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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힘이 세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내용보기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겨 놓고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 그가 남긴 작품들 대부분이 살아 있는 자로서의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을 동일시하며 호도하는 세인들에게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도 않은 그에게서 빛나는 기품마저 느껴진다. 전쟁이 한창 중일 때 다자이 오사무는 당대의 문학 흐름에 끼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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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겨 놓고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 그가 남긴 작품들 대부분이 살아 있는 자로서의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을 동일시하며 호도하는 세인들에게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도 않은 그에게서 빛나는 기품마저 느껴진다. 전쟁이 한창 중일 때 다자이 오사무는 당대의 문학 흐름에 끼어들지 않았다.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를 그만의 위트로 재해석한다. 


  지금을 쓸 수 없다면 과거로 올라간다. 일본인이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끌고 내려와 현재를 그린다. 소설가의 운명은 전쟁 중인 조국을 미화하는 글을 써야 하는 불운에 맞서기보다 옛날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폭격이 시작되고 가족이 방공호로 찾아가는 장면으로 펼쳐지는 단편 「옛날이야기」는 네 편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작스러운 공습으로 방공호로 간신히 몸만 피한다. 어둡고 두려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가족. 아버지는 아이에게 '옛날, 옛날 이야기야'라는 말로 공포를 잠재우려 한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기이한 기술을 가진 아버지는 그림책을 읽어준다. 책을 소유하지 않는 아버지는 한 권의 그림책에서 공상을 펼친다. 


  그림책과는 다른 이야기가 바깥은 전쟁 중인 배경으로 아이들에게 흘러간다. 방공호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아버지의 긴 이야기는 혹부리 영감을 우라시마를 토끼, 너구리, 혀 잘린 참새를 소환한다. 죽음의 공포를 아이에게 심어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공상은 몽상과 만나 현란한 세계를 내보인다. 


  이야기는 국경이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엇비슷한 구조로 전개된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혹부리 영감'은 성격의 희비극 차이라는 걸 내세워 인물이 맞닥뜨린 운명을 이야기한다. 혹을 떼인 노인과 혹 떼러 갔다가 붙여온 노인은 선인과 악인이라는 대결보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다른 점으로 운명이 바뀐 점을 내세운다.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교훈 하나씩을 던져주며 마무리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같은 훈훈한 결말이 목적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혹부리 영감'을 통해 억지로 꿰어 맞춘 교훈적인 결말을 비웃는다. 


  '우라시마'에서는 모험심이 부족한 다자이의 분신 같은 우라시마의 모험기가 그려진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거북이를 구해준 우라시마는 방탕이나 주사가 없는 예의 바른 장남이다. 여동생은 우라시마에게 모험심이 없고 구두쇠라고 비난한다. 전에 도와준 거북이 찾아와 지난번 일에 대한 답례로 용궁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한다. 머뭇거리는 우라시마에게 거북은 모험심이 없다는 소리로 그를 자극한다. 우라시마와 거북은 실랑이를 벌인다. 


  용궁에는 비판이 없다는 거북의 말을 들은 우라시마는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인간 세계와 다른 그곳에 광경과 신비로운 용녀의 모습에 취해 구경을 하는 동안 우라시마는 육지로 돌아가려고 한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조개껍데기를 연 순간 나이를 먹은 우라시마. 그가 용궁 경치에 취해 있는 동안 바깥세상은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러 있다. 세월과 망각의 구원으로 10년 동안 행복한 노인으로 살아갔다는 이야기의 끝에서 평범한 옛날이야기의 구조는 뒤집힌다. 


  아이들이 읽기에 잔혹한 동화 '부싯돌 산'을 각색한 아버지는 이야기를 미녀를 짝사랑하는 아둔한 너구리의 고생기로 바꿔 버린다. 알고 보면 동화는 잔혹 동화로서 아이들이 읽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동화는 초판에서 아이들이 읽기에 무리가 있는 부분들을 각색한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할머니탕을 끓인 너구리의 과거를 생략한다. 이후에 너구리의 나쁜 짓을 응징하는 토끼를 예쁘고 어린 나이로 설정한다. 너구리는 자신의 나이를 속인 뻔뻔한 남자로. 토끼가 너구리를 골려주는 이유는 자신의 미모에 반해 구애를 심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애정 활극으로 이야기는 변신한다. 예쁜 여자와 눈치 없는 남자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혀 잘린 참새'를 다시 쓰기 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 다자이는 이렇게 밝힌다. 


나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일본 제일도, 제이도, 제삼도 아니고 또 이른바 '대표적 인물'도 아니다. 이것은 단지 다자이라는 지은이가 어리석은 경험과 빈약한 상상력으로 창조해낸 아주 평범한 인물들뿐이다.

(다자이 오사무, 「옛날이야기」中에서)


  일본 제일의 남자 모모타로 이야기를 생략하는 이유를 작중화자는 일본 제이, 제삼이라는 경험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익살을 떤다. 일본에서 가장 쓸모없는 남자가 등장하는 '혀 잘린 참새'에서 다자이는 다시 한 번 그의 분신 같은 인물을 창조한다. 몸이 약하고 스스로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남자. 자신의 시중을 들던 여자와 결혼을 한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부인에게 말을 하는 남편이다. 


  할아버지네 초가집 주변의 대숲에서 다리가 접질린 참새를 발견한다. 참새를 주워와 간호를 해주고 루미라는 이름도 붙여준다. 이 참새가 말을 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평소에는 자신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던 남편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어떤 아가씨냐고 아내가 추궁한다. 참새라고 말을 하자 아내는 참새의 혀를 뽑아 버린다. 질투에 눈이 먼 부인과 한량으로 불리는 남편 사이에 끼어든 참새. 이야기는 허술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소설가란 이야기를 만들고 꾸며내고 문장으로 옮기는 노동자. 혹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이야기교의 맹렬한 신도. 이야기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 위의 방랑자. 삶과 죽음에서 방황하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수레에 담긴 이야기를 밀어 절벽으로 떨어뜨려 놓고 하강을 즐긴다. 그 자신이 떨어지면서 놓치지 않았던 소설 초고의 제목인 「굿 바이」가 떠오른다. 그렇게 안녕을 고한 이야기는 지상에 남아 어느 아버지가 '옛날, 옛날 이야기야'로 불안에 떠는 아이를 위한 자장가로 불린다. 



s*****m 2018.06.12.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이런 재미난 면이!!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이런 재미난 면이!!" 내용보기
내가 아는 다자이 오사무란 <인간실격>에 나오는 나약하고 비겁한, 그러면서도 지식인의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라는 인상이었다. 어려움에 굴하고 끊임없이 반항하려 하지만 결국은 주어진 틀에서 못해 자해만 일삼는 한심하고 비겁한 남자의 일면이랄까. <인간실격>이 저자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늘 다자이 오사무를 왜곡된 시선으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이런 재미난 면이!!" 내용보기

내가 아는 다자이 오사무란 <인간실격>에 나오는 나약하고 비겁한, 그러면서도 지식인의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라는 인상이었다.

어려움에 굴하고 끊임없이 반항하려 하지만 결국은 주어진 틀에서 못해 자해만 일삼는 한심하고 비겁한 남자의 일면이랄까. <인간실격>이 저자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늘 다자이 오사무를 왜곡된 시선으로 봐왔던 게 사실이었다. 아, 한가지 단서를 달아야겠다. <쓰가루, 석별, 옛날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주위의 추천 때문이었다.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나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기행문 형식의 '쓰가루'와 '옛날이야기'를 읽는 순간,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려야만 했다.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박하고 고지식한 선비의 면모까지 엿보이는 옛날이야기는 일본의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라고 하니, 이야기를 가공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글솜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일본의 고전을 새롭게 읽는 기분도 남달랐다. 근대 작가의 눈으로 보는 일본의 민담이라니. 앞으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k******o 2012.03.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