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이 재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고 가정할 경우, 애초에 물질적 중압감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어떤 소유욕도 없으며 소유의식이 발달하지 않은 비경제인인인 그들 사이에는 빈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40p) 그냥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누구나 인간이면 내일 일은 알지 못하는 게 답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이 시간 현재에 충실해서 살아야하는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단지 하루만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길고 길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를 하고 돈을 모으고 일을 한다. 하루를 위해 살것인가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하나만 고를수 없는 딜레마이긴 하다. 일화도 있지 않은가. 하루동안 너가 도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고 하자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돌다가 결국 해가 질때쯤 죽으버린 부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교훈은 욕심을 내지 말자는 것이겠지만 그 부자 또한 미래를 위해서 준비했던 것이 아닐까. 하루만 산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이 책의 내용을 오해하면 아니된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 저자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제와 소비를 분석하고 이런 책을 낸 것이다. 단지 모든 사람들에게 저렇게 살라고 한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비패턴이라던지 그들의 생활패턴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글로 펴낸 것이라 보면 된다. 일단 그들의 삶은 불확실하다. 다음날 어떤 삶이 기다릴지 모르는 것이다. 나라 자체도 불안정하다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꾸준히 계속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당장에 먹고 살것을 마련하는데 급급하다. 그래서 이런 패턴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선두주자가 무언가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팔게 된다. 당연히 그때는 이슈가 되어서 물건이 날개돋친듯 팔린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만의 독점을 고집하지 않는다. 후발주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물건 떼는 법이라던가 물건파는 법을 가르킨다. 당연히 선두주자들을은 후발주자들에 묻혀 판로가 없어지고 어느틈엔가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 돈을 벌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선두주자들은 후발주자들과 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손을 떼고 또 다른 아이템을 찾아서 떠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들의 발상이. 다른 사람들 같으면 잘 팔리는 항목이 있다면 자신만의 독과점으로묶어놓고 팔려는 생각이 들텐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전혀없다. 서로서로 나누고 공유하고 비법을 알려주고 전수하는 방식이다. 분명 자신의 몫이 적어지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그런 관계는 자신들의 지역을 떠나서도 계속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요즘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홍콩으로 가서 거기서 비자를 받아서 들어가는 방식인데 그곳에서도 이런 전수방식은 동일한다. 그들은 욕심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공생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중국으로 판로를 개척한 데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전세계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없는 곳은 없다던가. 더군다나 이른바 짝퉁도 오케이하는 그들이다 보니 더욱 그 관계는 잘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나이키가 아닌 나이스여도, 아디다스가 아닌 아이도스여도 싼 물건이면 상관없다는 식이다. 쓸 수 있을까지 쓰고 버린다는 그들의 의식과도 잘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전략이다. 편집상으로 '자세한 내용은 뒤애 있다'던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다는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굳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제대로 편집을 해서 순서를 맞췄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눈감으면 코베어간다는 중국(126p)이라는 표현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 서울'이라는 속담을 인용한 것 같은데 꼭 중국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런 속담을 써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아주 조금은 다른 사회.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이 있는 곳. 그들은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한분야에 매진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모든 분야에 다양하게 잘할수 있는 '제너럴리스트'. 지금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오히려 그들이 더 잘해내고 있는 것은 아니려나. |
![]() ![]() ![]() ![]() ![]() ![]() ![]() ![]() ![]() ![]() ![]() ![]() ![]() ![]() ![]() ![]() ![]() ![]() ![]() ![]() 1990년대, 일본의 철학자 우치야마 다카시(山內節)는 마을 전체가 독특한 생활방식을 따르는 일본 군마 현 다노 군의 ‘우에 노무라’라는 농촌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에노무라 마을 사람들은 1년 전과 같은 봄이나 가을이 돌아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봄의 밭일이나 가을의 수확을 반복하는 환원적인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우치야마 다카시가 주목한 마을의 특징은 우에노무라 사람들은 ‘가족이 소비할 밭작물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양의 딱 두 배만 생산하는 마을의 관습을 가지고 있던 것.’ 이었습니다. 두 배를 생산한 이유는 상품으로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먹고 남은 것은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거나 흉작이 든 집에 주기 위해서 인데, 우치야마는 이를 농민의 ‘놀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거둔 수확을 나누지 않고 상품으로 출하했다면, 다 함께 작물을 수확하고 그것을 나누는 기쁨은 그 순간 사라져 버릴 뿐만 아니라 수개월 땀흘려 기른 작물의 대가로는 너무도 형편없는 화폐로밖에 환원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에노무라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키워낸 작물을 절대 상품으로 출하하지 않으며, 그들이 하는 ‘밭일’ 은 시간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는 ‘벌이’와는 다른 것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올해도 수확의 가을을 맞이했다는 그 기쁨은 사업가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흉작이 들든, 풍작이 들든, 가난하든, 부자든, 마을 사람들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죠. 이 같은 삶을 보면서 우리는 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것을 생산해낼 것을 지향하고 언제 어디서일지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기쁨을 희생하는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일본의 환경운동가이자 인류학자인 쓰지 신이치(辻信一)는 한 일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멕시코 사람들과 일본 사회를 비교하며 이런 의문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간결하게 말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철저하게 수단화하거나 희생시킨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노후를 위해서는 현재를 즐길 여유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요소는 효율이다.” “특정 목표를 향해 불필요한 것은 모조리 깎아낸다. 다시 말해 현재를 희생시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진보다. 그런 효율성을 사물을 넘어 인간과 자연계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사회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것은 인간성과 생태계의 파괴다.” 또 일본의 철학자 고토 데쓰아키 또한 지금 이 곳의 현재를 연속적으로 찬탈하고 항상 언젠가의 어딘가로 우리를 몰고가는 강제 이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근대적인 시간 개념 및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함께 나아가는 성과주의 세계나 그에 대한 기여를 목적으로 삼는 정보사회에 의해, ‘지금 이곳’의 기쁨을 희생당하면서 ‘언젠가 어딘가’라는 막연하고 초월적인 장소에서 시간을 소비하며 살도록 강요받는다.” 문화인류학 교수이자 작가인 오가와 사야카(小川 さやか)가 조사한 탄자니아의 도시에서는 일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길가에 모여 수다를 떠는 삶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금전적 여유를 위해 희생하는 시간적 여유라고 말합니다. 막연한 미래의 안정을 위해 고시원이나 단칸방에서 공부와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한국의 취준생들을 생각하면 한국은 탄자니아보다 일본의 삶과 훨씬 유사합니다. 오가와 사야카는 이 책에서 탄자니아의 예를 통해 근대 자본주의에서 사는 삶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벌어 하루 살아가는 삶을 둘러싼 가치, 실천, 인간관계, 그 연속선상에서 나타나는 사회 및 경제의 양상을 밝히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미래를 우위에 두는 삶과 기술과 지식의 축적에 근거한 생산주의적이고 발전주의적 인간관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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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벌어 살아도 괜찮아/더난출판 Yahoo로 오가와사야카(小川さやか)를 검색해서 Amazon도서에서 원재「その日暮らし」를 서두가 길었다. 이책 "하루벌어 살아도 괜찮아"...아무 생각없이 책을 펼쳤을 때는 막연히 이 책에서 탄자니아 사람들은 '똑같은 날은 하루도 없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한다. 갑자기 노래가사 중에 '노세노세 젊어서노세~늙어지면 못노나니~~'가 떠오른다. 젊을 때 사서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숨막히는 현실 경제이야기에서 또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재미난 자본주의 문화가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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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생존 양식 오가와 사야카의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의 생존주의를 고찰하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홍콩, 중국 등 전 지구적 차원으로 뻗어 나가는 비공식경제를 통해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오늘을 위해 사는 삶’을 그린 책이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수단화하는 미래주의적 시각에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 우리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를 되짚어 본다. 시장 경제의 무대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 현시점에서, 유통과 통신이 대규모로 발달한 배경을 가진 주류 패러다임만으로는 해석하지 못하는 또 다른 경제 에이전시를 보여준다. 오가와 사야카는 15년간 탄자니아 도시의 “영세 상인의 장사 관행, 사업 활동, 사회적 관계를 조사”했다. 므완자 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동아프리카의 국경을 넘나들거나 중국과 홍콩 등 탄자니아의 비공식 경제 활동의 통로가 되는 지역도 방문하여 상품의 유통 경로와 과정을 추적하는 등 다양한 현지에 들어가는 전략(going native)을 사용했다. 따라서 이 연구의 현지는 좁게 말하면 탄자니아 므완자 시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전 지구가 된다. 저자는 도시 영세 상인들의 비공식경제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세심하고 끈질긴 관찰을 통해 연구를 진척시킨다. 핵심인물인 부크와와 하디자 부부, 친한 친구였던 마레 등을 심층 인터뷰하여 그들의 삶을 둘러싼 경제적 전략의 변화를 묘사하고, 수많은 영세 상인 및 주변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자가 상업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 주요 방법론인 이 연구에서 핵심인물과의 라포 형성과 게이트 키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연구 전반에 걸쳐 인터뷰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는 므완자 시에서 영세 상업을 하는 상인을 중심으로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대부분이 20-40대의 남성이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상인들이 대개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행위 주체들을 둘러싼 여성이나 중년층의 목소리, 혹은 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들으면 그들의 노동관과 경제적 질서를 더욱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책은 시간을 균질적이고 직선적으로 인식하는 ‘우리’와 달리, 시간으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직접 체험의 원칙을 갖는 피다한족이나 가능한 한 최소의 노력을 하는 통궤족은 근대화 이후 ‘미래를 위한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오늘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진 태도와 몸놀림이 이 책의 주요 질문이다. 므완자 시의 영세 상인들은 공식 경제에 포함되지 않는 경제 활동에 종사하지만, 도시 인구의 약 66퍼센트를 차지하며 사실상 “사회 경제의 주류를 이룬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수입원을 일원화하는 것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입원을 여러 개 가져 그때그때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의 시간은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착실히 저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해 보인다.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지금 당장 가능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탄자니아인들이 행하는 경제 활동은 시장의 불확실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이들은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시장은 그들에게 있어 기회를 제공하며, 상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운을 맡긴다. 고정적인 삶이나 관계를 거부하고, 상업 활동의 조직화나 거대기업화를 부정하며 자율적인 경제 영역을 지켜낸다. 그날그날의 실천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전략은 근대화가 낳은 개인, 개량화가 가능한 삶을 사는 미래주의적 삶의 신화를 해체한다. 도시 영세 상인들은 끊임없이 현재를 유보하기만 하는 미래주의에 도전하여 ‘오늘’의 불예측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통제한다. ‘신뢰’는 비공식경제를 영위하는 탄자니아의 도시 영세 상인의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이지만, 그 모습은 결코 단일하거나 단층적이지 않다. 동아프리카 국가와 교역하는 영세 상인들은 장사가 될 법한 특정 상품에 우르르 몰려들고, 이 때문에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 또 다른 판매 상품을 찾아 다시 우르르 몰려간다. 몰려드는 경제의 상인들은 시장이 포화상태가 될지언정 서로에게 돈벌이가 될 만한 물건이나 장사 전략을 숨기지 않는다. ‘일은 일’이라는 장사관을 가진 이들에게 동료와의 관계와 신뢰 형성은 매우 중요하므로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히가시 가즈마사가 중국의 몰려드는 경제 문화를 “신뢰와 협력의 결여”로 설명한 것과 사뭇 다르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몰려드는 경제는 히가시의 분석과는 정반대로 상호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중국 상인들과 거래하는 아프리카 무역상들은 비자 취득, 상품 매입, 중개업자와의 협상 등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적 접촉과 충돌을 경험하는데, 이때 무역상들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누구에게나 열린 신뢰”를 보여준다. 무역상은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대면 교섭을 하고, 경험으로 터득한 전략을 사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 이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중국”이라는 위기감에서 발현된 생존 전략이며, 이때 무역상과 중개인 사이, 무역상과 구매자 사이 등 다양한 관계의 상호 신뢰는 거래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거래 과정에서 단계 단계를 통제하고 계산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므완자 시의 도시 영세 상인들은 특유의 장사 관행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사업을 벌인다. 근대화가 낳은 균질한 시간성과 미래주의적 신화를 거부하고 오늘을 사는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사업은 다양한 네트워크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양상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오가와는 이를 총체적으로 포착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식경제 양상은 구조나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극단적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자기 책임의 원칙을 바탕으로 무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주류 인류학의 비판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오가와의 연구에서 다양한 도시 영세 상인들은 불확실성에 자율적으로 대처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패와 좌절의 예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비균질적으로 보며 근대화의 신화를 거부한다는 설명은 설득력 있지만, 이들의 패배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국가나 사회는 개입을 최소화하며, 이 시스템에서의 성공이 모두 개인의 능력 덕분이듯 실패의 책임도 온전히 개인에게만 있다. 한편 인류학자 고든 매슈스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핵심지인 홍콩의 청킹 맨션을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위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라고 분석했다. 주류 인류학은 국가의 시장 통제를 최소화하는 이 시스템은 결국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배를 불리고 패자를 주변으로 밀어낸다고 보지만, 매슈스는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오가와의 연구도 매슈스의 관점과 비슷하게 평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슈스의 논의를 빌리자면, 오가와가 마주한 탄자니아 사람들 역시 청킹 맨션의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의 상황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생존 양식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영세 상인들에게 불확실성이 곧 기회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저 스스로 ‘변신이 빠른 사람’이 되어 발 빠르게 대처”하는 신체를 만들어낸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삶의 논리로 끌어오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점이 매우 흥미로운 연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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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 탄자니아 및 아프리카의 경제 세계에 관한 문화기술지
![]() ![]() ![]() 뜻밖에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탄자니아 및 아프리카 문화기술지이다. 이런 연구를 하고, 문화기술지 연구를 경제학적 측면에서 이토록 의미있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런 것들을 모두 제쳐두고라도, 읽는 그 자체로 새롭고 신선하기도 하고, 주류의 자본주의 체제라는 경제적인 삶이 모두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현대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나아질 기미없는 삶을 사는 현대인 중 한명인 나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켜 준 책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이해가 안가는 그들의 삶이지만(돈을 빌리고 빌리고, 그럼에도 받지 못할 돈을 다시금 빌려준다든지, 여러 지인들에게 급하게 조금씩 돈을 빌려 좋은 물건을 사서 장사를 해서 갚겠노라했지만 그런 물건을 결국 못찾는지 등등), 논리적인 이해는 안가도, 이상하리만큼 더 공감이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럴 수도 있구나' 싶으면서.. 매달 똑같은 월급을 담보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하루하루 시달리는 우리보다 그들이 삶이 훨씬(?) 현명하고, 유연하며, 상호 의지적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경제분야를 연구대상으로 한 문화기술지라, 세계 주류 경제나 지하경제, 제3세계의 경제적 현상에 대한 흐름에 대해 소수 혹은 약자로 놓인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 그들은 우리와는 어떻게 다른 시간적 흐름을 느끼며, 경제적인 일(돈 벌이)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지인들에게 '빚'내는 현상 및 금융권에는 먼저 돈을 갚아도 지인들에게는 빌리고 또 빌릴 수 있는 경제적인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등등 모든 것이 다른 세상 이야기긴 했어도, 그렇기에 더 의미있게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시간 개념이 없는 민족들은 누군가네 집에 더 많은 식량이 있을 경우 모두가 빌려주게 되어있어,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생계를 최소로만 유지하게 되고, 오히려 서로 분배함으로써 내가 어려울 때 자연스럽게 빌릴 수 있는 생활 모습이라든지,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는 업종으로 매우 유동적으로 직업을 바꾸는 '제너럴리스트'의 삶도 어찌보면 4차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자질(?) 같은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조품(짝퉁)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는데, 진품과 매우 유사한 짝퉁을 비싸게 사느니, 차라리 스펠링이나 로고가 살짝 틀린 건 상관이 없으니 '가짜를 가짜 가격에 주고 사는 것, 그게 더 현명하다'라는 그들의 태도는 명품의 값어치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돈'과 '직선적 시간-미래를 향해 지금의 고통을 견디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제3세계 사람들의 다소(?) 다른, 어쩌면 우리와는 180도 다른 태도와 삶의 철학들을 통해 기존의 통념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엉뚱한 그들이 세계가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현명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던, 무척이나 인상 깊게 남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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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 뒤로는 빨리 기술을 배우고 능력을 키워 직장생활을 다니는 것이 정상적이고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사업할 생각을 가진 적도 없었고 더구나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사회 시스템에 맞춰 쓸모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하나의 부속품처럼 일하며 매달 월급받아 생활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쉬고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마음은 불안했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담했다. 이제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고찰을 담은 이 책은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은 비공식 경제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무한경쟁시대이자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일하는 것이 정답일까?라는 의문점이 드는 시기에 읽으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따지고보면 일정 수준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사회가 정한 나름의 기준대로 직업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자유롭게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에 삶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삶의 질이 더 높아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오로지 현재만을 생각하며 산다는 아마존의 피다한족. 선교를 하러 갔던 대니얼 에버릿은 30년간 그들과 생활하면서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늘 과거와 미래를 통해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욕망의 크기를 비교하고 그로 인해 좌절하면서 산다. 사실 중요한 것은 지금을 사는 오늘인데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괴로워한다. 삶의 행복과 가치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루가 행복하지 못할까? 저자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사는 사람들을 통해 하루 벌어 먹고 살아도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전한다. 정작 이 책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삶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의구심은 내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열악하고 궁핍해보이지만 그들은 딱히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오늘을 만족하며 산다는 데 있다. 이룰 수 없는 목표나 남들이 가진 것을 탐내기 보다는 하루하루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서 항상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며 산다. 그건 오늘이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으며 살기 때문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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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관찰한 '오늘을 사는 삶', 그리고 그들이 이끌어나가는 비공식 경제활동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이 연구를 위해 탄자니아에서 직접 행상을 하면서 상인과 소비자 등을 만나 인터뷰를 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경제 시스템과 사회의 변화를 추적 관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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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사회의 부속품! 멈추면 경쟁에서 밀려나갈 것 같은 불안감! 언제부터인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다니는 불안감과 감정 등이 있다. 무한경쟁 속에서 앞으로 혹은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치는 것에서 비롯된 그릇된 찌꺼기 등은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 이제 이것들은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책은 책 몇 장만 넘겨도 아주 진한 여운 혹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사람들이 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걸까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행복감은 부탄처럼 못 사는 나라가 가장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과연 지금 삶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옳다 그르다를 평가하기에는 이르겠지만, 적어도 어느 방향인지는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음! 현대적인 삶에 익숙한 도시인으로서, 책에 소개된 아프리카 피다한족의 세계는 언뜻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원시인의 삶이 편안해 보일리 만무하다. 엄청나게 불편하고, 미개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기에 직접 경험하면 경이로운 날 것의 모습을 체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유지하려고 하는 종족의 삶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으니 봐줄 만한 것이 많다. 인류가 유구한 역사를 이루면서 쌓은 문화가 거꾸로 인간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도 하다. 자연으로 그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과연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을 수 있을까? 여전히 두려움이 밀려온다. 자연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는 지도 모르겠다. 제목 그대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도시 지역에는 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들이 사회 경제의 주류를 이룬다고 하니, 탄자니아 경제의 궁핍함이 보인다. 어렵고 힘든 경제에서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 일 저 일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딱히 집착하고 매달리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감정들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있는 것들일까 탄자니아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하고 움직이기보다 현실에 충실하고 있다. 복잡하게 고뇌하여 만든 계획표도 어지러운 현실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다. 분명 탄자니아는 살아가기 힘든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인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다. 아니, 미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옳고 그른다를 판별할 수 없는 문제이겠다. 이런 관점을 잘 기억해둬야겠다. 목표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에 불안과 공허함이 강렬하게 오는 걸 수도 있겠다. 책은 현대화된 도시인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풍요로움은 무엇일까 책을 보면서 지나왔던 삶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갈 길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흥미롭고 재미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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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자본주의에 반대되는 문장이다. 해서 관심이 간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현재 나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의 영광이나 부유함, 직업등을 위해 지금의 시간을 참아내는 것을 우리는 배웠고, 또 그 일을 내 자식에게 되풀이하고 있는 나의 현재 모습.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작가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삶'이란 것이다. 그는 이 삶의 철학에 모순이 없는지를 면밀히 관찰하여 논문으로 발표했다. 또한 오늘을 사는 삶을 전제로 구성된 경제가,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와 양립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예전에는 하루벌어 사는 사람들의 경제를 '하찮은 경제', '수상한 경제'로 간주되어온 비공식 경제로 취급했지만, 현재는 정치적, 경제적 변모에 따라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주류 경제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부상되었다. 이들을 '보다 철저하게 신자유주의화'된 경제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부류로 인정하고 있다고, 작가는 썼다. 즉, 이것은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을 저당잡히고 사는 삶보다, 현재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의 축적이나 재물에 관심이 몰려있는 현대사회에서의 만족은, 자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때의 채집생활의 만족보다 훨씬 뒤떨어진다는 견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어찌보면 내일의 풍요는 곧 물직적 풍요 때문이 아닐까? 슬로우 푸드와 달팽이 교육 등의 확산도 이런 영향의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나의 삶은 행복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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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 대부분은 '멋진' 제목에 혹한 '직장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동안 주위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책에 대한 관심이었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이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을 들고 있었다면 지대한 관심 표명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정말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말 당장에 한 달에 한 번 지정된 날에 수입이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라는 의문과 나름의 안도감을 느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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