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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세상에는 길이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있다. 길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우리에게도 길은 고속도로, 철도 등으로 생활을 변화시킨다. 고속철도는 우리나라를 반나절 생활권으로 연결하여 주었다. 길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오지의 험한 길에서부터 대도시의 자동차로 꽉 메운 도로까지 길은 사람을 연결해준다. 인간과 길 그리고 세상의 변화. 연결은 인간의 진보, 효율성과 지식의 산물이다. 도로는 다른 모든 기반시설들의 기반시설이다. 인간의 노력이 오가는 길이다. 내연기관과 석유 그리고 길로 이어지는 인간의 속도 있는 발전, 도로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커다란 공예품 중 하나다. 길을 주시하는 것은 역사를 들여다보는 인간의 진보와 한계를 측정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은 왜 길을 만들었고 길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를 6가지 길로 인간을 보여준다. 각각의 길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길이다. 만약 당신이 그 길 위에 서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욕망의 길, 페루. 인간의 욕망, 더 고급스럽고, 소규모만이 독점할 수 있는 고가품에 대한 인간의 선호는 무슨 이유에서일까? 마호가니(큰잎마호가니)로 만든 가구며 탁자는 소위 명품이라 불릴만하다. 점점 사라지는 마호가니, 미국에서 사용하는 이 나무는 도대체 어떤 길을 통해서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 ‘빈라덴은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자니까요.’ 주민의 말, 과연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부자와 빈자라는 2가지 그룹으로 나누어져 버렸다. 쿠스코의 엷은 공기 속에서, 잃어버린 문명의 장엄함이 그 후손들의 가난 옆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잉카의 도로(길)는 보행하는 사람과 라마(짐을 나르는)의 길이었다. 길은 인간이 남긴 가장 유용하고 거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탱크로리차가 폭발성 높은 버스라니, 이런 현실은 대중교통 수단의 부재와 경찰의 저임금과 과중한 업무 등의 문제 때문에 이런 종류의 거래는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실질적인 교통법이 되고 있다. 또 자연 속의 푸에르토 말도나도, 역설적으로 인간이 개입한 기념물과 관련된 곳은 콘크리트가 더 많이 사용됐다. 숲의 다양성과 인간의 급습과 채굴산업 등을 통해 그 다양성이 불가피하게 감소되는 현장도 보여주는 장소다. 인간의 탐욕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자연의 모든 것을 앗아가야 멈출 수 있는 일일까? 벌목꾼들의 침입과 그 도로의 악영향에 대비하고, 그런 영향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밖에 없다. 세계 생태다양성의 중심지는 축복 이거나 저주? 제 나라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는 동시에 자연도 보호해야 하는 나라들의 딜레마다. 이곳의 멸종 변화의 길, 잔스카르. 경제발전과 국가통합 그리고 국가안보에서 길은 우리 생활에서 아주 중요하다. 인도 오지인 이곳 잔스카르 사람은 지정부족으로 지정되어 있고, 아직 본 Bon교의 애니미즘적 믿음이 불교와 융합되어 남아있다. 이들에게 종교(라마교)가 친근하고, 가까운 것은 가족 중 아들 한 명을 승려로 보내는 것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길은 경제(상업)과 종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오지는 외부접근제약은 전통보존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이든 이들은 도로 때문에 신앙심이 약해질 것을 걱정하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기회는 과연 그들에게 기회가 될까 인도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도로공사 프로젝트는 뇌물수수와 부패 그리고 밀수의 원천으로 악명이 높다. 콧수염을 기른 군인이 매우 흔해, 콧수염이 인도 군대에 지원하는 남자들의 자격요건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험로인 이 도로의 유지작업, 제설작업, 유실 부위 보수작업이 잘 이루어질까! 미국인으로서의 짐꾼고용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나, 짐꾼 노역은 그들의 유일한 일거리이기에, 또 짐꾼을 고용한 여행객은 주민이 이해할 수 있는 신분을 얻게 된다는 것으로 서로 가까워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히말라야를 여행할 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가 되는지 깨달았다. 서구 문화의 등장은 완전히 다른 규모의 질서였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모른다. * 도로생태학, 도로를 건설하는 더 나은 방법과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하는 도로교통부서와 계획입안자들을 만드는 데 있다. 도로는 인간의 진보를 상징한다. 로드 킬은 동물판 홀로코스트다. 위험한 길, 케냐. 고속도로, 트럭, 조수, 갈취란 단어들, 운전기사는 고속도로 계급 체계의 최상부에 있고 턴보이(보조원)들은 밑바닥을 차지했다. 그들이 직면하는 모든 위험들 중 최악은 질병이다. 대형화물차 운전자들이 에이즈를 퍼뜨렸다는 오명 하지만 여기에다 말라리아, 당뇨, 고혈압 등과 충돌사고, 차량파손 등으로 이들은 위험에 처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질병에 관해 운명론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애써 무시된다. 무엇보다 도로여행에는 사건이 가득했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은 시간 개념이 없고 여긴다. 낡은 양식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고,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물질적인 양식들인 것 같았다. 도로는 예측불가능성을 수반하고, 이는 위험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자유를 뜻할 수도 있다. 도로로 본 경제의 진실, 도로한쪽만 패여 있음, 수입은 많고 수출은 적으며, 들어오는 것은 많고, 나가는 것은 적은 현실이다. 수송업계에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게 매우 어렵다. 그에게는 과학은 여러 가지 이론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 결정권이 별로 없었다. 우리가 창 밖으로 지나쳐 온 풍경은 목가적이었지만, 도시든 시골이든 범죄는 어느 곳에나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길은 너무 불공평해요 너무 가혹하죠. * 양날의 길, 도로의 군사적 중요성, 국가의 자긍심과 경제적 활력, 눈물의 길 미국 남부 주립주간 및 국방고속도로 체계, 현대적 전쟁의 기표 민간인 없는 민간인 도로이며 군대에 점령당한 경로 증오의 길, 팔레스타인. 적들의 진입로, 한낱 검문소가 어떻게 도로를 바꾸고 삶을 바꿀까? 검문소 줄은 즉석에서 공동체의식을 만들어 냈다. 검문소는 짜증을 부추기는 관료집단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길을 빙 돌아 값비싼 경로를 달려보니, 왜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차라리 검문소를 택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증오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양쪽 모두에게 나쁘다고 생각해요 같은 이스라엘인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다. 현실 군인들은 전쟁 속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복잡해요, 누가 옳은지, 누가 그런지도 모르겠고 또 우리가 하는 일이 매번 옳기만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매일 벌어지는 진짜 싸움은 영혼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 속도, 봉쇄된 길은 그 목적이 좌절된 길이다. 말, 수레와 마차, 이륜마차, 포장공법, 속도가 감성을 고조시키는 마약이다. 번영의 길, 중국. 우리가 떠나는 길은 스포츠가 아니라 자동차클럽여행이었다. 지금 중국에선 모든 게 변하고 있어요. 내 세대에 중국에서 사유자동차를 보게 될 거라고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과거의 실크로드와 현대의 고속도로, 국가통합이라는 거대한 이념으로 곳곳을 연결한다. 하지만, 과거의 중국이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았다. 점증하는 불평등이라는 공산당이 그토록 지우려 하는 부당한 차별이라는 비용 또한 발생했다. 번영의 길 뒤에는 새로운 문제들이 뒤를 따른다. 인류는 왜 이렇게도 어리석은 것인지, 앞서간 나라의 모순을 계속 되풀이 하고 있으니. * 네게는 운전면허가 곧 자유였다. 혼돈의 길, 라고스. 행동과 기회 그리고 미래가 도시에 있다. 극한성을 보여주는 ‘라고스’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 최대 도시, 범죄의 악명, 넘쳐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 나라에도 석유의 축복은 내렸으나, 평범한 도시민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석유생산국인 나이지리아 전력공사(NEPA, Never Expect Power Again)는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대 말라니. 이런 것이 라고스의 현실이다. 이 속의 아이러니한 응급구조시스템, 구급차 운영방식도 서양과 달랐다. 무엇보다 장비의 태부족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구역아이들(비행청소년과 폭력배)의 거침없는 행동과 범죄, 밤에 마음대로 돌아 다닐 수 없는 현실, 안전에 관한 한 햇빛은 라고스에서도 중요했다. 병원에 붙은 총기반입금지 스티커, 음주운전은 불법이 아니었다. 긴급호출 전화는 무료가 아니었다.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전화를 할까. 이곳에서 라스트마(경찰)를 두려워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다. 다 읽고서. 길 위에서 인간을 배운다. 길은 흐름이고, 시간이 허락한 거리이고, 길을 찾는 것은 선택과도 연관된다. 또 자기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길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현대 도시는 도로에 크게 의존한다. 도로가 막힌 도시는 과연 얼마나 버틸 것인가? 이제 길은 우리의 생활이고 목숨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판단했다. 저자의 길에 대한 여행은 목숨을 거는 모험이고, 대장정이었다.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또 여러 사람들과의 함께하는 길 위의 생활과 인터뷰로 그 나라의 사람들과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저자가 부럽다. 공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각, 우리에게는 이런 책이 있었으면 한다. 한창 팔팔할 때 인도 라닥에 간 적이 있었다. 마날리코스와 스리나가르 코스로 레로 가는 길은 좁고 고불고불하고 험한 아주 안 좋은 도로였다. 소위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길 같이보였다. 그 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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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책(코맥 매카시)과 그를 원작으로 한 영화(존 힐코트)가 떠오른다. 단지 제목이 같아서만은 아니다. 소설과 영화 ‘더 로드’에서는 문명의 흔적은 소수의 인간과 생활모습이고, 그래도 온전한 건 길 뿐이다. 테드 코노버의 길은 현재 세계의 흐름을 지니고 있는 길이자 저자가 실제로 발로 딛는 여행의 길이다. 저자가 책 중에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코맥 매카시의 길은 인간이 삶을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통로이다. 저자가 현재의 여러 길을 여행하면서 코맥과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도로 혹은 그 여행의 길이 긍정적이다거나 디스토피아적이다며 다르다기 보다는 그저 다른 관점의 길이라고 생각된다. 테드 코노버의 ‘로드’는 문제의식을 지닌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의 다큐멘터리이면서 때론 매우 드라마틱해서 여섯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 했다. 극적인 여행의 길에 올라 있는 테드 코노버와 그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현지의 ‘실제’ 사람들과 상황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곳을 간접경험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세계의 길이 인류를 올바르게 인도하고 있는지 혹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시행착오를 도돌이표 노래하듯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미래와 역사일 것이다. 책의 어디선가 여행의 동기를 말하면서 저자는 '누가 그 길을 원했을까? 그리고 누가 원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의 답을 찾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어느 지역만의 여행의 동기는 아니다. 저자가 어떤 길을 걷든 그 모든 길과 이 책의 전체내용이 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은 때로 순수한 인간편리 혹은 안전이동의 목적, 혹은 유통의 세속적 목적에서 시작되어 에이즈 혹은 불법 벌목의 마호가니의 운반과 같은 변질된 결과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케냐를 여행할 때는 저자가 무언가 정보를 획득하고자 한 여행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저자가 오바이다와 같은 현지인들에게 정보와 영향을 주는 여행으로 보인다. 이는 마호가니 벌목장에서 일하는 이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서구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그리고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수 있으나 저자가 여행의 곳곳에서 주목을 끌었고 그의 가치관이 어느정도 전달되거나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특히 나는 두번째 챕터인 잔스카르의 '변화의 길'편에서 세계적으로 균일화되어 가는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다르의 얼음길을 걸어 나오는 아이들의 여행은 고향을 떠나는 길이다. 그들의 목적은 무언가 현대적이고 세계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직업인이 되는 것이고 그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런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에 따라 길을 따라 도시로 이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회로 생각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들이 자본주의의 희생자로 빈곤한 삶을 살고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언제나 아이들이 똑같은 길을 떠나게 두는 것에 대해 말이다. 저자도 언급했던(하지만 저자의 의견과는 표현의 차이가 있는)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라다크 이야기는 어떠한가.(저자와는 다른 어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지 나는 저자가 말하는 호지의 의견이 조금 극단적으로 해석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생각을 딱히 라다크의 도로건설에 긍정적이니 부정적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호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는 있고 공감은 하나 그의 여행과 이 글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테드 코노버는 묵묵히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그대로 제시하고 많은 독자들이 그것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데 비해 호지의 의견은 단호하고 대안제시적인 편이다.) 현지인이 원하는 도로공사란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노르베르 호지의 말대로, 라다크의 사람들처럼 그들이 현재 알고 있는 만큼의 정보만 있다면 그들은 현재 진정 원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 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유입 또한 편리해져서 -‘레’ 지역만은 못하겠지만- 지금처럼 통역과 가이드, 짐꾼 등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두에서 제시된 조니 미첼의 표현을 인용한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까지 천국을 포장하고 주차장을 세울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잊어서는 안된다.(호지의 의견대로 말하자면 현지의 젊은이들이 이 –상대적으로- 부자인 여행자들에 대한 박탈감과 자본으로 인한 생활수준의 상승을 욕망하게 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다) 만약 현지인들이 그들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가치와 걷기 어려운 그 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정책적으로 탐험과 체험 상품으로서 현지인들의 빈곤을 개선할 시스템을 보완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의 자존감을 북돋아주기위한 인식전환 작업에서 정책적 사업까지가 이어진다면 조금 다르지만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통중심의 현대자본주의의 시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리고 그 경제효과가 적다 하더라도 도로를 놓고 빌딩을 올리는 전세계적으로 균일화하는 작업보다 소수들의 삶의 모습을 경제적 가치(미국과 한국과 같은 국가의 도시 기준으로 보는 잣대의 가치를 의미한다)로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면... 세계화, 균일적 도시화를 위한 도로공사를 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서로의 문화교환을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자연을 밀어버리고 '물이 들어가지 않는' 도로를 놓는 하루생활권 세계를 경험하는 도시인이야말로 그들의 자연과 모험과 탐험일 수 있는 포장되지 않은 길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이 어려운 라다크의 길을 찾는 것일테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 현지인들의 인식전환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최근의 공정여행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일종의 1차적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들의 문화와 거친 자연을 지니는 것이 더 득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처음에는 지금의 자본중심적 인식으로도 효율적이므로 1차적으로는 현지경제와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차후에는 이들의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 수입으로서의 화폐는 후세대의 도시진출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해도 지금의 귀농증가 현상과 맞물려 생각해본다면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시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자꾸 뒤돌아보고 있다. 이 회한의 대상은 세계의 내적, 외적인 양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마치 황금만능주의처럼 1일 생활권 내지는 1일 유통권을 형성하기 위한 수많은 길이 생겼고 물길, 하늘길과 또 다르게 흙에 아스팔트를 입히는 작업이 쉼이 없다. 외적으로 보면 이렇게 똑같이 생긴 도로가 전 세계에 놓여진다. 지구는 점점 땅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는 갑옷을 입어가고 있다. 내적으로는 이러한 외형이 모두 자본위주의 세계화 추구에서 비롯된 재화중심적 사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변화해버린 것일까. 이 길이 옳지 않다면(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라면) 우리는 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 대안을 찾는 시도는 이미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창조적 파괴도 필요하겠지만 현재 각자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필요한 정책을 찾아가는 것, 내가 차다르의 얼음길에서 주민의 인식전환 과정과 함께 공정여행으로서의 체험과 탐험, 혹은 교육상품 등의 개발을 떠올린 것처럼 그들만의 대안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먹힌 대안들이 모든 나라의 경제적 상황에서 해결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같은 직업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같은 양의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서운 속도로 현대화되는 중국편에서는 현대문명 혹은 자본가와 자본의 부족 혹은 정보의 부족함으로 그 현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비자본가들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도로를 이용하는 빈도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며 그들이 멀지 않은 공간 내에서도 과거와 현재처럼 시간차와 속도차가 큰 양측의 공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라오스의 경우처럼 이럴 경우 정책 또한 새로 생기는 도로 혹은 그것을 통과하는 시민의 이동 속도 만큼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라오스에선 여전히 음주운전이 불법이 아니고 사고자만 태울 수 있는 소수의 구급차만이 운전으로 인한 사고들의 거의 유일한 대책일 뿐이다. 급작스러운 도시화가 정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도로 정체와 사고, 사람과 차가 함께 정체되어 있는 모습의 도로들이 연출된다. 도로는 현대문명의 대표문물이었고 지금도 정책만 있고 감시는 없는 전시행정용 단골테마이다. 사람과 자동차의 길이 그렇고 동물이 지날 수 없는 동물이동용 통로길이 그렇다. 그저 산에 흉물스럽게 콘크리트를 걸쳐놓고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그 길에 대해서는 종종 뉴스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정책당사자와 전문가의 긴밀한 결합과 감시가 없는 까닭이다. 그나마 정책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담당 공무원이 아닌 이상 시민은 무력할 뿐일까... 길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시적으로 표현하던 때가 있었다. 빠른 이동의 통로로서의 도로가 아닌 인생의 길, 선택의 길과 같은 은유적 표현이 아직 모든 길을 보는 이들의 시선에 남아 있길 바란다. 우리는 멈춰 있을 수 없고 끊임 없이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로 소통할 것이다. 길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과 그 길을 걷는 우리가 모두 이타심과 양심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을 이루어 가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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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모험-여행-관광'이라는 스펙트럼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는 왼쪽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비교적 제약 없이 스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백인 남성에게도 위험은 도처에 산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성에 비한다면 비교적 제약과 두려움 없이 모험하는 저자가 부러웠다.
이 책은 빈부를 가르는 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담은 책이다. 마치 여섯 편의 여행 다큐를 보는 느낌이 들만큼 생생한 묘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길'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직접 보고 들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인위적인 길들'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난쏘공'의 세번째 책을 접하면서 난쏘공 서적 읽기의 어려운 점難은 이해의 어려움에 있다기 보다는 일정량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완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나 생각해보았다. 지명이나 길을 둘러싼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생소하고 분량이 꽤 되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읽어야 했는데, 읽는 과정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었고 뒤로 갈수록 농담을 깔고 들어가는 저자의 문체에 적응이 되어 문장 문장을 웃으면서 읽게 되었다.
유용하고 편리한 길의 의미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담고 있는 인간의 욕심과 갈등 때문이다. 그래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쪽 사람들을 만나고자 노력한 저자가 본 세상은, 길에 의해 부자와 가난한자로 나뉜다. 책 뒷표지에 정리된 내용은 책을 더없이 잘 요약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이러한 통찰을 내리기까지 저자가 겪은 생생한 경험들을 직접 읽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의 길: 원시림에서 파크애비뉴까지'는 마호가니를 둘러싸고 파크애비뉴의 미국 부자들과 페루 사람들을 연결하는 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변화의 길: 얼음 위를 걷는 잔스카르 사람들, 접촉의 길로'는 길이 불편해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잔스카르 사람들이 혹한과 위험한 얼음길을 극복하며 외부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위험한 길: 에이즈를 싣고 케냐를 질주하다'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많은 물건들과 함께 에이즈도 같이 전파해왔다는, 당사자들은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증오의 길: 적들의 진입로,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을 읽고 나면 "분노하라" 책의 저자가 왜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분노하고 있는지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번영의 길: 중국의 자본주의를 태우다'에서는 시장개방 이후 이름만 사회주의이지 자본주의보다 더 무서운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고속도로 자동차 여행을 다루고 있다. '혼돈의 길: 거대한 빈민촌의 띠, 라고스를 바라보며'에서는 도로에 상주하며 도로에서 밥벌이를 하는 소년들과 경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중국을 다룬 '번영의 길'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 쪽 이야기라 심정적으로 공감이 잘 되었을까. 일단 저자와 룸메이트였던 주 지홍의 캐릭터와 그에 대해 서술하는 저자의 문체가 너무 웃겼다. 중국에서 지낼 때 보아왔던 중국인 아저씨들 딱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1997-1998년까지 1년 정도 중국에 살았었는데, 어린 내가 보아도 이미 빈부격차는 심해보였고 불과 1년 만에 중국은 엄청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은 더욱 많이 변했을 것이다. 도로가 닦이고 그 도로에서 말과 수레와 자전거를 몰아내고 그 많은 인구가 너도나도 개인 자동차를 갖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넓은 땅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취미를 갖는 일을 발전이나 번영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그들 덕분에 기름값이 치솟고 대기가 오염되는 상황에서, 이미 오래 전에 그러한 문제에 대한 원인 제공을 했던 '선진국'들은 중국을 규탄하고 비난하곤 한다. 복잡한 문제이다.
리뷰를 쓰기 위해 "로드"를 검색하다가 너무 많은 결과물이 나와 깜짝 놀랐다. 너무 흔한 제목은 오히려 책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원제는 "The Routes of Man"인데 책 표지와 책등에는 "The Road"라는 영어 제목이 붙어 있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어서 같은 책인지 여러 번 확인해보았다. 책 내용이 참 좋은데 그 내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좀 더 좋은 제목은 없었을까 싶어서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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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물은 두 발로 걷기도 하고 날개짓을 하고 나아가 정중동(靜中動) 가운데 먹고 살기 위한 기초 생존 전략부터 국가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개체임에 틀림없다.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인생의 길이 만큼 지나온 길도 여러 갈래를 지나왔다.그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단순한 생계의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생산,유통,소비를 위하기도 하며 국가간 전쟁 승리를 위한 첩경이 될 수도 있으며 발전과 모험을 위해 길과 도로는 서로 교차하기도 하며 미로와 궁지로 내몰리는 사각지대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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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단어만큼이나 은유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태초에 길이란 것은 없었을 것이다. 태초, 자연이라는 것에는 물론 동물들이 다니는 길이 있고 물이 다니는 길이 있었을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길'은 분명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정말로 '길'이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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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양날검과 같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품었다. 좋게 보면 좋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길>은 좋게 본다고 좋은 것만 오고 가지 않으며, 나쁘게 본다고 나쁜 것만 가고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범한 양날검과는 분명히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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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길이 인간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접하게 된다. 길을 따라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때론 승리와 영광의 길이기도 하고, 때론 좌절을 맛보기도 하며 생존과 자신의 이윤을 위한 숫한 싸움의 승패를 함께 한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섯 개의 서로 다른 도로를 통해 길의 힘과 도로가 말하는 길의 사회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의 길과 도로는 이동하고 연결을 맺으려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제적인 성장하는 라고스와 나이지리아의 고속도로위를 달리며 그곳을 지나다니는 화물차들이 도로위에 떨어드린 물품들로 생활하는 구역아이들과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제적인 도시로 혼돈의 도시를 살펴보며 길이 갖는 양면을 들여다본다. 발전과 번영으로 치닫는 진보의 길 한 쪽 끝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막힘없이 뚫린 도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을 이끌지만 한편으론 세상을 구속하고 자연을 훼손시키는 장벽이자 또 다른 침범자일 뿐, 길은 사람들의 삶마저 변형시킨다. 더 이상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지만 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면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역사와 함께 진화해 온 길에 어떤 변화와 만남이 우리를 기다릴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고루 길의 혜택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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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단어는 얼마나 매혹적인 단어인가. 비단 어느 한곳에서 다른 곳을 연결하는, 물리적인 길만 보더라도 그 길을 통하여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많은 것을 나눌 수 있고 인류를 그것을 통하여 문화라는 것을 만들었고 사회라는 것을 건설할 수 있었으며 결국 문명을 이룩했다.
그런 의미 이외에도 '길'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함, 즉 커뮤니케이션을 뜻할 수도 있으니 사회적 동물, 혹은 교감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상정한다면 인간을 정의함에 있어 길이란 필수적인 것이라 하겠다.
또한 한자의 '道'를 떠올려 본다면 길이란 그 위를 가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인간으로서 가야할 규범, 이치 등을 동양에서는 상정하며 따라서 어떤 진리와 가까운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복잡한 이런저런 것을 다 떠나서 그저 길이란 단어가 주는 그 여행, 떠남 등의 이미지와 어우러진 낭만.. 혹은 고달픔 등등을 생각해 봐도 좋겠다.
이렇듯 다층적 의미를 가진 길을 해석해 보고 공부한다는 것은 실로 그 의미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역사적, 문학적, 물질적, 종교적, 철학적.. 등등 어떤 방법도 그 접근 방식으로 손색이 없다. 저자인 테드는 그 중 하나의 방법, 즉 그 길 위를 직접 다녀보는 방법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여섯 개의 길은 각각 현재 지구의 다양한 곳에서 인간이 무리지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한 어떠한 사회 현상과 묶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길 위를 직접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해 보는 본격 로드 스터디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현대 인류의 사회 양상 중에서 여섯 가지를 꼽아낸다. 욕망, 변화, 위험, 증오, 번영, 혼돈. 각각의 양상을 드러내는 길을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거쳐보는 여정의 소개로 이 책은 진행된다.
욕망의 길은 사치품인 마호가니의 불법 벌채와 이동의 길인 페루. 변화의 길은 오지 마을의 길인 인도의 잔스카르. 위험의 길은 에이즈의 발상과 전이의 길인 케냐. 증오의 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웨스트뱅크. 번영의 길은 한창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고속도로. 혼돈의 길은 질서가 없어 보이는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어떤 해석을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통해 설득하려 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저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로서 그 길을 따라, 그 길 위에 있는 이들과 여행하고 그 여정을 서술한다. 그럼으로써 그가 달아놓은 저 양상들을 독자들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저 길들은 아마도 가장 다난한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 한 사람사람의 인생이 모두 사연이 있고 가치 있듯히 그 삶이 만나 어우러지는 어떤 길이라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읽어볼 만 하리라. 하지만 저 길들은 아주 극적인 길들 임에는 틀림없다. 일상적인 현대인이 매일 마주하는 아침 저녁의 길의 일반적 양상과는 매우 다르므로. 물론 그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겠지만..
저 길들을 보고 느끼며, 나의 출퇴근 길. 나의 일상. 그리고 내 도리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고 내가 살아갈 길은 어떤 것인지..
저 길들의 모습이 매우 힘들어 보임에도, 그리고 증오와 혼돈, 욕망 등의 부정적인 모습이 현대인의 힘든 삶 만큼 많이 드러남에도, 저자는 결코 절망을 보고 있지는 않다. 나의 길 또한 절망 보다 희망으로.. 닦아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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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몸에 비유한다면, 길은 혈관에 해당한다. 길이 나는 방법은 자연적인 방법과 인위적인 방법 두 가지다. 하나는 오랜 세월동안 거쳐간 이들의 흔적이 새긴 길이고, 다른 하나는 단시간내에 토건기계로 만들어낸 도로다. 자연적인 길이든 인위적인 길이든 모두 세계의 몸과 구조를 개조하고 변화시킨다. 우리는 누구나 길 위에 머무르는 나그네 신세인데 세계를 알아가는 방법도 역시 길을 따라 나서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싶다.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저자가 우리에게 안내한 길들은 한평생 가볼 일 없는 길이고 아름답고 설레인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과 꺼리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머나먼 길이다. 논픽션 작가 테드 코노버(Ted Conover)는 길은 번영과 쇠퇴를 부르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길은 국가적 자긍심과 경제적 활력의 표현인 동시에, 침략자가 밀어닥치는 관문이 되어 부와 권력의 중심지로의 약탈을 허용한다. 저자가 안내하는 여섯 가지 길은 욕망, 변화, 위험, 증오, 번영, 혼돈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여기에는 말과 수레, 뗏목이 오고가는 자연적인 길과 자동차와 화물차가 질주하는 인위적인 길 모두를 포함하고 있고 여러 길들이 전해주는 사연에는 나름의 테마가 있다. 예컨대 욕망의 길은 개발 대 환경, 변화의 길은 고립 대 진보, 위험의 길은 군사 점령, 증오는 질병의 전파, 번영은 사회적 변화를 각각 이야기의 테마로 삼는다. 저자의 글에서 뉴저널리즘과 탐사문학의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저자의 글에서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자정신과 생생한 현장감과 인간적인 감성을 더하는 소설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라고스의 제재소 지대인 에부트메타를 소재로 현실 속의 디스토피아 풍경을 그리는 문체가 일품이다.
"에부트메타는 다리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마치 야심 찬 디스토피아 영화의 무대처럼 보였다. 검게 그을린 톱밥의 산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나무 제재소와 녹슨 물결 모양의 지붕을 얹은 판잣집들을 자욱하게 감싸며 다리 위를 부유했다. 모든 시야를 누런 갈색의 세피아 톤 사진처럼 덮어, 마치 19세기 초반의 영국 맨체스터가 열대 빈민촌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불꽃도 튀어 올랐는데, 연기 속에서 그 발원지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저 검게 변한 선창의 목재들과 전면이 그을음으로 가득한 시장 건물이나 창고들 사이 어디에선가 번쩍이는 불빛이 보일 뿐이다. 연기가 오르는 톱밥을 보고 있자니, 이곳 땅이 마치 지구 표면으로 올라온 지옥처럼 쉽게 불타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수로들은 석호에서 지역 안으로 흘러 들어오거나 흘러나갔고, 아마 그것이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은 흙과 물과 불이 나란히 존재했다. 점점 줄어드는 나이지리아의 숲에서 벌채된 통나무들은 뗏목처럼 다리 밑으로 떠내려 와 선창 주변에서 줄지어 각자의 운명을 기다렸다. 자연의 종말을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그려내면서 말이다. "(468-9쪽)
저자의 여정에는 일군의 동행자가 있다. 세바스티안, 에드가르도와 브라울리오(페루의 화물차 운전기사), 셉 만켈로(잔스카르 가이드)와 도르제이 걀포(통역자), 오바디아(케냐의 장거리 화물차 운전기사), 오메르(이스라엘 방위군), 압둘 라티프(팔레스타인 통근자)와 사메(팔레스타인 청년), 주 지홍(베이징 타깃 자동차클럽 회원)과 리 루(통역자), 플로렌스 바다와 라시다트 라왈(라고스 구급차 승차원), 아요바미 오미얄레(라고스 주 연방도로안전위원회 위원장) 등이 그러하다. 이들의 도움과 동행이 없었다면 저자의 이야기는 아마 다른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이들 가운데는 저자가 11년이 넘도록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한 이들도 있다. 뉴저널리즘의 아버지 톰 울프는 가족관계, 소득수준, 종교, 말투, 음식 취향 등이 총체적으로 한 인간을 구성하기에 인물 취재를 할 때는 반드시 리얼한 삶의 조건을 함께 취재하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이런 원칙에 충실했다. 단순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인용보도가 아니라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대화와 수사학을 동원하여 생생한 현장의 눈으로 주제를 심도있게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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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가에서 지배자가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길을 닦는 것이었다. 물자의 빠른 운반과 신속한 군대 이동을 위해서는 길의 정비가 최우선이었다. 길의 정비를 통해 국가발전을 이루었다. 길은 사방팔방으로 연결이 되면서 인간을 이어주었고, 인간은 그 길을 통해 문화를 발달시켰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길을 넓히고 길을 닦는다. 이처럼 길은 사람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길은 사전적(辭典的)으로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 교통수단이 다니기 위한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한때는 전 세계를 연결하며 찬란한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연결되었던 길이 언제 그런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수풀이 우거진 길로 변하기도 하고, 다가가기 힘든 험준한 길이 인간의 손에 의해 세상과 세상을 소통하는 길로 거듭나며 눈부신 발전을 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성쇠가 있듯이 길도 당시 상황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길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흔적이 녹아 있는 길도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 골목길에서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쏟아나기도 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전달해주고 있다. 길에서 세상과 조우하기도 하고, 인류의 역사와 만나기도 한다. 이 책은 길을 통해 인간을, 그리고 세상을 만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은이 테드 코노버는 길의 의미를 ‘욕망의 길’, ‘변화의 길’, ‘위험한 길’, ‘증오의 길’, ‘번영의 길’, ‘혼돈의 길’ 이라는 6개의 주제로 나누어, 인간이 왜 길을 만들었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그리고 길에서 인간을 배우게 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지은이 자신이 직접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써내려간 글은 때로는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하고 슬프기도 하다. 마호가니를 둘러싸고 파그 애비뉴의 미국 부자들과 페루 사람들을 연결하는 길, 혹한과 위험한 얼음길을 극복하며 외부로 나가기 위해 잔스카르 사람들이 걷는 접촉의 길, 화물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들이 물건과 함께 에이즈도 같이 전파한 케냐의 길, 오랜 동안 반목과 전쟁으로 얼룩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길, 일본을 제치고 미국마저 위협하는 경제대국 중국이 보여주는 빈부격차의 길, 거대한 빈민촌의 띠를 보여주는 라고스의 길. 지은이가 직접 체험한 여섯 개의 길은 각각 다른 의미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은이가 걸었던 길은 누구에게는 번영과 풍요를 안겨주는 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빈곤과 질병을 안겨다 주는 길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길을 마주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단순히 풍경의 의미로서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우리가 지나치는 길에서 자본주의가 진보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감추고 있는 위선과 죄악을 보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장르 중 ‘로드 무비’ 라는 장르가 있다. 길 위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치 흑백의 로드 무비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무채색의 사람들이 무미건조하게 길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내마음도 무겁게 내려 앉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절망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친 모습도 보지만 때로는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람 냄새 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지은이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책상 앞에서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현학적인 말만 꾸며대는 어슬픈 학자들의 글이 아니다. 지은이가 실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살아서 다가오는 멋진 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