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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했고, <고지전>에서 신대위는 "살아 남아서... 모두 집에 가자"라는 의미 있는 멘트를 날렸다. 결국 이말은 고대전쟁이나 현대전에서나 똑 같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를 말해주고 있다. 인류가 식량의 재생산 방법을 터득하면서 이와 동시에 전쟁이라는 신개념이 생겨났고 인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단한시도 멈춤없는 전쟁의 수레바퀴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규모나 잔혹성을 차치하더라도 인류와 전쟁은 다른 종이 보기엔 정말 잘맞아 떨어지는 앙상블이라 할 정도로 우리는 전쟁을 달고 살았고 전쟁을 통해서 성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전쟁불감증 환자들 처럼 여차하면 전쟁, 전쟁하는 끔직한 발상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고 이를 듣는 이들 또한 거의 무감각한 위트정도로 밖에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 최고 유일의 전쟁 진행중인 국가에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사람들에게도 전쟁는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처럼 무감각하고 때론 기억조차 하기 싫은 전쟁이지만 이 테마가 영화나 소설로 일반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면 이상하리만큼 흥행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는 이유 또한 아마도 우리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일련의 폭력성을 여실 없이 보여주는 일례는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광폭한 전투신이나 피의 향연이 결들어지면 그야말로 롱런을 하게 되는 대박작품으로 남게 되니 더 이상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지금까지 전쟁소설의 일련의 성공방정식은 제2차세계전을 주 배경으로 특히 유럽지역에서 벌어지는 나찌 독일군과의 치열한 전략전술 과정 그리고 약간의 분위기 전환을 위한 에로장면들과 결국 권선징악이라는 대단원의 결말을 거두는 라스트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면에서 전쟁소설은 어찌보면 식상하면서도 이러한 작품의 스트럭쳐만 제대로 지켜 준다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반타작을 하는 셈이었다.
제임스 존스의 <신 레드 라인>은 이러한 일련의 정형적인 전쟁소설의 틀에서 벗어난 소설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제외하곤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전쟁이란 유럽에서 마지막 구원투수의 요청으로 참전했던 2차세계대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미국인들에게 정 반대편의 또 다른 전쟁을 다루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많은 부분들을 공감하게 되었겠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미국인들에게도 생소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 과달카날으로 선정하고 전투의 대상을 유럽의 독일이 아닌 동양의 일본으로 설정함으로써 기존 전투소설의 성공보장 카드를 슬그머니 포기해 버린다. 거기에다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나 에로신하나 없이 그야말로 시커먼 사내들의 이야기(문제는 동성애적인 장면을 첨부함으로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은 일지감치 손을 놓아라는 암시도 던져주고 있다)로만 가득 채우는 우를 범하므로써 알량한 기대감 마저도 날려 버린다. 또 이 작품에는 그 흔하디 흔한 작품의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주인공 마져 없애버림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래파토리가 흘러감에 따라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뭐 이게 공식이라면 공식이겠지만)에 대한 어슬픈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작품의 구조나 배경의 선정 그리고 내러티브의 진행등에 있어 기존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보는 도식화된 형태를 찾기 힘들다. 또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슨 반전 평화 등의 일련의 고상한 담론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전쟁소설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는 과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작품 전반은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시작하여 차분하게 내러티브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가 본 궤도(물론 수송선에 실려 과달카날 섬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군인들의 심리묘사나 행동등에 있어 일부 엿보이고 있지만)에 오르는 시점에서부터 마치 영화의 한 컷 한 컷 처럼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심리묘사나 그들의 둘러싸고 있는 상황 그리고 행동범위 내지는 절실해 보이는 작은 절규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들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는 1인칭시점 같은 기법을 혼용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과달카날섬 전투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작가의 장치적 기법은 전쟁 영화의 단면을 보는 듯한 스펙타클을한 긴장감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인해 현장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고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섯부른 결과에 대한 어렴풋한 예측이나 기대 혹은 바램등의 모종의 종결샷을 머리속 한편에 그리면서도 지금 당장 연출되고 있는 장면들에 대한 각각의 장면들을 실사로 처리하여 한결 내러티브속으로에 빠져들게 한다. 마치 영화를 지배하는 감독이나 작가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주어진 역활만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는 촬영조감독의 단편적인 컷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전해준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엇박자 같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유니크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또한 이러한 기법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자 동시에 이방인 듯한 묘한 감정의 이입을 이끌어 내면서 전쟁에 대해서 알게모르게 어렴풋한 담론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점이 <신 레드 라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전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각 개인의 시점에서 전쟁과 자신의 미래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시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이러한 각 개인의 관점들이 한데 뭉쳐 또 다른 거시적인 전쟁을 말하는 혼용적인 시점 구조는 마치 전쟁에 대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상념들이 저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있지만 결국 내러티브 전반을 관통하고 있고 작가가 보여주는 상념들은 바로 이런 개개인 상념들의 합일 수 밖에 없다는 극히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소 번거스럽더라도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가 생각하고 있는 상념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행위들과 욕설담긴 말들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게 한다. 이는 전쟁과 인간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굳이 적극적으로 부각시킬 필요성이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들 개개인의 행동과 생각의 합은 결국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음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다라는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고 이를 알리고자 하는 그런 고상한 종류의 작품은 결코 아니지만 <신 레드 라인>은 각 개인의 극히 개인적인 심리적 묘사를 사실적으로 이끌어내므로서 오히려 거시적인 담론들을 무색하게 해 버린다. 생사가 코앞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본국에 두고온 아내의 외도만을 생각하는 벨, 어떻게 하든 진정한 카우보이임을 증명하고 싶은 돌, 전리품 수집에 혈안인 데일, 진급이외는 관심없는 밴드,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후송되고 싶어 하는 파이프.... 이런 인간 군상들의 솔직 담백한 묘사야 말로 진정으로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내 거짓말을 믿어 주면 네가 하는 거짓말도 믿어 줄께"라는 말로 작가는 전쟁에 대한 기억을 단순화 시켜 버렸다. 하지만 이 간단한 문장처럼 전쟁에 대한 의미는 단순화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엔 거시적이고 고상하고 약간은 애국적인 그런 가시적인 담론을 담고 있길 거부한다. 그저 전쟁은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거짓말의 향연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거짓말은 상호 묵인하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각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전쟁소설 특유의 담론을 그리는 작품은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징집되어 투입된 전선에서 느닷없이 생사의 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무수한 젊은이들의 진솔하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서 전쟁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상당한 여운을 남기면서 오래토록 전쟁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상념을 지울수 없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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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은하 사진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천체 사진 중 하나가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허블 딥 필드'일 것이다. 직사각형의 평면 위에 찍힌 다양한 은하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수없이 많은 은하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소멸하는 전쟁터와도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은하와 은하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광경은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 작은 프레임 안에 담긴 은하들만 해도 수백 수천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더 경이롭고 놀라운 것은 영원히 측정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무한히 뻗은 우주의 한 부분만을 촬영한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광대한 축제이자 전쟁의 풍경은 지구, 태양계를 둘러싼 사방팔방으로 뻗은 전 영역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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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인스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표지를 보고 무언가 강력한 전쟁 소설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따라서 전쟁 영웅도 없다. 군인정신이나 애국심, 동료애 같은 감성적인 요소들도 나오지 않는다. 과달카날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지저분한 전쟁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다양한 군상들이 나올뿐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서두에서 이 소설은 실화가 아니라고 말을 한다. 과달카날섬 역시 하나의 소설적 배경일 뿐 소설의 전투는 실제 과달카날 전투의 배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소설적인 미화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전쟁을 다큐처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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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C중대가 수송선을 타고 과달카날 섬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섬에 상륙하기를 기다리며 초조하고 불안해 한다. 언제 일본 전투기가 폭격에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그들은 간발의 차이로 상륙을 하고 뒤에 남겨진 상륙정은 일본 전투기의 폭격을 발견해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 후 C중대는 과달카날이라는 최악의 전장터에 적응해 간다. 밤새 폭우가 내리고... 진흙 속에서 잠을 자고.... 밤마다 일본군 폭격기들이 폭격을 한다.
더 끔찍한 것은 춤추는 코끼, 해삼, 거대한 새우찜이라고 이름 붙여진 고지전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본군은 이 고지 곳곳에 참호를 파고 미군에게 대항한다. 이 과정에서 C중대는 많은 사상자를 낸다.
소설은 이런 전쟁에 적응해 가는 C중대원들의 생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우유부단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인 중위... 그는 중대장으로서 C중대원들을 이끌고 부대가 원하는 전투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기 중대원들을 죽음을 본다. 공격하지도, 후퇴하지도 못하고, 결국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다가 중대장직을 잃는다.
모든 것을 시니컬 하게 바라보는 윌시 상사... 그는 모든 전쟁이 재산 싸움이며... 결국 자신들 역시 나라끼리의 재산 싸움의 소모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시니컬 하다.
중대 행정병인 파이프... 그는 겁장이이다. 폭탁 소리에도 벌벌 떤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겁장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다가 부상을 당하고... 다시 중대로 복귀하다가 일본군을 죽이면서 자신 안의 폭력성을 발견한다.
돌... 전형적인 허세남이다. 그는 모든 사람은 허세를 부리고... 그렇게 스스로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떻게든 부대에서 인정받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면 남에게 허세를 부리기 위해 앞 장 서서 전투에 임한다. 그리고 C중대원 누구보다도 전투에 잘 적응해 간다.
전직장교였던 벨... 그는 아내와 함께 있기 위해 장교를 포기하고... 결국 사병으로 재 입대한다. 그는 아내와 다시 있기를 갈망하나... 과달카나 전투가 끝나갈 무렵 그녀에게 이별 소식을 드는다.
그리고 오로지 출세욕에 부대를 죽음으로 내 모는 대대장인 톨 중령... 스타인 중위 뒤에 중대장이 되었으나 톨 보다 더 맹목적인 출세욕에 자신의 부대원들의 일부를 몰살시키는 밴드... 단순하게 C중대로 복귀하고 싶어 전투에 참여하는 웰시... 취사반원에서 전투원이 되기 위해 전투에 앞장서는 데일....
이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점점 전투에 적응하고... 살인과 약탈을 일상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소설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다. 그냥 전투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묘사할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지루하고...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가 헛갈리기조차 한다.
단지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에 적응해 가는 군인들을 보았다. 아니 군대에 적응해 가는 군인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것이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게 허세를 부리며...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것... 그것에 적응해 가는 군인들... 그리고 그렇게 한 단계씩 진급해 가며... 자신이 경멸하던 상사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군인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조직 속의 모습이다.
이렇게 조직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흔히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낙오자라고 부른다. C중대가 참여했던 전투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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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드 라인』을 읽고 내 자신은 전쟁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이 끝난 후 2년 뒤에 태어났었고, 1960년대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 때에도 초등학교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군대를 가서는 우리나라 최전방 가장 험난했던 중동부 전선에서 남과 북이 서로 대치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해서 매번 언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직업과 관련이 있다. 바로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국사와 세계사를 담당할 때에는 수많은 중요 전쟁에 대해서 반드시 언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 모두에게 이득이 없는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많은 전쟁도 결국 우리 인간이 스스로 지상에 만들어 낸 지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나라를 위해, 신념을 위해, 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장에 내몰려 살인 기계가 되어야 했던 수많은 청년들과 삶과 죽음, 선과 악의 경계에서 조롱당해야 했던 그들의 처절한 외침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과 각종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자주 대하는 일반적인 전쟁 소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 소설이다. 저자인 제임스 존스는 직접적으로 실제 태평양 전쟁 중의 한곳인 과달카날 전투에 직접 참전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체험과 정확한 고증에 입각해 삶과 죽음, 인간성과 야수성, 천국과 지옥이 교차하는 전장의 참상을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양한 실제 체험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제외하곤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전쟁이란 유럽에서 마지막 구원투수의 요청으로 참전했던 제 2차 세계 대전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 이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많은 부분들을 공감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미국인들에게도 생소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 과달카날으로 선정하고 전투의 대상을 유럽의 독일이 아닌 동양의 일본으로 설정함으로써 기존 전투소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전쟁소설 특유의 담론을 제대로 그린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징집되어 투입된 전선에서 느닷없이 생사의 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무수한 젊은이들의 진솔하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서 전쟁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전혀 겪지 못한 우리 같은 사람들에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그러면서 전쟁에 대해서는 정말 다시는 없어야 할 대상으로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확신을 가져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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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때... 두께에서 놀랐습니다. 자그마치 700페이지... 겨우 읽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한번 더 놀랐습니다. 전쟁에서의 한 병사의 심리적 변화를 이렇게 잘 표현한 책은 없었습니다. 그 동안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전쟁은 무서운것이다 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전쟁속에 직접 참여한 병사들 개개인의 심리의 변화, 두려움, 분노를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표현도 잘 나타나져있는 책입니다. 금방까지도 자신과 얘기하였던 병사가 한순간에 무생물이 되어버린 일 등 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책 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유심히 보았던 일 전쟁에서의 지휘관의 지위입니다. C중대에서 일어나는 중대장의 변화, 좋은 장교(병사들을 생각)와 나쁜장교라고 표현되는(공이 목적) 자와의 차이를 통하여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 배울 수 있던 책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떠한 훈장도, 진급도 인간의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쟁에서의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린 병사들의 목숨을 선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희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피묻은 훈장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자기 부하들의 목숨인가 지휘관의 명령이냐 하는 지휘관의 고뇌또한 잘 표현되어 있는 책이였습니다. 미래의 장교과 될 사람으로서 이 책을 미래의 장교가 될 사람들에게 추천해드리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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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쟁 문학에 관련된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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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줄거리나 명장면에 대해 쓰려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신 레드라인의 리뷰를 찾는 사람들 모두가 직접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른 어떤 말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독특한 서술 방식이다. 필자가 읽으면서 특이하다고 느낀 이 책의 서술 방식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결과를 먼저 고하고 그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 으로 소설 속의 사건 하나하나를 설명 할 때 사용된 방식인데,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직접 읽어보는게 좋을 것 같다. 두번째 방식은 작가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 이다. 이는 소설 전체에 걸쳐서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소설 '신 레드라인' 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리 드문일도 아닌데, 전쟁소설의 특징상 한명의 영웅을 조명하는 류의 소설이 아니라면(사실 그래도 등장인물은 제법 많다) 자연히 등장인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고, 이는 밀리터리계의 거장 톰 클랜시의 작품이나 한국의 김경진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익숙해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제임스 존스의 작품은 조금 다르다. 여타 밀리터리 소설들은 여러명의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배경, 성격, 역할 등을 간략히 설명한 뒤 그 인물들이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그로인해 전쟁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배경, 성격 등을 설명 한것은 각각의 인물들이 하는 행동들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 반면 신 레드라인은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배경, 성격 등을 상세히 설명 해준뒤, 그것들이 전쟁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인과관계의 차이이다.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해서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가' 가 아니라 '인물들이 전쟁 속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인 것이다. 신 레드라인에 대한 설명은 조금 과장해서 이게 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 소설은 크게 '수송선'-'해안'-'코끼리'-'해안'-'새우찜'-'해안'으로 장소를 옮기는데 인물들의 성격은마치 이미 처음 해안에서 모두 확립된 것 같다. 동료들이 멋대로 만든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해 일본군 시체를 뒤지고, 공습내내 참호에 들어가지 않고 버티며 스스로를 불사신이라 믿는 등, 인물들은 실전에 투입되기도 전에 벌써 많은 일들을 겪고 변해버린것 처럼 보인다. 왠만한 소설 한권에 걸쳐서 일어나 심리적 변화가 200페이지도 안되는 사이에(소설 전체 분량으로 보면 3분의 1쯤 된다) 모두 일어나 버린것 같다. 그러나 '진짜'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 독자들은 엄청난 심리적 변화에 압도된다. 유럽전선에서 벌어진 초거대 스케일의 전투에 비하면 태평양의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고지전은 초라해보이기까지 하고 압도될 일도 없지만, 그 안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심리는 보는이를 숨막히게 하고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가슴으로 느끼게 만든다. 신 레드라인은 용감무쌍한 영웅을 찬양하지도 안고 울고 불며 반전을 외치지도 않지만 그 메세지는 분명하다. 그 메세지가 무엇인지는 직접 읽고 찾아보기를 바라지만 장담컨데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겪어보지도 않은 일들을 직접 겪은 것 처럼 생생하게 느끼며 병사들의 심정을 아니 병사들 그 자신이 되어보면 저절로 알게 될테니까. 이 책에 한번 펼치면 눈을 땔 수 없는 매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유쾌한 문장은 아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운 사람이 알게 모르게 잠이 들듯, 별로 읽지도 못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세네시간은 거뜬히 지나있는 그런 매력을 보장한다. 사진 한장, 움직이는 영상도 없는 소설일 뿐이지만, 잔인하게 훼손된 시체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묘사도 없지만, 신 레드라인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설령 전쟁이 남긴 잔혹한 상처를 담은 사진이나 영상에 익숙해 진 사람이라도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될것이다. 전쟁이란 우리가 생각한것 이상으로 잔인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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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드 라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영화 한 편의 퍼뜩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제목을 보며 예전에 봤었던 영화 하나를 기억에서 끄집어 냈고,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자면, 무척 길었었다.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하지만 그 당시 이 영화의 명성을 알고 있었기에 꾹 참고 마지막 씬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봤었다. 그랬다. 무척 길었던 영화였다. 길고 긴 영화였다는 것을 제외하고 무척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캐스팅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대단한 캐스팅이 가능하단 말인가!’ 싶었었다. 조연과 단연 역할인데도 낯설지 않은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었으니까. 숀 펜, 존 쿠삭, 닉 놀테, 조지 클루니, 존 트라볼타...! 지금 다시 어떤 영화를 찍는다 해도 저들은 한 곳에 모으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때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 당시 영화를 보면서 무척 의아했던 저 캐스팅을 이번에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들이 한 영화에 모일 수 있었는지, 읽어나간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원작의 힘이었으리라 확신하고 있다. 영화가 무척 길었던 이유는 원작 소설 역시 매우 두껍기 때문이었다. 처음 펼치기 전에는 놀라만큼 두꺼웠던 책이었는데, 읽어나감에 따라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과 사정을 알아가면서 책의 두께에는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반되는 그 미묘한 변화들을 최대한 담기 위해서는 이 두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수긍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오히려 부족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까지 설핏 들기도 했었다. 그런만큼 두께 때문에 이 책을 건너뛰고 영화를 한 편 봐야겠다고 마음 먹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말리고 싶다. 대체적으로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특히 ‘신 레드 라인’의 경우는 영화가 원작에 훨씬 못 미친다. 영화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도 물론 괜찮았다. 다만 원작은 영화보다 훨씬 더 괜찮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세세한 변화들을 훨씬 섬세하게 감지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전쟁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절감한다. 전쟁이 왜 나쁜지, 전쟁에 얼마나 쉽게 인간성이 매몰될 수 있는지...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 제임스 존스는 실제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군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무척 생생하게 느껴진다. 전쟁을 매체를 통해서 밖에 접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무서움과 섬뜩함이 손 끝에 닿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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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물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뭘까. 더 크게 한방 날리고, 터지는 수류탄 사이로 전진하고, 사지가 절단되어 피가 철철 나는 부상병이 소리소리 지르고, 날아오는 총알에 픽픽 쓰러지는 놈들을 보면서 느끼는 분리감이 아닐까. 저긴 저러고 있는데, 나는 영화관에서 팝콘에 콜라를 들고 실재했었던 죽음에 전율하고 있다 하는 느낌. 그래서 우리는 전쟁관련 문학에서도 ‘크헉’, ‘타다다다’, ‘쿠오오옥’, ‘콰아앙’와 같은 만화책 의성어가 난무하여 박진감을 의도하는 한 판을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전쟁문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2차 대전 전문작가 레마르크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며 독보적이다. 제임스 존스의 이 소설 또한 소재의 사실성에 입각하여 최대한 영상미를 죽이고, 인물들의 심리 전개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다. 저자는 1921년 일리노이 주 로빈슨 출생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 육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 경험이 저자의 작품 기조를 형성하는 가장 큰 자원이 되었을 것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어떤 사람들은 뛰어서 왔다>같은 작품들은 영화로 제작되었고, 1962년 발표된 <신 레드 라인>은 1998년에 조지 클루니, 우디 해럴슨, 숀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여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었다. 배경은 남서태평양 솔로몬제도 남동부에 있는 섬인 과달카날. 세계2차대전 당시 아주 전설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품 속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저자는 동시대를 보냈던 이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선사하고자 이 지역을 선택했다. 중심인물은 1연대 소속 C중대이며 특정 주인공 중심의 이야기가 아닌 ‘중대원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160페이지가 다 되도록 그들이 전장에 들어서기까지를 다룬다. 그러니까 초반부부터 어떤 ‘액션’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자칫 책장 넘기기가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 뜨거운 정글을 걷고 기어가면서 서서히 맞닥뜨려오는 죽음에 관해 병사들은 ‘다 죽어 나자빠져도 나는 아니다’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이 전쟁이 ‘재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웰시 상사, 심신이 허약해서 발발 떠는 행정병 파이프,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고 거기서 촉발되는 심리로 움직이는 존 벨, 취사병을 뛰쳐나와 진급에 목숨 거는 보병 찰리 데일, 자신의 무운을 믿고 과감해 지는 돌. 웰시에게 밉보이고 방출되었지만 여전히 C중대를 찾아오는 위트 등. 전투에 들어가기 전 C중대는 너무나 인간성 짙은 병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서 광기어린 전투에 대한 흥분으로 살인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는 그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다룬다. 정글과 무더위에 지쳐가면서도 젊은이다운 건강함으로 서서히 적응해 나가듯, 부상병의 신음이나 시체에 에 대해서도 점점 무뎌졌고, 이내 살인 이후에 시체훼손으로 금니 같은 전리품을 취득하는 것이 정례가 되었다. 그들은 우위를 점했고 우세한 상황이었다. 온갖 도덕률에서 벗어나도 좋은 방학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미친 듯이 피를 보고 싶은 욕망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서 살인을 할 수 있었고, 그 기회를 즐기고 있었다. 어제의 진땀나는 공포와 고생, 후위에서 발각되지 않고 진격했다는 흥분, 정상에서 무방비 상태였던 열다섯 명의 일본군을 살해했던 일 모두가 이 열광적인 분위기에 일조했으며, 지쳐 떨어질 때까지 그들을 멈출 수 없었다. (p. 448) 이 작품에서는 정글에서 많은 이들이 남색을 했음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성욕을 참지 못하는 상급 병사들이 진급을 빌미로 어린 병사들을 갖는 일이 많았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C중대에서도 여러 병사가 그런 성적 충동을 느낀다. 오지에서 죽음에 관한 공포와 스트레스로 적군을 죽이면서 젊은 혈기가 드글드글한 남자끼리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낸다고 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 싶다. 돌로 된 감옥에 갇혀있어야만 죄수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정부는 한 사람을 남태평양의 정글 섬에 가두고, 정부가 시킨 일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해낼 때까지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 (…) 살아남은 자들을 강인하고 잔인하며 완전히 냉소적인 보병으로 만들어 버릴 때까지 마음속에서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씁쓸함. (p. 487) “남들이 뭐라든 나는 기계의 나사가 아니야.” 그건 생각일 뿐 페인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맹렬히 느끼고, 믿고 싶었던 사실을 대변해 주었다. 그들은 그 말을 암기하고, 각자 자신의 상황에 적용했고 믿었다. 누가 뭐라든 그들은 기계의 나사가 아니었다. (p. 558)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 중에 하나는, ‘리더십’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자기 수하의 부하가 죽느냐 마느냐하는 시점에서 중대장의 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처음 C중대의 리더는 스타인이었다. 그는 인간적인 리더였고, 부하의 목숨이 상사의 명령보다 우선이었다. 그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부하 한명 한명을 챙겼으며, 자신의 중대에 ‘인간적’인 애정이 있었다. 인간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전시상황에서 그는 리더의 자질부족으로 물러났고, 새로운 리더 밴드가 C중대로 발령받는다. 그는 부대원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권위를 중시했으며 인간적인 면모로 부대원들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며 진급에만 목을 맸다. 부하들은 그의 판단착오로 개고생을 하며 희생되었고, 그는 후에 해임된다. 정글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지나가야 하는 리더의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중대의 모습은 달라졌다. 위에 앉은 이의 지력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병신 같은 리더를 모시는 부대원들은 딛는 걸음 자체가 절망이었다. 숨넘어갈 듯한 양상으로 긴박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거나, 죽음에 대한 오싹한 공포를 과장하지 않는 순도 있는 작품이다.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이다.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죽이기 위해 눈을 번뜩이면서, 기계 속의 나사로, 총알받이로, 그렇게 자국을 위해 비명횡사했던 그들을 애도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전투에 대한 전략과 위치 언급이 많아서, 고지번호를 단 지형도가 하나 실려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치열했던 전투만큼이나 치열하게 갈등했던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해준 작품, 제임스 존스의 <신 레드 라인>이었다. |