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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카를 타고 올란바토르까지 >등의 연작 단편 등, 총 8편이 각기 다른 사건의 꼬리를 물고, 도시를 배경으로 도시 질서에 적응 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보이고 있다. 현대 도시와 문명의 비판을 연속성 있는 작품 속에서 도시와 시간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이 안개 속을 헤쳐 나가듯이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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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이념/철학을 많이 담는 작가가 있다. 뭐 모든 작가가 어떤 형식으로든 그런식의 글쓰기를 한다고도 하겠지만, 화자의 입을 통해 또는 생각에 대한 나래이션을 통해 그같은 생각, 세상에 대한 현상에 대한 비평들을 직접적으로 쓰는 작가들이 있단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품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 같으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이와 같은 시도가 나름 자연스럽고 있어보이게 이루어졌던 것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박성원이란 작가의 글들을 처음 본 것 같은데, 일단은 본 작품집에 나온 첫 4작품들이 얽히고 섥힌 것에 주목하게 되었으나, 다른 작품들을 보다가 슬슬 '말이 많은 작가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딱히 어색하지 않았고. 나름 학적인 작가로군... 이란 생각과 또한 염세적인 사소설 분위기도 꽤 난다? 란 생각도 들었고. 내가 또 사소설 분위기를 별로 안좋아 하는데... 하다보니, 다시금 작가의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무게감을 가지고 느껴지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작품들의 결론이 다들 궁지에 몰린 인물들이 탈주를 꿈꾸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정리될때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이 못마땅함이 남았다. 뭐 무조건적인 활극이나 희망세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어쩌면 대체로 이야기 구조가 대체로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되고 버려지는 인물들이 답답한 상황에 시달리다가 무언가 도주를(탈주가 아닌)하려 하는데, 그러다가 만나는 인물들은 더 낙오되고 소외되고 버려진 인물들이며 그렇게 도달하는 상황은 더욱 난감한 궁지가 되는지... 이야기 구조만을 보면 정말 30세 미만 금지로 딱지를 붙여버리고 싶은 정도의 염세주의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풍자적 블랙유머도 꽤나 부족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현실인식의 날카로움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게, 나름 환상적인 기재들을 적절히 도입해서 읊어대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의 힘을 긍정하게 만들어주는 듯도 하다. 그래서, 이 작가는 이와 같은 세상에 대한 인식을, 유사한 구조가 되더라도 또 어떠한 식으로 변주하고 발전시키면서 작품을 써가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웬걸, 작품집은 이거 하나네? 아니 한두개 더 있군. 다만 최근 것이 별로인듯 한데... 하여간, 아직까지는이라 해야겠으나, 뭔가 문장에 힘을 더 주고 무게감을 더 갖춘 작품을 더 써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살짝된다. 그리고 덤으로 풍자와 탈주의 가능성도 덧붙여주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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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박성원이다
이전 작품집 "우리는 달려간다"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연작의 솜씨를 이번 작품집에서는 그 단편의 수를 더 늘려 보여주었다.
이전에 문예지에서 읽었을 때는 독립된 단편들인 줄 알았는데, 단편집으로 읽으니 그 연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비극 한 가운데서 실소를 짓게 하는 블랙유머는 예전에 소설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극히 냉소적이다. 그 냉소가 웃음과 비극을 자아내는 건 어떤 이유일까?
가요탑텐처럼 문학작품에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순위가 매겨진 소설들을 우리나라 독자들은 좋아한다. 작가와 작품이 알려지고 읽히는 것도 주체적이지 못하고 오직 가요탑텐같은 순위로만 사서 읽는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일들 때문에 나는 기분이 좋다. 진짜 좋은 작가와 작품을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
집에 있는 책이 만 권 가까이 되었지만 박성원의 작품집만은 내 서재에서 확고부동의 1위다.
언젠가 먼발치에서 작가의 강연회를 들었는데 모두들 작가의 유머에 웃었지만 나는 다분히 염세적이고 냉소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기분이 이번 작품집에 고스란이 스며 있는 것 같다.
책을 사더라도 평점 매기기조차 귀찮은 나지만 이 작가의 작품집만은 꼭 짧게라도 달고 싶다.
왜냐하면 문학적 평가와 문단의 평가에 비해 대중들에겐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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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었지만 이 질문에 대해 나만의 대답은 아직 찾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박성원이란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댈러웨이의 창’ 이란 작품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유명한 분이라는 것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알았다. 그렇게 나에겐 무척 낮선 박성원이란 작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는 아주 어둡고, 무섭고, 사막같이 바싹 말라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유목민의 삶, 몽골에서 바람처럼 시간을 초월한 삶을 꿈꾸지만 그저 울란바토르라는 이름의 허름한 북 카페를 차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야기의 아버지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 ‘뒤 돌아보면 발자국이 사라지는 유목민의 삶’ 그런 삶을 소망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삶의 스케줄에 늘 뒤쳐져 허덕이는 나에게도 유목민의 시간 밖의 삶은 무척 꿈같다. 아무런 흔적 없이 자신의 삶 그저 걸어갈 뿐인 유목민들... 하지만 나도 결코 그렇게 살지는 못 할 것이다. 유목민의 삶을 꿈꾸었을 뿐 진짜 유목민이 되지는 못했던 저 아버지처럼 그저 유목민의 삶을 소망하는 것으로 내 삶고 그냥 끝나게 되지 않을까 씁쓸한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은 무척 복잡한 심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문제들 때문에 책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책을 분명 다 읽긴 했으나 책을 볼 때마다 낯설다. 한 장도 안 읽은 새 책을 보는 것 같다. 꼭 다시 읽어야 할 책 쪽으로 분류를 해놓고 다시 읽고 난 뒤 다시 한번 독후감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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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이름은 현대인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도시는 개개인에게 언제나 낯설고 정감이 가지 않는 공간이다. 낯선 사람들, 낯선 사건들과의 조우.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좋은 곳. 작가는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그 속에 만연한 비행과 악행, 부도덕 등을 밝혀내기 시작한다.
<캠핑카를 타고 울란바토르까지>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사십년만의 폭우 속에 불어난 강물 때문에 발이 묶여서 강촌마을에 하는 수없이 머무르는 동안 의붓누나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두 사람은 삼만여권의 책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를 기억하며 감정을 공유한다. 비가 내리고 조용하게 아버지를 추억하던 분위기는 아버지가 일등복권에 당첨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후 괴기스럽게 급변한다. 두 사람은 빗속에서 아버지의 무덤을 파고 관을 뜯어내고 아버지의 일기장을 파낸다. 그리고 그에게 남는 것은 전선이 잘리고 전화선이 잘린 누나의 집 속에서 누나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다는 허탈함과 아버지의 배낭 그 뿐이다. 사랑과 행운이 급변하여 배반과 허탈함만 남는다. 책을 읽는 독자 또한 슬프고 기괴하고 꼬이고 또 꼬이는 이 이야기의 방식에서 배반과 허탈을 느낀다.
다른 두편의 이야기들 <논리에 대하여>, <아내이야기>는 각각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7편과 4편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지극히 평화로운 부부 사이에 서로를 향한 배반을 숨기고 있는 이야기이다. 남은 두편의 이야기 <몰서>와 <분열>도 엉뚱하고 과도한 감정의 격앙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속고 속이기, 한순간의 미묘한 실수 혹은 불운이 인생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과장된 결말이다.
다 읽고 나면 왠지 찜찜하다. 모르면 마음이 편할 것을 알아버려서 마음이 불안하다. 우리들이 외면하고 싶은 추악한 우리의 얼굴을 거울에서 봐버린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그의 스토리 속에 반복되는 주인공들이 이 도시 속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가 다음 편에서 불쑥 나타나 어떤 슬프거나 아프거나 불편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그것도 역시 불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