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테판 츠바이크 (1881~ 1942)뛰어난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로 널리 알려진 독일 문학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허튼 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작품 <어제의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기 말 빈의 모습과 그의 문학적 성취, 시대를 흔들었던 대단한 인물들과의 교류등 츠바이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1,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브라질로 망명해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던, 그의 생은 어찌보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으로 보였다.하지만,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의 삶이 그의 소설에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섬세한 감정 묘사로 드러나고 있는듯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작품이 있다.
<이별여행>
처음 만난 지 9년이 넘었고, 그 이후로 너무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기에 두 사람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을 몇 배나 더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 ! 이 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던가! 얼마나 멀리 헤어져 있었던가! 9년, 4천 밤, 4천 낮이었다. 이 날이, 이 밤이 오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었던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갔던가! 그의 기억은 그 긴 시간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둘이 처음 만났던 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p 12
연로한 사장의 부탁으로 입주해서 개인비서로 일하게 된 23살의 루트비히는 그 집을 방문한 날 사장 부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 감정의 실체를 알지 못하다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부인의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사장의 제안으로 2년간 멕시코로 떠나있게된 루트비히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정해진 날짜에 귀환할 수 없었다. 편지도 주고받는 것이 어려워졌고 그녀의 이미지는 조금씩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식물만이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는 자기 고유의 색을 유지하고, 꽃과 줄기가 시들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땅속의 새로운 자양분과 하늘의 새로운 빛이 필요하다. 하물며 인간의 꿈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언뜻 보기에 지상의 것이 아닌 듯한 꿈조차도 현실적인 감각에서 양분을 얻어야 하고,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징표의 도움이 필요하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추억의 잎도, 열매도 메말라버리기 마련이다. -p 48
9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다시 만난 그녀에게 예전의 그 감정을 다시금 느끼지만 긴 시간 동안의 헤어짐은그들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되었고, 그는 이별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했다. 그들이 아직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을때 같이 걸었던 산책길을 다시 걷게된 그들은 같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루트비히는 그녀가 어느 날 밤 자신에게 읽어주었던 베를렌의 시 한구절을 떠올렸다.
쓸쓸하고 얼어붙은 오래된 정원에서 두 유령이 흘러간 과거를 찾고 있네.
그들 두 사람은 과거를 찾아 헤매던 그림자가 아니었던가. 이제 현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과거를 향해 막연한 질문을 던지던 두 개의 그림자가 아니었던가. 살아있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그림자들, 그녀도 그도 이제는 더는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과거를 쫓는 헛된 노력을 계속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면 서로 달아나고, 서로 붙잡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그들은 발밑에 길게 드리워져 있던 그 검은 유령과도 같은 존재였다.-p84~85
1929년에 집필된 이 책은 첫 제목이 '과거로의 여행' 이었다고 했다. 감정이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헤어져 있는 동안 그녀의 이미지가 흐려진 적도 있었고,그녀의 몸도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루트비히는 과거를 소중히 했다면, 오히려 그녀는 현실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루트비히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지라도 그 차이가 그들로 하여금 이별여행을 떠나게 한 요인이 되었던듯하다. 이 여행은 단순한 이별여행이 아니라 과거와의 이별여행이 아니었을까?
역자는 츠바이크의 글을 대중적이지만 통속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입주를 하고 사장 부인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소재는 분명 통속적인 소재였기에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다행히 전에 읽었던 <초조한 마음>이나 <모르는 여인의 편지>에서 처럼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루트비히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란 감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답이 없는 질문을 또 던져보게 된다.
<당연한 의심>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고즈넉한 시골에 자리를 잡은 노부부와 이웃 사이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다.
나는 그가 살인범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중략)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에 내 마음속의 의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나와 마주칠 때마다 당당하면서도 상냥스럽게 다가오는 그를 보면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p 89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걸까? 그리고 살인범을 마주했을 때의 저 공포는 어떤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그는 이웃에서 기르는 '개'였다. 개의 마음을 인간의 입장에서 묘사하는 장면들은 정말 개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을 정도였다. 우리는 '당연한 의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이 '당연한 정답' 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선한 누군가를 범죄자로 낙인찍어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당연하쟎아'라는 말 한마디로······
츠바이크는 등장인물들( 동물도? )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줄거리를 떠나서 한 문장, 한 문장 읽는 재미가 있다. 츠바이크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죽을때까지 교류를 했었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소양은 다분했지만, 그와의 만남도 인물들의 심리를 통찰하는데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전기작가로 유명하지만 <위로하는 정신>으로 몽테뉴만을 만났을뿐이다. 다양한 작가를 만나지 못한 탓에 전작을 읽는 작가도 몇 없지만, 그 중 츠바이크가 들어있다. 앞으로도 그의 책은 차근 차근 읽어나가 볼 생각이다.
|
|
[책의 구성]은 1+2다. 표제의 그의 작품 「이별 여행」과 함께 또 다른 중편 소설 「당연한 의심」이 같이 실려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47쪽에 이르는 그의 평전이 부록처럼 책의 말미에 들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둬야겠다. '이사벨 오쎄'(비평가)가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글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의 앞·뒤에는 으레 츠바이크를 소개하는 글(대개가 출생과 죽음, 그리고 대표작품 몇 개 정도)이 있지만, 이처럼 누군가가 쓴 평전이 수록된 책은 없었다. 같이 주문한 책은 모두 받았지만 유독 이 책은 2주가 걸렸다. 수령을 못 해 1:1 문의를 하니 보낸다고 하고, 그러나 pc에서는 '품절'로 표시되고 '취소'란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다시 1:1 문의와 메일로는 금방이라도 발송해 줄 것처럼 친절한 답변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읽고 싶었고 기다렸다. 2주만에 받았고 책 검색창에 곧바로 '절판'으로 바뀌어 있다. 마지막 책을 내가 받은 셈인가. 출판사에 마지막 남은 전시용 책을 '후후' 물어서 내게 준 것인가. 어쩌면 새 책을 구매하고도 전산 오류로 리뷰 포인트를 못 받을 수 있다. 리뷰 씨름, 2시간이 걸렸다. 꼭 주시라.
「당연한 의심」은 그의 작품에서 특이한 면이 있다. 심리를 파고드는 글을 썼던 츠바이크가 동물을 등장 시켰다. 글 속에서 동물의 심리도 나름 그럴듯한 추론으로 파고들었다. 의인화 해보면, 누군가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사람이 어느 날 사랑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로 바뀔 때 우리는 그의 사랑을 빼앗기 위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파고든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츠바이크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마지막 짧은 한 문장에서 이는 처음 사랑을 준 이가 결국 파국의 원인이라는 나름의 해석을 마지막 글에 넣었다.
작품 「이별 여행」을 남겨본다. 이유는 작품이 쓰인 년 도와 제목의 이력, 그리고 그의 생애를 생각할 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작품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별 여행]은 현재와 과거 다시 현재로 오간다. 지금은 프랑크푸르트 기차역.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려 한다. 기다리던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혹시나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마음을 누르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감싸는 루트비히. 일등석 표에서 얻을 수 있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은 접어야 할 만큼 객실은 혼잡했고 말 한마디 나눌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둘은 꿈나라로 빠져든다. 9년. 4천 밤, 4천 낮. 루트비히는 그녀를 처음 만나던 기억으로 돌아간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근근이 살았지만,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던 루트비히는 대기업에 입사한다. 욕심내며 일한 득에 실력을 인정받았고 사장으로부터 집에 거주하는 개인 비서가 되어 좀 더 가까운 심복이 되어 줄 것을 제안받는다. 가난했지만 당당했던 루트비히. 그가 가진 졸부를 보는 굳었던 마음은 그곳에서 만난 여주인을 본 순간 사라진다. 그녀의 표정과 자태. 그녀는 '자유의 포기'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루트비히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지내면서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배려하며 거리를 두고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느낀다. 보호받지만 감시당하지 않는 느낌. 그렇다. 그녀 또한 보이지 않게 루트비히를 마음에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이별. 큰 프로젝트를 위해 곧 멕시코로 가야 하는 루트비히다. 그녀와 마지막 밤 격렬한 포옹과 키스를 하게 되지만 그녀는 그를 밀치고 2년 후를 약속한다.
그렇게 헤어진 2년의 세월 동안 서신으로 서로를 확인하지만, 그사이 전쟁이 일어나고 귀국길과 서신길이 막힌 루트비히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7년의 세월이 흐르고 종전이 된 어느 날, 익숙한 글씨의 편지를 받게 되는 루트비히는 직감적으로 그녀임을 알아차린다. 남편은 죽었고 생활을 위해 슬퍼하지도 않았다는.... 그보다 그녀는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에 가슴 뭉클해 한다. 2년 후 사업차 독일을 가게 되는 루트비히는 그녀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의 늙은 몸은 마음처럼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루트비히는 그녀에게 그 옛날의 하이델베르크로 마지막 이별 여행을 제안하게 되고 그녀는 미친 짓임을 알면서도 여행길에 오른다.
기차는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다. 꿈꾸듯 과거를 여행하던 그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눈길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찾는다. "정말 오래 걸렸어요" 그는 생각한다.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나 자신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그녀의 육체를 막연히 의식한 채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이 대상 없는 욕망에만 충실하자.' 그녀가 말한다. "참 좋았는데.... 아쉽군요. 나는 기차를 타고 계속 가고 싶었어요."(69쪽)
[이별 여행] 현실에 대한 저항이다. 그들이 지나는 길에 군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군중을 보게 된다. 이 행진하는 군중을 보며 옆의 그녀도 잊은 채 발악같은 상념을 한다.
'미친 짓이야! 그야말로 광란이군! 전쟁을 한 번 더 해보자는 건가? 내 인생을 망가뜨린 그 전쟁을? 하나같이 분노로 경직된 그들의 얼굴. 왜 이런 금속 소리를 질러대며 아늑한 6월의 아름다운 저녁을 파괴하려는 걸까? 선의와 신뢰의 멜로디가 흐르던 이 세상을 쇳소리 나는 군중의 발소리가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분노와 폭력의 고함과 눈빛이 내뿜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증오, 증오, 증오였다! (73쪽)
성곽을 걷는 두 사람. 가로등 불빛에 겹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그림자. 홀린 듯 눈길을 사로잡힌 루트비히. 이 그림자 유희가 말해주는 어떤 것, 아주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어떤 것, 마음으로 느꼈던 것, 그 옛날 그녀가 거실에서 들려주었던 '베를렌' 시다.
그는 전율하고 경악하면서 인식의 참뜻을 깨닫는다. 살아 있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그림자들, 끊임없이 과거를 쫓는 헛된 노력을 계속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며 서로 달아나고, 서로 붙잡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과거를 통해 현재의 어떤 진실을 들려주려는지 그는 더욱더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 과거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85쪽)
집필. 출간이 아닌 집필이었다. 「이별 여행」은 미발표 원고로 남아 있다가 1987년에야 출간되었다. 이 때문인지 뭔가 확실한 종결이 아닌 느낌이다. 같은 해에 『푸세』를 출간했고 프랑스에서는 『감정의 혼란』, 『어느 여인의 24시간』이 출간되었는데도 「이별 여행」은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츠바이크는 이 중편 제목을 '과거로의 여행'으로 붙였다가 이후 '진실에 대한 저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바램 같은 추론은 뒤에 무엇을 더 담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루트비히가 그녀와의 마지막 여행길에서 만난, 또다시 전쟁할 듯 행진하는 군인들에서 받은 충격과 발악 같은 상념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츠바이크. 루트비히의 과거를 모두 뺏어버린 전쟁. 츠바이크의 이별 여행은 현실을 부정하고 진실했던 과거로 돌아가고픈 저항이자 몸짓은 아니었을까.
|
| 츠바이크의 소설들은 잘 읽힙니다. 다만 문학적인 감동은 잘 모르겠어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인물평전들이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나 '어제의 세계' 같은 경우는 정말 재밌게 읽기도 했고 인문서인데도 그 가독성이 뛰어나서 받은 감동이나 인상도 깊었습니다. 체스이야기는 역시 츠바이크구나 하면서 읽었는데 이번에 구입한 그의 소설들은 솔직히 몰입도는 큰데...역시 문학적인 감흥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어서. 문학은 지적능력, 그 깊이, 혜안, 지성, 안목 그리고 필력과는 또 다른 문제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