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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영화를 더 좋아했었다. 그때만 해도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거나 집에서 비디오로 볼 수 있었다.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 대여점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녁에 퇴근할 때 슈퍼에서 맥주 한 캔 사고,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재미난 영화를 빌려서 들어가는 기분을 또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영화가 아직 안 나왔을 때의 조바심과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빌려갔을 때의 억울함이란 지금은 생각도 못할 정도였다. 최신 영화일 경우 대여기간은 1박 2일이었고 대여료는 동네마다 달랐지만, 한 1500원에서 2000원 선이었던 기억이 난다. 가게마다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서 적립된 포인트만큼 서비스를 해 주기도 하고, 나처럼 자주 들르는 고객들은 주인과 가까워져서 가끔씩은 가게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 뒤로 영화를 보는 방법들은 더욱 다양해지고 이젠 ‘동네 비디오 대여점’은 ‘동네 사진 현상소’처럼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빠른 시간에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관심사나 생활 습관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영화를 보았고 사랑했고 추억처럼 간직하고 있다. 가끔씩은 그 옛날 영화들을 다시 보기도 하면서 그 때의 느낌을 찾기도 하고, 젊은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혹은 느끼지 못했던 감상들을 깨닫기도 한다. 이 소설 <시간 밖으로 달리다>를 보면서 영화 <트루먼쇼>를 떠올리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화 속 트루먼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전 세계에 생방송 되는 쇼의 일부였다. 그의 아내, 그의 평생의 친구 심지어 그의 부모까지도 모두 쇼를 위해 연기하는 배우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갖고 그 의문의 해답을 찾으려 할 때마다 그들은 그런 시도를 방해한다. 그러나 결국 트루먼은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트루먼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낯선 풍경과 문화에 당황하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트루먼의 몫으로 남겨야할 것이다. 그가 좌절을 딛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시간이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그 과정이 그에게는 삶일테니 말이다. 소설 속의 용감한 소녀 제시도 마찬가지다. 1840년 미국 클래프턴에 살고 있는 제시는 대장장이 아버지와 치료기술이 있는 상냥한 엄마와 언니, 동생들과 함께 산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좀 멍청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고 엄마를 도우면서 재미나게 살아간다. 마을의 친구들이 병에 걸려 학교에 안 나오기 전까지 엄마를 도와 밤에 마을 아이들을 치료하러 가는 일도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제시에게 어려운 부탁을 한다. 마을의 아이들이 걸린 병이 디프테리아인데 마을 밖에는 그 병을 치료할 약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바깥 세상은 지금 1996년이라고 한다. 그들의 마을은 미국의 역사 복원 마을이고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은 일부러 그 마을에 들어와 옛날식으로 생활을 하면서 관광객들에게 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동안의 제시의 삶이 다 거짓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받은 충격을 다스릴 틈도 없이 엄마는 제시더러 바같 세상에 나가 그들의 상황을 알리라고 한다. 제시가 엄마에게서 받은 것은 클리프턴 마을 건립을 반대했던 환경운동가 닐리씨의 전화번호였다. 엄마는 그가 보건국에 전화를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클래프턴 마을의 상황을 알릴 것이라고 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로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제시의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제시는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들과 동생을 병에서 구하려는 제시의 착한 마음이 용기를 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은 했지만, 또 다른 난관과 위험이 제시를 기다린다. 읽는 내내 제시가 되어서 함께 두려워하고 용기를 내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어린 소녀의 목숨을 건 행보는 고통스럽기만 했지만, 언니와 동생, 친구들과 부모님을 구하려는 따뜻한 마음은 제시에게 용기를 주고 지혜를 얻게 했다. 독특한 소재와 발상, 그리고 흥미로운 전개가 돋보인다. 오늘은 오랜 만에 <트루먼쇼>를 보고 싶다. 열 번을 보아도 도 흥미로운 그 영화에서 이번엔 또 어떤 새로움을 찾을 수 있을까? 제시와 트루먼은 또 어떻게 비슷하고 다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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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먼쇼와는 또 다른 느낌의 몰래카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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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하루에도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 세상은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사실적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상상이나 가상의 세계를 벗어난 현실은 그래서 더 잔인하고 무섭고 낯설다. 현실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 예측할 수가 없다. 차라리 모르는 게 행복할까? 문득 루쉰의 비유가 떠오른다. 밀폐된 방에 갇혀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이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을 발견했는 데 사람들을 깨워서 함께 밖으로 나가야 할 지 그냥 그 자리에서 모르는 채로 편안히 죽게 내버려두는 게 옳은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 방을 부수고 나가자니 엄청난 희생과 고통이 따를테고 확실히 부수고 나갈 수 있을 지 조차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그냥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더 옳은 선택은 아닐까?
제시는 모든 걸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난 이상 제시는 예전의 제시일 수가 없다. 방에 갇혀서 죽어가는 사람들처럼 디프테이아에 걸려 죽어가는 동생과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제시는 목숨을 걸고 뛸 수 밖에 없다. 1840년에서 1996년으로 훌쩍 뛰어나온 제시에게는 버스도 전등도 전화도 모두 낯설다 못해 마법 속 괴물같이 느껴진다. 156년이라는 시간 차속에 위험하게 제시만 던져둔 그녀의 부모가 그래서 더 무책임하고 병적으로 보여진다.
왜 '역사적 보호 공간'이라는 클리프턴에 제시의 가족이 들어오게 되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의 결정에 따라 자녀들의 인생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 옳지 못하다. 물론 제시의 부모도 처음 클리프턴에 들어올 때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 못했겠지만 아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였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을 것인 지 정말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 충격까지 부모가 다 감당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 오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녀의 부모를 비난할만한 자격도 없지만 그들의 결정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을 알게 될까봐 노심초사 하며 제시에게 오케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아빠의 모습이 그래서 더 안타깝기만 하다.
다행히 제시는 현재로 돌아와(?!) 과거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왜 아빠는 클리프턴으로 들어온 것이며 과학자들이 왜 클리프턴 아이들에게 디프테리아를 퍼뜨렸는 지 자신은 그 곳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웠는 데 현실의 사람들은 왜 제시의 부모를 비난하는 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아빠와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아무도 진실을 얘기해 주지 않는 상황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인 거짓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게 과연 진실일까? 그런데 누가 진실이라고 말해 주는 거지? 진실이라고 말해 주는 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는 걸까? 어떻게?
13살 소녀에게 던져진 상황은 시간 이동이라는 상황 설정의 혼란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 이동을 겪으면서 정신적인 혼란까지 함께 겪게 되는 제시의 모습을 통해 진실과 거짓이라는 문제까지 고민하게 한다. 친구들과 동생 케이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용감한 제시지만 차라리 클리프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었던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 이제 누가 제시에게 진실을 얘기해 줄 것인가!
이 책은 두개의 현실을 보여준다. 분명 제시와 그 가족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과거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은 어디쯤일까? 누군가 내 삶을 구경하고 조종하려 든다면? 현실 속에서 진실을 거짓으로 조종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설정은 사회 음모론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제시의 아빠는 클리프턴으로 숨어든 것일까?
시간 밖으로 달려 나온 제시가 시간의 부력을 잘 견디고 있을 지 걱정스럽다. 보여 준 모습만으로는 충분히 잘 해내리라 생각하지만 가족들과 이웃, 세상이 보여준 거짓과 비정한 모습에 허리를 접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믿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제시가 견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간 밖으로 열심히 달려준 제시 덕에 상상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현실 속에서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봐도 알 수 없는 세상 일들이 부지기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지 생각하면 두렵고 깜깜하다. 그래도 빛이 들어오고 있는데 잠든 채로 죽어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을까?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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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가장 가까운 미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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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피터슨 해딕스의 <시간 밖으로 달리다>는 몇몇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기획된 19세기의 세상에 살던 주인공 소녀 제시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진짜 세상으로 나와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처음 이 책의 소개글만 읽어 봤을때는 짐 캐리가 출연한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트루먼은 제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방송국에서 한 고아 아이를 입양하여 가상 마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우며 24시간 내내 아이를 지켜 볼 수 있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였다.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배우들이였고 그 사람들 속에서 30여 년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자신만은 몰랐던 거짓된 인생을 살아온 트루먼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서 세상 밖으로 나갈려고 했을때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트루먼과 비슷하게 이 소설 <시간 밖으로 달리다>의 소녀 제시 또한 사람들의 관찰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제시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트루먼과 다르게 제시의 가족은 제시의 진짜 가족이다. 제시의 아빠와 엄마는 자신들이 동물원의 동물과 같은 입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선택해 바로 이 가상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 왜 그들은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제시가 살고 있는 곳은 클리프턴이라는 마을로 모든 것들을 1800년대로 꾸며 놓은 '역사 보호 구역'이다. 제시가 알고 있었던 현재 시간은 1840년이 아니라 1996년이였다. 클리프턴에 디프테리아라는 전염병이 돌게 되는데 밖에 사람들은 치료약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실을 숨기려고만 한다. 그래서 제시의 엄마는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클리프턴 만드는 것을 반대했던 아이작이라는 남자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제시를 진짜 세상으로 내보낸다. 제시의 손에 이곳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자동차도 전화기도 심지어 청바지조차 모르는 소녀 제시가 이 중요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시가 이 일을 성공하고 난 뒤에 클리프턴 마을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제시는 용기를 낸다. 작고 어리지만 강한 소녀 제시. 제시는 아마 1996년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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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마을인 줄만 알았던 이 곳이 사실은 역사 보호 구역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1800년대처럼 꾸며 놓았지만 바깥세상은 1996년이라는 믿기지 않는 얘기, 관광객들이 자신들을 하루 24시간, 1년 내내 지켜볼 수 있는 곳이란 사실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모른다. 그런 제시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엄마.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곳 생활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며 필요한 경우라면 언제든 의료 혜택은 물론 가뭄이 들면 음식을 보내주어 아무도 굶주리지 않고, 원하면 그곳을 떠날 수도 있었고, 아이들이 12살이 되면 클리프턴의 진실에 대해 말해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의약품이 끊기고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게 함은 물론 바깥세상이 어떤지 이야기도 못하게 하고, 클리프턴으로 드나드는 입구를 봉쇄하고 감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는 얘기. 특히나 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디프테리아에 걸렸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제시에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클리프턴을 탈출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달라 요청하게 된다. 제시는 1800년대를 벗어나 1996년도 세상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
장마로 내내 집에만 있으니 책읽으며 시간여행 떠나고 싶어 선택한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의 '시간 밖으로 달리다' 우리가 사는 세상 밖에 시간차가 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 라는 대충의 요약글을 읽으며 컨트롤러 내용과 살짝 비슷한 것 같아 호기심이 일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컨트롤러가 아니라 트루먼쇼에 가까워 놀랐다.
시간여행 이라길래 타임머신이나 알 수 없는 신비한 현상으로 과거나 미래로의 여행을 상상했는데 진짜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몰라 자신의 삶이 매일매일 감시(?)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 집을 벗어난 것 뿐인데 그것이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훌쩍 넘어선 시간 이동이라니 ~
너무 극적이라 놀랍기만 하다. 제시의 혼란스러움이 너무나도 이해되고 맘아프게 다가왔던 '시간 밖으로 달리다'
바깥세상은 아름답지 못해, 사회 부조리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남발하고, 하루가 멀다해 범죄가 일어나지. 그에 비하면 이곳 시헤븐은 천국이야 그 어떤 고난도 없는 곳이란 말야. 외치지만 마침내 진정한 자유를 찾아 바깥 세상으로 망설임 없이 나가는 트루먼. 예전의 그라면 거짓 세상에 만족했을 지 모르지만 진정한 자유의 모습을 아는 지금은 ??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진실은, 가까이에서 직접 보거나 겪어보지 않으면 그 실체를 알 수가 없지 않나 ~ 트루먼처럼 제시 역시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삶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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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제시가 사는 곳은 1800년대의 클리프턴이다. 아니,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마을에 디프테리아가 돌면서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아가고 제시가 살아가는 시대 1814년대의 약으로는 디프테리아를 고칠 수가 없다. 제시의 엄마는 말한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1800년대의 클리프턴을 떠나 1996년으로 가야 한다고 말이다. 뭐야, 타임머신이라도 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여행자라도 된다는 말인가....모두 아니다. 실은 지금이 1800년대가 아닌 1996년이니 말이다.
하나의 공간에 다른 시간대가 존재한다고 하니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제시가 살아가고 있는 1800년대의 클리프턴은 그냥 민속촌 같은 곳이다. 역사 보존지구로 만들어진 마을이라서 그곳에 현대의 사람들이 들어가서 1800년대의 사람처럼 삶을 살아가는 척 하는 것이다. 출퇴근하는 연기를 하는 직원이라면 좋으련만 이 클리프턴은 숙식제공의 그곳에서 아예 살림을 차리고 살아가면 된다. 다만 관광객들에게 그 삶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뿐이다. 어린이들은 모르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삶이 관광객들에게 구경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모집 광고에서 이미 공지되었던 사항이었으니.... 현실의 삶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1800년대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이 1800년대라고 믿으며 자신들이 1800년대의 사람들인 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혜택은 20세기에 맞추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줄만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20세기의 약이 클리프턴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에 디프테리아가 퍼졌는데도 속수무책 아이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제시의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결심을 한 것이다. 오로지 자신이 1800년대의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는 딸 제시에게 실은 이 시대는 1996년이고 제시가 마을을 떠나 1996년의 도시로 나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이다.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나가야 하는 일이다. 거기다 제시는 20세기를 본 적이 전혀 없어서 20세기의 모습이 생소함으로 낯설기만 한 곳이다. 엄마가 준 청바지도 티셔츠도 말이다...
10대의 소녀, 오로지 1800년대의 삶 방식으로만 살아온 아이에게 1996년의 도시 모습은, 그 생활 방식은 모두가 낯설어서 두려운 순간일 것 같다.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일조차 그 서투름에 자꾸만 버벅되지 않는가. 또한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어도 그것이 믿어도 되는 친절인지 아닌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 클리프턴을 나온 제시를 쫓아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제시의 엄마는 닐리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보건국에 연락을 해주고 기자회견을 해주어서 자신들을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제시는 무사히 닐리를 만날 수 있을까 혹은 그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될까.....20세기의 도시 속으로 뛰어 들어온 제시, 그 아이가 낯설기만 한 그곳에서 진정 엄마의 부탁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 10대 소녀가 아닐까.....그렇지만 제시는 참 용감한 아이라서 다행이다. 자신이 병으로 앓고 있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고 있는 제시는 정말이지 용감한 아이였다. 두껍지 않은 책이었다. 1800년대와 1900년대가 나오지만 그것은 하나의 공간이었다. 1996년 속에 살아가는 1800년대의 사람들, 그들이 위험에 처해졌고,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수 있는 아이는 제시이다. 이제 1800년대의 연극은 끝이 났다. 그들은 다시 제 자리의 시대로 돌아와야 한다. 1800년대를 꾸민 마일즈와 라일의 농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1800년대의 사람인 척 살아가지 않고 1996년, 현실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제시와 클리프턴의 아이들, 더이상 기획된 시대가 아닌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아이들, 이제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겠지. 시간 밖으로 튀어나온 제시 덕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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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세상. 여기,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가 '상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녀가 있다. '클리프턴'이라는, 작고도 평화로운 정든 자신의 마을 이름이 바로 그 상표, 소유주의 이름이라니..... 1840년의 세상을 살던 제시는 동네 아이들이 디프테리아로 하나 둘 쓰러져가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엄마를 통해 이 곳의 모든 것이 1800년대처럼 꾸며놓은 것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조성된 지 12년이 흐른 지금, 마일즈 클리프턴이 약속했던 의료 혜택이나 식량 원조를 끊고, 거주자들을 감시하고 폭력을 동원한 규제까지 가해왔다는 사실도...
엄마는 마을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제시를 바깥 세상으로 내보내 도움을 요청하도록 한다.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청바지와 티셔츠를 제시에게 입히는 엄마, 한번도 입어본 적 없었던 바지가 어색하기만 한 제시... 과연, 제시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200년 후...아니, 사실은 '진짜 현재'의 세계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엄마와 헤어져 램프도 없이 어둠 속에 남은 제시에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결코 좋은 곳이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200년 동안, 세상은 좋아진 것도 많지만... 그건 물질일 뿐, 사람은 더 폭력적이고 이기적이고 무서워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기에.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제시가 느끼는 두려움보다 제시를 지켜보는 우리의 걱정이 더 크지 않을까..
제시에게 현재는 놀라움의 세계다. 어떤 대장장이가 만들었는지 흠 하나 없이 매끈한 손잡이, 불꽃 없는 빛, 물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변기, 물이 나오는 금속 구멍...... 제시가 자신의 언어로 묘사하는 현대의 산물들에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이 난다. 한편으로, 이런 '풍요와 기적의 시대'를 사는 우리 마음은 얼마나 각박한지 씁쓸해진다.
어마어마한 담장과 감시 카메라, 경비원들을 피해 탈출에 성공해 도움을 약속했던 닐리씨를 만나지만, 안도의 한숨을 쉴 순간 찾아온 더한 위기......
나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상황에서, 제시는 용기와 침착함, 판단력과 행동력으로... 또, 그보다 더 강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달린다. 다치고 부딪히면서도......
한시도 긴장감을 놓칠 새 없이 풀려나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엔 또 하나의 추악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가족과 마을을 구하고 궁금했던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고 난 다음에도 혼란스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던 제시...... 그녀가 계속 혼란스러울지라도 차라리 모르기를 바란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떤 것으로도 구원되지 않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그리고, 언젠간 인간이 진정 인간답게 되는 그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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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공상과학소설을 상상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시간과 현재가 아닌 가상의 시간, 두 곳을 오가며 신비스런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현실적이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시대에 존재하면서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일이 가능할까? 갸우뚱 했는데, 역시 비정상적인 사고방식과 범죄가 존재했다.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영화 '트루먼쇼'가 생각났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 저항하지 못하는 공간에 있는 이들이 당하는 수모와 불이익. 평화롭게 보이는 클리프턴 마을에 제시가 살고 있다. 엄마 아빠와 형제들과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장장이인 아빠와 마을 사람들의 병을 비공식적으로 치료해주는 엄마, 그리고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하다. 나무에 걸린 유리의 존재를 발견한 제시가 겪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시발이 되어 점점 이상한 일에 휘말린다. 진실을 알기까지 약간의 혼란이 있었지만 제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그냥 전부인 줄 알았다. 엄마를 통해서 진실을 알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슬픈 운명을 등에 지고 지옥의 길에 접어든다.
목숨을 위협당하며 탈출하고자 했던 건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 아이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클리프턴 마을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파헤쳐지면서 제시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184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1996년을 살고 있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엉뚱한 설정이지만 내막을 알고 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사람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좋지 않은 목적으로 사람을 부린다는 건 범죄다. 검은 무리들의 속셈이 드러나고 점점 위기에 빠지는 제시.
재미와 호기심만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왜 클리프턴이라는 마을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들을 이용해 누군가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뻔한 운명 속으로 뛰어들어간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삶을 떠나서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싶어했던 제시의 부모님에 떠올려봤는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제시를 마을을 구하는 전사로 내보낸 엄마의 마음에 대해 떠올려봐도 답답하다. 하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일들, 음모와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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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이 진짜 인생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