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9%
  • 리뷰 총점8 43%
  • 리뷰 총점6 29%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6.0
  • 50대 0.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리뷰]W 또는 유년의 기억
"[리뷰]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W 또는 유년의 기억> 은 사실 아닌 사실 페렉의 유년시절과 현실속 허구 'W' 라는 섬에대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나는 페렉의 유년시절보다 기억이라는 것에 관심이 더욱 갔다. 인간은 망각하며 기억을 왜곡시킨다. 페렉의 유년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속에 있다. 하지만 페렉은 “나는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라고 말한다. 끔찍한 제2차 세계
"[리뷰]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W 또는 유년의 기억> 은 사실 아닌 사실 페렉의 유년시절과 현실속 허구 'W' 라는 섬에대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나는 페렉의 유년시절보다 기억이라는 것에 관심이 더욱 갔다.

인간은 망각하며 기억을 왜곡시킨다.

페렉의 유년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속에 있다.

하지만 페렉은 “나는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라고 말한다.

끔찍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년시절에 대해 기억이 없다기보단 페렉이 기억하고 싶지않다고 느꼈다.

인간의 기억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적이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기억되는게 아닌가하고 느껴졌다. 결국 기억하고싶지 않은것은 망각되어버리고, 생각 했던대로 믿어버린 기억은 나중에 알고보니 왜곡되어버린 것 이였다.(페렉도 책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였던 기억은 알고보니 다른아이가 주인공이였던 기억이였다.

숨막히고 치열했던 세계대전속 페렉의 망각되고 왜곡되어버린기억, 묻어두었던 아픔들을 드러내는 페렉이 너무나 신경쓰였다.

 

 

 

W 섬에 대해 말해보자면 페렉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 수 밖에 없다.

 

두 이야기를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면, W섬은 페렉이 어릴 적 그렸던 기괴한 형상의 인간 등의 그림에서 탄생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페렉은 어머니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여, 페렉은 친척들에게 맡겨져 전쟁속에서 안전한 곳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수용소에대한 상상이 W이라는 섬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상상만으론 W의섬이탄생했을까? 책을 쓰기전에도 수용소에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페렉이고, 또한 쓰기전 사전조사로 탄생했을 'W' 쓰면서 고통스러웠을 페렉이 계속 생각났다.

페렉은 사실 아닌 사실 자신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허구의 ‘W’섬을 통해 그당시의 현실을 보여주려고했던 것이 아닐까?

 

 

 

 

 

 

이책을 읽으면서는 어떤 내용적인 요소에 이끌리는 것이아니라, 고통이였을 아무렇지않게 서술하는 페렉의 담담함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q****7 2011.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대문자의 역사 속에서 나를 찾아라 -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대문자의 역사 속에서 나를 찾아라 -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1.   중학교 역사책, 혹은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문득 자신이 경험한 역사를 만난 적이 있나요? 88 올림픽, 2002 월드컵, 아니면 2008년의 촛불...     이것들은 분명 내가 몸소 경험한 역사적 사실인 것 같은데, 역사책에 나오는 대문자로 쓰여진 역사에는 왜 '나' 자신이 없는 것 같을까요?     월드컵 거리 응원은 광화문에서만 한 게 하닌데, 나는 친구들이랑 캠퍼스 광
"대문자의 역사 속에서 나를 찾아라 -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1.

 

중학교 역사책, 혹은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문득 자신이 경험한 역사를 만난 적이 있나요? 88 올림픽, 2002 월드컵, 아니면 2008년의 촛불...

 

 

이것들은 분명 내가 몸소 경험한 역사적 사실인 것 같은데, 역사책에 나오는 대문자로 쓰여진 역사에는 왜 '나' 자신이 없는 것 같을까요?

 

 

월드컵 거리 응원은 광화문에서만 한 게 하닌데, 나는 친구들이랑 캠퍼스 광장에서 프로젝터로 응원했는데, 왜 TV나 책에서 묘사되는 '월드컵 거리 응원'에는 항상 광화문만 나오는 것일까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캐논 카메라 광고카피)

 

 

 

조르주 페렉의 은 바로 커다란 역사 속에서의 '나'의 이야기입니다.

 

 

 

 

 

2.

 

30년대에 유대인으로 태어난 조르주 페렉은 유년 시절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렉의 유년기는 분명 끔찍하고 무서워서 매우 강렬히 기억으로 남아있을텐데요. 이 소설의 첫 대목에서 페렉은 '나에게는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라고 담담하게 적습니다.

 

하긴, 우리 대부분도 갓난아기 시절부터 모든 인생에 대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가버리듯 일종의 정신적 풍화작용을 거쳐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르주 페렉의 '나에게는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이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 기제>의 발현으로 보입니다. 방어 기제란, 너무나 큰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회피하는 것을 말합니다. 방어 기제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충격적인 과거를 망각해버리는 것을 특별히 억압(Repression)방어 기제 라고 부릅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는데 정작 사고 당시의 기억만 가지고 있지 않던가, 아니면 싫어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무의식 중에 까먹는 것이 억압 방어 기제의 예시입니다.

 

 

 

어쨌든, 조르주 페렉의 이번 작품 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W ou le souvenir d'enfence

 

 

 

 


3.

 

조르주 페렉은 과거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인 자신이 W라는 섬을 묘사하는 소설을 1년 간 연재하면서 그 소설에 자신이 망각했다고 생각했던 유년기가 묻어난 것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고쳐서 일 년 정도 후에 독립된 새 작품을 출간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소설의 연재를 급작스럽게 중단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1975년에 가 세상에 나옵니다.

 

 

는 크게 세리프 서체 부분산세리프 서체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세리프 서체는 바탕체나 궁서체 같은 글씨체를 말하고 산세리프 서체는 굴림체나 돋움체 같은 글씨체를 말합니다.) 산세리프 부분은 W섬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고 세리프 부분은 조르주 페렉의 유년기를 자전적으로 적어놓은 소설입니다.

 

 

산세리프 부분에서 묘사된 W섬은 스포츠에 모든 것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수없는 육상 경기들이 있고 리그도 참 많습니다. 주심, 부심 그리고 운영진을 갖추고 있어서 마치 올림픽을 연상케 하는 근대적인 틀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그 틀 안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은 격리된 공간 속에서 갇혀있고, 관리자와 선수들 사이에는 넘지 못하는 장벽이 서 있습니다. 폭력과 야만으로 유혈이 낭자하고, 여성인권은 무참히 짓밟힙니다.

 

 

히틀러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거하여 독일의 총통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권좌에 오른 히틀러가 인류에게 어떠한 재앙을 가져왔는지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현대사의 잊을 수 없는 악몽 가운데 하나인 나치당과 히틀러는 민주주의라는 근대적인 틀과 집단의 이성은 언제나 옳다는 근대적 믿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W는, 조르주 페렉의 유년기 기억(제 2차세계대전) 가운데 근대성 속에 숨겨진 야만, 폭력, 차별, 억압을 상징하고, 구체적 역사 사건으로는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상징합니다.

 

 

 

 

홀로코스트

 

 

 

 

 

반면, 세리프 부분의 유년기 시절은 자못 목가적이기까지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인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으면 너무나 평화롭고 너무나 평범한 모두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어딘가 절뚝거립니다. 앞뒤가 맞지 않기도 하고, 부정확한 기억들도 많이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제 2차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은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성격이 급변하기도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오롯이 경험한 페렉은 정신질환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세리프 부분의 기록은 정신과 상담시간처럼 고백적이면서도 모순적입니다.

 

 

 

 

 

Greetings from Perec.

 

 

 

4.


이 책의 불어 제목은 입니다. 한국어로 옮길 때 "또는"이라고 옮겨진 부분이 불어 단어 'ou'입니다. 이것은 영어의 'or'인데요, 수능 영어를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or를 해석할 때 항상 '또는' '혹은'이라고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즉' 혹은 '다시말하면' 이라고도 해석을 하지요.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W, 다시말하면 유년의 기억>으로 볼 수 있습니다.

 

 

 

W 이야기와 자전적 이야기, 이 두가지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소설 하나를 구성합니다. 처음에는 별 관계가 없던 것 같은 두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대도 공간도 알 수 없는 W 이야기가 바로 '유년기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작가가 무의식 중에 기억하고 있었던 유년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t*****8 2011.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년으로부터의 증언
"유년으로부터의 증언" 내용보기
유년으로부터의 증언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기억 앞에 선 증인   내 기억의 유일한 증인은 자신이다. 기억 속에서 나는 최초이자 최후의 목격자가 된다. 어떤 사건을 기억하려 할 때 우리는 여러 증거들(사진이나 흉터 혹은 주변의 이야기)을 수집하지만 최종적으로 상(象)을 구현해내는 것은 내가 된다. 때문에 기억은 왜곡된 상으로 남겨지거나 새로운 증거
"유년으로부터의 증언" 내용보기

유년으로부터의 증언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기억 앞에 선 증인

 

내 기억의 유일한 증인은 자신이다. 기억 속에서 나는 최초이자 최후의 목격자가 된다. 어떤 사건을 기억하려 할 때 우리는 여러 증거들(사진이나 흉터 혹은 주변의 이야기)을 수집하지만 최종적으로 상(象)을 구현해내는 것은 내가 된다. 때문에 기억은 왜곡된 상으로 남겨지거나 새로운 증거들이 덧붙여지며 수정된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는 단 하나의 증거도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기억이 할 수 있는 일은 유일한 증거이자 증인인 ‘나’를 믿는 일 뿐이다.

 

여기 유년의 기억 앞에 자신을 증인으로 세우려는 한 사람의 사투가 있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조르주 페렉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 증언대에 세우는 과정에 관한 책이다. 페렉은 그 과정을 일종의 항해로 비유한다. 1부에서 탈영병 ‘가스파르 벵클레’는 자신에게 이름을 빌려준 아이 ‘가스파르 벵클레’의 행방을 묻는 연락을 받는다. 아이 ‘가스파르 벵클레는’ 자폐증이 있으며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 그런데 항해 도중 배가 좌초되고 승객 중에 유일하게 아이의 시체만 발견되지 않는다.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는 배가 좌초되기 전에 배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래서 탈영병 ‘가스파르 벵클레’는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이야기에서 아이 아이 ‘가스파르 벵클레’는 탈영병 ‘가스파르 벵클레’의 기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르주 페렉의 유년시절 기억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억을 “오로지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78)”이라고 말한다. 기억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린 ‘나’는 자폐증에 걸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자폐증의 특징이 ‘침묵’임을 기억한다면 아이를 찾아 치료하는 과정이 곧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페렉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는 일은 공포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 기억은 유년시절 부모의 상실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유년에 이별한 고통을 되새기는 일은 성인이 된 사람이 감당하기에도 아주 벅찬 것이다. 페렉이 글을 이 소설을 완성하던 시점과 정신과 치료가 같이 이루어진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고통을 감내한다고 해서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복원시킨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페렉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직 글쓰기에 부재하는 나의 음성, 그 침묵과 나의 부재가 일으키는 참을 수 없는 스캔들뿐"(57)이라며 자조섞인 독백을 남긴다.

 

 

 

살아남기 위해 쓰는 존재

언제까지나 ‘쓴다’의 주어로 살아남고 싶다.

-김탁환

 

유년시절을 회고하며 적어가는 일은 “영원히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56)지만 그것만이 페렉에게는 유일한 구원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죽음의 기억이며 내 삶의 확인”(57)이기 때문이다. 1부와 2부 사이의 침묵[(……)]을 건너면 W 섬의 이야기와 페렉의 유년시절 이야기가 교차하며 서술된다. 두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지지도 않고 둘을 연결할만한 어떠한 고리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서로 이이지지 않는 이 글처럼, 이런 기억들은 열일곱, 열여덟 살 무렵에 내가 썼던 글이 그랬듯이, 서로 단단히 뭉쳐져서 한 단어를 만들지 못하는 고립된 글자들로 이루어”진다고 털어 놓듯 두 개의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다시 말하면 W와 유년의 교차하는 형식을 통해 기억을 단절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W의 삶을 유년의 기억과 아무런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두 이야기를 교차했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페렉의 완벽주의적 성격을 보아도 그러하다.

 

W의 삶은 “줄무늬 운동복”(186)을 잎은 죄수의 일상이다. 이 죄수는 그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강제수용소의 은유일 것이다. 동시에 유년시절의 기억이 갇혀있는 장소로써의 은유도 가능하다. 어떻게 읽든 페렉은 이 부분을 독자에게 맡겨놓는다.

 

이렇게 유년시절을 소설로써 다시 그려내는 작업은 신경숙의 <외딴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외딴방>은 어릴적 공단에서 일하던 자신을 회고하듯 쓴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도 페렉처럼 과거와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추측건데 조르주 페렉도 자신의 기억을 되돌리면서 아파했으리라. 하지만 페렉은 신경숙과는 다르게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는다. 다만 기억의 파편을 나열할 뿐인데, 자신의 기억이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절된 기억의 파편을 조립해보며 조르주 페렉에거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신경숙이 <외딴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페렉의 글쓰기도 일종의 치유였을 것이라 단정한다. 그리고 부모를 잃고 문학으로 도피해야 했던 그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긴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견뎌야 했던 것은 ‘유년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역사, 대문자로 쓰인 커다란 역사(History)”(17)였다. 페렉이 태어난 1936년부터 종전인 1945년 까지 그를 기억해 주는 건 사진 몇 장과 언제 들었는지 모르는 고모의 말 뿐이다. 전쟁과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거대한 역사가 그의 유년의 역사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창작 행위는-적어도 이 소설에서 만큼은-자신의 역사를 복원해 기억의 증언대 앞에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그들(페렉의 부모 -인용자) 죽음의 기억이며 내 삶의 확인이다.”(57)

 

우리 모두에게도 복원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비록 그 과정이 광막한 바다에서 아이를 찾는 것 같을 지라도 말이다. 페렉과 신경숙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자신(유년의 기억)을 증언대 위에 올린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 기억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릴 수 없다면, 일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소설 이전에는 분명 일기가 있었을 테니까. 서평을 쓰다보니 안개 낀 바다에 떠있는 나의 유년 시절이 생각났다. 일기장을 펴고, 볼펜을 들고, 내 이름으로 된 기억을 되찾아야겠다.

g********1 2011.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현실에의 닮음의 닮음『W 또는 유년의 기억』
"현실에의 닮음의 닮음『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는 「음경이 발기했을 때 길이가 적어도 30센티미터는 되는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쓰는 한, 나는 자서전에 대해서는 어떤 반감도 갖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럼 조르주 페렉은?   ②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차례차례 하나씩 끄집어내는 페렉의 서술에, 우리는 거기에 조금은 낯설게 빠져든다. 그러므로 얼마간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③ W에는
"현실에의 닮음의 닮음『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는 「음경이 발기했을 때 길이가 적어도 30센티미터는 되는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쓰는 한, 나는 자서전에 대해서는 어떤 반감도 갖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럼 조르주 페렉은?

  ②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차례차례 하나씩 끄집어내는 페렉의 서술에, 우리는 거기에 조금은 낯설게 빠져든다. 그러므로 얼마간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③ W에는 승패는 필요 없고 운이라는 요행이 난무하지만 실은 그것보다 곪아터진 상처만이 더쳐갈 뿐이다.

  ④ 유년의 기억이 과연 W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⑤ 작가가 처음 연재할 때 ‘꿈’이 가득한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대체 W에 꿈이 어디 있단 말인가?

  ⑥ 볼라뇨의 말대로 페렉이 30센티미터의 발기된 음경을 소유했건 그렇지 않건, 그의 ‘유년의 기억’은 말소된 것임에 틀림없다.

  ⑦ 결국 W는 꿈이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이며, 페렉 ‘개인의 W’가 아닌 ‘모두의 W(orld)’로 봐야 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⑧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수많은 각주를 보라, 과연 진실일까?

  ⑨ 아우슈비츠에서 왼쪽 팔뚝에 ‘174517’이라는 번호를 노예문신처럼 새겨야 했던 프리모 레비가 간명하고 담담하다면, 역시 같은 곳에서 어머니를 잃은 페렉은 우아하고 기괴한 ‘낯설게 하기’를 꾀함으로써 그 실타래를 촘촘히 엮는다.

  ⑩ ⅩⅩⅦ에서 페렉은 여자아이를 벽장에 가두고서(발단이야 어쨌든) 고백하기를 거부하지만 결국 벌에 쏘이는 벌을 받는다. ‘하느님이 벌을 내린 것이다.’(p.151)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⑪ W에서는 누구나 집단으로 양육되고 자기가 나중에 살게 될 세상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⑫ 마지막의 ⅩⅩⅩⅦ는 W와 유년이 접점(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을 이루지만, 거기에 해결이란 것은 없다.

  ⑬ 페렉이 창조한 W는, 그러므로 현대 회화의 과제 ㅡ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 ㅡ 를 마치 마그리트처럼 ‘닮음을 통해 닮음을 파괴하는’ 형식을 취해 붕괴시키고 있다.

  ⑭ 예컨대 ‘자서전을 창조’한다는 형태는 W를 파괴하고 딛고 일어서려는 것처럼 보인다.

  ⑮ 자신이 아닌 자신으로 살아야 하는 W,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는 인물, 집요하게 나열되는 그곳의 규칙. 이로써 뭐가 더 필요한가?




u******o 2011.09.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존재와 기억의 실종,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며 기억되는. ≪W 또는 유년의 기억≫
"존재와 기억의 실종,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며 기억되는. ≪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W 또는 유년의 기억│조르주 페렉│펭귄클래식코리아│2011.06.27     기억(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기억을 잃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몇 해 전 리사 제노바
"존재와 기억의 실종,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며 기억되는. ≪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W 또는 유년의 기억│조르주 페렉│펭귄클래식코리아│2011.06.27

 

 

기억(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기억을 잃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몇 해 전 리사 제노바의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는 책을 읽었지요.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50세의 앨리스(남편도 하버드 교수, 큰 딸은 법대, 둘째는 의대, 막내는 배우입니다. 미국 상류층 백인의 전형이죠)가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피아니시모처럼 여리게 소멸해가는 기억의 과정을 앨리스의 목소리로 이야기하죠. 알츠하이머, 는 더 이상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예요. 하지만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에서는 늘 이야기되던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을 잃어가는 주체가 겪는 상실감을 애잔하게 그러나 담담히 그려냅니다. 이 소설의 원제는 STILL ALICE입니다. 기억의 빛이 소멸해가는 그 모든 과정에서 앨리스는 여전히 앨리스입니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W와 유년기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흐릅니다. p. 57 나는 쓴다. 나는 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함께 살았고, 나는 그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 그림자 속의 그림자, 그들 몸 가까이에 있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지울 수 없는 그들이 흔적을 남겼으며 그 흔적의 자국이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억은 글쓰기에서 죽는다. 글쓰기는 그들 죽음의 기억이며 내 삶의 확인이다. 반듯반듯하게 첫번째 씌여진 이야기는 실종된 진짜 가스파르 뱅클레를 찾아 가는 여정입니다. (사실은 퐌타스틱한 이야기를 살짝 기대했었지요, 기대는 와르르!) 두 번째 이야기는 안개처럼 흐릿한 자신의 이야기를 삶의 연장선 어디쯤에서 살짝 벗겨나 담담하도록 이야기합니다. 쫄레쫄레 그의 이야기를 뒤따르다가 어딘가에쯤,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리라 기대헀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속시원히 까발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W 에서는 가스파르 뱅클레가,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유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와 기억의 실종.

 

 

 

 

 

W섬, 올림픽의 이상(理想)이 지배했던 공간이라 말합니다. p.180 직위가 아무리 낮더라도 하급 관리자들은 선수에 대해 전능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공포를 동반한 야만성을 발휘해서 잔혹한 스포츠의 법을 준수하도록 강요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잘고, 더 편하기 때문이지만 그들의 운명은 영원히 감독관의 성난 시선과 부심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 주심의 기분이나 장난에 좌우된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運命)을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운(運)일 뿐입니다. 여자의 숫자를 제한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 아이의 다섯 중 하나만 살려 두죠. 아이들은 집단 양육되며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승리를 거머쥐면 관리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운을 마음껏 주무릅니다. 페렉의 가정을 붕괴시키고, 유년 시절의 기억을 누락시킨 2차 세계대전은 W섬 그 자체, W의 변질된 이상(理想) 나치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리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런지.

  

 

그리고 그의 이야기. 2차 셰계대전이라는 사실을 배제한다면 기억의 소실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이야기들이 끊어질 듯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아쉬움과 전장에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아버지의 죽음으로의 실망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누락 등을 태연하게 조근조근 설명하지만 오히려 담담해지려는 그의 노력에 콧날이 시큰하기도 하였습니다. p.78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문득 해양경비대보다 내가 아이를 찾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믿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패렉(가스파라 벵클레의 이름을 빌린)은 실종된 가스파라 벵클레가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곳에 숨길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발견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기억에 없다고 못 박았던 - p.17 나에겐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 -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지우고 싶은 것일까요. 그렇게 'W 혹은 유년의 기억'은 'W 그리고 유년의 기억'으로 전혀 다른 공간의 이야기이지만 어디쯤에도 손을 댈 수 없이 엉키고 설킨 하나의 이야기였습니다.

 

p193

따라서 기억의 무재는 죄의식을 동반하는 동시에 그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기방어가 아니었을까.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조차 그 어원상 "구멍"을 뜻한다고 설명한 것은 바로 결핍, 구멍이 자신의 뜻과 무관한 천부적 숙명임을 강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망각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체성이며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은 애도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아마도 독서모임, 이라는 기회가 아니였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페렉은 내게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하지만 옹송그리던 나의 독서는 이렇게 조금씩 기지개를 켭니다. 한 권의 책을 7번 읽은 기분이라서 1타 7피랄까, 쉽게 너무도 많은 걸 얻은 듯 하여 조금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걸요. 그리고 나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당신께도 내가 제대로 1피의 몫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0 2011.09.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두번째 조르주 페렉
"두번째 조르주 페렉" 내용보기
조르주 페렉의 작품 사물들을 먼저 보고 난 후에 ‘W 혹은 유년의 기억'을 접했는데 만약 순서가 바뀌었다면 난 사물들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는 자서전을 이용해서 W를 해석하고 다시 그 해석을 바탕으로 자서전을 이해해야 이작품을 온전히 감상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두  텍스트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작가는 원래 성격이 다른 두 텍스트 사이
"두번째 조르주 페렉" 내용보기
조르주 페렉의 작품 사물들을 먼저 보고 난 후에 ‘W 혹은 유년의 기억'을 접했는데 만약 순서가 바뀌었다면 난 사물들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는 자서전을 이용해서 W를 해석하고 다시 그 해석을 바탕으로 자서전을 이해해야 이작품을 온전히 감상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두  텍스트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작가는 원래 성격이 다른 두 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성명하는 제 3의 글을 더하고자 했다. 그런데 최종본에서 설명이 빠지면서 작품 해독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가 곳곳에 숨긴 수수께끼, 언어와 형상, 숫자를 통해 암호화한 비극적 인간 조건을 해독하는 것, (작가의 표현을 빌면) 유희적 요소를 음미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작품해설 중에서...


스물이 넘어 시작한 독서습관은 충분한 기초체력이 없어서 특이한 형식의 문장이나 많은 사유를 필요로하는 글이나 현실과 허구를 무지막지하게 넘나드는 글을 접하면  어김없이 무너진다. 이 작품은 화자의 어린시절에 관한 이야기인데 상상의 섬인 W의 이야기인데 자서전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판타지 같기도 하다 상당히 독특한데 나에겐 이 책이 그랬다 읽기는 읽었는데 지금은 머릿속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 없다.. 1부의 처음에 “나에게는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라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기억이 나는 부분과 나지 않은 부분은 허구의 상황을 만들어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많은 장치들이 나오고 이야기들이 쏟아지지만 머릿속에 담아내질 못한거 같다.  일단 작가의 당시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는 것도 한 몫 하겠지만 제일 큰 건 아마도 나에겐 이런 다분히 문학?!적인 글에 약해서 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진 나에겐 시간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서사와 많지 않은 장치 그리고 그 장치 속에 적당한 의미를 숨겨 놓아서 나로 하여금 많은 걸 느끼게끔 하는 문학이 더 와 닿는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작가들에게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보면 양가감정 같은 걸지도 모른다 좋지만 밉기도한... 재미는 있지만 말을 너무 많이 쏟아내는 알랭 드 보통이나  너무나 난해한 마르셀 프루스트... 그리고 정말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들뢰즈 글이나 사르트르의 작품들을 보면 나에게 프랑스 작가들은 너무 어려우면서도 넘고 싶은 산 같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내공이 좀 더 쌓이면 더 많은 작가들의 깊은 작품들을 만나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c***0 2011.10.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치열함, 그것이 생명력          W라는 치열한 공간과 함께 화자가 재구성한 유년의 이야기가 병렬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치 W라는 글자의 지그재그 모양처럼 한지점에서 시작해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그런데 두 가지의 이야기가 무척 상이하여 독자는 잠시 길을 헤맨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과연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장 두려워 하는게 무엇
"조르주 페렉, [W 또는 유년의 기억]" 내용보기

치열함, 그것이 생명력

  

 

 

 

W라는 치열한 공간과 함께 화자가 재구성한 유년의 이야기가 병렬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치 W라는 글자의 지그재그 모양처럼 한지점에서 시작해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그런데 두 가지의 이야기가 무척 상이하여 독자는 잠시 길을 헤맨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과연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장 두려워 하는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몸을 감출 것인가, 아니면 들킬 것인가. P.18

 

 

화자는 칼날 위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 자신의 유년을 재구성하여 들려줄 것인지, 아니면 마치 그 나라 전체가 무언가 대단한 은유로 이루어진 W국을 전면으로 내세울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화자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신의 갈등의 과정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게 된다. 동시에 이는 이미 정해진 답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나는 면제받은 것이다. 다른 역사, 대문자로 쓰인 커다란 역사(Histoire)가 이미 나 대신 답을 했다. 전쟁, 강제수용소. p.17         

 

 

자신의 생애에 대한 설명이 역사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확장된 자아는, 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자신의 유년을 재구성해야하면서도 동시에 W라는 거대한 은유 뒤에 숨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계가 너무나 잔혹하다.

 

 

그들처럼 옷을 벗고 채찍과 몸둥이를 든 심판들 사이로 뛰어야만 할 것이다. 다른 패자들과 마찬가지로 죄인 공시대에 올라가고 목에 나무 형틀을 메고 마을을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관중이라도 벌떡 일어나 겁쟁이에게 주는 벌을 주라고 요구한다면 패자는 곧바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군중이 하나가 되어 그에게 투석형을 가하고 갈가리 찢긴 시체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라는 W의 자랑스러운 표어와 오륜기가 걸린 마을 기둥 아래에 푸줏간의 쇠갈고리에 걸려서 사흘간 매달려 있다가 개에게 던져질 것이다.p.130

 

 

나는 그만 이 지점에서 숨이 턱하고 막히고 말았다. 전쟁의 불온한 삶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화자의 지난 생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병적인 경쟁과 승부욕으로 점철된 역사의 페이지 속에서 힘없는 어린아이는 셔틀콕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너덜너덜해지고 폐허가 된 마음을 끝내 개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직접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이러한 은유를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W국은 스포츠로 열띤 경쟁을 벌이고 승자와 패자에 상이한 댓가를 치르게 한다. 실수를 용납치 않고 실수에 대한 관용조차 없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길을 우연히 갔을 뿐인데 그것은 어느새 승자와 패자의 길로 나뉘고 있다. 이는 비단 W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실을 보면, 우리는 승자가 되기 위해 대부분 국가고시를 준비한다. 반듯한 직장이 아니면 패자이며, 이러한 '패자'라고 불리는 길을 선택한 자에게 역시 우리 사회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스포츠란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 수 있는데, 우리 개개인 역시 우리의 불온한 마음이 역사라는, 먼 훗날 책의 한 줄로 밖에 표기되지 않을 것에 장악당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슴아파하며 읽어야할 어느 페이지가 아니라, 늘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위의, 인간이 존재한다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치열함이 이 작품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시궁창에 밀어넣을 지라도 그것을 견디며 기록하게까지 하는 생명력의 경지에 까지 우리를 올려놓을 것이다.



t*****e 2011.09.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