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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가운데 어른들이 벌이는 싸움 때문에 아이가 괴로움을 겪는 영화도 적지 않다. 프랑스의 루이 말 감독이 1987년에 만든 <굿바이 칠드런 Au revoir les enfants / Goodbye, Children>,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이 1948년에 만든 <독일 영년 Germania anno zero / Germany Year Zero>에서 볼 수 있듯이, 어른들의 쓰잘데기 없는 싸움은 아이들 가슴에 큰 응어리를 안겨준다.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1962년에 만든 <이반의 어린 시절 Ivanovo detstvo / Ivan's Childhood / My Name Is Ivan>은 어린아이 가슴에 못을 박은 이가 누군지 잘 드러낸 흑백 영화였다. 어른 사내들이 아이들이나 아낙네들에게 못할 짓을 어떻게 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했다.
뒤에 돌이켜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서야 그때 그런 짓을 했을까 싶지만, 사람들은 멀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눈앞에, 발 아래 놓인 일만 생각하고 덤빈다. 그래서 감독은 다시 돌아보면서 이반에게 지은 어른들의 죄를 뉘우치도록 에둘러서 보여주는 듯했다.
2. 열두 살짜리 이반(니콜라이 버릴이예프)은 싸움터에서 러시아의 정찰병으로 일한다. 도이칠란트 군대가 머물고 있는 강 건너에서 맡은 일을 하다가 다시 러시아 군대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그라쟈노프 대령은 이반에게 후방에 있는 군사학교에 가라고 시킨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싸움터를 벗어나 지낼 수 있으므로 이반이 좋아할 일이다. 그렇지만 이반은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을 내며 따진다. "공격 계획이 세워졌잖아요. 저는 아직도 쓸모가 있어요...전 가지 않을 거에요."
"투덜대지 마라. 이 일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제 끝났다며 대령이 잘라 말하자, 이반은 더 우긴다. "그래도 억지로 시키신다면 달아날 겁니다. 그리고 빨치산에 들겠습니다."
어른들은 이제 그만 하고 후방에서 지내라고 하지만, 이반은 다시 도이칠란트 싸울무리들이 있는 강 건너로 가서 일하고 싶어한다. 러시아가 공격하면 표도릅카에서 제 무리를 만날 수 있도록.
3. 아이들은 아이답게 놀아야 하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싸움터에서 놀 게 아니다. 그런데도 제 할 일이 있다며 어른들보다 더 싸움터에 붙어 있기를 바라는 이반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군사학교나 고아원이나 내겐 다 똑같을 뿐입니다." 하며 한사코 싸움터를 떠나지 않으려는 이반한테 어른들끼리 붙은 싸움은 어떤 것일까? 어른들 놀이 같은 싸움이 좋아서 구경하며 붙어 있으려 했을까? 아니다. 집에서 피붙이들한테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할 나이에 싸움이 그런 피붙이들을 앗아간 탓일 뿐.
어른들의 싸움은 이반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준 것이다. 나라끼리 싸움이 붙은 탓에 국경을 지키던 이반의 아버지는 죽었고, 러시아 안으로 쳐들어온 도이칠란트 싸울무리 탓에 어머니와 누이도 같이 죽었다. 피붙이가 다 없어진 이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앙갚음할 마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싸움터에서 뭔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이가 아이답게 살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아이보다 더 철이 없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끼리, 어른들끼리 싸우는 일에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끼어들어 수렁에 빠진 채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네 아이들이 아니라 해도, 세월이 흐른 옛일이라 해도 불쌍한 마음이 들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4. 아슬아슬함과 팽팽함을 카메라가 잘 담아 보기에 좋았다. 자작나무 숲에서 콜린 대위가 마샤 소위한테 집적거릴 때는 말 한 마디에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팽팽함을 잘 드러내었다. 마샤가 쓰러진 나무 위로 비스듬하게 차츰 올라갈 때는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 밑에서 뛰어내리면 받겠다며 큰소리치는 콜린 대위보다 보는 내가 더 가슴을 졸이게 되었다.
이반이 어린 나이에 제가 겪은 아픔과 슬픔을 꿈을 통해서 보여줄 때는 안타까움이 먼저 다가왔다. 깨고 나면 눈물이 고이는 얼굴은 싸움에 나설 이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일 따름이었다.
싸움에 미쳤거나 빠져있는 어른들 사이에 갈채프 중위(예프게니 자리코프)를 끼워넣어 감독은 그나마 저울을 맞추어 놓았다. 이반이 싸움터에 남아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설 때도, 갈채프 중위는 살살 달랜다. "넌 잘 싸웠어. 좀 쉬어. 학교에 가서...싸움은 어린애가 할 게 아냐."
마샤 소위를 두고 콜린 대위(발렌틴 쥬브코브)가 "예쁜 의사를 부관으로 두고 있더군." 하며 눈길을 줄 때, 같은 사내지만 몸이 당기는 쪽으로 빠지지 않고 사람답게 맞선다. "그이를 보낼 겁니다.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 해요...싸움은 사내들의 일이죠. 아낙네들이 낄 일이 아니고."
5. 영화 속에서 볼수록 눈길을 끌어가는 이는 콜린 대위였다. 사내들의 싸움터에나 맞는 사람이다. 그가 한 말을 볼 때. "대령이 말하길, 난 나 스스로부터 집에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아야 한대." 그래도 영화 속에서 엉뚱한 짓을 하며 사내랍시고 어깨를 건들거리는 꼴이 밉지가 않았다. 자작나무 숲에서 마샤 소위를 두고 지분거릴 때는 이 꼭지가 없었으면 조금은 지루한 영화가 되었을 듯.
마샤와 나누는 말들이 팽팽한 실타래처럼 꼬여서 어떻게 나아갈지 가슴을 졸이며 보아야 했다. 마샤가 반듯하게 보이는 갈채프 중위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툭툭 말을 던지고 삐딱하게 구는 콜린 대위가 끼어들어 생각과 다르게 나갔다.
"우크라이나에서 왔나?" 하고 묻자, 마샤는 "왜요?" 하며 되묻는다. "아름답지만 무뚝뚝하니까."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편하게 지내자구." 하며 콜린 대위가 슬며시 다가가는데, 마샤가 자작나무 뒤로 물러나면서 금을 긋는다. "갑자기 그러긴 힘들어요." 그래도 콜린은 물러서지 않는다. 막무가내다. "난 이제부터 그렇게 할 테니, 넌 천천히 해. 알았지?"
마샤가 도랑(참호)을 건널 때도 콜린 대위는 제멋대로다. 혼자 건너겠다는 마샤한테 다가가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일을 낸다. 도랑을 사이에 두고 콜린 대위는 두 다리를 뻗어서 걸쳐 있고, 마샤는 도랑 가운데서 콜린 대위한테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다. 엉큼하기 짝이 없다.
마샤는 바로 윗사람이자 저를 은근히 좋아하는 듯한 갈채프 중위가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되든 안 되든 저한테 부딪혀서 일을 풀어가려는 콜린 대위도 나쁘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콜린을 조금 두려워하지만 나중에는 넘어가는 듯 보였다. 사랑 싸움에서는 콜린이 앞섰다. 그래서 마음뿐인 사람보다 용기있는 사내가 아름다운 아가씨를 잡을 수 있나 보다.
나로서는 능글맞은 콜린 대위보다는 갈채프 중위와 마샤 소위가 잘 되었으면 싶었다. 숲에서 콜린과 마샤 둘이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 되어 부리나케 달려가던 갈채프였는데...
6. 이 영화는 블라디미르 보고물로프가 쓴 짧은 이야기 <이반>을 바탕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은 이반이 겪은 싸움이 빨리 끝나고 그게 마지막이길 바랐다. 그래서 싸움터에서 미쳐버린 듯한 늙은이의 입을 빌려 말한다. "오, 주여! 언제쯤 끝나리이까?"
하지만 어른들은 생각이 다르거나 바람이 많아지면 또 싸울 것이라는 걸 영화 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이반 같은 아이들이 그 틈바구니에서 아프고 죽어가겠지만, 그래도 어른들은 멈추지 못할 것으로 짐작했다. 이번에는 갈채프 중위의 목소리를 빌려서. "이것이 지구 상의 마지막 전쟁이 되진 않겠지."
어린 이반이 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싸움터에서 오로지 앙갚음만 생각하며 살게 한 어른들의 싸움. 힘없는 아이들과 아낙네들 뿐만 아니라 힘깨나 쓴다는 어른 사내들도 다치고 목숨을 잃게 되는 싸움. 감독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싸움의 끝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보여준 영화였다.
지겹게 느껴지는 대목도 더러 있어 별은 넷을 주려다가, 던지는 묵직한 알맹이와 이반으로 나온 아이의 모습에서 안쓰런 마음이 저절로 나오는 덕분에 다섯으로 올렸다.
만든 지 쉰 해나 지난 영화라 디뷔디로 나오기만 해도 고마웠다. 흑백이지만 화면은 깨끗했고, 소리도 좋았다. 우리말 옮김도 좋다. 누가 옮겼는지 다른 디뷔디에 견주면 본받을 만하다. 그런데 다른 건 덤으로 아무것도 없다. 예고편도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아쉽다.
예스24의 상품 소개는 고칠 곳이 좀 있다. 디뷔디를 살펴보고 썼으면 좋겠다. 나오는 말은 스페인 말이 아니라 러시아 말이며, 화면은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16:9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이 아니라 4:3 풀 스크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