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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주가는 아니다. 다만 와인애호가일 뿐이다. 애호가가 주량이 셀 필요는 없지만 와인을 즐기다 보면 저절로 주량이 늘게 된다. 와인만을 고집하던 시절 오랜만에 입에 털어넣은 소주가 물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와인은 흔히 고독의 술이라고 한다. 연인과 마시면 좋지만 혼자서 마셔도 품위와 기품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레드 와인의 정체성이 바로 고독과 신비가 아닐까. 나는 미국 와인, 칠레 와인, 그리고 호주 와인을 즐겨 마신다. 반면에 프랑스 와인과 이탈리아 와인은 그저 맛보기 위해 간혹 선택할 뿐이다. 그런데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아우라, 2011)의 저자가 단순한 애주가들에게 주는 다음의 충고에 나도 모르게 그만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오늘날 뭘 모르는 술꾼들은 같은 것, 믿을 만한 것,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와인을 고른다. 와인이 어디서 왔건 맛만 괜찮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그리하여 백악질 토양, 점토흙, 이회토, 자갈과 같은 지질만을 따지거나 토양을 완전히 무시한 채 상표와 포도품종으로만 와인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겐 새로이 와인을 경험한다는 것은 발효된 포도주스를 마시는 일과 같은 것이다."(71쪽)
영국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애주가의 수준을 넘어서 예술가의 경지를 넘보는 그런 와인매니아임이 틀림없다. 그가 권두의 부록에서 철학으로 와인을 품별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으로 철학자를 품별한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와인을 철학의 동반자로, 철학은 와인의 부산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세기의 철학자들과 특정 와인을 짝지우는 저자의 모습에서 약간 맛이 간 '바쿠스사제'의 철학적 광기를 엿볼 수 있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 이븐 시나, 이븐 루시드, 아퀴나스, 마이모니데스,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흄, 칸트, 피히테, 헤겔, 쇼펜하우어, 키에르 케고르, 니체, 러셀, 후설, 사르트르, 하이데거, 파토츠카, 비트겐슈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벨라 함바스 등 기나긴 명단이 출몰한다. 저자가 사전에 이런저런 평가기준을 명백하게 설명하지 않아 철학자들과 어울리는 와인의 짝짓기가 얼핏 저자 개인의 독단적 취향이거나 장난기 어린 어거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무튼 저자가 케임브리지 대학과 피터하우스 대학을 거쳐 철학교수로 성장할 때 와인을 진탕 마셔댄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드러난다.
저자는 와인을 세계화에 맞서는 지역의 생산물로 바라본다. 즉 와인은 지역성을 상기시킨다는 것인데 지역성은 단순히 토양의 맛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문화까지 포함한다. 저자는 와인을 '토양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오도된 표현이라고 보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서 특정한 와인의 우수성을 감식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각 지역과 포도원을 순례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프랑스 바깥의 와인'이란 타이틀로 레바논 와인, 그리스 와인, 미국 와인, 호주 와인, 뉴질랜드 와인, 남아공 와인, 이탈리아 와인, 루마니아 와인, 스페인 와인을 각각 소개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와인의 다양한 문화적 의미 혹은 종교적 의미로 갈무리되는데, 와인에 대한 진지한 옹호가 눈길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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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문화가 이제 서서히 저변을 넓혀가는 것 같다. 특별한 자리에서 마시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와인은 몇 년 전부터 와인을 학습(?)하고 함께 즐기는 모임들이 생겨나면서 조금 전문적인 방식의 애호가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와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좀 갖추고 싶었던 한 사람으로 이 책이 반가웠다. 이 책의 저자가 철학자인지라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펼쳐갈 지도 사뭇 궁금했다.
우선 책의 앞 부분은 철학을 공부한 학자답게 철학자와 와인을 접목시켜서 이야기한다. 어떤 철학자의 책을 읽을 때는 어떤 와인이 어울릴 것 같고, 어떤 철학자가 늘 마시던 와인은 그의 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등등이다. 이 독특한 철학 강의(또는 와인 강의) 방식은 처음에는 조금 낯설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철학자다운 유머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철학이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는 독자는 이 장을 건너뛰고 좀 더 흥미로운 다음 장부터 시작해도 될 것이다.:
거의 모든 환각제는 사물을 가리는 반면에, 어떤 환각제들(특별히 와인)은 사물을 이상적인 형태로 재구성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사물을 직면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p. 56) 이 책에서 나는 와인을 철학의 동반자로, 철학은 와인의 부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 생각에 와인은 음식과 훌륭한 짝을 이루지만 철학과는 더욱 좋은 짝이 된다. 와인을 마시며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철학 안에서 술을 마시는 법은 물론, 술 한잔 속에서 사색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p.62)
저자는 와인을 단순히 기분을 고조시키거나 휴식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적 연구에 깊이를 더하고 삶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는 매개로 여기며 존중한다. 미학을 강의하는 저자는 자주 음악에 비유하여 와인을 평가하는 데 독자가 공감하기는 힘들다. 와인에 대한 그의 해석을 이해하는 것에 각각의 음악에 대한 그의 해석을 유추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랑 에셰조를 말로 표현하고자 머리를 쥐어짰다. 그때 내게 떠오른 문구는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2번-바람의 요정같이 베일에 싸인 깊고 오묘한 테너 음조"였다. (p.78)
차라리 나의 입장에서는 맛 자체에 대한 현란한 수사를 곁들이는 해석이 이해하기에 더 쉬운 것 같았다. 퓔리니-몽라셰에 대한 그의 평을 보자.:
이 백포도주는 내가 트로타누아를 훔쳐마실 때와 같은 계시를 보여주었는데, 잔 속에서 떠오른 한송이 버터같은 꽃잎이 사과맛 나는 수정빛 열매를 둘러싸고 있었다.(p.74)
철학자에 대한 장을 지나면 책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에서 영감을 얻어 '나는 마신다.' 와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 장의 이름을 정했다. '나는 마신다.' 장은 자신이 와인에 입문하던 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에게 와인의 맛과 철학을 가르쳐 준 이들을 '바쿠스의 사제'라고 존중하며 세 사람의 애주가에 대한 추억과 그들이 가르쳐 준 와인에 대해 추억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동하던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 와인 재배지와 토양, 와인농가의 역사를 들춰내며 와인을 연구하며 맛보며 저자는 최고급의 와인들의 이름과 그 감동을 독자에게 전해둔다. 프랑스의 각 지방별 와인의 역사와 맛의 차이 등등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저자 특유의 철학과 미학에 곁들여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장은 매우 사색적인 장이다.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존재 의미를 분명하게 해주는 와인의 역할에 대한 철학이 펼쳐진다.:
와인은 영혼에 영혼의 육체적 기원을 , 육체에는 육체의 정신적 의미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와인으로 인하여 우리는 번듯한 인간이 모습을 갖춘 의미있고 정당한 존재가 된다. (p.182)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지만 앞 부분을 꼼꼼하게 읽으며 저자의 수사학과 철학, 미학, 음악에 대한 넘치는 지식체계를 이해하면 뒷 부분부터는 이해하기 쉬워진다. 와인 속에서 철학과 미학과 음악의 향연을 찾아내는 독특한 저자 덕분에 와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여하간 와인은 알 수록 어려워지는 미묘한 술이며 공부를 해야 이해하며 마실 수 있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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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여기고, '동기사랑 나라사랑'을 외치며 술과 함께 내 옆에 앉은 동기를 무조건 사랑하기도 하고, 고요한 바닷가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커피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지만, 그래 봤자 내가 즐겨 마시는 술은 소주.맥주.막걸리. 그중에 맥주. 소주와 막걸리도 제품에 따라 맛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소주는 나이가 들수록 들이키기가 어려워 지고 막걸리는 후폭풍이 심해서 잘 마시지 않는다. 나를 두발로 집에 가게 해주고, 즐거운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도 있고, 어디든 어울리는 맥주가 나는 좋다. 그래서 세계의 맥주들을 내가 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왠만한 종류의 맥주는 다 먹어봤다고 자부 하며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3일 밤낮을 세도 모지랄 지경이다. 하지만 역시 술에 대한 이야기는 와인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렇게나 알콜을 좋아하는 나 이지만, 와인이야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들은 이야기는 있지만 그렇다고 막상 와인을 구매하려 하면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결국엔 맥주를 집어 들고 집에 돌아 온다.
이 책에는 와인이 생겨난 유례와 특정한 철학자의 이론을 듣는데 있어서 어떠한 와인이 좋다는 작가의 추천이 있다. 조금은 길어 보이는 이 추천을 다 읽고 나면 이제야 서문에 들어 선다.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기에 이 책을 통해서 와인을 완전 정복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읽어 나갔다.
대부분이 저자가 어떠한 와인에 얽힌 이야기와 어떠한 와인을 추천한다는 것과 그 와인의 지역과 토양에 대한 이야기들 이지만 책장이 쉬리릭 넘어 가는 것이 재밌다. 개인적으로는 적포도주보다 백포도주에 대해 자세히 알고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신화 이야기와 함께인 라 콤만다리아 라는 키프로스 산 와인을 먹어 보고 싶다.
자신의 경험과 재밌는 신화 이야기가 곁들인, 와인이야기가 재미있다. 와인이 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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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철학자의 만남을 이야기 하는것이 어쩌면 전혀 관계가 없는듯 보이나 책을 보면서 그 음율적 시처럼 감성적인 그런표현을 느낄수가 있었다. 처음 와인이라고 하면 브로그와인과 빈티지 스플라이트 와인 그런정도로 아주 조금만 알고있었는데 철학자의 이름을 하나둘씩 알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지만 그 이미지만을 가지고선 그 철학자와 비슷한 와인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더 좋은 일이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플라톤-클라테,스위트 와인,부브레, 슈-냉 블랑 , 세미용 아리스토텔레스-소비뇽 블랑 키케로-포이약(아우소니우스)의 샤토 랭시바주,샤토오존 보에티우스-적포도주 생토뱅,뫼르소,샤사뉴-몽라세 이븐시나-카박클르데레 이븐 루시드-호크 아퀴나스- 몬테풀치아노 등 와인의 종류도 철자학자도 많이있다 . 와인의 참 맛은 포도주에서 나온다 그 포도주의 포도는 나무에서 나오고 그 나무는 흙에서 영향분을 흡수하고 그 영향분은 대 자연이라는 기후조건에서 나오게되어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맛을 그 지역적 특색으로만 생각하고 그 맛을 위해서 노력하는 농부와 그 기역의 유지들에대한 깊은 감사와 또 정성어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오래된 것이 좋다고 막연한 생각만으로 판단한 껏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철학자의 깊은 뜻은 그 시대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이고 와인은 그 시대의 풍류와 함께 하는것이다 .얼마나 와인의 맛을 잘할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감정평가사로서 기준이나 성품을 점수로매기는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얼마나 고통스러운 직업일까 하는 그런생각이 많이든다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서로 다를지언데 그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만들고 모든 맛이 하나가 된다는 것 또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각자의 맛을 존중하고 느낄수 있는 그런 기준없는 맛이 있었으면 한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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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역사는 6천년이나 거슬러 올라갈 만큼 인류와 그 시작을 같이 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만큼 오래된 술이다. 와인의 종류는 많고도 많다. 재배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맛도 가격도 천차만별. 얼마나 많은 와인들이 있는 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술을 마시지 않지만 와인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즐긴다. 와인은 '마신다'라기 보다는 '즐긴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데, 사고의 사색을 즐기는 철학자가 와인에 빠짐은 당연한일인지도.
이 책은 와인을 단순히 와인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혹여 와인을 제대로 마시고자 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각국의 와인과 철학자들의 소개와 그들의 저서를 읽을 때 어떤 와인이 어울리는 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철학이론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이라....음식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과는 또 다른 지적유희의 과정을 선사한다. 잠깐 저자가 소개하는 와인을 보자. 사실 너무나 많은 와인들이 소개되어 와인들을 외울 수도 없지만 와인 한병 한병마다 담겨진 사연과 그 맛의 차이를 모두 구분해내는 저자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우선 저자는 마음 속에 와인의 놓인 순서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와인에게도 위계질서가 있다니...와인을 제대로 마시려면 어느 순서부터 마셔야 하는지...알수록 어려운 술이 바로 와인이다.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고 싶을 때는 프티 샤토, 노동 운동가들은 로이 젠킨슨의 삶을 흉내내고자 할때는 베르주라크를 마신다고 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 외눈박이 키클롭스을 물리치거나 용을 처지해야 했던 힘든 하루를 보낸후에는 달콤한 보르도 한병으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왠지 럼주가 어울릴것 같은 영웅에게 달콤한 와인이라...와인에 대해 알 수록 새롭게 아는 것들이 쌓여간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 와인을 포함해 레바논, 그리스 와인, 미국,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이탈리아, 루마니아,스페인의 와인을 소개하며, 저자는 와인이 곧 문명이며, 문명화 된 국가와 문명화되지 못한 국가의 차이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가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와인 자체가 사양문화권에서 생겨난 술이긴 하지만 너무나 서구 중심적인 시각이라 자소 씁쓸하기는 하지만 와인에 대한 평생을 걸친 저자의 꾸준한 사랑에는 정말 고개라 끄덕여진다.
많은 와인을 소개하면서도 한병 한병에 개인의 경험과 사연이 담겨져 있어 와인이 술이 아니라 평생 함께하는 친구같이 다가온다. 와인을 즐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에게 맞는 나만의 와인을 가져봄도 좋을것 같다. 와인은 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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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단 하나의 이유는, 철학자가 와인에 관해서 썼기 때문이었다. 와인은 먹는 것이다. 먹는 것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대체로 그런 것 같다. 어느 미디어를 둘러봐도 이른바 ‘먹방’은 가장 흔한 컨텐츠가 되었다. 먹방에선 품평이 빠지지 않는다(대체로 좋게 포장하는 쪽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문제일 뿐이다). 이른바 음식에 대해 평가한다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이들 중 몇몇은 전국적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맛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분명히 먹는 것을 비평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비평들이 과연 철학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 맛에 관한 철학적 담론은 가능한 것일까? 이는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이다. 좋은 그림에 대한 철학적 기준은 대체로 어느 정도 표준이 잡혀있다. 이 표준들, 또는 이런 표준에 대한 연구를 우리는 대체로 미학이라고 부른다. 미학에 관한 철학자들의 글은 넘쳐난다. 그림에 비해 적은 편이긴 하지만 좋은 음악의 기준에 대한 철학적 연구도 그럭저럭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한때 아도르노라는 철학자를 좋아했는데, 그는 근대성의 파괴와 합리성의 전복 그리고 상품화할 수 없는 난해함을 표현하는 노래가 최고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재즈를 매우 싫어했다, 같은 입장들. 하지만 맛에 관한 철학책은 정말 찾기 어렵다. 심지어 맛이라는 영어단어(taste)조차도 미학적 태도 전체를 아우르는 ‘취향(taste)’이라는 의미로 쓰이면서, 맛의 철학은 그 자리를 잃어간 것만 같다. 스크루턴의 글에서 나는 이 잃어버린 ‘맛의 철학’을 어렴풋하게 넘볼 수 있었다. 맛은 와인이라는 대상의 파생물이 아니라 맛 자체가 독립된 대상이다. 하지만 맛은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다른 관념들과의(특히 다른 맛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미학적 대상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래서 직접 철학적인 개념들을 동원하는 부분보다는 오히려 각 지역의 와인에 관해 짤막하게 설명하는 2장의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맛’을 다루는 철학적 방식의 한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쓴 단어는 아니지만) 와인을 철학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총체성’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독특한(즉 고유한) 맛을 만들어내는 데 동원되는 자원은 객관적 방식으로 계측이 불가능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토질이 그렇고, 포도의 품종이 그렇고, 그 포도가 그곳에 흘러들어오기까지의 역사가 그렇고, 와인을 만들어내는 방식 - 오크통 나무의 재질이라든가, 숙성의 기간이라든가, 대충 넘어가는 화학적 변화라든가 등등 - 이 그렇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능숙하게 지적으로 다룰 줄 아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야말로 와인의 총체성을 제대로 ‘느낄’ 줄 아는, 이 세계 속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지닌 개체들이다. 그럼에도 총체성이라는 말처럼 애매한 말이 또 없다. 이 글 전체에서 ‘와인’이라는 자리에 다른 것을 넣는다면, 예를 들어 탁주(혹은 청주나 소주)라든가, 맥주라든가, 위스키라든가, 코냑이라든가, 하는 대체어를 넣는다면 와인과 완전히 다른 담론이 탄생할 수 있을까? 설사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총체성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제작과정이라든가 탄생설화와 같은 부분적인 어떤 것에서 달라질 뿐일 것만 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결국 그래서 ‘그건 맛있어요?’라는 질문에 ‘네, 맛있어요’라거나 ‘아몬드 향에 태운 오크 통의 향이 살짝 덧입혀져서 구수한 부르고뉴 와이너리의 전통이 영국 신사의 깔끔함과 섞인 절묘한 블렌딩이로군요!’ 따위의 알듯말듯한 말들만 늘어놓게 되지 않을까. 스크루턴 또한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경계의 존재론’ 같은 표현을 사용하다가도, 짐짓 모르는 척 허세가 섞인 (것 같아 보이는) 말들을 풀어놓곤 한다. 여전히 맛의 철학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지의 영역인데다가 어디에선가 표준적인 모형을 배울 방법도 경로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 책조차도, 뭔가 본격적인 것 같지만 예비적 시도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이 책에 인용된,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히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크루턴이 다른 술에 대해서 얕잡아볼 정도로 와인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가 있다. 맥주가 취향인 나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언사들을 마구 남발하는데,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가 이상한 저서를 쓴 이유가 와인이 아닌 맥주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것들. 또 다른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멋드러진 묘사 속에서 살아숨쉬는 와인들을 한 번쯤은 맛보고 싶어졌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와인들 대부분은 한 병 가격이 10만원을 넘어가는 비싼 물건들이라 나는 그저 침만 흘릴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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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와인의 관계가 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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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스크루턴의 색다른 와인 가이드
친구들의 모임에 있어서 와인 한잔은 이제 일상생활이다. 언제부터인가 와인은 우리 삶 깊숙히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나처럼 술을 먹으면 얼굴이 달아올라서 술먹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가끔씩 친구들과 우아하게 한잔하는 와인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고 알콜의 달콤쌉살함이 싫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책을 봤을때 철학자와 와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철학자에 대한 생각은 고지타분하고 고지식하다라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알코올이 있는 와인과는 맞이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건 나의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따. 저자는 이책을 통해서 와인에 대한 사색으로 우리를 이끌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나는 와인을 철학의 동반자로, 철학은 와인의 부산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와인은 음식과 훌륭한 짝을 이루지만 철학과는 더욱 좋은 짝이 된다. 와인을 마시며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철학 안에서 술을 마시는 법을 물론, 술 한잔 속에서 사색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의 와인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말이다. 사실 나도 적당한 양의 와인은 사람에데 마이너스가 되기 보다는 플러스가 되는 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와인의 알딸딸함은 다른 술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기분이 좋고 포도의 과실에서 전해져오는 진한 포도의 향의 술의 알콜보다 향에 취하게 해서 더욱 기분을 좋게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와인에 관한 이야기에서 부터 자신의 처음으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고 프랑스 와인의 매력에 빠질수 밖에 없었던 상황, 와인이 되기까지 숙성과정, 만들어지는 곳에 따라서 달라지는 와인의 가격과 맛, 프랑스의 와인과 그외의 국가들의 와인들까지 정말 끝임없이 와인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져나왔다.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것에서 벗어나서 와인에 대해서 많이 공부한 것이 느껴졌다. 더불어서 철학과 와인을 연결하면서 설명하고 있었따. 와인 안에는 지식, 즉 우리 자신이 와인에 부여한 지식이 있다. 당신은 그 향기를 가까이서 맡을 때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 안에 쉬고 있음을 지각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와인에 중독된 와인 중독자인 줄 알았다. 책을 읽는 내내 와인예찬은 끝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단순히 와인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좋아하는 철학자였다. 와인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연관지어서 이야기 함으로써 와인의 즐거움을 철학으로 풀고 있는 것 같아서 신선했다. 만약에 일반 철학자의 책이었다면 읽는 내내 지루했을 것이고 읽고 나서도 도통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없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더 와인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와인 특유의 다양한 향과 맛을 즐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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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와인애호가인 로저 스크루턴의 이 책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책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와인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단지 맛봐 보는 수준이 아니라 와인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정도로 와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영국 태생이지만 스스로 마음의 고향이 프랑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프랑스 와인에 대해 깊은 사랑에 빠져있는데 그가 말하는 와인 한 두 가지만이라도 구비해놓는다면 충분히 와인애호가의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어느 정도로 와인에 대해 조예가 깊냐면 와인 시음회에 초대를 받거나 와인 신상품이 나올 때 감식을 부탁받을 정도이니, 이 책은 필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와인에 대한 정보만 있다고 한다면 읽는 '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럴 걱정은 전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필 같은 어조로 진행되어 정보만 가득 받아들일 필요없이 재미있게 읽기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며, 친절하게도 새로운 와인을 이야기할 때면 그 와인의 사진까지도 수록해두어서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어도 손쉽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철학자라고 하면 왠지 어려운 내용만 이야기할 것 같아서 손이 쉽게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스러운 어조를 잃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예전엔 정보만 가득 담겨진 실용서 위주로 책을 봤는데 이제는 정보도 있지만 일단 읽기에 부담이 없는 수필체의 글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실용서는 소장하기에도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 않기에 이 책이 딱이다.
그가 처음 접한 술은 어릴 때 엄마가 담그시던 엘더베리 과실주였다. 영국에서 자라 포도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과거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연상되는 그 과실주가 그에겐 최초의 술이자 모든 것이었다. 항아리에서 부글거리던 거품이 잦아들면서 휘파람 소리를 내고 진홍빛 액체가 되면 그것을 병에 담았다가 색이 충분히 빠졌다고 생각되면 다시 항아리를 담아서 2년 동안 숙성시키는 과정을 보내고 나면 엘더베리 과실주는 고향으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실주와 연관되지 않았던 날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그에겐 술이란 고향이나 집과 동일어가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에 장학금으로 입학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친구 하나와 교수 한 분께 와인으로의 세계에 초대를 받고 열렬한 바쿠스 교의 신자가 되었고 그것이 프랑스 와인 뿐 아니라 그 밖의 와인에 대해서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전문가로의 발돋움의 시작이었다. 총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 [프랑스 와인 기행]과 [프랑스 바깥의 와인들]이 소개가 되어 와인 애호가들이 특히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술을 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수필임을 적나라하게 익힐 수 있는 부분인 1부의 [나의 와인 입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와인 애호가이기도 하지만 철학자이다. 그가 철학자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은 2부의 [의식과 존재]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오히려 1부 앞에 위치한 [권두부록 : 철학자와 와인]이 더 '철학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철학자 흄에 대해 읽을 때는 백포도주 샤토 쿠테나 샤토 셉티 몽바지약을 마시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여러 유명 철학자들과 와인을 그 특성대로 연결시켜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철학자다운 것이 아닌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와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와인이 알코올이라는 범주로 묶는 것을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와인은 술이 아니라 문화이자 기술이자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철학과도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럽다. 요즘 들어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철학이 현실 세계로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 놀랍다. 전에 본 책은 철학과 축구를 연결시켜 여러 주제에 대해 아주 심오하게 분석하는데 구성 자체가 전반전, 휴식, 후반전,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나열되어 있어서 읽기에 참 유쾌했다. 소소한 겉테두리에서부터 속알맹이까지 다 신경을 썼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현실 세계 속으로 들어간 철학으로 우리도 철학적 사고방식을 구사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현실 세계에 나온 철학을 더 기다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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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를 읽고 내 자신 솔직히 술하고는 관계가 적다. 술과의 분위기를 잘 맞출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은 나이가 오십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어느 정도 나이도 먹었다고 생각하지만 젊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 상으로 술자리에는 같이 하더라도 한 마디로 ‘무대포’ 자체였다. 무조건 가리지 않고 술과 안주를 먹어 버리는 습관들이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도 술은 얼마든지 먹을 수는 있지만 일부러 제한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자리가 아니면 많은 술이 아니라 작은 양만 마시려 하고 있다. 술의 종류는 엄청 많다. 우리의 전통주인 막걸리를 비롯하여 소주, 맥주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간혹 양주도 맛볼 때가 있고, 포도주인 와인도 대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솔직히 아주 드물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술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가끔 생각으로 와인에 대한 부러움이 들 때가 있었다. 와인은 다른 술과는 분위기가 정말 다른 곳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있는 공간에서 와인을 즐겨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내 자신에게 이 책은 너무나 좋은 지식과 함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고, 앞으로 와인과 함께 하는 좋은 자리도 가져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정말 와인은 6천년이나 거슬러 올라갈 만큼 인류와 그 시작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래된 술이라 한다. 그러다 보니 와인의 종류를 포함하여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그에 맛도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한다. 가끔 가보는 백화점의 와인 판매 코너를 지날 때면 이름도 모를 와인을 볼 때가 있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들어가 구경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을 통해서 와인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내 자신의 생각때문인지 역시 저자는 철학자와의 관계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철학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와 함께 와인을 공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와인에 대한 평생을 걸친 저자의 꾸준한 사랑에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와인을 소개하면서도 한 병 한 병에 개인의 경험과 사연이 담겨져 있어, 와인이 술이 아니라 평생 함께하는 친구같이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자신과 같이 비록 와인을 즐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앞으로 이것을 계기로 나 자신에게 맞는 나만의 와인을 가져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와인은 취하기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무슨 일이든지 저자와 같이 끈질기게 도전해 나가는 자세에 대해서는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와인과 철학자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