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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밝은 사람은 여러 모로 유리할 때가 많다. 얼굴이 밝다는 것은 성격이 밝을 확률이 높고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밝은 표정의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사람에겐 필시 후한 평가가 따라다닌다. 그 중 예쁘기까지 하면 우린 서스럼없이 '미소 천사'라는 수식어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게리 분은 항상 웃는 밝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별명이 '얼간이'다. 친구들은 모두 그를 게리라 부르지도 않고 얼간이라고 한다.
게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밝은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웃지도 않을 타이밍인데 게리는 웃고 있다. 그것도, 하!하!하! 하며. 게리의 억지 웃음과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쉬지 않고 해대는 것을 주변에선 참을 수 없다. 화내는 법이 없고 놀려도 웃고 슬프면 더 크게 웃는 게리는 보통의 사람들 눈에는 '얼간이'로 비친다. 하물며 이제는 부모님들조차 제발 농담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게리가 특정 기간 동안 농담을 하지 않으면 100달러를 주겠노라 선언할 정도이니.
미국의 문화를 바탕이고 그네들의 정서가 약간의 괴리감을 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황 설정 자체에 독자는 안쓰러움과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내 주변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보통의 친구처럼 대할 수 있을까. 나도 그렇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리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가 평균치에는 근접하게 변하길 바랄 것 같다. 다행인지, 게리 자신도 스스로를 알고는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취급하는지. 그런데 그는 분함보다도 유머를 함으로써 오는 희열이 더 커서 도저히 보통의 사람 수준으로 맞출 수가 없다. 그건 위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맞추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용납이 힘든 것이 당연할 수밖에다. 그런데, 부모님의 소원이고 부모님과의 약속이라 두 눈 질끈 감고 농담하지 않는 게리로 변신해본다. 자, 변신의 결과는?
사람들이 게리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단지 농담을 감췄을 뿐인데 사람들이 얼간이가 아닌 게리로 부르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늘어난다. 게리는 혼란스럽다. 왜 자신의 모습을 감춰야하는지, 하고 싶은 농담을 참아야하는지 여전히 이해불가지만 오직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참아낸다. 그렇지만 개그 장기자랑만큼은 포기하기 싫다. 잠시동안의 위선자로 살았지만 게리의 진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결정되는 것이 위선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래서 게리는 차라리 자신은 얼간이라고 전교생과 학부모들 앞에서 커밍아웃한다. 그리고 자신은 분별력있는 유머로 자신의 스탠딩 개그를 장기자랑 무대에서 선보인다.
잘 읽히는 성장 소설쯤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크게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주인공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자꾸만 생겨난다.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도저히 가져지지 않는다. 가식과 위선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도 않고 남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의 시선'으로 개인을 내려다보고 그 시선의 범위 내에서 평가를 내린다. 씁쓸하다. 게리처럼 어디선가 목놓아 울고 싶을 때, 지독히도 자신을 감추며 위선 떨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볼 때, 그 어디쯤 위태하게 경계를 오가는 자신을 태연히 건조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자신을 다독이고 만다. 나는 게리의 선택도 그런 선상이라고 본다. 단, 평균치 근처에 균형을 맞추되 그 위에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아, 뭐라고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도 게리처럼 그냥 울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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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 어려운 것은 추임새를 얻는 소설이다. ‘대박’ ‘우와’ ‘진짜!’ 말하는 이의 표정이 더불어 떠오르는 그런 감탄사말이다. 맞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세 감탄사를 모두 사용해야만 했다. -끝. 더 이상 쓸 말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 없다고?) ‘말은 제주도에 가면 있지!’ 이 말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면.... (말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으니) 그렇다면 동물병원으로 가야지!!! (여기서 몇몇 사람들은 모니터를 향해 주먹을 날릴 지도 모른다. 이 글의 주인 공 게리 분은 이러한 유머를 구사하는 아이이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격한 거부감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한 말씀.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농담을 지.껄.이.는 게리 분은 결국 자신만의 코미디를 만들어내었고 모든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2 이 책에 관한한 외형적인 문제에 있어 출판사를 탓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저는 청소년 문학이에요’라는 표지는 (청소년이 아닌 일반인들이) ‘이번 달에는 뭐 좀 읽을 만한 책이 없나?’라고 둘러보기에서 과감하게 지나치기에 충분했다. 내가 청소년 소설을 보고 청소년소설표지다움을 탓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탓하고 싶은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이다. 그렇게 지나치고서 영영 이 소설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위트 있고 개성 넘치는 주인공을 만나지 못한다면 약간의 가장을 보태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헛헛해질까! 굉장히 잘 차려입은 댄디한 광대를 보고 지레짐작으로 ‘정말 재미없겠다’이러며 돌아섰는데, 알고 보니 그가, 유머로 여러 사람들의 배꼽을 훔치기로 유명했다나 뭐라나, 이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너 저 댄디한 광대가 한 유머 들어봤어? 나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어?” “아니, 난 재미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음, 그럼 너랑은 말이 안 통하겠구나! 잘 가!” #3 이 책을 읽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를 들라면, 돌베개라는 출판사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문서 위주인 돌베개에서 나온 소설이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기심에게 감사를!)
#4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는 당신을 웃게 만드는 얼간이다.” 나와 당신 사이는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나인 게리 분Gary W. Boone은 하루라도 농담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돋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녀석이다. 문제는 아무도 게리의 농담에 웃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런 아들은 귀찮게 여기며 ‘제발 그 시답잖은 농담 나부랭이를 지껄이지 말라’는 부모님이다. 그리고 당신은 얼간이 취급을 하며 게리 분을 가지고 노는 동년배들이다. 또한 당신은 게리 분을 저능아 취급을 하는 선생님들이다. 창의성이 없이 유머집 유머만 읊는 아이는 ‘당신들로부터’ 얼간이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출발선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완성된 결과 혹은 그 이상을 바라는 분위기에서 어린 ‘광대’들은 필연적으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리 분은 스스로 살아남았다. 물론 그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의 보살핌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게리 분은 스스로를 ‘희화화’하여 살아남았다. 멋있게 치장하며 억지로 외형을 채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남은 것이다.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기,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하기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작은 소년의 눈물 서린 투쟁이 그리 편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고 그와 같이 울었다. 나 자신의 개성을 깎아내고 망치로 쳐내서 무난한 나를 만드는 게 ‘계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독한 어리석음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게리 W 분이. (W는 볼프강의 약자란다.; 그가 이렇게 언급하기를 희망함) #5 작가의 필력이 단단한 청소년 소설이다. 첫 장부터 밑도 끝도 없이 유머를 마구 집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가볍지만 않은 진중함도 더불어 있다. 우리가 ‘달인’들을 보며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러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유머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나기에, 가볍게 읽고 가볍게 덮을 수도 있고, 가볍게 읽고 무겁게 덮을 수도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인 루이스 새커는 J.D.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와 커트 보네거트를 동경하고 작가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읽어보면 J.D.샐린저의 메시지와 커트 보네거트의 유머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학창 시절에 읽고 ‘마음의 멘토’로 삼아 음울한 기분에 젖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 커트 보네거트를 알게 되어 조금은 헛헛한 웃음이라도 웃게 되었다면, 이 책은 그들에게 ‘새롭고 달콤한’ 애피타이저와 같은 작품이 되기에 충분할 게다. 설사 이 두 작가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이 지니는 유머와 메시지에 어느새 녹아들어가서 추운 겨울,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유머로 데워질 게다. 한 해의 마지막에 만난 기분 좋은 웃음과 같은 책이었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게 만들어 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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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건 그 때문이야. 그래서 '유머'라고 하는 거라고.개가 언제 농담하는 것 봤냐?' 스텐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 꿈인 열두살 게리 분이 있다. 그가 어릴때 아빠가 해주는 농담이 좋았던 게리는 점점 아빠가 웃음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는 더욱 아빠에게 웃음을 찾아 주고 싶고 사람들이 웃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을 한다. 웃긴 이야기인데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던가 자신이 웃긴 이야기를 하던가 그가 늘 웃기에 친구들은 그를 '얼간이 혹은 바보' 라고 말한다. 그의 이름보다 '얼간이' 라는 이름으로 더 불려진 게리 분은 스텐드 코미디언이 되기 위하여 학교의 숙제는 늘 뒤로 미루고 코미디 연습에 더 시간을 할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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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때문에 도서관 임원회의가 취소되었다. 그 연락을 예전 핸드폰으로 보낸 회장 땜에 나는 새 핸드폰을 들고 바람에 맞서며 도서관에 갔다. 어라 아무도 없다. 늘 일찍 오는 친구가 없어 이상하다 싶어 문자를 날렸더니 태풍 탓에 취소란다. 밥도 먹고 나왔고, 출근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다. 딱 2시간 안에 읽을 만한 책은 청소년용 도서다. 루이스 쎄커의 신간이다.
이름은 개리다. 독특한 랩을 구사하는 개리가 떠오른다. 이상하게 잘 맞는 느낌이다. 둘이 비슷하게 생겼을 것 같고, 말투도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러니 책을 읽는 내내 개리를 상상하며 개리 이야길 읽는게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개리는 중1이다.(중2인가)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5시전에 책장을 덮었는데도 기억이 가물하다. 여하튼 중학생이다. 개리는 꿈이 개그맨이다. 웃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개리는 유머집을 읽고 자신이 더 발전된 형태의 유머를 개발해 내려고 애쓴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농담을 건넨다. 그런데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개리가 입밖으로 내는 모든 말이 농담이기 때문에 개리의 농담은 더이상 농담이 되지 못한다. 친구들은 개리를 얼간이라고 부른다. 대놓고 왕따를 하지만 개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개리는 남들의 평판 따윈 중요하지 않다. 개리는 스스로가 웃긴 농담을 잘 할 때만이 자기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행히 개리에겐 10살 짜리 천재소녀가 친구로 있다. 천재소녀는 영재학교에 다녀 개리 곁을 떠났다. 가장 많이 웃어주는 관객을 잃은 것이다. 다행히 천재소녀 아버지와 아버지 애인인 초5때 담임선생님이 개리 편이 되어준다. 개리 부모님은 개리의 농담에 지쳐 있다. 더이상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래도 개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웃는게 좋고, 자기가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기쁘기 때문이다.
학교 장기자랑대회에 나가 개그할 계획을 품은 개리. 그 과정속에서 개리는 농담을 제대로 못만들어내고 흐름을 못타는 자신이 못미더워 대회를 포기한다. 개리는 남들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 회의를 느낀다. 이렇게 확실한 꿈을 가진 중학생이 있다니 싶었다. 꿈을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는 도중에 좌절하고 다시 힘을 낸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이유는 인간은 농담을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human과 humor는 어원이 같단다. 웃을 수 있는 사람만이 바로 사람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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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표지만 보아왔던 책이라,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열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청소년 소설이었습니다.'인간은 농담을 하지만 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라는 책 속의 대화에서 따온 제목 이었습니다. 청소년 소설이 으례 그렇듯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중학생, 게리 분이라는 남자 아이입니다. 게리는 스스로 자신의 농담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의 친구들과 사람들은 단지 게리를 실없는 소리만 하는 얼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장기 자랑 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게리는 이때다 싶어 참가 신청을 합니다. 그때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럼 나는 그냥 제일 멋진 게리 분이 되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없겠구나." "얼간이 게리 분. 그래도 최고의 얼간이가 되는 거야."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리의 선언입니다. 주변 환경과 다른 이들이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자신이 정말 잘 하고 싶은 것을 아는 것. 자기 자신을 자신이게끔 하는 그것을 찾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책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선 게리가 위기를 기회로 이용했던 것조차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드러낸 게리. 그냥 얼간이라 아닌 최고의 '얼간이'가 됨으로써, 자신을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최고의 유머를 구사한 반전. 이 장면을 어린시절 추억처럼 최고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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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4일 초판 1쇄 발행.
모두가 얼간이라 놀리는 유머만 생각하는 게리가 자기 얘길 들어주는 조의 친구가 되고 싶은 건지 인정받고 싶은건지 모를 행동과 그런 모습을 친구들 앞에 허세로 답하는 조의 모습이 사춘기 아이들 모습이라는 갈까? 어렵다.
유머를 좋아해 장기자랑에 1순위로 접수하고 중도하차한 게리가 다시 하겠다고 했으나 순서에 이름이 빠져서 선생님에게 얘기하자 선생님이 "왜 항상 널까?"라고 말한다. 은연중에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빨간머리의 프레드가 매번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1순위가 되는 것에 대한 "왜 저는 늘 첫번째 일까요?"라는 물음이 괴롭힌자들만 웃을 수 있는 그러한 것인걸까.
번역자의 해설을 읽기 전까지는 나의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그저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런데 따돌림 받는 아이 치고는 너무나 주변에 무신경한 주인공 게리의 모습이 낮설었다. 마치 모두가 자신을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두에게 관심없고 오로지 유머에만 관심있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더 그랬던것 같다. 이 책은 자기가 원하는 걸 위한 극복이라 하는데 읽기는 쉽다 하루만에 읽어질 만큼. 유머는 글쎄. 우리나라 유머도 자꾸 접해야 유머로서 와 닿아서 웃을 수 있듯이 외국의 유머가 와 닿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고 어디가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게리의 의연함과 노력은 따돌림 받는 자가 슈퍼스타가 되어 친구를 사귄다인가본데 현실적용은 어렵지 않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