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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든 저를 키워주고 보살펴준 어버이의 품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가르치지 않아도 걸음걸이며 말하는 투까지도 다 배운다. 아니 저절로 닮아간다. 그런 어버이 때문에 또한 아픔을 겪기도 한다. 좋은 어버이한테서는 좋은 것을 많이 배우고 닮으니까 나중에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쁜 어버이한테서는 나쁜 것을 배우고 닮으니까 나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그 어려움은 내가 하고자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일에서 벌어진다. 어려서는 무턱대고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커서는 내 뒷다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뿌리치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없지는 않으나 무척 힘들다.
어렸을 때 내 마음에 생긴 생채기를 천천히 씻어내어야 하는데, 그럴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른 이를 해코지 하지 않고, 스스로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나도 모르게 배인 아픔을 씻어내지 않아도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1975년에 만든 <거울 Zerkalo / The Mirror>은 엄마의 아픔이 아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잘 드러낸 영화였다. 어렸을 때 어버이 때문에 가슴속에 짙게 패인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었다.
2. 알료샤(알렉세이)는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인 나탈리아가 나무라기도 한다. "왜 아직도 어머니와 화해하지 않죠? 그건 당신 잘못이에요."
아내가 뭐라고 하든 어머니 마루샤(마가리타 테레코바)가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 알료샤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 엄마와 아들 사이를 이렇게 갈라놓았을까?
모스크바에서 살다가 전쟁 때문에 시골로 간 알료샤네는 곧이어 아버지가 집을 떠난 탓에 엉망이 된다. 어머니는 날마다 집 울타리에 걸터앉아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버지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엄마한테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알렉세이다. 그래서 알렉세이의 머리에 남아있는 일들은 홀로 된 엄마와 지낸 날들에 대한 것뿐이다.
이제 어른이 되었고 혼인해서 아내와 아들까지 있지만, 알렉세이는 어렸을 때의 아픔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게다가 그 아들인 이그나트에게까지 아픔이 이어지려고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아내마저 걱정한다. "이그나트가 차츰 당신을 닮아가는 걸 보면 무서워요."
그런 아내한테 알렉세이는 제 마음과 달리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미안해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돌이켜보면 당신 얼굴이 떠올라. 난 당신과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아내는 알렉세이를 잘 꿰뚫어보고 있다. "당신은 어느 누구와도 정상적인 삶을 살긴 어려울 거에요. 당신은 곁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는 것 같은데, 당신은 요구할 줄 밖에 몰라요." 그러자 알렉세이는 맞받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길러졌기 때문이지..."
3. 마음에 생긴 생채기 때문에 삶이 꼬여서 이젠 아내와도 헤어질 판으로까지 바뀌는 알렉세이의 삶. 영화는 그게 알렉세이의 잘못이 아니라 엄마와 어렸을 때 생긴 일들 때문이라고 풀어내고 있었다.
알렉세이의 엄마 마루샤가 일부러 알렉세이를 나쁘게 만든 게 아니라 그이도 어쩔 수 없는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마루샤가 다니던 출판사(인쇄소)에서 왜 그런지 드러난다.
잘못 쓴 글이 생각나서 허겁지겁 일터로 가는 마루샤. 인쇄기와 종이 더미 사이를 헤집고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일하는 이가 한 마디 한다. "너는 언제나 '물 가져와. 신발 가져와' 했어.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겉으로는 스스로 사는 것이지만 혼자서는 손가락도 하나 못 움직여. 싫은 게 있으면 못 본 척 하거나 찡그리고 말지... 네 옆지기의 끈기가 놀라울 뿐이야. 진작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났어야 해."
가깝다고 생각한 리사 엘리자베타가 이런 말을 하자, 마루샤는 따진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번이라도 네 잘못이라고 받아들인 적이 있어? 그 사람이 제 때 잘 달아난 거지... 넌 아이들도 불행하게 만들 거야..."
알고 보면 알렉세이의 엄마 마루샤도 마음의 생채기가 있는 사람이다. 저도 모르게 제 어버이나 곁의 어른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고...영화에서 그 까닭은 나오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와 같이 살면서 보고 배운 아들 알렉세이도 같은 길을 걸어갔고, 그 길을 또 손자인 이그나트가 따라가고 있다. 돌림병이 따로 없고, 핏줄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몹쓸 병이 따로 없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 제 본디 모습이 제대로 보일까? 이렇게 알렉세이 집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떠도는 나쁜 삶을 끊을 길은 없을까? 감독은 거울로 제 모습을 바라보게 할 뿐, 고칠 길은 밝히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옆지기와 헤어진다고 해도,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생긴 몹쓸 내림을 아이들은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4. 나로서는 아쉽게 보이는 구석이 몇 가지 있었다. 알렉세이의 엄마 마루샤가 아이들에게 보였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나타내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엄마가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을 해주지 않고 잘 키우지 못해서 아이들이 나빠졌다면, 그런 모습이 영화 속에서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게 나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거나 챙겨주지 않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다지 나쁘게 보일 게 없었다.
귀걸이를 팔려고 알렉세이와 같이 나섰다가 그 집에서 닭을 잡을 때 일어나는 일은 모스크바에서 살았던 마루샤한테는 시골살이를 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쯤으로 보였고, 집 울타리에 앉아 아버지를 오래도록 기다리는 것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인쇄소에서 틀린 글자 때문에 벌였던 일(그것도 지나치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았고)을 빼면, 잘못이라고 할 만한 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일터에 같이 다니는 이의 입을 빌려 마루샤의 잘못을 털어놓고, 그런 것 때문에 아들인 알렉세이도 비슷한 길을 간다고 풀어내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루샤로부터 알렉세이, 이그나트로 이어지는 어그러진 삶이나 마음에 난 생채기 때문에 드러나는 본디 모습들을 영화 속에서 속속들이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냥 말로 때운 듯해서 아쉽다.
영화 안에서 알렉세이가 제 삶을 거울을 비춰보면서 되짚어보는 듯하지만, 마음에 생긴 생채기를 보듬거나 어루만지며 다독거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알렉세이의 마음에 굳어진 아이의 모습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어렸을 때 지낸 집을 떠나면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나타냈지만, 마음의 생채기를 낫게 하는 어떤 일도 없이 그렇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헛간?)이 불에 탈 때, 알렉세이 오누이와 엄마가 구경하는 모습이 나왔다. 디뷔디 집에 나오는 그림인데, 이것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알맹이는 내게는 잘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집 울타리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던 엄마한테 어떤 사내가 나타나 지분거릴 때가 볼거리였다. "손 좀 줘봐요. 난 의사에요." 하는데, 마루샤가 뿌리치면서 말한다. "내가 옆지기를 부르길 바라나요?" 그런데 그 의사라는 사내는 "당신은 옆지기가 없어요. 가락지를 안 꼈어요..." 하며 맞받고, 둘이 같이 걸터앉다가 나무가 부러지는 모습 따위는 무거운 영화를 그나마 가볍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감독은 가볍게 나아가기를 뿌리치고, 어김없이 다시 무겁게 만들었다. 의사(아나톨리 솔로니친)의 입을 빌려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곁에 있는 마루샤가 듣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이가 듣기를 바라면서. "... 나무들은 서두르며 돌아다니지 않아요. 우린 언제나 바쁘게 뛰어다니죠. 안달하고 하찮은 말들이나 하면서...우리는 뭔가 못 믿어하며 언제나 서두르죠.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묵직하게 삶을 가다듬으려 하는 말들은 곳곳에 나온다. 그래서 영화는 무겁기만 하다.
5. 영화를 보면 두 몫을 하는 배우들이 나온다. 처음에는 같지 않은 얼굴로 보여 다른 사람인 듯했지만, 가만히 보면 같은 사람이다. 엄마인 마루샤와 아내인 나탈리아를 맡아 두 몫을 하는 마가리타 테레코바는 잔잔하게 다가오면서도 삶의 아픔을 슬며시 전해주었다. 그냥 삶에 끌려가는 마루샤 노릇보다는 그래도 뭔가 풀어보고자 애를 쓰는 나탈리아 노릇이 좋아 보였다.
어렸을 때의 알렉세이와 아들 이그나트로 나온 어린 배우도 두 몫을 해냈다. 나이가 든 마루샤로는 감독의 어머니가 나왔다고 하는데, 알렉세이 오누이는 어린데 엄마로 나이가 든 할머니가 나오는 대목은 낯설게 와닿았다.
영화를 보면 컬러와 흑백으로 섞여 나왔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눴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나 옛날을 흑백으로 다루고, 이제를 컬러로 다루는 영화는 더러 있지만, 이 영화는 한결같지가 않았다. 왜 그런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영화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누는 말은 적고, 어른이 된 알렉세이는 모습만 잠깐 보이고 혼잣말로 그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조금은 느린 듯, 어쩐지 허전한 듯 느껴졌다. 꽉 짜여진 알맹이와 팽팽 돌아가는 배우들의 연기를 곁들인 영화에 견주면, 조금 지겨운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잘 다룬 영화로 보이지만, 별은 넷만 주고 싶다.
6. 감독이 피붙이 때문에 짓눌려 사는 아이들에게 던지는 말은 낯설지가 않았다. "...아이야, 날아라. 불쌍한 유리도스를 슬퍼하지 말고. 막대기로 너의 구리 굴렁쇠를 온 세상으로 굴려라. 발자국마다 즐겁고 퉁명스럽게 지구가 대답하는 소리가 얼핏 얼핏 네 귀에 들릴 때까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사내아이가 운동장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굴렁쇠를 굴리는 모습이 나왔다. 나도 어렸을 때 굴렁쇠(우리 마을에선 '동테' '동태'라 했다)를 많이 굴려보았지만, 그렇게 굴렁쇠를 굴리는 것이 행여나 이 영화에 나오는 대목과 줄이 닿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독이 말하는 바와 많이 닮았으므로.
영화가 나온 지 마흔 해가 가까이 된 터라 디뷔디가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컬러로 나오는 화면은 가끔 번져보일 때도 있고, 우리말 옮김도 매끄럽지가 않았다. 덤으로는 예고편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름난 영화를 이렇게나마 볼 수 있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