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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횡성 한누리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횡성에서 가장 큰 농어촌버스승강장인 만세공원 옆에 있는 이곳은 비록 작은 도서관이지만 이용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도서관인 듯하다. 횡성군은 공공도서관마다 서로 연계가 되어 있으므로, 어느 지역에서 책을 빌렸던 다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반납할 수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좀 더 읽고 싶으면 빌린 뒤에 자신이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반납하면 되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누리 도서관에는 여러 번 들려서 책을 읽었으나 빌리기는 처음이다. 내가 사는 강림이나 안흥에도 도서관이 있으니 굳이 이곳에서 빌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강림이나 안흥에서 보지 못한 책이기에 빌린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기대와는 다르게 읽을수록 실망적이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다. 십자군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했고, 십자군뿐만 아니라 그 시대 역사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칠 때는 낭만이나 무용담도 기대를 했다. 십자군이 신앙을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 아니고, 굳이 선과 악 또는 정의와 불의로 나눈다면 선과 정의는 십자군보다는 이슬람 쪽에 더 많이 있다는 배경지식은 있었다. 그래도……. 십자군은 기사들이 중심이 된 군대가 아닌가?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떳떳하게 이기고, 패자는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승복하는 정신이 기사도라고 알고 있었다.
기사 서임식의 선서에서 나타난 기사의 덕목은 무용(武勇) ·성실 ·명예 ·예의 ·경건 ·겸양 ·약자 보호 등이다. 기사의 존립 조건이기도 한 무용과 성실은 기사도 확립 초기에 기사의 핵심을 이룬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3권까지 읽는 동안 십자군에 참전한 기사는 여러 명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기사다운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하게 표현하면 십자군을 이끈 핵심 기사들은 쓰레기도 그런 쓰레기 없다고 할 만치 인간 말종의 부류들이었다.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함이나 기사로서의 명예는 찾아보기 힘든 행태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서 책장을 덮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였다.
둘째, 기사들의 낭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기사들의 시대가 지난 뒤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므로 좀 우수꽝스럽기는 해도 돈키호테에 나타난 기사가 추구하는 정신은 아름답지 않은가? 돈키호테는 둘시네 공주(실제는 시골처녀이지만)를 자신이 섬길 귀부인으로 여기고 그녀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영예를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기사 시대를 다룬 십자군 전쟁에서 그런 낭만적인 기사는 한 명도 없었다. 공주는 나온다. 예루살렘 왕국의 멜리장드와 알릭스였다. 그녀들은 아름다웠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우아하지는 않았고, 부왕을 비롯한 주변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녀들을 농락하면서 이용하기만 했다. 낭만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셋째,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유용했다. 이 책은 각 권마다 앞과 뒤에 부록 형식으로 십자군 시대를 이해하는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3권에서는 앞 부분에서 30여 쪽에 걸쳐서 아브라함과 두 아들을 소개하면서 아랍 민족의 출현과 십자군 전쟁까지의 상황을 요약했다. 가톨릭이 믿는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만들었다. 즉 서양인들의 유대인 학살이나 십자군 전쟁은 한국의 6.25전쟁과 다를 바 없는 동족상잔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에서 잔혹한 살인은 동방의 이슬람보다는 서방의 십자군이 더했다는 것이 읽을수록 확인이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만행이라고 하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아랍이나 팔레스타인에게 끼친 해악은 히틀러를 능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십자군 원정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역사와 서구인들의 생각을 알기 쉽고 표현한 걸작이다. 일반인들의 교양이나 흥미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세계사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본다.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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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2권에 비해 상당히 차분해진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3권이다. 김태권 특유의 유머는 여전하지만, 뭐랄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 같은 것이 느껴지는 3권이었다. 그러니까 좀 빨리빨리 쓰란 말이오. 시리즈에서 <나이듦>을 느껴지게 만들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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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3-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에 들어갑니다.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에뎃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작령, 그리고 예루살렘 왕국 이렇게 4개의 국가가 새로 생겼습니다. 바로 '십자군 국가'라고 말합니다. 1차 십자군 원정이 1096년~1099년까지 진행되었고, 2차 십자군 원정이 1147년~1148년에 진행됩니다. 3권에서 다루게 되는 예루살렘 왕국은 1126년~1144년의 기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1차 십자군 원정이 남긴 학살과 약탈로 모든 민족과 나라는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도 그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은 끝을 모르고 항상 진행형입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통치자 고드푸르아 뒤를 이어 보두엥 1세, 보두엥 2세의 통치가 이어집니다. 보두엥 2세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습니다. 맏딸 멜리장드를 풀크 공작과 정략결혼을 시킵니다. 멜리장드는 이듬해 아들 보두엥을 낳습니다. 장인 보두엥 2세가 죽자 풀크는 멜리장드와 공동으로 예루살렘의 왕위에 오릅니다만 그는 멜리장드를 배제하고 자신의 친정(親政)을 강화했고 앙주 출신의 귀족들을 선호하며 다른 십자군 국가에 대한 예루살렘의 종주권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즉위 초기, 풀크는 귀족들과 세력들의 저항을 받습니다. 아내 멜리장드의 동생 알리스가 안티오키아에서 문제를 일으켰고, 멜리장드에게만 충성을 맹세하는 위그가 반란을 일으켜 이슬람과 손을 잡는데, 이때 풀크는 위그와 멜리장드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여깁니다. 마침 위그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 배후에 풀크가 있다고 의심받았기 때문에 풀크는 급속하게 왕국 내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멜리장드를 따르는 분파가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후 풀크 공작이 죽고 나자 멜리장드는 왕위에 오릅니다. 멜리장드는 그동안 보았던 평화를 가장한 전쟁을 탈피하고자 합니다. 멜리장드는 '공존'을 선택하게 되죠. 즉 무슬림과 십자군의 공존을 모색하게 되지만, 그동안의 핍박으로 무슬림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3권에서는 멜리장드를 내세워 '적대와 공존'에 대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서유럽의 혈통으로 침략자의 자손이지만 멜리장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정서가 있었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멜리장드가 시도하려고 했던 무슬림과 기독교의 공존은 아마 이런 정서 때문이었으리라 여겨봅니다. 사실 십자군과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멜리장드 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한두 줄에 그칩니다. 음. 이것은 또 다른 문제(역사에서 여성의 지위를 상당히 얕보는)가 나타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3권에서 읽는 역사를 통해 무지막지한 전쟁과 권력을 향한 야욕 등의 혼란 속에서도 공존을 꾀하는 이들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현대의 역사에서도 전쟁의 양국 사이에서 공존을 외치는 세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2권의 주제에서 말했듯이 힘이 곧 정의라는 공식이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겠다는 확인을 3권에서 다시 하는 느낌이 들어 역사와 전쟁, 힘과 권력에 대한 씁쓸함을 가져보게 됩니다.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는 표면으로는 종교적 이견에 따른 싸움입니다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영토를 갖기 위한 야망,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세력의 욕망, 그리고 봉건 사회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희망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진 약탈과 학살이 또 다른 반목과 또 다른 반복을 일으키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3권에서는 '들어가며'에서는 무함마드의 등장, 메카와 메디나, 순니파와 시아파 등 십자군전쟁 이전 이슬람 세계의 탄생과 역사적 과정을 소개하고 있어서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책의 후반에 '박물관 탐방' 코너는 현대에 느끼는 이민자, 다문화 정책 그리고 그와 연관되는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내가 자국인이 될 수 있고, 외국인이 될 수도 있는 현대입니다. 외국인을 두고 동화 정책이니 이화 정책이니 논하는 것은 어쩌면 오래전 십자군 원정의 배경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군이 성지 탈환, 성지 순례 등등의 평화로운 단어 아래 어떤 동화 정책과 이화 정책을 적용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중세 시대, 특히 십자군의 역사입니다만 여러 곳의 추천을 받은 책 인만큼 청소년부터 CEO까지 두루두루 읽을만한 지식 교양서이기 때문에 꼭 일독하기를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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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사료를 고루 다루는,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반영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전쟁을 다룰 때에는 더욱 힘든 일인지라 이 책의 미덕이 돋보인다. 또한 본의아니게 중간에 끼이는 입장이 되어 많은 곤란을 겪었던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책에서 유익한 지식과 재미가 공존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그런 편견을 멋지게 깨뜨린다.
서양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십자군 전쟁을 서술했다. 그러다보니 왜곡과 편견과 사료 날조가 넘쳐났다. 요즘에는 십자군을 성스러운 이미지로 그려내며 칭송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십자군의 극악무도한 만행만 강조되고, 막상 십자군의 본질에 대해서는 묻혀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십자군의 역사적 서술은 십자군이 처음 일어났을 때와 최종적으로 실패했을 때의 언급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200여년 동안 아홉 차례나 일어났던 십자군은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었던 것일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십자군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포괄하고 있다. 1권이 십자군 결성을 다루었다면, 2권과 3권은 십자군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를 다룬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예루살렘에 기독교 왕국을 세웠다. 이 나라가 바로 이번 3권의 주요 무대인 예루살렘 왕국이다.
예루살렘 왕국의 후계자인 멜리장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유럽의 대다수 기독교인과 달리 이슬람 세계를 접하며 자란 것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세계의 이슬람 악선전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를 포용하는 정책을 시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반목과 충돌은 새로운 증오를 낳는다.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은 한 번 맞부딪친 뒤에는 해묵은 감정으로 계속 서로를 도발하려 들었고, 갈수록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다수의 강경파가 예루살렘 왕국으로 숫제 이주해오기에 이른다. 멜리장드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예루살렘 왕국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태세가 된 상황에서 3권이 끝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증오가 불러일으킨 무분별한 전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말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타 민족에 대한 박해'가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우선 동방에 대한 서방의 편견과 오해의 역사에 대해 높은 비중으로 다루고, 단순히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구실을 붙이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만행을 정당화했던 역사적 장면을 상세하게 보여 준다. 이런 인식이 십자군의 온갖 만행의 토대가 되었으며, 그 잔영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마치 도시에 유대인 거주구역을 따로 지정했던 과거 유럽의 정책이 히틀러 유대인 대학살의 모태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십자군 이야기는 비단 과거의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비극의 원천이기도 하다. 십자군으로 깊게 패인 종교적 갈등은 아직까지도 온전히 메우지 못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이 상황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만화 매체로 그려졌는데, 만화 본연의 재미도 쏠쏠하다. 등장인물의 캐릭터 디자인에는 개성이 넘치고, 주요한 사료를 맵시있게 추려내어 만화적 묘사로 표현해낸 솜씨도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노래방 시스템'에서는 그야말로 탄복했더랬다. 중세의 시가에 곡을 붙인 '카르미나 부라나'를 만화에서 BGM으로 연출한 그 장면이라니! 진정 만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십자군 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두루 추천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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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초반부에는 이슬람 세계의 탄생을 다루는데, 이슬람 교리에서 전해오는 탄생 설화가 흥미롭게도 유대교와 기독교에 등장하는 성서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결국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뿌리가 같은 종교인 것이다. 종교를 구실로 전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욱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치열한 십자군 전쟁 이후, 보두앵 백작의 에뎃사 백작령, 보에몽 공작의 안티오키아 공국, 레몽 백작의 트리폴리 백작령, 초대 통치자 고드프루아의 예루살렘 왕국까지 4개의 나라가 새로 생겨났는데 이를 십자군 국가라 부른다.
아버지의 야심에 휘둘리고, 남편의 야욕에 휘둘렸던 알릭스는 남편인 보에몽 2세가 죽자 자신과 딸을 위해서 반란을 계획하게 되고 이를 위해서 투르크 용사이자 무슬림의 전쟁 영웅인 장기를 불러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보가 십자군 국가들에게 새어나가고 아버지인 보두앵 2세와 안티오키아의 원로들, 십자군 국가들의 기사들이 군대를 끌고 와서 알릭스를 가두게 된다. 이에 상심한 보두앵 2세가 울다 지쳐 쓰러져 숨을 거두자, 사위 풀크는 대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야비한 방법을 쓴다. 하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멜리장드에게 동정 여론이 쏠리게 되고 풀크는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야욕을 통해서 결국 집권에 성공한 풀크는 어이없게 낙마사고로 안장에 머리를 부딪쳐 며칠 만에 숨을 거두게 되고 멜리장드가 단독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된다.
전쟁이라는 폭력을 통한 힘의 논리로 점령한 예루살렘에 평화는 없었다. 평화와 공존을 원했던 멜리장드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또 다시 전쟁의 악순환은 계속되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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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너무 유럽 시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반전을 기본으로 이슬람 쪽의 시각도 반영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과 비교해가면서 읽었다.
3권에서는 십자군이 예루살렘과 그 일대를 점령해서 기독교 왕국을 세우고 난 후부터 2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럽에서 태어나고 유럽에서 자란 1차 십자군 세대와는 다르게 멜리장드 등은 유럽 출신이지만 중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차이가 이슬람을 바라보는 눈을 다르게 했던 것 같다. 언제든지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럽인과는 달리 그곳이 고향인 그들은 이슬람 세력과의 평화와 공존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으로서는 자신의 땅을 어이없이 빼앗겼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분열되어있던 이슬람 세력을 통합한 장기는 마침내 에데사 왕국을 무너뜨린다. 이 일로 인해 유럽에서는 2차 십자군이 결성된다.
십자군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에 관한 전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럽 내부의 교황과 왕과의 권력 다툼과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애초에 이슬람 세력과의 공존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침략에 맞서는 전쟁에 대해서도 그 전쟁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저자의 말처럼 초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유럽의 입장만을 생각한 것 같다. 이슬람 세력은 침략을 당했기에 그에 대항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이후의 침략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 침략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럼으로써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중심의 십자군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통해서 전반적인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 이 책을 읽었더니 그 시대 상황이 더 잘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슬람 세력의 시각이 잘 반영되어 있어 시오노 나나미 책만 읽었을 때 생길 수 있는 편견도 막을 수 있어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은 사람은 이 책도 꼭 읽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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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김태권이 길찾기 출판사를 통해 『십자군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 때 이 책은 가히 교양만화의 혁명이라 할만 했다. 일찍이 이원복이 이룩한 교양만화의 전범『먼나라 이웃나라』의 장점을 담지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색을 덧붙여 굉장히 지적인 하나의 저작물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장점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느 정도 주류로 왜곡된 관점이었을지언정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평면적이지 않게끔 풍부하게 그려냈다는 것이고 『십자군 이야기』는 이 장점을 훌륭히 구현해냈을 뿐 아니라 『먼나라 이웃나라』의 단점인 편향된 주류적 시선을 극복하여 역사 속에서 희생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거기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 정치적인 사건들을 빗대 풍자하는 용감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밖에도 다양한 장점들을 가진 그야말로 제대로 된 “교양” 만화라 할만 했다. 그러나 많은 주목을 받았던 것에 비해 너무 일찍 이 책은 절판되어버렸다. 이 책이 절판되게 된 경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 책이 담지하고 있는 담론이 희생된 약자들의 목소리에 중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피해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간 굉장히 뛰어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 몇몇 만화, 책들이 중심 담론이 마이너, 루저들의 목소리(물론 이 문제만은 아니겠으나)인 까닭에 소리 소문 없이 묻혀 지는 광경들을 많이 보았다. 그 책들은 다시 재간되지 못했고 마니아들의 입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책들이 되었다. 『십자군 이야기』도 그러한 테크트리를 탈 운명이었다. 그러나, 몇 년여의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 이 책은 비아북을 통해 『김태원의 십자군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간되었다. 2003년 당시 유효했던 풍자들은 많은 부분 지금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삭제, 수정되었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3권이 처음 출간되었다. 기존의 재간된 책들은 물론이고 새로 출간된 3권에 대해서 왈가왈부 말이 많을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는 3권이 학습만화 풍으로 그림체가 변하고 세심하고 풍부한 관련 서적들을 중심으로 한 해석들이 축소된 것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작가나 출판사의 문제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약을 하자면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한계이자 한국 출판계 전체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길찾기에서 나온 『십자군 이야기』는 사실 기적과도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을 산출하기 위해서 작가는 오롯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책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의 서적들과 균형 잡힌 해석을 선보이기 위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소모했음을 나는 추측해본다. 또한 꽤 많은 호응을 얻고 있던 연재물이었음에도 연재공간인 프레시안은 작가에게 확실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고, 작가는 작품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못했다. 길찾기 또한 거대 출판사가 아니었기에 단지 책을 출간해 주었을 뿐, 지속적으로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어려웠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으나 작품을 위해서는 물심양면으로 작가를 지원하는 일본의 만화 제작 시스템 속에서 저자가 활동할 수 있었다면 양상은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단순한 패착으로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정이 가해졌을 지언정 1, 2권은 이전 길찾기 판이 가지고 있었던 미덕들을 많이 놓치지 않았고, 당대성을 구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가장 아쉬운 3권조차 균형 잡힌 시선을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생각에 아마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시간과 세월이 또 한 움큼 지나면 다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그때까지 김태권이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면 말이지만! 좋아하고 가능성 있는 작가를 지원하는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쓸모 있고 유효한 방법은 바로 그의 책을 사주는 것이다. 사라, 두 권 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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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권에 이어 구입한 십자군 이야기3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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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권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 비아북 출판, 김태권 글,그림
1권의 공존과 2권의 타협을 지나서 3권 무슬림에 관한 이야기에 접어들었다. 3권까지 읽으면서 3가지의 시선을 나눠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바쁜 와중에도 전문사료를 틈틈이 읽어가며 ‘관심을 가져봤다?’라 해야할까나 중세의 역사는 어찌되었던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본인이 나눈 3가지의 시각적 견해를 말해 보고자 한다. 십자군 운동에 대한 연구는 유럽 중심적인 해석, 사료상의 한계, 인종적 편견과 신앙 간의 차이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리하여 십자군 운동에 대한 역사적 이미지는 실제 성격과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일반적으로 3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전통주의적 해석은 십자군 운동은 일종의 동방 원정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다원주의적 해석은 이교도를 상대로 교황이 승인한 전쟁은 모두 십자군이라고 지적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민중 십자군은 교황의 승인을 받지 못했으므로 십자군 운동에서 배제된다. 셋째, 통합주의적 해석은 위에서 언급한 두 견해를 종합하고 있다. 그들은 교황의 승인과 상관없이 서유럽 가톨릭의 군사원정을 십자군으로 간주했다. 이 해석 역시 십자군 운동에서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 비잔틴 제국에 있어서 십자군 운동은 해체의 과정을 맞이하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 세계는 예루살렘을 상실한 중요한 원인을 내부 분열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에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는 공고한 토대가 되었다. 책을 읽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만화라는 컨텐츠가 쉽게 읽는다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고 풍자와 역사가 곁들여진 십자군 이야기는 하나하나 시선을 바라봐가며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며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많이 변하듯 도서의 흐름도 변해가는 것 같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런 흐름에 알맞은 정도의 유연성을 지닌 책이 아닐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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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전쟁의 결과 4개의 나라가 새로 생겼다. 이를 ‘십자군 국가’라고 한다. 에데사 백작령의 보두앵 백작(후에 예루살렘 2대 왕이 된다),
[예루살렘 초대왕 고드프루아 1세와 예루살렘 문장]
그의 뒤를 노리는 자들이 많았는데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 1세가 교황의 특사 다임베르트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십자군 귀족들은 그를 예루살렘 왕국의 2대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아르메니아 인들을 접견하는 보두앵 1세]
보두앵 1세는 훗날 예루살렘 왕국의 3대 국왕이 되는 자신의 조카 이후 보두앵 1세는 1118년 4월 2일 이집트 원정길에 병을 얻어 사망했는데, 중혼죄를 지을만큼 여러번 결혼을 하였으나 예루살렘 귀족들은 회의 결과 보두앵 2세를 3대국왕으로 추대한다.
[영주를 접견하는 보두앵 2세]
2권과 3권사이의 빈 시간은 예루살렘 왕국의 생성기에 해당되므로
당시 중세 유럽에서는 여왕의 존재가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의 강력한 군주들 중에서 고르던 그는
[풀크 5세와 멜리장드의 결혼]
풀크 5세는 1차 십자군 전쟁에도 참여한 전력도 있고 당시 서유럽의 유럽에 손을 벌리는 처지였던 예루살렘 왕국으로서는 중요한 결혼이 혼인으로 인한 동맹으로 왕국의 방위를 튼튼히 하려는 보두앵 2세의 계획은 장인의 뜻대로 동맹을 맺어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의 영토를 확장하려다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주인으로 나서려는 계획을 세운다.
한편 보두앵 2세의 장녀 멜리장드의 배필인 풀크 5세도 안장에서 떨어지는 그녀도 새로운 왕국을 꿈꾸게 되는 것으로 3권은 마무리 된다.
바로 제2차 십자군 원정을 앞두고 있던 예루살렘 왕국의
19세기 초 막연히 중세미술을 뜻하려는 프랑스 고고학자가 로마에서 유래된 따라서 내부는 어둡지만 중후하고 신비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조각으로서는 교회 출입문 정면이나 좌우에 있는 기둥에 성서의 이야기 속에 창이 작고 벽이 넓은 로마네스크 교회의 실내는 거의 모두 프레스코화로
[장엄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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