장애아동에게 쌓여진 숨막히는 보호라는 벽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용재는 찬우와 함께 그 벽을 깨뜨린다. 찬우를 왕자처럼도,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도 대하지 않는 용재에 찬우는 마음을 열고 점차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원한다. 남들 보기에 조금 이상하더라도, 아무리 작은 거라도 스스로 하는 기쁨을 알아가는 찬우. 혹시나 찬우가 다칠까봐 겹겹이 벽을 쌓은 찬우의 엄마보다 찬우와 함께 무모하게 바람을 가르는 용재야 말로 찬우가 한걸음 더 성장하도록 도운 것이 아닐까. 높은 안전과 보호의 벽은 교사와 아이 모두 지치게 한다. 그들에게 공간을 주고 선을 넘으며 커나갈 틈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다』는 우리가 일반 아동보다 더 숨막히게 죄었던 장애 아동에게 보호가 아닌, 아이들의 욕구를 읽고 아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아이들의 효능감을 돌아보도록 짚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