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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가 극에 달해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을 치룰 때, 미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사정상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서류와 미국에 잔류한 일본인들의 구술, 자료 등을 토대로 기술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그러함에 있어 한 발짝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는 것이 때론 실상 가장 적확한 파악을 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가령 히틀러의 나치가 창궐할 때 독일 내 다수가 휩쓸렸던 것과 달리,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들이 그것에 대해 더 정확한 파악을 한 것처럼. 혹은 파시즘 시대를 살지 않은 우리가 그 당시 사람보다 더 적확히 그것에 대해 파악하는 것처럼.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메이지 유신', '쇼군, 막부, 사무라이, 무의 숭상' 등을 통해 일본을 파악한 루스 베네딕트의 마지막 대목은 지금에 와서도 유효하다.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나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 사이에서 존경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평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만일 러시아와 미국이 앞으로 몇 년간 공격을 위한 군비 확충 속에 세월을 보낸다면, 일본은 그 군사 지식을 이용하여 그 전쟁에 참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실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일본이 본래 평화 국가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장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을 것이다.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할 것이다.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일 것이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저리게 체득했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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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나의 두꺼운 논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세계 2차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은, 일본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미국 인류학 교수가 일본에 대해 쓴 책이다. 일본에 대해 한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쓴 책이 아니라, 충, 효, 의리 등의 여러 개념들을 새로이 이 책에 맞게 정의하며 여러 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며 써내려갔다. 심지어는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과도 구별되는 일본만의 특징을 적어내려는 작가의 의지가 보였다. 이 책의 주된 서술방식은 비교였고, 특히 이 책을 읽으면 일본 문화 뿐만 아니라 절로 미국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주된 서술방식이 “~한 미국문화와 달리 일본 문화은 ~하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에게는 피해야 하는 행동양식인 자살이 일본인에게는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하나의 수단이다. 이 책에서 만난 일본은 자신과 가문과 국가의 명예를 중히 여겼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면 복수를 하거나 할복을 하여 자신의 순수함을 보이고자 했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지적을 받거나 그룹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엄격한 계층을 바탕으로 분수에 맞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잘 읽히지 않고, 생소한 용어들을 등장시켜 독서할 맛을 반감시켰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문화에 대한 저자의 지식에 대한 감탄보다 이 책을 써낸 작가의 노고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