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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봉암사 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2의 봉암사 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용보기
국내 선지식의 핵심 계보는 봉암사 결사와 직결된다. 1947년 봉암사 결사는 현대 조계종의 출발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성철, 자운, 우봉, 보문 스님 등 네 명의 스님이 1947년 가을에 시작한 이후 결사정신에 공감한 전국의 납자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라 입산했다. 성수 스님을 비롯해 청담 스님, 향곡 스님, 혜암 스님, 월산 스님, 법전 스님, 지관 스님 등이 결사에 참여했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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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선지식의 핵심 계보는 봉암사 결사와 직결된다. 1947년 봉암사 결사는 현대 조계종의 출발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성철, 자운, 우봉, 보문 스님 등 네 명의 스님이 1947년 가을에 시작한 이후 결사정신에 공감한 전국의 납자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라 입산했다. 성수 스님을 비롯해 청담 스님, 향곡 스님, 혜암 스님, 월산 스님, 법전 스님, 지관 스님 등이 결사에 참여했다. 당시 스님들은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생활의 지표로 삼았다. 이로써 한국 불교의 선사상이 확립되고 공주규약이 수좌들의 수행기준으로 계승되었다. 봉암사 결사는 1950년 3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성철 큰스님은 돈오돈수를 강조했다. 이론상으로 대승불교의 가르침과 부합된다. 대승불교와 선불교의 본령은 본래성불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팔정도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바로 그대로 온전한 부처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점수 없이 돈오는 있을 수 없고, 돈오 후에도 점수가 필요하다.

 

최고의 선지식은 선교율을 겸비하는 법이다. 마음법 공부는 율(律)에 기반하여 선(禪)과 교(敎)를 닦아야 한다. 계율은 불교의 생명이다. 율원이 살아 있어야 사찰의 기강이 서고 불법이 오랫동안 전해질 수 있다. 고산 스님은 “집 지을 때 하는 기초공사가 수행자에게는 바로 계입니다. 옛 어른스님들은 그릇을 바로 놓아야 물이 많이 담긴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그릇 안에 담긴 물은 흔들리지도 않아야” 한다며 계율과 선정이 공부의 기본임을 역설했다.

 

●선지식의 화두

 

바다 밑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려가고 바위 앞에 돌 호랑이는 아이를 안고 잠을 자도다! 쇠 뱀은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고 곤륜산이 코끼리를 타니 백로가 끌고 가도다!(고봉원묘 선사)

 

●선지식의 오도송

 

천하의 만물은 무비선(無非禪)이요, 세상만사는 무비도(無非道)다. (성수 스님)

 

어젯밤 달빛이 누각에 가득하더니 창밖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전강 스님)

  

●선지식의 생활법문

 

나는 항상 오종대은을 강조합니다. 낳아주고 길러 주신 하늘 같은 부모 은혜, 각처에서 편안하게 살게 해준 나라 은혜, 서로서로 도와가며 사는 이웃 은혜, 바른 진리 일러주고 깨쳐 주신 스승 은혜, 태양공기물과 같이 다함없는 자연 은혜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에 대해서는 항상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정무 스님)

 

기분이야 좋든 말든 기분 좋다 생각하고 기분 좋게 활동하자. 건강이야 어떻든지 건강하다 생각하고 건강하게 생활하자. 행복하든 말든 행복하다 생각하고 행복하게 봉사하자.(정무 스님)

 

 


z***a 2013.10.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미리보기: 그때 그 시절! 지금은 어떤 모습이신 가요? [산승불회]에 실린 옛스님의 사진을 보세요
"미리보기: 그때 그 시절! 지금은 어떤 모습이신 가요? [산승불회]에 실린 옛스님의 사진을 보세요" 내용보기
많은 언론이 환영하여 소개한 [산승불회]의 저자 인사말과 사진들을 소개합니다.         - 스님 18분에게 물었다... "깨달으셨습니까?" | 오마이뉴스  - "몸이 앉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앉아야 좌선이지" | 조선일보 - 선승 18인의 인간적 면모와 번뇌 | 서울신문 - 산승 18인에게 ‘깨달음’을 묻다 | 한겨레 - 한국 불교 대표 선승 18명의 가르침 | 문화일보 - 한국 대표 선지
"미리보기: 그때 그 시절! 지금은 어떤 모습이신 가요? [산승불회]에 실린 옛스님의 사진을 보세요" 내용보기
많은 언론이 환영하여 소개한 [산승불회]의 저자 인사말과 사진들을 소개합니다.      

 

- 스님 18분에게 물었다... "깨달으셨습니까?" | 오마이뉴스 

"몸이 앉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앉아야 좌선이지" | 조선일보

선승 18인의 인간적 면모와 번뇌 | 서울신문

산승 18인에게 ‘깨달음’을 묻다 | 한겨레

- 한국 불교 대표 선승 18명의 가르침 | 문화일보

한국 대표 선지식 ‘깨달음’을 얘기하다 | 내일신문

선승 가르침 담은 ‘산승불회’ 출간 | 세계일보

"예수 믿으세요"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 연합뉴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던 제가 부처님 품 안에 들어온 것은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두 번 찾았던 고향집 인근의 사찰은 ‘관광지’였을 뿐입니다. 부처님과 스님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저 친구들과 뛰어놀기에 바빴던 그런 곳이었죠.

  제가 졸업한 대학 역시‘종립학교’인 줄도 모르고 갔습니다.
입학을 하기 전 학교에 
 갔을 때 캠퍼스 한가운데 있던 부처님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캠퍼스를 오가던 스님들의  모습도 

낯설었습니다. 그래도 전생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이제는
조금이라도 부처님
 밥값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불자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조계종 홍보팀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품었던‘세월이 가기 전에 큰스님들의 
삶과 수행을 기록해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해방 전후에 출가하신  큰스님들의 수행 과정은 현대 한국불교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한 분 한 분 스님을 뵙는 것이 저에게는‘역사 그 자체’ 마주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작된 작업이 1년 반 동안 계속되었고, 책으로 펴내면 좋겠다는 여러 스님들의 말씀이 있어 이렇게 졸고를 묶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스님들을 뵈면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큰스님들이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행이나 포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분야에서 큰스님들은 (당신들께서는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일가를 이룰 만한 성과를 만들어 왔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스님들은 현재 교구 본사나 문중의 큰 어른이십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이틀 정도 곁에 머무르면서 본 것은 어른다운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또 큰스님들의 솔직한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공부가 부족하다고 하시는 것이나 아직도 모자란 것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큰스님들은 이 시대 국민과 불자들의 스승이기 전에 존경받을 수밖에 없는‘사람’이었습니다.몇몇 사람들은 한국불교에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르침을 받을 만한 스승을 찾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18명의 스님들, 나아가 제방에서 수행하고 있는 많은 스님들이 우리 곁에 있는 살아 있는 선지식이라고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국민과 불자들이 큰스님들의 가르침과 현대 한국불교사를 조금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열여덟 분의 큰스님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공해 주신 과거 수행 시절 사진은 사료(史料)로서도 큰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책이 나올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중앙종무기관 교역직 스님들, 김영일·박희승·박정규·김용구 선배님을 비롯한 조계종 선후배님들, 지홍 스님과 류지호 주간
님을 비롯한 불광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11년 6월
유철주 올림



 #1.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조계종립 특별선원 봉암사의 '조실격 수좌'스님이다. 평생 선방에서 정진해 오다 새롭게 조실을 추대하려는 봉암사 대중들의 청을 물리칠 수 없어 '수좌'로 동방장실에서 주석하고 있다.

봉화 금봉암 고우 스님과 함께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높은 신망을 받고 있다.

스님은 선(禪)은 물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전반에도 두루 해박하고 깨달음의 사회적 회양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봉암사에서 향후 10년 내에 많은 선지식이 나와 선불교 선양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적명 스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봉암사 태고선원


"봉암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으로 가난한 절이었습니다. 80년대 초반 스님이 콩나물을
 많이 먹었다고 대중들이 화를 
낼 정도였으니가요. 그러나 최근에는 ... 정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
니다. 이제는 내면의 불사를 해야 합니다."


* 지관 스님(오른쪽), 원타 스님(가운데)과 함께 포행하는 적명 스님


Q. 4대강 사업 문제로 온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A. ... 자비사상이 불교의 기본 가르침입니다. 불가피한 살행, 개발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다른 목적에 의한 살생 또는 개발이라면 잘못 된 것입니다.


* 대중에게 법문하는 적명 스님


Q. 불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A. ... 첫째는 선정(禪定) 또는 삼매(三昧)입니다. 둘째는 깨달음입니다. 선정과 깨달음은 정(定)과 혜(慧)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많은 시간 동안 선정 삼매를 경험하고 수행이 되면 ... 나의 행복을 위해 남과 다투는 일도 없어집니다."




#2. 조계총림 송광사 동당 법흥 스님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 스님의 유일한 생존 제 법정 스님의 사제다. 
부모님 때부터 불교와의 인연이 깊었고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자연스럽게 출가했다. 
스님은‘한국의 아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탁월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질문에도 날짜와 시간은 물론 당시 상황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법정 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올 당시 
송광사 주지로 법정 스님의 불사를 돕기도 했다. 
스님은『선의 세계』를 발간해 3만명이넘는 사람들에게 보시했다.
선(禪)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더 알고 직접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법정 사형님,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생전에 찾아뵈려 했으나 생전에는
못 뵙고 추모사를 하게 돼 송구스럽습니다.
1960년 팔공산 동화사에서 은사이신 효봉 스님이
‘법정, 법흥 들어와
라’하시며‘화두를 어떻게 드느냐?’고 했을 때 몸 둘 바를 모르고 떨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1975년 정부기관에서 사형님의 전화를 도청하
고 편지를 뜯어 봐 사형님은 봉은사에서
송광사로 내려오셨습니다. 원
고료 몇 푼으로 불일암 중창불사를 하던 사형을 도우며 가까이
모셨던 
것이 생생합니다. 사형님이 산문집『버리고 떠나기』를 통해 송광사 행사에는 일체 참여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강원도 산골로 떠난 후로는 만
날 수 없었습니다. 법정 사형님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교육포교
의 대전략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수필가입니다. 세상은 제행무상
(諸
行無常),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하는 것이지만, 존안을 뵐 길이 없는 이
중생의 슬픔을 누가 알겠습니까?”

사형을 평소에 자주 찾지 못한 미안함과 생사의 문턱 너머에서 부르는 애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 젊은 시절의 법흥 스님


Q. 기억에 남는 스님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A. “나의 스승인 효봉 스님과 맏사형인 구산 스님은 정말로 나무랄 데가 없는 구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몇 분을 더 소개하자면 가장 기
억에 남는 분은 성철 스님입니다. 스님은 정말 천재
였습니다.
영어, 일어, 팔리어 등의 경전을 모두 원문으로 봤습니다. 한문 팔만대장경도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은 어떤 수좌가 찾아와 시비를 걸어도[法擧揚] 다 받아주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스스로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 1975년 송광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 수계 기념 사진 모습





#3. 대구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

 

‘남 진제 북 송담’으로 일컬어지는 한국불교 대표 선지식이다. 석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향곡 스님을 만나
‘일면불 월면불(一面佛月面佛)’화두를 타파해 인가를 받고 경허-혜월-운봉-
향곡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잇고 있다.
스님은 최근 신학자 폴 니터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2011년 9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불교의 정수를 전할 예정이다.

대구 동화사와 부산 해운정사의 조실로 수많은 납자들을 지도하며 법을 이을 그릇을 찾고 있다.

스님은‘참 나’를 찾으면 항상 평화롭고 자유자재한 삶을 살수 있다고 강조한다.



* 향곡 선사와 함께한 진제 스님(왼쪽)


A. 석우 스님 입적 후 향곡 스님을 찾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향곡 스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Q. “향곡 선사는 60여 년 전 성철 선사와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여, 삼칠일(三七日) 동안 화두일념
삼매에 들어 확철대오(確徹大悟)하여 최상승의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한국의 정신문화를 세계
정상에 우뚝 올려놓으신 분입니다. 조선시대 이후로 불교계는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침체기
였는데, 향곡 선사는 고려시대 태고, 나옹 선사의 최상승 진리의 안목을 다시 열어 보이신 위대한
성인이셨습니다.


*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참선 중인 진재 스님

 

Q. 젊은 세대는 불교를 어려운 종교라고 얘기합니다.   


A. “팔만사천 법문이 다 마음법을 설해 놓은 것입니다. 마음이 아닌 오욕락이라는 허상을 좇아 바깥으로 치달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상하고 세상이 허무함을 알아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선지식을 찾아가 불교를 배운다면 불교는 어려운 게 아니라 하나하나 내 수행을 점검해야 할 방편임을 알게 됩니다. 마음에 관심이 없는데 마음법이 쉽게 느껴질 수 없는 이치입니다.”


* 진제 스님이 동화사에서 깨달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불자와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인비지단(人貧智短)이요, 마수모장(馬毛長)이라’했습니다. 사람들이 빈한(貧寒)하게 사는 것은 지혜(智慧)가 짧기 때문이요, 말이여위면 털이 긴 법입니다. 밝은 지혜는 출세와 행복의 근본이 됨이니, 모든 분들이 이러한 밝은 지혜를 증득하여 억만년이 다하도록 수용하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모든 분들에게 화두 하나를 드리니,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여 일상생활 속에 부지런히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가는 법입니다. 세상사 바쁘다 해도‘참 나’를 깨닫는 이 일을 밝히는 것보다 바쁘고 급한 일이 없습니다.‘참 나’를 깨닫게 되면, 수천 생을 태어나더라도 밝은 지혜의 눈을 잃지 않고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 항상 평화롭고 대자유자재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모든 불자와 국민들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이야기와 사진은 [산승불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b*******c 2011.09.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