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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지 독자와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책의 제목과 꾸밈이다. 소위 ‘책 제목이 얼마나 근사한지’, ‘책 디자인이 깔끔한지’ 등은 책을 접하는 독자의 첫인상을 좌우하고 따라서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별개로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우선 이 책은 나를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전해주리라 생각한다. 《암살이라는 스캔들》이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을 지녔다.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이 선명한 가운데 옛 일본신문 기사들이 혼재되어 있는 표지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취향일지 모르겠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일본 신문을 중심으로 미디어 이야기(서사)의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미디어 서사의 양의성(兩意性)과 정형(定型), 양의성이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혹은 비틀리는) 방식과 비유 등이 저자의 분석 대상이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미디어 이야기의 정형화된 구조이다. 당시 미디어에서 질병, 여자, 식민지 등은 약한 존재 또는 뭔가 결함이 있는 것을 상징했다. 이는 남성 젠더로 상징되는 근대국가 일본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멸시 내지는 반대로 일본의 보호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2부는 그러한 비유 구조가 암살 사건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지를 분석했다. 조선 민비의 암살과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대한제국 병합, 메이지천황의 병사 등이 주요 분석대상이다. 이런 사건을 당시 미디어가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야기 속에 담긴 미디어의 욕망을 들추었다. 책은 당시의 다양한 기사를 제시해 아이누민족이 어떻게 표상되었는지, 마찬가지로 조선의 민비를 어떻게 표상했고 그 구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재현되고 혹은 사라지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근대국가 일본과 일본이 보호해야 할 식민지 조선이 어떤 관계로 비유되고 그러한 구조가 영친왕이나 안중근에 관한 기사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또한 설명한다. 대단원은 천황의 병사이다. 저자는 천황의 투병 경과에 대한 언론의 상세한 묘사가 천황을 기존의 성역에서 끌어내렸다고 본다. 나아가 이는 완전무결한 가족의 서사나 식민지 서사에도 상처를 주는 것이었다. 천황이 암살당하는 것이 오히려 미디어를 기쁘게 했을지 모른다는 본문 마지막 문장은 미디어의 양의성에 대한 책 전체의 논증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비단 미디어 분석에 관심이 많은 독자뿐만 아니라 아이누민족의 흡수로 대변되는 근대 일본민족 및 일본 국가의 형성과정 또는 같은 시기 조선(대한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도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양자를 상호보완적으로 내지는 어느 정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 채 읽고자 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즉 미디어 비평의 관점에서는 역사를,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미디어 비평의 분석 방법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익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메이지시대 일본이 조선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이 막 문호를 개방하고 비로소 근대문물을 조금씩 수용하는 와중에 청, 일본, 러시아 등 세력 다툼으로 자립에 어려움을 겪던 상황이었던데 반해 일본은 국내 상황을 이미 정비하고 조선에 진출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했다. 책에 실린 김옥균과 민비 등 조선왕실 내부사정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면 일본이 조선 사정에 얼마나 밝았는지 또 이미 상당히 개입을 하고 있었음에도 겉으로는 일본의 의도를 철저히 감추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당시 조선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제국일본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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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후기에서 옮긴이 중 한 명인 고영란은 분명하게 쓰고 있다. “『암살이라는 스캔들』은 역사서가 아니다.” 그렇다. 분명 역사서는 아니다. 미디어가 가지는 폭력적 속성과 서사적 욕망을 역사를 통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 메이지 시대, 조선 말기를 다루는 당시의 미디어를 분석하고 있을 뿐, 그렇게 분석하고 있는 당시의 역사에 대해 그럴듯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 그 미디어가 다루는 역사적 사실이 진짜 사실인지, 아니면 그릇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방식이다. 이 책에서 ‘암살’이라는 것은 우리가 ‘을미사변’이라고도 하고,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고도 하는, (이 책에서는) ‘민비암살사건’을 일컫는다. (‘일러두기’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민비’라는 호칭은 일본에서 흔하게 쓰이는 공식적인 호칭이므로 별로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그 사건이 어떤 전개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별로 쓰지를 않는다. 물론 일본인이 못할 짓을 했다고 하는 저변의 의식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것을 강조하기는 않는다. 대신 그것을 다루고 있는 당시의 신문 등 미디어의 언어에 깔린 의식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다. 그 의식이라는 것은, 바로 ‘여성’(혹은 ‘여성성’, ‘여성 젠더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 “식민지를 여성 젠더화하는 문법” (192쪽) - “민비를 둘러싼 서사는 조선의 멸망을 갈망하는 심리를 수반하고 있었다.” (203쪽) 그래서 사실은 ‘암살’은 역사적으로는 사건이지만, 여기서는 미디어가 다루고 있는 상황이며, 『암살이라는 스캔들』는 다시 그 미디어를 다루고 있으므로 ‘암살’은 두 단계를 건너야만 다다를 수 있는 사건이다. 그것은 이 사건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훗카이도를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그 지역 원주민인 아이누족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이고, 메지지 시대 말기의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에 대한 미디어의 서사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 사건들이 아니라, 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당시의 미디어의 편향된 시각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서’로 읽었다. 비록 저자는 미디어가 다루고 있는 사건으로서 민비 암살과 안중근 의거, 황태자의 일본 유학 등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엄연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서로 흥미로운 것은 (생각해보니) 그 시기, 저가는 조선의 운명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서 별로 의식하지 않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인식 부족은 어쩌면 고립된 역사 인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비로소 해보았다. 그냥 우리 나름대로 비분강개해서 열을 올리는 것도 애국적이지만, 어쩌면 너무 자기만족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것 말이다. 그 당시 ‘민비 암살 사건’은 일본에서도 지면을 가득 채웠던 떠들썩했던 사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란다. “무엇보다 불가사의했던 것은, 아이누나 민비 같은 글자가 당시 미디어 속에서 그렇게 생생한 존재감을 갖고 활자화되었음에도, 현재는 그것이 까맣게 망각되어버렸다는 점이다.” (371쪽) 그저 이야기라는 시스템 속에서 정형화되었던 사건이었을 뿐임으로 그렇게 쉽게 잊혀질 수 있었다는 시각이다. 일본인들이 그들의 치부를 애써 잊는 것이야 당연한 일인 듯하지만, 그 망각이 무엇으로 이어지는지는 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너무 확연하다. 그래서 역사를 알아야 한다. *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혼동해서 쓰고 있는 점이다. 당시는 ‘바이러스’의 존재는 알지도 못했던 때인데도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다루는 병의 원인체도 ‘바이러스’가 아니다 ‘세균’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잘 아는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서술이다.) (2013.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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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해마다 한 두 편 정도의 뮤지컬을 즐겨 보는 편이다. 노트르담의 파리,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삼총사 등등 주로 대작들을 즐겨 보았다. 그런데 내가 본 작품들은 대부분 원작이 외국의 작품들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뮤지컬 작품 가운데서도 세계적으로 꽤나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있다. 바로 명성황후이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은 보지 못했다. 명성황후... 그녀는 누군인가? 그리고 왜 일본자객들의 의해 죽음을 맞게 된 것일까? 몇 해 전 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를 종종 보면서 명성황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녀가 비운의 국모였음을 알게 되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대립, 그리고 외척정치, 일본자객들에 의한 암살... 우여곡절, 파란만장 이 두 단어로 그녀의 삶을 어느정도 표현할 수 있을까? 암살 부분은 소프라노 소수미가 불러서 큰 인기를 모았던 ‘나 가거든’의 뮤직비디오에 잘 묘사가 되어 있어서 당시에 대단히 큰 인기를 모았다. 허준호가 일본 자객단의 우두머리, 정준호가 민비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호위무사의 역의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나이토 치즈코의 <암살이라는 스캔들> 이 책에 대한 관심도 오롯이 명성황후 때문에 비롯되었다. 조선의 국모를 암살했던 일본 언론과 매체... 그들은 과연 명성황후를 어떻게 보았고, 어떻게 묘사했을까? 일본은 민비를 비롯한 민씨 일족을 국가 인민의 쇠망의 원인이라고 했고, 민비를 증오와 질투심의 화신, 야만이라는 거친 표현들을 써가며 그녀를 악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나아가 일본 신문은 ‘이씨조선이 아닌 민씨조선’이란 표현을 썼고, ‘보통여자가 아니다.’, ‘반도 전체를 수중에 넣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인, 등으로 민씨를 묘사했다. 이 기사에 대해 일본의 국민들은 과연 얼마나 신뢰를 했을까? 또 하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던 조선인 안중근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했던 안중근과 민비를 암살했던 일본 자객단들... 한 나라의 왕비를 암살한 자객단, 일본의 고위관료를 죽인 안중근... 그 둘 사이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도쿄 아사히 신문은 이토를 '한국을 위한, 한인에게 가장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안중근 다만 흉한(兇漢), 테러리스트라 했다. 그런데 안중근은 이토 암살의 첫 번째 이유로 '왕비(민비)의 살해'를 들고 나왔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목의 끌림은 분명, 최근의 그 어떤 책들보다도 굉장히 강렬했다. 그리고 이 흥미와 관심은 목차에서도 그대로 노출이 되며, 지속적인 호기심과 궁금증을 야기시켰다. 병(病)과 피, 세균, 황후, 창기, 자궁, 식민지, 아이누, 민비, 사체, 김옥균, 이토 이로부미, 안중근, 암살 이라는 낱말들이 만들어낼 흥미로운 이야기꺼리들... 난 이 책의 거리감과 이질감을 떨쳐내기 위해, 훌쩍 건너 뛰어 익숙한 이야기를 다룬 2부부터 읽었다. 책의 제목은 이 책의 2부의 제목이 같다. 결국 이 책의 1부 이야기는 2부의 이야기를 꺼집어 내기 위한 도입, 발판이었다.
하지만, 읽어야지, 읽어야쥐!! 하면서도 연말, 연초의 바쁨을 핑계로 잔뜩 미루어 두었었다. 사실, 책은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수시로 틈틈이 책을 펼쳤지만, 도무지 책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논문 형식의 글이라서 그런지 낯설고 생소한 용어와 언뜻 글이 머리 속에서 그림으로 잘 그려지지 않아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자꾸만 더뎌졌다. 이 책은 사색과 정독을 요하는 책이다. 일반 소설처럼 쉽사리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이 아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문장을 꼽씹으며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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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면서도 ‘평범한’ 문제의식 덕에 책 참 잘 읽었다. 뭐랄까, 스스로 학문적 오리엔탈리즘을 경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연구 성과를 읽다보면 방법론의 측면에서 나도 모르게 ‘와, 와’ 거리게 될 때가 있다. 예전에 어느 선생님에게 일본이 지닌 “제국의 경험”과 학문의 스탠스가 어떤 영향을 지니고 있는지, 여담 식으로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때는 흘려들었지만, 사실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소재의 유연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國史’라는 틀 안에서 ‘오~’하는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그렇다고 ‘帝國史’가 그것을 담보해 준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도 나오다시피 일본의 식민주의가 만들어 낸, 모순덩어리인 경계선은 자유롭기는커녕 소름끼칠 정도로 강력한 규정을 만들어낸다). 어쨌든 저자의 향후 작업이 너무 기대된다(이미 나와 있는지 찾아 봐야겠다). 이 책은 1912년(메이지)에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1912년 이후 일본 속의 이야기 구조는 무엇을 스캔들로 만들며, 무엇을 암살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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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언론들은 '명품'을 쫓는 '된장녀'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커피전문점에서 돈을 쓰는 그녀들을 놓고 입방아를 찧는다. 하지만 자동차, 카메라, IT기기, 오디오 등을 선호하는 남성들을 '된장남'이라고 지칭하고 그네들의 빈약한 놀이문화를 조롱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다. 남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 언어는 이미 남성의 언어이다. 따라서 쌍방 혹은 다수 관계에 대한 해석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은 권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여성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그러한 서사구조의 이상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남성 권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문명을 이룩하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한 욕망들은 미디어에 의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표출되는데, 저자는 병과 피, 여성과 식민지, 암살이라는 키워드로 당시 신문들을 독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일본판 신문읽기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젠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신문읽기혁명보다는 각 방송사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중 '여성민우회의 방송다시보기' 코너와 꽤 흡사하다고 하겠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지적했던 젠더에 관한 진부한 인식들은 그대로 당시 신문들에서 재현된다. 생리하는 존재, 히스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 여성들은 건강한 남성과 대비된다. 이 시선을 밖으로 향하면 문명국인 일본과 불결한 지나, 대만, 아이누, 조선이 대비된다. 이런 논리구조에서는 식민지가 곧 여성으로 표상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논리구조는 완전한 거짓이기 때문에, 그것의 '예외'-이것을 예외라고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기 때문이다-들은 미디어의 서사를 배반한다. 전염병이 이슈이던 때는 아이누와 지나인의 피의 불결함에 대해서 떠들고, 민비 시해사건에서는 그 암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던 신문들이 이제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논리구조에서는 내부로는 치유가 안 되는 식민지와 외부로서 도움을 주는 일본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대응을 했지만,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토의 모습을 마찬가지 논리로는 서술할 수 없었다.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의 개인의 병약을 상징하는 바, 급기야 신문들은 총은 맞았지만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고 쓰기에 이른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모순들은 천황의 죽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책을 보면 당시 일본 언론들이 대한제국의 황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비의 시해에서는 일본인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려 하고, 조선 왕실을 암투와 모략이 판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일본에 온 영친왕은 문명의 개화 속에 올바르게 자라는 것으로 쓰여진다. 이 서사구조는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젠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지적한다. 민비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불안한 여성이다라는 서술은 여성과 병에 대한 기존의 서사가 반복되고 있고, 민비가 침실에서 죽었다는 것은 일본 내 여학생과 창기, 간노 스카코(무정부주의자)의 문란함을 지적하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서술들은 어떤 상상을 의도한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남성의 시선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이 지적하는 여성, 그리고 다른 약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많은 해석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쓰여지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에 진실처럼 느껴진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가난한 자들은 건강에 신경쓰지 않고 끼니를 거른다고 서술할 때, 우리는 가난한 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경제적 여건이 안 되기 때문임을 안다. 하지만 '강남 엄마'들이 자식 교육에 목매는 것을 여성의 사회진출장벽과 꿈의 부재에서 찾지는 않는다. 더 우월한 자식을 낳기 위해 화장을 해야 하고, 부인병을 앓는 모든 여성들에게 이 약을 먹으라고 하는 신문의 광고를 보고 독자들은 그 괴악한 논리에 혀를 차면서도, 우울한 여성들에게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을 권한다. 우리는 이야기에 전염되어 있다. 그 이야기들은 평등하게 말해지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단지 미디어에 의해서만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말해진다. 이 책을 통해 비슷한 논리구조의 다른 이야기를 보고 그 괴이함을 알았다면,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암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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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의 문화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쩍 유행을 타던 시기가 있었다. (한풀 꺾인 것 같기는 하지만 요새도 이러한 유행가는 계속되는 모양새다) ‘한국사’에 의해 전유되다시피 했던 지배와 저항의 구도를 넘어서 생동하는 근대인의 결을 읽어보자는 의도에서였던 것 같다. 국문학 쪽에서 특히 유행에 민감했다. 역사학이라고 해서 현재적 요구와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국문학의 일제시기 읽기는 유독 그러한 감이 컸다. 역사학의 식민지기 연구들이 후져서(?) 그랬는지 21세기임에도 한국의 후짐(?)이 그들을 자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나보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의 일제시기 읽기는 역사적으로 엄밀하지 못했다. 1910년대와 1940년대가 보여주는 간극은 왜소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문화통치기와 전시체제기는 그저 일제시기일 뿐이었던 가보다. 대중도 너무도 쉽게 설정되었다. 근대적 문화현상과 그 주체들은 조선인과 일본인이 구별되지 않기도 하였다. 계급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나누어 따져봄이 필요할 법 한데도 그저 문화소비와 생산 주체로서의 대중이 손쉽게 소환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안목으로 그때를 바라보는 것이 편하긴 하다. 그렇다고 막 가져다 써서는 곤란한 것도 더러는 있는 법이다. <<암살이라는 스캔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 무안해져 버렸는데, 필자가 스스로 역사적인 연구는 아니라고 밝혔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저작의도가 꽤 신선하고 간명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야기의 정형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 틀에 사건을 이입시켜 의미를 부여하는 미디어에 주목한다. 이 미디어는 심지어 ‘여자’라는 기호를 항상적으로 욕망하는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의 일부이다. 즐거운 이야기가 되기 위해 요구되었던 몇 가지 장치들과 그 속에서 차별-억압을 암묵적으로 때론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독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를 대상으로 삼아 일본 미디어가 어떠한 이야기를 요구하고 편성하였는지, 어떤 사건이 선택되었는지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은 흥미롭다. 질병과 위생관념이 어떻게 사회에서 여성과 결합되어 이해되는지, 흰 피부와 미용이 진화론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고 있었는지 저자의 논지를 한 번 따라가 보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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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사는 우리는 정보의 바다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생산하고 있는지, 어떤 왜곡을 하고 있는지, 꼼꼼히 분석해보고 생각해볼 수도 없도록, 우리는 정보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수많은 정보를 다 읽지도 못 하고, 그리고 내일이 되면 또 새롭게 밀려드는 새로운 정보들에 의해 이전의 것들을 망각하게 된다. 이러한 삶은 매일매일 이어진다. 수많은 정보들이 이야기되지만, 특정한 정형화된 정보, 표상만이 기억되고, 수많은 개별적인 것들이 망각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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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과 그 사건에 대해서 미디어나 문학이 이야기 하는 행위가 어떤 목적이 있었고 어떠한 전략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당시의 시대상황(제국주의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급격한 근대화를 추구했던 일본이 근대화 과정 속에서 주체와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설정하고 어떻게 타자를 매몰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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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다 보면 잠시 바쁜 눈길과 손놀림을 멈추고 쉬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무엇을 하나? 보통은 머리를 쓰지 않는 다른 취미를 즐기면서 공부와 관련한 생각을 멈추고 뇌를 쉬게 한다. 혹은 다른 방법도 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거나 자주 접하지 못했던 주제를 가벼운 기분으로 공부하고 경험해보며 자신의 평소 공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처럼 공부를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이런 방식의 '휴식'이 때로 더 나은 경우가 있다. 비록 '귀차니즘' 때문에 자주 시도하지는 못하는 방법이지만 말이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여름 장마 기간 동안, 일과 공부로 바쁜 와중에 왠일인지 귀차니즘을 뚫고 낮선 주제의 책을 읽었다. 아마도 선정적인 책 제목에 현혹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진지한 역사 연구서를 주로 출판하는 곳에서 제목만 보고는 내용을 짐작하기 힘든, 그러나 왠지 재미있을 것만 같은 책을 한 권 냈다. 언뜻 살펴보니 역사서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연구 서술이었고, 다룬 시공간도 근대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었다. 현대 한국의 역사서술을 공부하는 내게는 주제와 시공간의 측면에서 여러 모로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책이었다. 게다가 마침 장마와 무더위로 늘어질 수밖에 없는 휴식 기간 아닌가? 나와 이 책의 만남은 때를 잘 맞춘 만남이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메이지 시대 일본(1868~1912)의 '미디어 공동체'가 갖은 '소식'들을 '제국'과 '남성'의 시선으로 '스테레오타입'화 시켜가는 과정을 젠더의 시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젠더의 시각에 입각한 문화연구는 1990년대 이래 학계 일각에서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선 분야이다. 나 역시 문화연구와 젠더 시각에 생소한 편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복잡한 함의를 가진 용어들과 낯선 서술 방식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역사서술에서 흔히 활용하는 언론 기사들을 가지고 단편적인 정보들을 엮어가며, 당시 미디어들이 만들어내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복원해나가는 저자의 글솜씨는 대단히 매력적이다.(번역의 질이 괜찮다는 뜻도 된다.) 낯선 용어와 묘사 때문에 독서 진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만든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미디어가 대중화해가던 시기였다. 미디어 대중화의 시대에서 등장한 '미디어 공동체'는, '근대 문명=제국=남성=천황제'를 지고의 가치로 설정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스스로 성립할 수는 없었고, 반대되는 '타자'를 계속 배제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었다. 그 타자란 바로 '전근대적 야만=식민지=여성=진보적 이념'이었다. '미디어 공동체'는 살의와 악의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야기'의 희생물을 찾았다. 어떤 희생물이 등장하면, 미디어는 그것을 거침없이 공격하면서 이야기의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희생물은 스테레오타입에 빨려들어가 고유한 개성을 잃고 사라진다. 그러면 미디어 공동체는 그 희생물을 망각의 늪 속으로 밀어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나선다. 저자의 서술에서 등장하는 희생물, 즉 '타자'의 표상은 매우 다양한 사건과 인물과 소재들로 이루어졌다. 시간적 흐름으로 놓으면 '위생 관념과 아이누의 멸망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 -> 여성들(황후, 창기, 여학생으로 구분되는)에 대한 시선과 각종 신문 광고들(주로 부인병 치료약과 화장품 광고) -> '민비'에 대한 미디어의 증오와 시해 사건 보도 ->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에 대한 시선 -> 한일병합에 대한 시선 -> 무정부주의와 '천황 암살 시도'에 대한 시선으로 이어진다. 언뜻 보면 전혀 관련 없는 별개의 사건들이라고 여겨지지만, 저자는 미디어가 이런 다양한 사건들을 가지고 일관된 논리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사실 위에 언급한 사건들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사례들인데, 그것들을 섬세한 설명과 묘사로 엮어냄으로써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저자는 당대 미디어들이 쏟아낸 악의와 살의에 찬 공격들을 헤치며 '타자'로서 배제된 '이야기'들을 복원해내었다. 위에 적은 사건들은 분명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완성되었지만, 스테레오타입에 흡수되어 망각된 것들을 떠올리면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로 거듭난다. 저자는 당대에 완성되었던 이야기들이 미처 봉합하지 못했던 '균열'들을 세심히 살피면서, '이야기'를 '암살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해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문화연구 작업을 수행하면서 딱딱한 이론에 기대지 않고 분석 대상이 되는 텍스트들에 찰싹 달라붙어 분석했다는 점이다. 나와 같은 독자들은 문화이론은 생소하지만, 신문 기사와 같은 텍스트들은 익숙하다. 한국인 독자들은 이 책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젠더의 시각으로 분석한 미디어 비평이 과연 어떤 것인지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신문과 방송이 달리 보일 것이다. 또한 메이지 시대 일본사회가 조선과 조선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당대 일본 미디어가 명성황후, 김옥균, 안중근 등의 중요한 역사 인물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망각해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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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이라는 스캔들>... 제목만 가지고서는 무슨 내용의 책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이 책이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미디어를 통해 생산/재생산된 '이야기'에 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라는 말도 왠지 낯설게 다가 왔다. 이러한 낯설음은 지금도 우리가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그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성(이 책에서는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말하는)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전파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운데서도 '병'과 '암살'에 대한 이야기들을 '젠더'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병' 혹은 '피'와 관련한 '위생' 담론은 근대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기에 이 문제를 통해 근대 일본의 생성과정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암살'과 관련해서는 '명성황후'(이 책에서는 '민비'로 표현됨)와 '안중근' 등 우리 역사와 직접 연결된 이야기가 많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이들 사건에 대해 우리의 시각과 다른 당시 일본의 시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저자는 초지일관 이들 이야기에 깔린 '남성성'과 '여성에 대한 시선'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야기의 전형성은 물론, 전형성의 균열 요소까지 발견한다. 물론 근대의 이야기들을 '젠더'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또 메이지 일본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근대 이야기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통해 우리에게 범람하는 오늘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낯설게 보고 그 본질을 파악하도록 일깨워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근대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문학적 서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래서 한 번쯤 읽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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