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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서양철학사에서 무척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그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와 함께 17세기 대륙 합리론(합리주의 철학)을 이끈 삼총사로 통했다. 합리주의는 `비합리적 ·우연적인 것을 배척하고, 이성적(理性的) ·논리적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하며, 경험주의 철학과 대립하여 모든 인식이 수학 법칙처럼 논증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섭리를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분석하여 깨달으려는 시도, 그것이 합리주의다. 스피노자는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의 후손이었다. 그도 어렸을 적엔 유대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 사회에서 영특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였던 네덜란드는 유대인에게 무척 개방적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항상 멸시와 천대를 받던 유대인들이었기에 처신에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스피노자는 1656년 7월 27일 유대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파문의 명목은 스피노자가 저주받아 마땅한 생각을 퍼뜨린다는 소문 때문이다. `모세 5경은 인간이 쓴 것이며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고 신은 물질 덩어리'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파문된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리에 반기를 든 불경죄를 저질렀고 둘째, 네덜란드의 주류인 기독교인의 심사를 건드릴 가능성을 유대교회에서 사전에 차단하려 했기 때문이다. 파문절차를 진행하기 전, 한 랍비가 그를 회유한다. 교회의 신앙에 대해 형식적이라도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5백 달러 정도의 연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청년 스피노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어느 다락방에 숨어, 낮엔 렌즈를 연마해 생계를 유지하고 밤엔 오랜시간 자신의 철학을 주저 <에티카(윤리학)>에 담아내는 일에 일생을 건다.
또 한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동시대를 반분한 미적분학의 발견자이자 모나드(monad)론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다. 그는 스피노자보다 10살 정도 어렸지만 다방면에 박식한 천재였다. 그는 제후들과 왕의 법률 담당 추밀고문관으로, 외교관으로, 공작의 궁정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연봉 계약을 연이어 체결하며, 부와 명예로 가득한 일생을 보냈다. 지질학, 천문학, 역사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다방면을 연구, 업적을 남겼다. 수학 분야에 남긴 미적분학 창안과 최초 계산기의 구상, 물리학에서는 훗날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예견하기까지 한다. 스피노자의 검소하고 명성에 초탈한 삶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평생 명성과 부를 갈망했다. 그는 자신의 천재적인 지능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창안한 모나드론과 예정조화설을 기반으로한 기독교 철학을 가다듬었다.
라이프니츠 철학의 중심인 모나드론의 핵심은 간명하다. 인간 개체 모두가 신으로부터 부여된 작은 신성을 갖고 있는 하나의 우주며, `모사된 신이자 원형적인 세계'라는 것이다. 흔히 `창이 없는 모나드'라고 불리우는 그것은 신을 통한 예정 조화를 통해 관계짓기를 시작한다. 긍정적인 선과 세계에 난립한 악의 존재 자체도 신이 미리 계획해 둔(예정조화), 하나의 질서이며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신을 `사물의 내재적인 원인이지, 타동적 원인이 아니다'란 말로 정리한다. 내재적인 원인으로서 신은 그것이 촉발한 것 `안에' 존재하며, 그것과 `함께' 한다. 시계공은 시계의 외재적(타동적)원인이지 내재적 원인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신을 실체라고 주장했는데, 여기서 실체는 그 본 뜻이 어떻든 흔히 `자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속에, 인간속에, 물질속에, 함께 거주하는 것이지 계시와 창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스피노자의 주장은 당시 이단적이고 불경스러웠다.
1676년 11월 18일, 네덜란드 헤이그 파빌륜스흐라흐트의 작은 이층 다락방엔 두 남자가 있었다. 비록 명성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따돌림을 한몸으로 받아온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라이프니츠는 신의 존재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을 구하러 스피노자를 찾아 먼 여행길 끝에 그 초라한 다락방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의 만남은 며칠에 걸쳐 계속되었다고 전해진다. 신을 죽이려는 자와 신을 살리려는 자의 대결은 뭇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당대 최고의 지성을 자부했던 그들이었기에, 나름 처절했을 논쟁은 `신들린 자들의 싸움'으로 뒷날 불리울만 했다.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원제: The Courtier and the Heretic>의 저자 메튜 스튜어트는 바로 여기에 착안해 한 편의 소설같은 철학서를 집필했다. 저자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프린스턴과 옥스포드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여러 회사를 상대로 경영컨설턴트로 일했다. 학문과 오랜 시간 담쌓고 지내던 철학도가 한 권의 철학서를 집필해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본래 소설이나 시나리오로 계획되었던 것을 교양 철학서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게 대중들에게 먹혀들었다. 저자는 동시대의 이 거목 철학자들이 은밀히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도 평생 한번의 비밀회동이었으니 궁금증을 불러온다. 물론 평소 스피노자를 못마땅해 한 라이프니츠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책은 그 중심되는 사건을 향해 나아가면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삶과 사상을 전체적으로 해설하며 비평한다. 그들의 철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과 개인적 삶을 양념처럼 바르며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의 재능앞에 17세기의 주류 철학이 이 책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 제멋대로인 상상력 때문에 정신을 가누지 못하게 된 우리 인간은 시시때때로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이면 무엇이든 신에게 귀속시키곤 한다. 그러나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는 그러한 속성들을 신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코끼리나 당나귀를 완전하게 만드는 속성들을 인간에게 귀속시키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일이다' 라고 스피노자는 블레이엔뷔르흐를 조롱했다. 스피노자는 덧붙여 말한다. `만일 삼각형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삼각형은 신이 눈에 띄게 삼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p.300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두 철학자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떤 자료도 남아있질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꼿꼿히 세우고 서로를 논박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자연이라고 한다면, 세상의 도덕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며 스피노자를 옥죄었을 것이다. 반면, 스피노자는 `행복은 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덕 자체'라며 내세에 대한 보상을 부정했을 것이다. 이들이 신의 존재를 놓고 세기의 대결을 벌인 것은 단순히 신앙과 형이상학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라이프니츠는 평생 교회를 거의 출석하지 않은 이름뿐인 신자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스피노자를 향해 신의 존재 증명을 모나드론과 예정조화설로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원리로서 기독교주의를 깔고 있다. 성서를 부정하고, 기존의 오랜 종교를 거부하는 스피노자는 유대교로부터 파문을 당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층 하숙집의 좁은 방안에서 평생 렌즈를 갈아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오해다. 그를 지지하는 부유한 상인과 친구들은 서로 그에게 연금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검소한 스피노자는 이를 매번 거부했다.
스피노자의 사상은 신정(神政)국가에 위협이 될만한 것이다. 무엇보다 스피노자는 신을 `변덕스러운 인격으로 보지 않고 우주의 영속적인 법칙'으로 정의한다. 라이프니츠는 신정국가안에서 평화와 질서를 이상으로 추구했다면, 스피노자는 종교의 바탕이 인간의 무지와 불안의 소산으로 해석한다. 즉, 종교지도자들이 대중의 불안과 무지를 기반으로 군림한다고 라이프니츠를 직격했던 것이다.
저자 매튜 스튜어트는 이 책에서 결코 공정하지 않다. 눈에 띄게 그는 스피노자주의자인척 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모든 근대 철학자에 대해 "그대는 스피노자주의자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스피노자라는 인물과 그의 철학이 후대에 남긴 영향력의 정도를 표현한다. 그의 철학은 모든 것을 회의하고, 모든 것을 내 지성으로 검토하지 않을 때, 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스피노자는 핍박받던 소수의 유대인이었지만, 그 비좁은 유대인 그룹 안에서도 스스로 핍박받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자신이 탐구한 철학을 세상 모든 편리함, 명예, 부귀와 바꾼 것이다. 그가 평생 소망한 것은 자유였고, 평안한 마음 상태였다. 죽기 4년 전 그의 명성은 자자했고 라인 팔라틴 선제후 칼 루드비히는 그에게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직을 제안하지만, 스피노자는 평안 하기를 원한다며, 거절한다. 그가 죽은 후 남긴 유산은 생활 잡기 정도라 모두 팔아도 장례비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검소한 삶과 인품은 그를 신에 대한 영원한 지적 사랑을 실천했던 철학자로 기억하게 한다.
그의 주저인 <에티카>는 기하학 책을 연상할 정도로 정리와 주석, 증명이 가득하다. 그는 이 책을 일평생 반복해 수정하며, 완성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이해하려는 독자도 그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할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생전 그의 주저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일찌기 지구상에 존재했던 무신론자 중에서 가장 불경스러운 무신론자'라 칭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라이프니츠는 평생 뛰어난 업적과 명성, 부를 쌓았고 스피노자보다 무려 40년을 더 살았지만 그의 말년은 그리 영예롭지 못했다. 1716년 70세로 생을 마감한 라이프니츠의 장례식엔 참석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묘지에 쓸쓸히 매장 되었다.
이 책은 독자를 17세기의 지적 풍토와 사상의 대결장으로 안내한다. 중세를 넘고 기독교는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숱한 공격을 받아왔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기성의 종교와 사상, 정치를 앞에 두고 두뇌 싸움을 벌인다. 그들의 철학에 최종적인 승자는 없다. 우리 시대, 여전히 기독교가 유럽에서 쇠퇴하긴 했지만 아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번창하고, 열정적인 무론자들은 우리 주위에 잡풀처럼 흔하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신의 `운명'을 건 논리대결은 이 책의 흥미를 돋운다. 책 한 권으로 그들이 일평생 갈고 닦은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자만이며, 욕심일 뿐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그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공부하는 기회와 동기를 얻는데서 만족해야 한다.
신이 여전히 인간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 무신론으로 의심살만한 철학을 주장했던 스피노자는 대담하고 심오했다. 그의 렌즈 연마의 일상은 단촐해 보인다. 한 저술가는 스피노자를 역설적이게도 `최후의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어떤 독자는 라이프니츠의 명예와 부에 대한 욕망에서 비속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류사회에 공헌한 연구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10년 뒤 미적분법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아이작 뉴턴과 훗날 저작권 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라이프니츠는 미적분법의 최초 창안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저자의 지나친 스피노자 편들기는 눈에 거슬리는 점이지만, 스피노자를 칭송한 것은 저자뿐만은 아니었다. 1882년 스피노자 서거 200주년 기념식 때, 헤이그에 그의 동상을 세우기 위해 자금을 모집한 적이 있다. 문명 세계의 곳곳에서 기부금이 쇄도한다.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기념사를 끝맺었다.
"이 온화한 사상가의 동상에 비난을 퍼부으며 지나가는 자에게는 재앙이 있으라. 그러한 자들은 모든 비속한 자들이 벌을 받는 원인인 바로 그 비속함 때문에, 그리고 신성한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분은 화강암 좌대 위에서 그가 찾아 낸 행복에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곳을 지나가는 교양 있는 나그네는 마음속으로 말하리라. `여기서 신의 가장 참된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
201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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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불필요하지만, 역시 이런 가정은 하고 싶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천재인 박지원과 정약용은 왜 서로 만나지 못 했을까. 아마 둘은 서로에 대한 소문은 듣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혹시, 둘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그렇더라도, 한 번 만나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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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라는게 다들 생각하겠지만 일반 독서인들이 접근하기에는 그리 용이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스피노자니, 라이프니츠니 하는 이름이 들어간 서적인데야. 쉽게 씌여진 철학서들도 있다. 그런 철학 관련 책들은 어떤 비유를 드는 방식으로, 혹은 생활 속의 어떤 예를 통해 철학을 설명한다. 물론 철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라도 철학을 우리와 가깝게 만든다는 점에서 괜찮은 시도이고, 또 꽤 적지 않게 성공한 책들이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학자와 그의 철학에 대해서 쓰면서도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 식의 반응이 나오지 않는 책은 드물다. 철학자에 대해서, 철학에 대해서 쉽게 쓰려는 의식을 하지 않으면서도 크게 일반적인 대중에게도 어필하는 책은 드물다. 바로 그 책이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를 왜 몰래 만났나>이다. (물론 제목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내용대로라면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를 몰래 만나러 갔으니까.) 17세기는 종교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시기였다. 근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새로이 해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근대 과학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인 뉴턴조차 과학적 해석과 신학적 해석을 굳이 동일화시키지 않았지만, 조만간 세계에 대한 과학적 해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시기였다. 물론 그 낌새를 알아차린 것은 소수였다. 바로 근대 과학이 ‘신’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17세기의 철학자가 바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였다. (“라이프니츠는, 아마도 스피노자와 더불어, 근대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외로이 포착했던 인간이었다.”, 471쪽) 둘은 그 낌새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한다. 스피노자는 신이 없이도 세계를 해석할 수 있으며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과학적 견해에 따르면, ‘성경은 분명히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저술이며, 그 책이 중계해준 진리는 주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었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유물론자로 불리워서 이중의 파문을 당했지만, 신을 완전히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을 모두 알고,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의 위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뿐이다. - “신은 세계 바깥에서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신은 세계 안에 존재하며, 신이 창조한 것과 함께 존재한다.” (294쪽) “그는 과학의 진보가 계시의 신을 폐물로 만들어 가고 있으며, 그간 자연 속에서 인간이 누려 온 특별한 위치를 벌써 뒤흔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332쪽) 라이프니츠는 아주 흥미로운 인간이다. 세상 온갖 것에 능통하기를 바랬고, 또 거의 그랬던 ‘만능인’이었고, 출세를 위해서 아첨도, 협박도 하던 ‘인간’이었다. 그는 어쨌든간에 신에 대한 변호인으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했다. 과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의 위치를 철학으로써 설명하고자 했다. 신이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신의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다. 그것은 끝내 실패했지만 그의 철학은 끝내 살아남아 있다. 비록 ‘반동적 형태의 근대성’이었지만, 세계에 대해 인간이 책임져야할 부분을 잘 설명하면서 꿋꿋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 가운데 그 둘의 만남이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유배되어 있는 불굴을 철학자 스피노자를 라이프니츠는 몰래 찾아가서 만난 것이다. 겉으로는 비난을 하는 글을 썼지만 자신의 읽은 스피노자의 책에는 동조하는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라이프니츠였다.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만남 이후의 라이프니츠는 변했고, 흔들리는 자신의 위치를 똑바로 잡고, 철저하게 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매튜 스튜어트는 바로 묘한 그 지점을 잡고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스피노자의 철학이 미친 영향을 끄집어 내고 있는 것이다. 두 철학자들의 삶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 것과 함께 이 책이 마치 탐정 소설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다. 알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일이 어디 한둘이랴. 그 알 수 없는 일을 충분한 증거와 함께 상상력을 보태어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비로소 알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바로 내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17세기의 철학이 지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고, 철학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피노자의 세계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라이프니츠의 세계에 살고 있을까? 언뜻 근대 과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스피노자의 세계가 지금 우리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스피노자는 행복과 덕이 오로지 우리가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라이프니츠는 행복과 덕이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스피노자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심원한 선(善)에 조용히 주목할 것을 권고한다. 라이프니츠는 우리의 선학 작업들이 다른 사람들의 칭송으로 되돌아오는것을 보고 싶어 하는 억제 할 수 없는 갈망을 표현한다.” (581쪽) 당신은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책이다. (2011.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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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스피노자가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다고
되어
있지만, 정작은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를
만나러
갔으니, 제목은 정반대의 상황을 담고 있다. 이
정반대의
상황은
진실마저도
왜곡해버릴
수가
있는데, 자신의 사상에 대한 굴절을 겪지 않은 스피노자에 비해 적지 않은 사상의 굴절을 기록한 라이프니츠에 관해
정반대의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즉,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라이프니츠는 (저자의
말대로라면) 평생 싸워야만 했던 존재가 바로 스피노자였다. 그러니
헤이그의
은신자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를
만날
필요가
없었지만,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찾아가 그의 생각을 듣고, 그의
생각에
동조하든지
반박하든지
해야만
했다. 그러니 제목은 분명 “라이프니츠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여야 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번역본의 제목이다. 원래 제목은 『The
Courtier and the Heretic』. 굳이
번역해보자면
“궁정인과 이단자”다. 물론 여기서 궁정인은 라이프니츠를, 이단자는
스피노자를
의미한다. 이 제목에는 단순히 그 17세기의
두
철학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이
둘을
바라보는
시각도
담겨
있다. 체제 내에서 누리고자 했던 철학자(혹은
만능인)와 세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시각을 가져야만 했던 철학자 말이다. 그들이
바로
라이프니츠였고, 스피노자였다.
분명 이 책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물리적인
만남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 장면은 거의 스치듯 지나가고 만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지
않다. 아마 밝힐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분명 그 만남을 기록할 이유가 없었던 스피노자는 그 만남 이후 몇 개월이 지나 세상을 등졌고, 그나마
그
만남을
기록한
라이프니츠는
그
만남의
의미를
축소하고자
평생
애를
썼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두 철학자의 만남에 관한 얘기다. 물리적인
만남을
넘어선
철학과
사상의
만남. 두 철학자의 삶과 사상의 서로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구조는 그 두 철학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어떤 지점에서 헤어지며, 어떤
지점에
서로
그리워하고, 어떤 지점에서 반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지점들을 촘촘히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이보다 더 적합한 배열은 없을 듯이 보인다. 삶에
대한
서술은
흥미진진하고, 철학에 대한 진술은 진지하다. 당연히
나는
삶에
더
관심을
가지지만(그게 더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철학도
비교를
통해
상당히
명료하게
다가온다.
그 둘의 철학을 비교함으로써 근대가
비로소
시작되는
지점에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
철학적
논제였는지, 그리고 그 철학이 현대까지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서로
다른
의미에서
근대를
관찰한
최초의
철학자들
중의
하나였다. 그 후로 둘은 오해를 받아 왔지만, 그
둘의
철학은
지금까지도
분명히
흐름을
형성하여
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전히 근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명은 범신론이지만 당시에는 무신론으로 공격을 받았고, 또 한 명은 그 신을 살려내고자 애를 썼다. 그만큼 달랐지만, 저자의 시각에서는 라이프니츠는 끝임 없이 스피노자에 경도되는 자신을 반대로 끌어당기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철학자로 인식하고 있다. 서로 같은 것을 보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하며 굳이 다른 것이라고, 상대방을 비판하며 주장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게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바라보는 가장 정확한 시각인지는 모르지만, 근대의 도래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고자 했던 예민했던 철학들의 사상은 정말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둘을 촘촘히 엮어놓은 이 책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2015.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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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라이프니쯔 두 사람을 축으로 써내려간 1700년-1800년 초에 얽힌 철학자들의 에피소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